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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의 시작! 폭우, 태풍 때문에 무더위가 더해지지만 

마음만큼은 책 속에서 풍성해지고 상큼해질 듯~ 

과연 어떤 책들이 시선을 사로잡을지 나 역시 궁금!

 

 

 <익숙한 화가의 낯선 그림 읽기> 

익숙한 화가의 낯선 그림이란 제목 자체만으로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 같아요~ 

색다른 작품들이 주는 생소함이 그야말로 그림을 보는 시야를 무한히 넓혀줄 것 같아 절로 기대되네요~ 

 어떤 이야기를 풀어낼지 기대 이상일 듯! 

 

  

 

 그야말로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그 어떤 이야기보다 풍성하고 다채롭게 다가올 것 같아요~ 

예전에 사진술이 발전하면서 그림에도 많은 변화를 야기했던 이야기를 접했던 기억이 있는데, 과연 미술 속 과학 이야기, 과학 속 미술 이야기를 직접 확인하면서 지식의 저평을 넓히고 싶네요~  

 

 

 

 

 이 책 역시 철학과 사진의 만남이라니 두말할 필요없을 듯! 

사진을 통해 철학적 사유의 깊이를 넘나들 수 있을지, 

걱정스러우면서도  

궁금함과 호기심에 들썩거리는 책!  

 

 

  

 

그 외에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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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릿 바운드 - 내가 선택한 금지된 사랑 뱀파이어 아카데미 시리즈 5
스콜피오 리첼 미드 지음, 이주혜 옮김 / 글담노블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기다리고 기다리던 ‘뱀파이어 아카데미 시리즈’의 다섯 번째 이야기 <스피릿 바운드>를 손에 쥐었다. 지난 이야기는 바로 스트리고이가 된 디미트리가 살아남아 로즈에게 은제 말뚝을 보내는 것으로 끝이 났다. 그런데 살아있다는 사실보다 더욱 흥미를 끌었던 것은 바로 영적 마법으로 스트리고이를 되돌렸다고 주장하는 모로이의 존재였다. 그 존재만으로도 로즈는 희망에 들떴고, 다섯 번째 <스리핏 바운드>의 이야기를 이끄는 가장 큰 매력이었다. 뱀파이어인 모로이 사회는 대부분 네 가지의 마법 중에서 각자 나름의 특화 마법을 하나씩 다룬다. 그런데 다섯 번째 ‘영적 마법’은 희소한 것으로 그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게 보인다. 리사가 죽은 로즈를 살렸던 것처럼 스트리고이도 되돌릴 수 있다는 희망, 그리고 과연 디미트리가 어떤 과정을 통해 댐퍼로 되돌아올 수 있을지가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그런데 스트리고이를 되돌린 영적 마법의 소유자가 바로 첫 번째 ‘뱀파이어 아카데미’의 이야기 속 로즈와 리사를 죽음으로 몰았던 장본인, 감옥에 갇혀 한 평생을 살아야하는 빅토르와 관계된 인물이었다. 그리곤 작은 희망의 불씨는 로즈로 하여금 위험천만한 계획을 세우게 만들었다. 바로 리사의 영적 마법을 이용해 빅토르를 탈옥시키는 것이었다. 졸업을 하고 계획을 실현하지만 예상 밖의 변수로 다른 상황들이 전개된다.

 

‘내가 선택한 금지된 사랑’이란 부제가 다시금 눈길을 끌었다. 솔직히 수호인이면서 사제지간인 디미트리와 로즈의 사랑, 모로이 에이드리안과 로즈의 사랑도, 리사와 크리스티안의 사랑도 험난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로즈와 에이드리안, 디미트리의 삼각관계, 리사와 크리스티안의 오해와 갈등도 끊임없이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또한 모로이와 댐퍼 종족 간의 관계, 모로이 사회의 정치적 이슈들은 마치 오늘의 우리 사회의 거울처럼 비춰져 흥미로웠다. 스트리고이의 공격으로부터 모로이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수호인 댐퍼의 존재가 절대적이면서도 내부적 갈등 등은 점점 더 골이 깊어가는 것 같았다. 타티아나 여왕과 리사를 둘러싼 음모 그리고 로즈에게 불어 닥친 엄청난 소용돌이에 깜짝 놀랐다.


