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기억은 왜 그토록 불안정할까 과학과 사회 3
프란시스 위스타슈 지음, 이효숙 옮김 / 알마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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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위해 존재한다'는 정재승의 추천글로 <우리의 기억은 왜 그토록 불안정할까>는 시작한다. 즉, 기억은 마음 내키는 곳에 드러눕는 개와 같아(심리학자 다우베 드라이스마의 말이란다), 인간의 기억은 과장되고 왜곡되고 대부분이 잊혀진다는 것이다. 매순간 변화는 현재와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경험의 질료'라는 기억! 그 기억이 그토록 불안정한 이유는 무엇일까?에 대해 저자 '프란시스 위스타슈'는 신경심리학적 접근을 하면서, 기억 관련 질환(기억상실증, 알츠하이커병)을 통해 면밀하게 '기억'의 본질을 파헤치고 있다.

 

"기억은 불안정하다. 왜냐하면 기억은 자앵를 일으키기 쉬우며, 특히 기억과 관련된 질환의 틀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상적인 기억도 근본저긍로 불안정하다. 왜냐하면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 사건에 대한 표상은 시간이 흐르면 주체의 경험과 바람에 따라 변화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74쪽)

 

기억에 관한 신경심리학적 연구의 황금기를 세 부분으로 나누는 1장의 내용은 코르사코프의 견해를 빌려 '기억' 성격(특징)을 소개하고 있다. 즉 <모든 모든 것을 알고 있다>라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 제목처럼 기억을 끌어내는 고유한 매커니즘(기억의 '명시적' 발현)과 그 이면엔 영혼 또는 무의식에 의해-이는 체득된 경험의 기억, 몸, 육체에 의한 기억 같은 것으로 이해했다- 기억이 표출되는 현상(기억의 '암묵적' 발현)을 설명하는 것이 가장 흥미로웠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는 기억에 과한 신경심리학적 연구가 시작되고, 어느 정도의 성과를 이룬 시기라면, 1차 세계대전 이후 50여년간의 암흑기를 깨고 1960년대 두 번째 황금기를 맞게 된다. 이 때, 여러 병리현상을 통해 기억에 대한 분류(단기 기억과 장기 기억, 그리고 단기 기억은 역사적 의미만 있을 뿐, 지금은 '작업 기억'이란 용어가 통요되고 있다)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장기 기억에 대한 상세한 분석(일화적 기억과 의미적 기억, 서술적 기억과 절차적 기억, 명시적 기억과 암묵적 기억)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기억 질환의 유형과 사례를 설명하고, 건강한 뇌를 통한 뇌 기능 영상 연구를 소개하면서, 뇌의 기능, 아니 '기억'의 기능에 초점을 맞추어 설명하고 있다.

 

"기억은 사건을 지속적으로 기록하지 않는다. 심지어 우리의 관심이 우리 인생의 어느 순간에 초점을 맞춘다 해도 그 순간은 똑같이 보존되지 않는다. 그 사건의 흔적을 우리의 기억과 이미 존재하는 우리의 지식뿐만 아니라 미래의 계획 전체에 통합되어야 한다."(111)

 

솔직히, 손에 쥐어지는 무게감에 비해, 단숨에 읽기엔 버거운 책이다. 때론 스스로가 단기기억상실증 환자는 아닐까 할 정도로, 머릿속이 과부하로 아우성치기도 하였다. 하지만 기억이란 것이 불완전한 것이라는 작은 위로를 삼으며, 끝까지 책의 향한 열의을 놓치 않았다. 알마의 과학과사회시리즈를 보면 앞 또는 뒤, 책에 대한 요약 설명을 통해 이해를 돕고 있었는데, 이 책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는 아쉬움을 핑계삼아 나의 무지를 달래본다.

 

책을 읽는 내내 <남자 방으로 들어간다>라는 소설이 자꾸만 떠올랐다. 12살 이후의 기억을 모두 잃어버린 한 남자와 연인 사이의 갈등, 그리고 그 속에 과학적 혁식으로 '또다른 기억'의 삽입이 가져온 혼란을 이야기하던 책,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고자 노력하는 남자와 그 현실을 외면하고자 하는 남자 내면의 갈등과 혼란을 통해 '기억'의 또다른 이면을 살펴볼 수 있었던 책이다. 때론 잊고자 노력할수록 더욱 선명하게 자리하는 기억, 그 기억이 얼마나 불안정한 것인지, <우리의 기억은 왜 그토록 불안정할까>를 통해 그 기억의 실체를 확인함으로서 '기억'으로 인한 고통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을 품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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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예고된 재앙 과학과 사회 7
디디에 오글뤼스텐느 외 지음, 박수현 옮김 / 알마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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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현재,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제15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15)’가 6일간의 일정(12월 14일~19일)으로  열리고 있다. 뉴스를 통해 접하는 소식들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아 용두사미로 끝나는 것은 아닌지 괜시리 노심초사하게 된다. 2012년이면 교토의정서의 기한이 완료되고, 실천가능한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각국의 대표들이 모였다. 그런데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즉 미국과 중국의 기 싸움이 한창이고, 밀약이 공개되면서 진실공방으로 시끄러운 소란의 장이 된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 가득하지만, 부디 실효성있는 좋은 대안을 이끌기를 진심으로 바라면서, <기후 예고된 재앙>을 손에 쥐었다.

