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랑극단 사계절 1318 문고 77
지크프리트 렌츠 지음, 박종대 옮김 / 사계절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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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슬픔이야말로 한 인간과의 가장 내밀한 연결이다.

그런 의미에서 슬픔은 항상 누군가와 함께한다“

(102)

매서운 추위로 몸과 마음이 꽁꽁 얼어붙는 요즘, 마음에게 훈훈한 햇살 같이 위로를 건네주는 이야기 <유랑극단>

 

처음 <유랑극단>을 만났을 때, 왠지 모를 호기심이 일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었다.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은 제대로 읽히지 않고, 환상에 빗대어진 현실에 대한 강박관념, 무게감이 더 크게 느껴졌다고 할까? 이야기가 의도하고 있는 심층에 가까이 갈 수 없었다. 말도 안 되는 상황들로, <유랑극단>이 표방하고 있는 ‘인생에 관한 우아하고 지적인 농담 혹은 판타지’를 거부했던 것이다. 현실을 판타지만으로도 충족되지 않을 만큼 무자비한 것이니, 작가 ‘지크프리트 렌츠’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읽을 수 없었다.

생각해 보자! 지금처럼 실시간으로 어떤 사건들이 뉴스화되는 첨단의 시대가 아니더라고 해도, 탈옥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눈에 띄는 유랑극단의 버스를 타고 탈옥이 시도되는 상황-그러고 보니, 요즘도 이해할 수 없는 여러 탈옥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망각하고 있었다-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특히 패랭이꽃 축제를 벌이는 마을 사람들은 전혀 깜깜 무소식일 뿐이다. 아니, 오히려 ‘유랑극단’이 방문해주었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환영하고, 탈옥한 죄수들을 중심으로 더욱 축제가 무르익어가는 상황이 어리둥절했다.

나는 그만큼 환상을, 판타지가 주는 삶의 희열을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저 눈에 보이는 현실적 상황에만 굳건한 믿음의 성을 쌓고 그 속에 갇혀 있는 것이었을까? 축제를 벌이며 삶의 향연을 즐길 수 없을 정도로 메마르고 있었던 것일까? 자꾸만 이야기에 반발심만이 커지는 듯했다. 그렇게 책을 읽으면서, 나는 너무도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작가에게 끊임없이 물었다. ‘당신은 진정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입니까?’ 낯설지 않은 작가지만, 내겐 너무도 어려운 작가였다. 작가 ‘지크프리트 렌츠’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침묵의 시간>이란 책을 통해 만난 적이 있어, 더 반가운 마음으로 <유랑극단>을 펼쳤지만, 여전히 쉽게 공감하며 이해하기 어려운 작가임이 더 분명해졌다고 생각했다.

 

영화 「쇼생크 탈출」처럼 이야기 속의 탈옥수들이 억울한 누명으로 어느 정도 탈옥의 명분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희대의 사기꾼, 뇌물 수수 등등의 명백한 죄목이 있음에도 끊임없이 탈옥을 시도하고, 그리고 다시 체포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었다. 그런 이야기를 축제라는 판타지와 얼버무려 놓았으나, 축제의 마지막에 이들은 다시 체포되었다. 내 머리로는, 내 감성으로는 도저히 쉽게 용납할 수 없어, 많은 시간을 책과 씨름해야 했다.

 

그런데 마지막에 이를 즈음, 왠지 모르게 마음이 환해졌다. 바로 끊임없이 죄수들이 탈옥을 감행하는 ‘감옥’이 시사하는 바가 읽혀졌다. 그것을 바로 우리 스스로의 마음의 감옥, 숱한 번뇌와 고통이 바로 ‘감옥’이었다. 번번이 도망치려고 하지만 결국을 제자리로 돌아오고, 또다시 도망치고 회피하려고 한다. 견디는 힘을 기르기보다는 그저 순간을 모면하려고 잔꾀만 부리다보니, 현실을 더욱 냉혹하고 축제와 같은 삶의 희열과는 무관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이야기 속에 녹아 있었다. 우리는 간혹 ‘희망 없는 기다림’이라며 쉽게 좌절하고 절망하는 것은 아닐까? 탈옥의 중심인물이었던 ‘하네스’는 마지막 탈옥 시도를 스스로 포기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말한다. 감방 동료인 교수 양반, ‘클레멘스’에게