솔직히, 로즈의 위험천만했던 계획과는 달리 스트리고이였던 디미트리는 너무도 쉽게 돌아왔다는 인상을 주었다. 전전긍긍하던 로즈의 영적 마법과 용기는 급변하고, 그것도 이야기 중반에 이미 해결이 되고 말았다. 조금은 맥이 풀린다 싶었는데 작가의 상상력과 이야기의 힘은 내 상상 저 너머에 있었다. 리사와 로즈가 결속을 통해 연결되었듯, 왠지 디미트리와 리사도 결속과는 또 다른 어떤 관계가 성립되지는 않을지, 충성을 맹세하는 디미트리와 로즈를 거부하는 디미트리와의 갈등 등이 약간의 실망감을 기대감으로 되돌려주었다.

 

여러 복선들 가운데서도 이 시리즈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것이 무척 흥미로웠다. 그런데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야깃거리에 깜짝 놀랐다. 과연 마지막 한 권의 책 속에서 실타래처럼 엉켜있는 복잡다단한 관계들을 어떻게 풀어내고 정비할 것인지, 물론 해피엔딩을 기대하며 7월 출간 예정이라는 마지막 <라스트 새크리피스>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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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과 문학에 나타난 그로테스크] 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미술과 문학에 나타난 그로테스크
볼프강 카이저 지음, 이지혜 옮김 / 아모르문디 / 201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그로테스크의 창작은 현세에 깃들어 있는 악마적인 무언가를 불러내고 그것을 정복하는 일이다.”

(309쪽)

 



영어 단어 grotesque는 ‘기괴한, 괴상한’의 의미로 알고 있을 뿐이었다. 이번에 새롭게 미학 용어로써의 ‘그로테스크’를 만나게 되었는데, 기괴하고 섬뜩함, 음산함 등의 감정들이 떠올리며 몇 개의 그림들을 연상하였다. <미술과 문학에 나타난 그로테스크>란 제목에도 불구하고 나는 ‘미술’에서 나타난 그로테스크만을 인지하였다. 섬뜩함, 오싹함이 불러온 거북함이 먼저 떠오르는 그림들이 작은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지만 여전히 거리감에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솔직히 책을 펼치면서 내심 기대했던 것과 달리 수많은 글자들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는 점이 당혹스러웠다. 이 책은 분명 학술서이다. 미술과 문학에 나타난 그로테스크 중에서도 특히 문학(소설, 연극)쪽에 치우친 점이 정말 아쉬웠고, 또한 문외한인 내겐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다행스러운 점은 옮김이 역시 나와 같은 아쉬움을 토로했다는 점에 위안을 얻는다.

작가 ‘볼프강 카이저’는 20세기 독문학사에 큰 영향을 미친 학자들 중 한 사람이란다. 즉 독문학자이기에 미술보다는 문학에서의 그로테스크를 많이 다룰 수밖에 없었고, 낯선 독일문학들도 많이 소개할 수밖에 없었다. 더 솔직히 말하면 낯설다는 표현은 독일 문학작품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름-에드거 앨런 포, 토마스 만, 카프카 등-만큼은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지만 그들의 작품들은 여전히 낯설 뿐이었다. 그래서 문학작품들을 예를 들어 ‘그로테스크’의 용어의 역사를 파악하고 그 개념을 이해하는 것은 분명 힘겨운 일이었다.

 

건축과 장식예술에서 동물, 사람, 식물 모양을 함께 사용하여 만든 벽장식, 조각장식에서 비롯된 그로테스크는 16세기, 낭만주의 시대, 그리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영역이 넓어지고 그 의미도 조금은 다양해졌다. 그로테스크라는 용어의 역사를 통해 미술, 문학사를 이야기하는데 특히 주목할 점은 바로 그로테스크가 크게 유행했던 시기가 바로 혁명의 시기, 또는 혼란의 시기라는 점이었다.