 

기후 변화는 단순히 환경의 문제가 아닌 현 문명의 성장과 전환에 직결되는 것이란다. 지금의 온도 상승을 자연적 현상의 일부로 보고 기후변화가 과장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의 견해는 그들과 정반대에 서있다. 환경에 대한 커다란 우려 속에서도 작은 실천들에 자족하고 있으니, 좀더 획기적인 변화의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는데, <기후 예고된 재앙>은 그런 기대를 충족하였다. 또한, 좀더 가시적으로 문제의 본질에 접근함으로써 기존의 주장들에 대한 타당한 근거를 세우고, 나름의 신념을 체계화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기후 예고된 재앙>의 1장은 정보기술과 우주 관측이 기후 문제에 끼친 영향을 살펴, 기후 관측의 역사를 한 눈에 펼쳐주었다. 에너지 순환과 기후 시스템의 대략적인 개념을 소개하고, 인간 활동으로 인위적인 복사교란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었다.

2장은 과거 기후 연구는 기후의 자연적 가변성이란 측면에서 미래 기후 연구를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며, 인간 활동으로 발생한 기후 변화를 알 수 있는 척도임을 설명한다. 과거의 기후를 어떻게 연구할 수 있는지를 소개하면서, 이 책은 빙하기후로 규정된 신생대 제4기(수십만년전)의 최근 시기부터 현재에 이르는 시기의 기후를 집중 조명하고 있다. 다양한 분석 자료를 통해 빠른 기후 변동을 확인하고 앞으로는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더 큰 폭의 빠른 변동을 초래할 것이라 경고하고 있다.

3장은 충적세 이후, 새로운 지지실대 '인류세(Anthropocene)'의 특징을 분석하고, 200년 전 대기 조성 교란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가 전개된다. 대기 중 미량의 존재가 지구에너지 평형에 핵심적 역할을 하고 이는 인간 활동으로 너무도 쉽게 변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인간활동으로 인한 대기의 화학 구성 변화(특히 이산화탄소는 인간활동으로 30%가 증가하였고 대기 잔류 기간이 100년이란다)와 복사강제력에 미치는 영향을 집중 분석하고 있다.

4장은 미래의 기후 변화를 예측하는 IPCC의 시나리오를 소개하고, 여러 불확실성 속에서도 21세기 말까지 새로운 교란이 발생할 거라 예고하고 있다. 기술적 문제로 간과해왔던 '해양'의 역할에도 주목하고, 복사강제력의 변화가 지구 기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을 다시 한 번 엄중 경고하고 있다. 특히 기후 변화를 고려하는 기준 시점인 2100년 그 이후에 인류가 맞딱뜨리게 되는 '관성'이라는 문제를 설명하고 있다. 현상의 발생과 현상에 대한 반응 사이의 시차가 존재하여, 교란 원인의 제거 이후에도 여전히 교란이 계속될 거란 암담한 예측은 위기의 시급성을 역설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기후 변화 논쟁 속, 과학 또는 과학자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과학에 기초한 체계적인 정보를 제공하면서, 과학의 맹점을 우려하면서 이야기를 마치고 있다.

 

알마의 과학과사회 시리즈 7번째인 <기후 예고된 재앙>은 짧지만 강력한 정보를 담고 있다. 단순한 정보 전달에 그치지 않고, 그 속엔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 우리가 대처 자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될 것이다. 특히 '인간 활동에 의한 인위적인 환경 변화(교란)에 주목하면서, 예고된 재앙의 실체를 파악하고, 좀더 구체적으로 문제를 바라볼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