“난 당신을 혼자 내버려 두고 싶지 않았소. 클레멘스” (127)

“예전에 난 무척 초조했었소. 기다릴 줄도 몰랐지. 그런 초조함으로 고통스러워하기도 했고, 근데 이제 그런 상태를 끝났소. 난 우리가 함께하기를 소망했소. 클레멘스." (130)

그리고 “여러 번 생각했소. 견뎌 내는 것에 대해서. 사람은 누구나 무언가를 견뎌 내야 해요. 자신이 알고 있는 것, 자신에게 닥치는 것, 사람들이 자신에게 말하는 것을 견뎌 내야 해요. 가끔은 타인도 견뎌 내야 하는 법이죠. 그런 점에서 당신은 함께 지내기가 한결 쉬웠소. 모든 면에서.”(127)

이야기 속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연극의 두 방랑자처럼 하네스와 클레멘스는 남은 형기를 함께 할 것이다. 서로가 인생의 동반자가 되어 서로가 함께 하면서 슬픔을 나누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슬픔을 겪은 사람은 함께해야 하는 법’이고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의 의미를 가슴에 새기면서. 그리고 나 역시 누군가의 슬픔을 포용하고 나눌 수 있는 사람이길 소망해본다.

 

“나는 똑같은 상태로 지속되는, 영영 떨쳐 버릴 수 없는 절망 그 자체가 특별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103) 나 역시 때론 영영 떨쳐 버릴 수 없는 절망, 번뇌 속에서 몸부림칠지도 모르겠다. 지금껏 스스로 쌓아놓은 마음 속 감옥에서 끊임없어 도망치려고만 했다. 때론 그 도망이 최선이라 여기면서. 그렇기에 우리는 자신을 가둬두고 있는 ‘삶의 감옥’이 무엇인지 깊이 헤아릴 필요가 있다. 내가 쉽게 벗어나지 못하면서 늘 도망치기에 바쁜 마음의 감옥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인지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견뎌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구별하고, 그 견디는 힘을 기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또한 때론 그 절망, 슬픔이 내 삶을 더욱 빛나게 하는 특별한 무엇이란 사실이 나를 설레게 하였다. 알 수 없는 인생이기에 그 자체로 기대되는 삶, 기다려지는 삶이라는 사실로 마음 깊은 곳이 충만함으로 가득 채워지는 듯하다.

고작 100쪽이 조금 넘는 적은 분량의 이야기인 <유랑극단>, 하지만 내게 분명 난제였다. 하지만 2012년의 마지막을 보내면서 그 어떤 이야기보다 깊은 울림으로, 적절한 방향타가 되어주는 듯하다. 마음에 귀를 기울이며, 내 내면의 소리, 그 속의 두려움과 마주해야 할 듯하다. 지금껏 알던 팍팍한 현실이, 그 세상이 전혀 다른 차원으로 활짝 열리는 마법이 곧 시작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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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다른 골목의 추억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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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출간되었던 ‘요시모토 바나나’의 <막다른 골목의 추억>을 만나기를 꽤나 미뤄왔다. 신간 소식을 접하고도, 서점으로 한걸음에 달려가지지 않았다. 왜 그랬는지, 왠지 모를 반감이 들었던 것인지, 아직도 아리송하다. 하지만 책을 펼쳐들고 이내 나의 마음이 말랑말랑해졌다. 그리고 감사함이 한 가득 차오른다. <막다른 골목의 추억>의 등장하는 각기 다른 이야기 속, 인물들을 통해 나와 마주할 수 있었다. 그들이 겪는 어떤 고통, 혼란 등이 남의 일 같지 않았고, 또한 그네들이 조금씩 마음을 어루만지고, 자신과 마주하는 모습들 속에서 나 역시 나와 마주할 수 있었다.

