대장경 - 개정판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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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도 등재된 고려의 대장경은 바로 2011년 올해가 조성 천년 기념해라고 한다. 팔만대장경이 천 년의 시간을 지난 것이다. 과연 우리는 천년의 시간을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하지만 팔만대장경이 실존하지 않고 있는가! 그 역사적 사실만으로도 뭔가 묵직함이 느껴진다. 최근 광화문 현판 균열을 생각하면 그 방대한 시간을 초월한 거룩함을 새삼 느끼게 된다. 그렇게 팔만대장경을 손에 쥐듯 조심스럽게 책을 펼치게 된다.

 

아무리 <대장경>이란 제목 속 팔만대장경을 떠올렸지만, 현대사의 굵직한 이야기만을 생각했던 나의 무지로 인해 천년의 시간을 거스름에 깜짝 놀랐다. 창칼을 든 스님들과 대웅전 등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 사건의 전개 그 긴박감과 결연함에 다시금 놀랐다. 순간 대장경을 이야기하는데 대장경이 불타 없어진다는 설정이 의아했다. 다시금 역사 교과서의 펼치듯 이야기에 기대어 기억을 되살려보니 팔만대장경 이전에도 대장경(일명 ‘초조대장경’과 속장경)이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정리하면, 거란의 침입을 받던 고려 현종 때 조판되었던 초조대장경은 대구 팔공산 부인사에 옮겨져 보관되던 중 몽골의 침입 때 불타 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고려 무신 집권기의 ‘최우’ 집권 때, 승통 ‘수기’-<대장경>은 ‘수기대사’로 불린다-가 총괄하면서 ‘16년 만’에 완성했다는 사실도 상기해본다. 이야기는 약 10년여의 시간을 풀고 있지만 그 속엔 국난의 위기에서 수많은 이들의 염원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었다.

최우과 수기의 갈등 속에서 ‘팔만대장경’ 조판을 둘러싼 정치적 의도를 생각하면 수많은 민초들의 고통이 더욱 배가 된다. 또한 이는 IMF사태 때의 금모으기로 확장되면서 왠지 ‘허탈’함을 느끼지만, <대장경>에서 다만 민중들의 숭고한 정신과 시공을 초월한 역사적 유물 ‘팔만대장경’에만 시선을 모으기로 한다.

 

일련의 대장경 조판 과정을 생생하게 묘사함으로써 마치 그 현장 속으로 빨려 들어간 느낌이다. 많은 사람들이 한 마음이 되어 반복되는 일과 속에서 마음과 정신을 모으는 과정은 단지 상상에 머물지 않는다. 다시금 광화문 현판 균열 사건을 떠올리며 ‘팔만대장경’을 만들어가는 시간들과 수많은 사람들의 열정에 절로 숙연해진다. 천 년의 시간을 거슬러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뜨거움에 기인한 것이라 생각하면 전율에 몸서리처질 정도였다. 그리고 그 전율은 우리가 안고 있는 많은 폐단을 뒤돌아보게 한다.

 

작가의 상상력에 기대어 ‘팔만대장경’이 조판에 나 역시 참여하는 마음이었다. 수시로 이것은 상상에 불과하다며 자기 암시를 하였지만 활자 그 너머의 숭고한 의지와 땀만큼은 결코 부정할 수 없었다. 몸이 바스라지고 숨이 넘어가는 순간들, 그 ‘불덩어리의 자학적 정열’의 순간에 가슴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올라오는 뜨거운 불기둥을 느끼며 눈시울이 절로 붉어졌다.

벼랑 끝의 순간에도 나라를 향한 민초들의 뜨거운 예술혼의 결정체가 바로 ‘팔만대장경’이라고 생각하니, 단순한 역사 유물에 머물지 않는다. 솔직히 고백하면 역사적 유물의 가치를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단지 역사적 유물, 문화재라는 사실만을 인식할 뿐이었다. 하지만 <대장경>을 통해 대장경이 비로소 내 안에 자리한 느낌이다. 그리고 수많은 문화재가 담고 있는 가치와 의의에 대해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장을 열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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