아울려 각국의 신경전을 바라보면서, 경제 논리가 환경 문제보다 저 먼 발치에 앞선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경제와 환경의 조화로운 선택, 인류의 지혜가 집결되어, 다시 한 번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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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도 없이 어디로 날아갔나 - 정약용, 김려 서사시 샘깊은 오늘고전 11
정약용·김려 원작, 김이은 지음, 이부록 그림 / 알마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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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깊은 오늘고전' 11번 째 이야기 <날개도 없이 어디로 날아갔나>는 '조선 시대'에 쓰여진 여성과 평등, 인권에 대한 이야기라는 소개에 솔낏하였다. 특히 여성의 삶을 노래하고 있다는 점에서 희귀성마저 느껴지면서, 과연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지 호기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수많은 저서와 실학을 집대성한 정약용이 유배시절 들었던 이야기를 〈도강고가부사〉(원제 ‘道康·家婦詞’를 직역하면 ‘강진 장님한테 시집간 여인의 이야기.’ 도강은 강진 일대의 옛 이름)라는 서사시를 <팔려 간 신부>라는 산문으로 새롭게 다듬었고, 생소하지만 '조선 문단의 이단아'라는 김려의 한문 서사서 〈방주가蚌珠歌>를 <방주의 노래>라는 산문으로 풀어내고 있다. 김이은이 다듬어 쓴 두 이야기는 꽤나 흥미진진하였다. 일단 여성의 삶을 통해, 시대의 아픔을 여과 없이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생생한 현장보고서 같은 느낌이면서도 문학이 지녀야 할, 특히 아이들이 읽기에 쉽고 재미있게 다듬어져 있었다. 물론, 어른도 함께 읽으면서 저자의 조언대로 상상의 날개를 활짝 펼쳐 유쾌한 이야기 세상으로 빠져도 손색없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팔려 간 신부>속 18세 꽃다운 신부는 술주정뱅이 아비가 중매쟁이에게 속아, 늙은 장님에게 시집을 가게 된다. 그리고 남편과 전처 소생들에게 갖은 고초를 겪다가 가출을 하여 비구니가 되었다. 그러나, 원님에게 끌려가 호된 불호령만 듣게 될 뿐, 한자락의 희망조차 없는 여인의 삶을 엿보게 되었다. <방주의 노래>는 백정의 딸 '방주'의 인물 됨됨이에 반한 '장 파총'이 그의 아비에게 아들과 방주와의 혼인을 청하는 이야기와 장 파총의 파란만장했던 삶(양반의 신분으로 태어났으나, 생선 장사, 고기잡이등 힘겨운 젊은 시절을 보냈다)을 그리고 있는 미완의 이야기다.

 

색다른 시선으로 조선을 이야기하고 있는 책 <날개도 없이 어디로 날아갔나>는 '이부록'의 그림과 어우러지면서, 이야기와 그림이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귀기울이게 된다. 정약용과 김려가 꿈꿨던 세상을 생각하고, 오늘 우리의 현실 속, '자유, 평등, 인권'의 사각지대를 눈여겨 보게 되었다. 또한 우리 고전의 놀라운 이야기, 그 마력에 빠졌다. 또다른 '샘깊은 오늘고전'의 또다른 이야기들이 자연스레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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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페터 빅셀 지음, 전은경 옮김 / 푸른숲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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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만나기 전에, <고등어를 금하노라>를 통해 가족과 시간에 대해 다시 한 번 뒤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하루 세끼를 가족이 모두 함께 식사하는 집, 일보다는 아이와의 시간을 우선으로 여기는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그만큼, 우리는 시간에 쫓기고, 일에 쫓기면서 가족과의 시간에 얼마나 소홀히 하고 있는지를 방증하고 있다는 이야기! 그래서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라는 책 제목이 한 눈에 들어왔다. 그렇다.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나 또한 되고 싶다는 열망이 자연스레 손을 이끌었다.

 

페터 빅셀! 그가 누구인지 몰랐다. <책상은 책상이다>라는 꽤나 알려진 작품이 있다지만, 역시 생소했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니, 그 역시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지 호기심을 갖게 된다.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는 기존에 만나보지 못한 독특한 맛이 톡 쏘는 짧은 이야기(장편 掌篇) 묶음이다. 부드러우면서도 날카롭게 세상을 비틀기가 뛰어나다고 할까! 일상의 단순함 속에서 그만의 단상들은 어느 순간 냉철함으로 돌변하는 무서운 괴력을 지니고 있었다.

 

기다림에 대한 이야기(기다림을 기라디며)는 따뜻한 햇살 아래에서 느긋하게 읽기 좋은 느낌이었다. 솔직히 서울행 버스 안에서 책을 손에 쥐었다. 시간의 여유가 조금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무엇인가를 계획했던 내 모습이 차창에 비춰지는 순간, 왠지 부끄럽다는 생각이 머물렀다. 칼바람이 이는 날씨 속에서도 햇빛만큼은 봄볕처럼 따사로웠던 그 시간, 나는 허둥되고 있었다.  한 시 바삐를 외치며 경쟁하듯 질주하는 무리의 틈에서 목적없는 기다림, 하염없이 바라보기를 예찬하고 그의 이야기에 자연스레 공감하고, 또 공감하였다.