간략하게 한 마디로 정의내릴 수는 없지만 ‘그로테스크’ 속에 내포된 의미 중에서 나는 바로 우리 안에 깃든 악마성에 주목했다. 책을 읽는 동안 내가 제대로 이해하는지에 대한 판단은 유보하고 바로 내면 깊숙이, 그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우리 안의 모순과 현실의 부조리와 왜곡, 불안과 공포 등을 떠올렸다. 마주하고 싶지 않는 또 다른 나의 본모습에 대한 공포가 눈앞에 펼쳐졌다. 하지만 질서와 원리, 그에 대한 믿음과 확신으로 가득찬 세계를 오히려 극단적으로 비틀어 버림으로써 파괴하는 행위 자체가 지닌 ‘그로테스크’의 진정한 의미를 찾게 되었다. 때론 우리 안의 무자비함, 잔혹함을 인정하고, 더 나아가 그것을 극복하고 우리의 삶 속에 깃든 수많은 불안과 공포에서 좀더 자유로워지는 것에 '그로테스크'의  큰 참의미가 있다는 결론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그로테스크의 핵심은 죽음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삶에 대한 공포’, ‘미지의 무엇을 구체화하는 것’(304쪽)의 말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거북하다는 이유로 외면하고 무시할 것이 아니라 그 안의 진실에 주목할 때 오히려 우리가 갖고 있는 많은 모순과 갈등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나름의 지혜로 이 어려운 책을 정리해본다. 그리고 책 속에 소개되었던 그로테스크한 작품들을 찾아 이 여름의 찌든 더위를 날려버릴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해본다. 또한 이젠 작품들 속 오싹함에 전율하는데 그치지 않고 나름의 의미와 삶의 지혜를 얻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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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그림 보면 옛 생각난다] 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옛 그림 보면 옛 생각 난다 - 하루 한 장만 보아도, 하루 한 장만 읽어도, 온종일 행복한 그림 이야기
손철주 지음 / 현암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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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예술 분야의 책을 접하다보니, 우리의 옛 그림이 궁금해졌다. 아무래도 우리 것인데 더 소원한 느낌, 더욱 친숙하고 익숙해야 할 것들이 점점 더 낯설어지니, 뭔가 허한 느낌이 커졌다. 그러다보니, <옛 그림 보면 옛 생각 난다>는 제목이 한 눈에 들어왔다. 우리의 옛 그림을 떠올려보자! 과연 몇 점이 떠오르는가? 학창 시절 미술 시간도 아닌, 역사 시간에 봤던 그림이 손가락 안에 꼽힌다. 그렇게 부끄러움에 몸과 마음이 먼저 반응하면서 들떴다.

 

옛 그림을 보면 과연 어떤 생각이 떠오를까? 그것도 ‘옛 생각’이 난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옛 생각은 무엇일까? 그림이 품고 있는 그 생각들이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무수히 스쳐 지나는 공상에 머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다잡고 경계할 수 있는 지혜가 함축되어 있기에 그 마음들을 오롯이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예전에 <그림공부, 사람공부>(조정육, 앨리스)를 만난 적이 있다. 옛 그림에서 인생의 오랜 해답을 얻는다는 의도에 걸맞게 그림 속 명쾌함이 무척 좋았는데 이번에도 역시 옛 그림을 보며, 옛 생각들 속에서 우리는 오늘을 사는 지혜를 엿보게 된다. 저자의 짤막한 해설과 감상이 마음을 비집고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옛 그림 속에 담긴 혜안과 저자의 촌철살인의 입담으로 절묘하게 어우러져 크게 매료되었다.

 

솔직히 그림 속 ‘여백의 미’ 어쩌고저쩌고 하지만, 그 여백에서 느껴지는 여운은커녕, 그림조차 흘려보기 일쑤다. 설명이 덧붙어지니 그림을 요리조리 살펴보면서 그 속의 뜻을 음미하다보니, 하루 한 점의 그림, 한 편의 이야기로도 충만했다. 솔직히 낯선 그림이 천지였다. 정선. 김홍도, 신윤복 등의 이름들을 제외하면 낯선 화가들뿐이었다. 작품들 역시 평소 접할 수 없었던 것들로 가득했다. 정말 발품 팔아가며 공들인 정성이 우리의 옛 그림들을 더욱 독보이게 하는 듯하다.