 

처음으로 이야기를 여러 번 곱씹으면서 바나나의 이야기를 빠져들었던 시간이었다. 그 동안의 이야기들을 항상 내달리기에 바빴다. 그러나 누군가를 향한 그리움, 사랑, 그리고 어긋남과 이별 등등의 이야기가 왠지 차분하게 천천히 다가와 오히려 신선하다고 할까? 왠지 ‘바나나가 가장 사랑하는 소설’이란 광고 문구, ‘지금까지’라는 단서가 붙어있지만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란 바나나의 고백이 진심인 듯하다. 나 역시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 많이 위로 받으며 좋아해왔지만 그 어떤 이야기보다 마음을 말갛게 씻어주는 듯하다.

천천히 이야기 속에 들어가다보니, 내 안의 어떤 격랑의 파고가 조금씩 잠잠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어 놀랐다.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시간이었다. 주인공들이 겪는 여러 시련들과 격정적인 감정을 토해내기보다는 잠시 더욱 움츠리면서 그 제 몫의 시련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 오늘의 우리의 속도와는 다르게 느껴져 좋았다.『도모 짱의 행복』속 5년을 짝사랑으로 기다렸던 도모 짱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면서, 나 역시 ‘아 좋아라’하고 그저 소리를 내뱉는 것만으로도 행복의 잔물결이 살랑거리는 듯하다. ‘아, 좋아라’ 마법의 주문에 걸린 듯하다.

 

“가족, 일, 친구, 약혼자 등등은 내 안에 잠들어 있는 그 끔찍한 쪽 색채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 빙빙 휘감긴 거미집 같은 것이로구나, 하고 생각했다. 거미줄이 많을수록 아래로 떨어지는 일이 없고, 잘하면 아래가 있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생을 끝낼 수도 있다. 모든 부모가 자식에게 바라는 것은 ‘가능하면 그 아래 깊이를 모르기를.’이라는, 그런 게 아닐까. (…) 인간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서로 힘을 보태 가며 어떻게든 사람을 죽이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냈다.”(210-211) 역시 어렵지 않게 이야기 속에 녹아있는 단상들을 통해 마음이 훈훈하게 봄눈 녹듯 모든 시름이 사르르 녹아버리는 듯하다.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렸다고 생각이 들 때, 벼랑 끝에 매달렸다는 절망이 피어오를 때, 다시금 <막다른 골목의 추억>이 나의 추억인 것 마냥 떠올리게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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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바다 - 제12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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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2007년의 어느 9월, “꿈꿔왔던 것에 가까이 가본 적 있나요?”라는 표지의 광고 문구가 나를 매료시켰다. 그 당시 이 하나의 문구는 내게 호의보다는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왜? 나는 결코 꿈꿔왔던 것에 가까이 갈 수 없다는 절망감에 허덕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달의 바다>의 주인공처럼 시험에 낙방한 채 백수, 취업준비생의 신분으로 기나긴 하루하루의 시간에 함몰되어, 현실과 이상의 커다란 간극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럼에도 꿈만은 여전히 꾸고 싶어 아우성치고 있었다. “세상은 언제나 내가 그린 그림보다 멋이 떨어지죠. 현실이 기대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일찍 인정하지 않으면 사는 것이 상처의 연속일 거예요. 나중엔 꿈꿨던 일조차 머쓱해지고 말걸요.”(7) 그렇게 나는 상처투성이로, 나의 현실을 거부하고 또 거부하고 있었다. 하지만 방향선회를 해야만 했다. 하지 않고서는 더 이상 버틸 재간도 없었다. 절묘한 시기, 나와 같은 처지의 주인공 ‘은미’와 그녀의 고모 ‘순이’의 이야기는 자극이 되었고, 적절한 방향타가 되어 주었다. 그렇게 5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우울하고 상처투성이 삶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주었던 <달의 바다>를 다시금 펼쳐보았다.

 

 

 

신문기사 시험에 매번 낙방하고, 자살 계획을 세울 즈음, 취업준비생 ‘은미’는 할머니의 특명으로 미국에 있는 고모를 만나러 가게 된다. 십여 년 넘게 만나보지 못한 고모는 우주비행사라며 할머니에게 간간히 편지를 보냈었다. 하지만 똑똑하고 당찼던 순이 고모의 삶은 편지처럼 화려하지도 꿈결 같지도 않았다. 은미가 만난 고모의 현재는 간이 간판대에서 샌드위치를 만들어 팔고, 병마와 싸우고(?) 있을 뿐이었다. 과연 고모는 꿈꿔왔던 것에 가까인 가 보았을까?