 

저자 '페터 빅셀'은 효율은 비인간적이고 폭력적이 되므로  효율만을 목표로 사는 사회의 문제(164)를 지적하고, 텔레비전이 보여주는 세상 속 거짓과 속임수를 이야기하기도 하였다. 그저 배우고 가르치는 일밖에 없는, 습득과 규격화만 남아있는 '학습 히스테리'에 대항하여 교양 없는 자유, 발견의 자유를 외치고 있다. 독립을 자유라고 포장한 수상쩍은 속임수가 전 세계에 퍼져 있다면 남다른 국가관을 이야기한다. 스위스 십자가 있는 붉은 셔츠를 입고 피끓는 애국심을 발휘하는 사람들, 민영화를 자유로 속이는 사람들, 유능한 인재를 위한 자유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거론하며, 권력의 횡포, 획일화, 국수주의에 대한 날선 비판에 깜짝 놀라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우리의 현실, 우리의 모습을 엿보게 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삶과 의미, 자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무심한 듯, 세심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놀라운 통찰력으로 세상의 또다른 이면을 적나라하게 들춰내고 있었다. 미래를 향한 호기심 어린 시선(40)을 꾸준히 지니면서, 무질서한 질서 속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의 여유, 그리고, 정말정말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꿈과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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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거짓말 창비청소년문학 22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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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와 '거짓말'의 상관관계를 먼저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나비'가 제목이거나 하면 무의식적으로 손이 먼저 뻗기에, 휘황찬란한 날개를 지닌 나비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또한 얼마전에 읽은 <나비들의 음모>라는 책이 떠올랐다. 조난 당한 작은 요트 속 세 주인공의 이야기와 그 결말은 현실을 살짝 비틀면서 내게 혼란을 가져왔다. 내 삶 자체에 어떤 환영같은 것이 존재하는 것처럼 나비의 우아한 날개짓에 희롱당한 느낌이랄까! 그런데 <우아한 거짓말>은 내 혼란을 그래도 형상화하고 있었다. 표지 속 나비와 허망한 듯 보이는 손바닥, 그리고 '거짓말'! 내가 아직 풀지 못한 숙제를 넌지시 던지고 있어, 내 안의 호기심을 충동질하였다. 또한 <완득이>의 작가 '김려령'이지 않은가! <우아한 거짓말>은 일단 손에 쥐고 볼 일이었다.

 

<우아한 거짓말>은 참으로 흡입력있는 이야기다. 솔직히 가벼운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기전에 읽으려고 손에 쥐었다가 결국, 마지막 장을 덮고 말았다.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휩쓸린 느낌이랄까! 너무도 착하기만 했던 천지의 여린 모습과 대조적인 현실 사이의 팽팽한 줄다리기, 그리고 내 안에서 자라는 많은 의혹과 상처들이 떠오르면서, 이야기에 빨려들었다.

 

천지라는 열네살 소녀의 죽음으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갑작스런 가족의 죽음, 그녀가 목숨을 스스로 끊어야 했던 이유를 찾아가는 과정, 그리고 김려령만의 독특한 이야기전개가 흥미로웠다. 천지 스스로가 자신을 대변하면서, 엄마, 만지, 화연, 미라, 미란 등의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가 아귀가 딱딱 맞으면서, 탄탄한 전개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드러나는 진실 속에,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우아한 거짓말! 그렇다. 우리는 진실을 왜곡하고, 진실인 냥 거짓을 꾸미며, 얼마나 우아한 거짓말로 다른 이를 상처를 주는가! 책을 읽으면서는 내가 받은 상처가 떠올라 천지에게 감정이입을 하기도 하고, 의젓하고 털털한 성격의 만지가 부럽기도 하였지만, 책을 덮는 순간부터는 나 역시 화연이 아니었던가! 스스로 고개를 숙이게 된다. 그러면서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과 용서를 남기고 떠난 천지와 남겨진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화연에게도 따뜻한 손길을 전하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힌다.

 

너무도 많은 생각들이 온몸을 휘감는다. 이 가벼운 책 속 묵직함에 마음이 꺾인다. 절대 시간에 쫓기듯 읽지 말라 당부하고 싶다. 특히 잠자리에 들 시간엔 절대! 어떤 다른 말이 필요없는 것 같다. 내가 느낌 그대로를 옮길 수 없는 한계를 뼈저리게 느끼면서, 많은 이들이 읽어보고 스스로 느껴보고 생각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 내 작은 책장에만 머물기엔 너무도 아까운 책, 그러나 두고두고 또 읽고 싶은 책, 아직도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 책 <우아한 거짓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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