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당신도 써라
배상문 지음 / 북포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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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당신도 써라' 더하고 뺄 것도 없이 책의 핵심은 단 하나다. 제목 그래로 당신도 일단 한 번 써보라고 '충동질'하는 책이었다. 그렇다고 단순한 '충동질'에 그친다면, 이 책은 읽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글을 쓰는 어떤 특별한 기술적 측면을 열거하는 것도 아니고, 끊임없이 쓰고 또 쓰라 이야기로 귀결되는 책이니 제목 한 번 읽은 것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글쓰라는 충동질에서 '인생살이'의 교훈이 오롯이 담겨 있어, 아주 흥미로웠다. '글쓰기'에 관한 책이라면서, 예상될 수 있는 이야기에서 벗어난 듯 '의외성'에 놀라 빠져들었고, 책이 주는 긍정의 힘을 온전히 받아드렸다.

 

나는 글쓰기에 관한 책은 <그러니까 당신도 써라>란 이 책이 처음이다. '글'이란걸 쓰지 않으니, 읽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초등학교 학예 시간처럼 몇 마디 끄적끄적 하는 것이 다라며, 움츠려있었다. 하지만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책을 읽고 서평을 올리고,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아주 조금씩 글로 표현하는 재미에 빠지기 시작하면서(지극히 자기 만족적 측면이 강하다), 마음이 쏠리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이렇게 <그러니까 당신도 써라>를 손에 쥐었다.

 

책의 핵심은 정말 단순하고 명쾌하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엉덩이 붙이고 앉아, 꾸준히 글을 쓰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글쓰기 관련 다른 이들의 인용문을 이용하여, 자신의 경험담을 살짝살짝 들려주면서, 일관되고 '일단 쓰라'고 이야기한다. 소심한 내겐 끊임없이 세뇌시키는 듯한데, 불쾌함을 느낄 새도 없이 가볍고 즐겁다. 물론 글쓰기의 고충과 노고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결코 쉬운 일은 세상에 없는 듯. 제목처럼 가볍고 쉽게 글을 쓰라 선동하는 책만은 분명 아니다(앞서 '충동질'이란 단어로 오해의 소지를 제공하였다면 유감스럽지만 본의와는 다르다.). 단연코 '아니다!' 매일매일 기계적인 글쓰기 습관 자체가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제목만큼이나 '의도'가 분명한 책이었다. 그런데 계속해서 다른 인생살이의 '기술'를 들려주는 듯, '글쓰기'뿐 만이 아니라, 또다른 삶의 영역에 자꾸자꾸 적용되는 것은 당황스럽기까지 하였다. 분명히 '글쓰기' 이론서일텐데 말이다. 책을 들고 있는 내내, 생활 전반으로 확대 적용되는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었다. 마치 '인생론'을 읽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꾸준함'과 '인내', 그리고 '땀'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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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즐거움 - 은퇴 후 30년… 그 가슴 뛰는 삶의 시작!
김열규 지음 / 비아북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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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즐거움! 과연 '노년'의 즐거움이란 무엇일까? 의아해졌다. 그리고 저자 '김열규'란 이름을 보면서, 과연 이 분이라면, '즐거움'을 노래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렇다면 어떤 말씀을 하고 있을지 호기심이 솟았다. 솔직히 표지는 정이 안 갔다. 여러 노년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라 생각되지만, 색색의 이미지가 아프리카의 어느 동굴 속 벽화같은 느낌이 들면서, 선뜻 용기가 나질 않는다. 어떤 식인종에게 잡혀 끌려갈 것 같은 이상한 두려움! 그것은 일종의 '나이듦'에 대한 두려움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노년의 즐거움>이 담고 있는 많은 이야기를 통해, 그런 두려움을 멀리 사라졌다. 때론 하루하루 내일의 불확실성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온전히 사라졌다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이듦'에 깊은 의미를 되새기며, 그 속에서 밝음을 끄집어 내고 있어, 정말 유쾌하게 읽히면서 많이 생각하고 깨닫게 된다. 

 

노년은 황혼처럼 사무치게 곱고 야무지고 황홀하다.

노년은 안단테다. 정숙하고 진중한 안단테 칸타빌레다

노을빛, 흰 눈빛, 별빛 ... 노년은 세 빛으로 빛나는 나이다.

완벽한 성숙, 노년은 잘 익은 가을 과일이다.

노숙, 노련, 노익장... 노년은 청춘을 뛰어넘는 가능성이다.

노년은 가숨 쒸는 생의 시작을 알리는 우렁찬 팡파프다.

노년은 잴 수 없는 시계 너머의 시간이다.

