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페터 빅셀 지음, 전은경 옮김 / 푸른숲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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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만나기 전에, <고등어를 금하노라>를 통해 가족과 시간에 대해 다시 한 번 뒤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하루 세끼를 가족이 모두 함께 식사하는 집, 일보다는 아이와의 시간을 우선으로 여기는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그만큼, 우리는 시간에 쫓기고, 일에 쫓기면서 가족과의 시간에 얼마나 소홀히 하고 있는지를 방증하고 있다는 이야기! 그래서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라는 책 제목이 한 눈에 들어왔다. 그렇다.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나 또한 되고 싶다는 열망이 자연스레 손을 이끌었다.

 

페터 빅셀! 그가 누구인지 몰랐다. <책상은 책상이다>라는 꽤나 알려진 작품이 있다지만, 역시 생소했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니, 그 역시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지 호기심을 갖게 된다.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는 기존에 만나보지 못한 독특한 맛이 톡 쏘는 짧은 이야기(장편 掌篇) 묶음이다. 부드러우면서도 날카롭게 세상을 비틀기가 뛰어나다고 할까! 일상의 단순함 속에서 그만의 단상들은 어느 순간 냉철함으로 돌변하는 무서운 괴력을 지니고 있었다.

 

기다림에 대한 이야기(기다림을 기라디며)는 따뜻한 햇살 아래에서 느긋하게 읽기 좋은 느낌이었다. 솔직히 서울행 버스 안에서 책을 손에 쥐었다. 시간의 여유가 조금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무엇인가를 계획했던 내 모습이 차창에 비춰지는 순간, 왠지 부끄럽다는 생각이 머물렀다. 칼바람이 이는 날씨 속에서도 햇빛만큼은 봄볕처럼 따사로웠던 그 시간, 나는 허둥되고 있었다.  한 시 바삐를 외치며 경쟁하듯 질주하는 무리의 틈에서 목적없는 기다림, 하염없이 바라보기를 예찬하고 그의 이야기에 자연스레 공감하고, 또 공감하였다.

 

저자 '페터 빅셀'은 효율은 비인간적이고 폭력적이 되므로  효율만을 목표로 사는 사회의 문제(164)를 지적하고, 텔레비전이 보여주는 세상 속 거짓과 속임수를 이야기하기도 하였다. 그저 배우고 가르치는 일밖에 없는, 습득과 규격화만 남아있는 '학습 히스테리'에 대항하여 교양 없는 자유, 발견의 자유를 외치고 있다. 독립을 자유라고 포장한 수상쩍은 속임수가 전 세계에 퍼져 있다면 남다른 국가관을 이야기한다. 스위스 십자가 있는 붉은 셔츠를 입고 피끓는 애국심을 발휘하는 사람들, 민영화를 자유로 속이는 사람들, 유능한 인재를 위한 자유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거론하며, 권력의 횡포, 획일화, 국수주의에 대한 날선 비판에 깜짝 놀라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우리의 현실, 우리의 모습을 엿보게 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삶과 의미, 자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무심한 듯, 세심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놀라운 통찰력으로 세상의 또다른 이면을 적나라하게 들춰내고 있었다. 미래를 향한 호기심 어린 시선(40)을 꾸준히 지니면서, 무질서한 질서 속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의 여유, 그리고, 정말정말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꿈과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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