 

68편의 그림들과 책의 구성 또한 진한 여운을 남긴다. 별 의미 없이 내뱉는 무수한 말보다 오히려 두 쪽을 다 채우지 않은 짧은 글은 오히려 그지없이 풍성하게 다가온다. 그림의 특징과 속뜻 풀이, 그와 어울리는 옛글들, 화가의 배경 등 없는 것 없이 있을 것은 다 있는 느낌,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더욱 흥미를 끄는 것은 정말 고유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외 없이 한 두 개는 꼭 고유어를 활용해 이야기를 풀어내고, 간략하게 뜻까지 풀이하는 등 친절함과 세심함으로 우리의 옛 그림들을 선보이고 있었다. 허했던 마음속이 왠지 모르게 든든해진다. 매번 숨은 보물을 찾는 기쁨을 만끽하며, 쉴 새 없는 장맛비 속 짜증과 우울들을 날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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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청춘이란 무엇인가 - 방황하고 사색하고, 아프니까 사랑이다
헤르만 헤세 지음, 서상원 엮음 / 스타북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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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하루하루 삶의 매 순간을 날카롭게 살펴 참된 삶 속에 ‘실존하는 순간’을 찾게 된다'

(136)

 

흔들리는 청춘, 아니 흔들리는 수많은 마음들을 위로하고, 보듬어 주는 ‘헤르만 헤세’의 이야기를 오랜 만에 만났다. 아니, 예상치 못한 반가움에 들뜨기도 하였다. 그의 수많은 이야기들 중에서 어떤 이야기를 묶어 이 한 권의 책이 완성되었을지 궁금증이 일었다. 그다지 새로운 것이 없을지 몰라도, 좀 다른 시선에서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미 지난 시간 속의 내가 아니지 않은가! 그럼으로 내 안의 다른 목소리의 울림을 듣고, 내면 깊은 곳으로 자연스럽게 흘러들어가 자신과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여유롭고 한가로운 시간이었다.

 

학창 시절 '헤르만 헤세‘는 뭐라 설명할 수 없는 힘으로 ’책‘이라는 전혀 다른 세계로 나를 이끌어주었다. 그리고 이젠 그 시절의 앨범을 꺼내들 듯, 추억을 아로새기며 헤세를 만나곤 한다. 하지만 여전히 큰 울림으로 나를 사로잡는다. 목가적인 분위기, 때론 엄숙하면서도 근엄한 목소리로 자기 성찰을 부르짖으며 고민하는 모습 자체가 위로가 된다.

헤르만 헤세에게 있어 청춘이란 과연 무엇일까? 그 생각의 깊이를 가늠할 수조차 없지만, 그의 이야기를 빌려 끊임없이 스스로 되묻는다. 과연 내게 있어 청춘의 의미는? 과연 흘러간 시간 속에 머물고 있는지, 아니면 여전히 청춘의 한복판에서 힘들어하고 괴로워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저 하늘과 땅 사이에서 유유히 떠도는 구름처럼 끊임없이 방황하고 아파하고 사랑해야하는 것인지 수많은 번뇌가 부지불식간에 잦아들었다.

 

분명한 것은 헤세의 이야기에 젖어들다 보면, 마음 한 구석이 평안해진다는 것이다. 그간의 불안, 절망, 고통, 우울 등의 모든 잡념들이 사그라진다. 삶, 인생의 여정 속에서 내 위치를 돌아본다. 괴롭고 무서운 불면의 밤들은 사그라지고 어머니 품 같은 포근함으로 마음속이 물든다. 그저 방황할 수밖에 없는 인생이라는 것, 때론 뜨거운 열망에 휩쓸리지만 내 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자는 그의 가르침은 성난 파도를 잠재워주는 듯하다. 조금이나마 함께 마음을 나누며 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 가득, 충만해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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