(표지글)

 

<노년의 즐거움>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뉜다. 1장은 '노년'의 '노(老)'의 다양한 의미를 해석(여러 단어의 사례를 통해, 그 의미가 더욱 뚜렷해진다)하고, 그 속에 깃든 정신, 특히 긍정적인 생각을 이끌어준다. 2장은 행복한 노년의 노하우라 할 수 있다. 5가지 금기사항과 5가지 권장사항을 일러주고 있다. 그 중에서, 운동과 소식, 사색은 지금 이 순간의 삶에도 진정으로 유용한 것이었다. 3장은 노년의 즐거움 그 자쳬를 보여주고 있다. 여러 과거의 예술가, 학자들 뿐만 아니라, 현재 우리 주변, 가슴 뛰는 삶을 몸소 실천하는 어르신들을 만날 수 있었다. 마지막 4장은 저자의 노년의 삶을 들려주고 있다. 어떻게 노년을 즐기고 있는지~ 온전한 자기만의 시간 속에 살고 있다는 저자의 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노년'의 삶을 어떻게 즐길 수 있는지 그 해법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노년'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었다. 그 중에서 노년이란 젊음을 앞에서 이끌어 가는 것이며, 젊은이에게 용기를 북볻아 주는 것이라는 말이 눈에 띄었다. 진정, <노년의 즐거움>을 통해, 앞으로의 '노년'의 또다른 삶에 대한 희망을 꿈꾸는 것보단 지금 이 순간 바지런히 움직이며 노력하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로 느낄 수 있었다. 여전히 팔팔하고 숨쉬고 뛸 때라는 자명한 진리를 몸에 새길 수 있었다. 한없이 부끄럽게 만드는 책 그리고 반성하고 분발하라 용기 북돋아 주는 책 <노년의 즐거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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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내일 - 쓰레기는 어디로 갔을까
헤더 로저스 지음, 이수영 옮김 / 삼인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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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내일> 뭔가 했더니, 부제가 '쓰레기는 어디로 갔을까'였다. "옳거니, 이거다!" 싶은 생각이 스쳤다. 얼마전에 KBS '환경스페셜(395회, 2009년 7월 1일 방송 "국경없는 침입자 바다쓰레기"편)'을 통해 쓰레기의 최후를 목격하였다. '북태평양의 거대한 쓰레기 무덤 자이어(Gyre)'라 불리는 쓰레기의 최종 종착지로, 그곳의 쓰레기 중 잘게 부서진 플라스틱은 동물성 플랑크톤-"태평양 한가운데 동물성 풀랑크톤보다 플라스틱 쓰레기가 여섯 곱절이 더 많은....." (15쪽)-과 구별되지 않아, 결국 굶어 죽은 새의 비참한 몰골(뼈만 앙상하게 남은 새의 사체 속에는 플라스틱 조각들로 채워져 있었다)은 너무도 충격적이었다. 그 이미지가 생생하게 각인된지 얼마 되지 않아 <사라진 내일>이란 책을 발견하였고 정말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정말 그 많던 쓰레기는 어디로 갔을까?

 

"쓰레기는 영원히 쓰레기일 뿐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299)



 

<사라진 내일>의 저나 '헤더 로저스'는 같은 제목의 다큐멘터리 영화 <사라진 내일(Gone Tomorrow)>(2002)을 발표하고, 못 다한 이야기가 더 많아 이렇게 책까지 펴냈다. 그리곤 이렇게 책을 펼쳐보니, 생생하게 '쓰레기의 경로'을 추적하면서, '쓰레기의 본질'을 파헤치고, '쓰레기의 내일'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한 마디로 '쓰레기의 역사'을 통해 우리의 내일을 이야기하고자 하였다. <사라진 내일>을 통해 본 쓰레기에 관한 진실은  불랙홀같은 혼란 그 자체요, 역겹고 괴기스럽기까지 하였따.  정말이지 쓰레기의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는 것은 너무도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야 할 진실이었고, 더 올바르고 가치있는 일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쓰레기의 역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산업혁명과 세계대전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 쓰레기는 '소비'와 '낭비'를 조장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산물이었다. 과거엔 대체로 손쉽게 자연으로 환원되는 유기물 쓰레기였고, 도시의 발달과 함께 가장 큰 문제였던 '분뇨(인분도 포함)'는 모두가 금전적 가치가 있었다. 그러나, 콜레라 같은 전염병 이후, 공중위생개념이 확립되면서, 쓰레기는 불결함과 불편함이 아닌, '건강의 위해'였다. 그러나, 1905년 한 위생학자는 건강을 위한 방책이라기보다는 불괘함과 불편함을 막기 위한 것일 뿐이라 단언하였다. 그리고 쓰레기는 순수하게 시장논리, 자본의 흐름, 정치와 사회 문화와 맥을 함께 하고 있다. '미국'의 쓰레기 현장 보고서인 이 책은 결코 '미국'에 국한될 수 없는 문제였다.

 

"꾸준한 유행의 변화와 기술 혁신이 이어지는 전자제품을 더 빠른 속도로 더 많이 소비라하는 압력과 유혹은 거대한 쓰레기 양산에 불을 붙였다." (257)

 

가장 충격적이고 불편했던 것은 쓰레기의 본질이 순수하게 시장논리, 기업의 이윤 추구와 함께 한다는 것이다. 5장의 '쓰레기의 황금기'는 1950년대 미국의 풍요의 시대 속, 소비의 황금기가 바로 쓰레기의 황금기였다는 것을 조목조목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과대 소비를 부추기면서 대량 생산된 제품(특히 가장 문제가 되는 전자쓰레기들)은 '노후와의 내재화' 속에서 쓰레기를 끊임없이 양산할 수 밖에 없는 현실에 우리는 살고 있었다. '친환경기업'이란 이미지에 속고, 소비자를 기만하는 여러 행태를 볼 수 있었다. 재활용의 현실은 너무도 암담하였다.

 

"플라스틱 포장업계는 세모꼴의 상징을 통해 투표권이 있는 소비자들을 오해하게 했다. 다시 말해 이런 용기는 재활용할 수 있고, 어쩌면 이미 재처리되어 만들어진 제품일지도 모른다고 오해하게 한 것이다. 하지만 두 경우 모두 사실과 달랐다. ...... 이 등급이 생산자들에게 진실로 쓸모 있는 분류 체계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223)

'코카콜라는 소비자들 사이에서 녹색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실제로 재활용할 필요까지는 없음을 깨달았다" (275)

 

<사라진 내일>은 통해 암담한 현실만 본 것은 물론 아니었다. 불편한 진실을 속속들히 알게 됨과 동시에, 과연 우리의 할 일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었다. 여러 실천적인 대안을 모색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또한 거대한 쓰레기 속에서 우리들의 작은 실천이 무의미하고 부질없는 것은 아닌가 하는 딜레마에도 빠졌지만, 자연스레 그러한 개개인의 실천과 노력만이 거대한 공룡과 싸울 수 있는 큰 힘이란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젠 무절제한 소비는 낭비일 뿐이며, 근검절약의 미덕을 실천할 때란 것은 가슴 깊이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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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씨들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 18
루이자 메이 올콧 지음, 김양미 옮김 / 인디고(글담)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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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씨들> 자~ 기억을 떠올려볼까? 그래 어린 시절 동화책으로 읽었던 '작은 아씨들'의 내용이 뭐였더라~ 글쎄 내 기억 속 어느 자리에서도 그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소녀적 감성에 참으로 즐겨 읽었을 법한데 도무지 어떤 에피소드들이 있었던 걸까? 책을 집고 조금씩 읽고 나서야, 뾰촘뾰촘 새싹을 틔우듯 그렇게 아기자기한 네 자매의 이야기가 온몸으로 전해지면서 절로 흥이나고, 행복해졌다.

 

크리스마스 전후로 시작되는 1년 동안의 23편의 다양한 일화들을 어릴 적 읽을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일 것이다. 까다득한 예전엔, '조'를 비롯한 네자매, 특히 조와 로리의 이야기, 그리고 전혀 다른 세계에 대한 환상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에는 더없이 따스한 가족의 모습, 티격태격하면서도 우애 깊은 자매들의 이야기와 함께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각양각색의 개성이 뚜렷한 네 자매를 훈육하고 돌보는 어머니의 남다름이 나를 매료시켰다. 저녁이면 가족이 함께 모여 베스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노래하고 하루를 정리하는 모습이 참으로 정겨우면서도 현대인들에게 가능한 일인지 새삼 어깨가 무거워진다. 네 자매들간의 사소하지만 때론 커다란(?) 갈등도 한 가족이란 울타리 속에서 너무도 아름답게 그려지며 화해하고 반성하고 끊임없이 발전하는 모습에, 좀더 차분하게 스스로를 뒤돌아보게 한다. 모처럼만의 여름 휴가(방학) 중 일주일간의 유쾌한 자유생활의 일화가 기억에 남는다. 자유로움 속 게으르고 나태함에 크게 반성하고, 더욱 성실하고 바지런히 생활하는 모습, 그리고 그런 사소한 일상의 일을 언제고 눈여겨 보는 엄마의 모습이 정말로 인상적이다.

 

1863년에 출간되었다니, 그 시대상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화를 단순히 '동화'로 보지 못하는 못쓸 '어른'의 탈을 쓰고 있어, 스스로도 아쉬움도 컸다. 또한 완역본으로써 더욱 솔직한 이야기들은 나의 속내를 들킨듯 씁쓸한 점도 지나칠 수 없었다. 단연 <작은 아씨들>의 예쁜 일러스트에 반해, 손에 들고 있는 내내 괜시리 흐뭇한 미소가 짓어졌다. 하지만 그런만큼 더욱 다양한 그림을 원했는데, 살짝 반복되는 점, 그리고 약간의 미완성인 듯한 그림에는 적잖이 실망스런 마음도 들었다. 

 

마치 가문의 네 자매, 메그, 조, 베스, 에이미의 이야기를 통해, 지난 어린 시절로 추억 여행을 떠남과 동시에 지금의 '나'의 모습을 뒤돌아보게 된다. 예전엔 느껴보지 못했을 또다른 감동과 향수에 젖어, 달콤·쌉쌀함에 취한다. 참으로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네 자매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영원할테지만, 왠지 모를 서운함은 또 어쩔 수 없는 일인 듯하다. <피노티오>에 이어, <작은 아씨들>을 통해, 예쁜 일러스트를 자랑하는 '인디고'의 또다른 고전 시리즈가 더없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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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의 홀쭉한 배낭
구광렬 지음 / 실천문학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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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tv를 통해 처음 '체 게바라'를 만났다. tv 속 단편적인 이미지만을 기억하고 있을 뿐, 지금껏 '어떤 인물이길래, 그토록 열광하고 추종하는 것일까?와 같은 '왜?'에 대한 답을 찾으려 노력하진 않았다. 한 두번 손에 쥐었다가, 곧장 내려놓기를 몇 차례, 그런데 '홀쭉한 배낭' 속 '69편의 시'가 담긴 '체의 녹색노트'라는 선전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체 게바라'에 대해서는 아직 많이 모른다. 어떤 사상과 신념을 갖고 혁명에 뛰어들었는지 깊이 생각하며, 그를 만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 책 <체 게바라의 홀쭉한 배낭>을 읽고 나니, 그의 삶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다는 열망에 빠진다. 그가 체포되던 날, 그의 홀쭉한 배낭 속에서 지도, 두 권의 비망록 그리고 한 권의 녹색노트가 발견되었다. 그리고 <체 게바라의 홀쭉한 배낭>은 '녹색노트' 속 69편의 시를 분석하고, 그 시를 통해 '체 게바라'을 쫓고 있다. 이 책의 지은이 '구광렬'의 이력에 특별히 주목하게 되면서 더옥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베일에 감추어졌던 녹색노트 속 69편의 시는 그가 치열한 전장 속(아프리카 시절, 쿠바 시절, 볼리비아 시절로 세 부분으로 나뉘는 혁명의 시절),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필사한 것으로 모두 그가 좋아했던 4명의 시인들의 시였다. <체 게바라의 홀쭉한 배낭>은 단순한 시의 열거가 아닌, 몇 편의 시를 통해 '체'의 모습과 감정을 추적하였다. 뿐만 아니라, 시와 시인의 역사, 문화적, 정치적 역학관계를 파악하고, '체'와 시인들의 유대를 소개하면서, '체'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더 나아가 '체'의 마지막 모습을 포착하고, 그가 남긴 상징과 의미를 오늘의 눈으로 해석하고 그의 '진정성'을 파헤치고자 노력한 책이다.

 

책에서 저자가 지적하고 있듯이, 자본주의의 무차별적 상업주의에 길들여져 그의 '이미지'만을 추종했는지 모른다(때론 그를 추종하는 모습을 보면서 의아해하기도 하였다). '수박 겉핥기'식도 아닌, 그냥 눈에 보여지는 것에 만족하고 그것이 큰 기쁨인줄 착각했었다. 그가 죽음과 맞바꾸며, 지키고자 했던 믿음, 신념을 깊이 헤아려 본 적이 없었다. 늦게나마 <체 게바라의 홀쭉한 배낭>을 통해 그의 진정성을 깨닫게 된 것이 다행스런 일이다.

 

지금의 '쿠바'를 보면(쿠바까지 볼 일은 아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도 그다지.......), 어렴풋이 '체'가 꿈 꾸었던 '사람다운 세상, 민중이 해방된 사회'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곤 '실패'라는 단어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하지만 저자가 이야기하듯 '체'의 이상, 신념, 꿈은 '실패'가 아닌, '미완'일 뿐이고, 우리가 여전히 안고 가야할 신념, 이상, 꿈이 아니겠는가! 더이상 '체'가 영웅이 아닌 시대에 살면 좋으련만,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그 '미완의 체'의 꿈과 신념을 쫓아야 할 과제가 남겨 있는 듯, 씁쓸하다. 나 역시 시대에 편승하며 휩쓸리기보다는 내안의 올바른 신념을 갖고, 지키며, 내일의 오롯한 삶에 대한 희망을 안고 '모험'을 떠날 용기를 가져본다. '체'처럼 말이다!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생각의 키가 한 뼘은 자란 듯 뿌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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