 

 

 

<달의 바다>의 백미는 고모의 편지다. 고모의 편지는 시선을 사로잡은 채 결코 한눈을 팔 수 없게 하였다. 정말 우주여행을 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그 환상 속으로 빠져들게 하였다. 현실을 잊게 하는 환상의 세계는 너무도 매력적이었다. 그렇게 고모의 편지는 많은 것을 들뜨게 하고, 현실의 고달픔을 잊게 하는 듯하다. 그녀의 편지가 할머니의 삶의 청량제였듯이, 누구라도 고모의 우주여행은 다른 차원의 꿈을 긍정하게 해줄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꿈꿔왔던 삶과는 거리가 멀어질 때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스스로를 긍정하고 삶의 에너지를 충전해야할까? 그저 비관과 회의로 낙심한 채 고개를 떨궈야할까? 아니며, 그래도 꿈을 쫓아야만 할까? “세상은 언제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야. ...... 생각처럼 나쁘지는 않은데 늘 우리의 밑그림을 넘어서니까 당황하고 불신하게 되는 거야.”(145)라는 고모의 말에 꿈꿨던 일조차 부끄럽지 않을 삶의 해답이 있었다. 많은 이들은 자신이 꿈꿨던 삶의 밑그림조차 희미해진 채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간다. 나 역시 이젠 전혀 다른 꿈을 꾸며 살아가고 있다. 세상의 단 하나의 꿈이었던 것은 삶의 작은 유희가 되어 지친 심신을 달래주고 있다. 그것은 바로 <달의 바다>가 내게 선사해준 커다란 선물이었다. 최고, 최선이 아닌 차선, 차차선의 선택, 그 선택에 부끄럽지 않도록 열심히 발품을 파는 행위, 그 또한 삶을 반짝반짝 빛나게 해주리란 기대가 너무도 큰 힘이 되었다. 지난 꿈과는 거리가 먼 지금의 삶, <달의 바다>를 읽기 전의 시각에서 어쩌면 황폐한 ‘회색빛의 우울한 모래더미’일 수 있다. 하지만 나 역시 순이 고모처럼 내가 서 있는 이곳이 다이아몬드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곳이라 긍정하려 한다. 지금껏 그려왔던 그림이 아닌, 밑그림조차 희미해진 삶, 그런데 어느 한 귀퉁이에서 ‘반짝’하고 빛나는 순간들이 나를 들뜨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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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함을 드세요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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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요즘, 따뜻한 무언가가 간절해질 때이다. 바로 이 때, <따뜻함을 드세요>란 제목의 이 소설은 절로 눈길이 머문다. 그런데 ‘오가와 이토’의 이야기란다. ‘오가와 이토’는 요즘 내겐 ‘핫’한 작가다. <달팽이 식당>과 <초초난난>을 통해 만난 그녀의 이야기는 훈훈하고, 잔잔함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잔잔함 속의 그 평온함은 묘한 호기심을 자극하고, 마지막까지 이야기에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그 어떤 이야기보다 오감으로 느끼다보면, 절로 가슴 속이 따뜻함으로 가득 차, 마음이 후덕해지는 기분이다. 그런데 이번엔 대놓고, 맛있는 이야기를 따뜻함을 드시라고 하니, 어찌 지나칠 수 있겠는가?

 

기분 좋게 책을 받아들 때의 설렘을 잠시 뒤로 하고, 며칠 묵혀두었다. 왠지 당장 읽기보다는 설렘과 기대감으로 잠시 기다림의 시간을 즐겨 보았다. 그리고 책을 펼쳤을 때, 내침걸음으로 달렸다. 총 7편의 이야기는 찬찬히 음미하면서 또 즐기면 되는 일이지만, 7편의 이야기 모두가 궁금증을 자아내었고, 어떤 맛난 음식과 어떤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나게 될지 기대에 기대를 더해갔다. 하나하나의 이야기는 다정다감하게 바로 우리 주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친근하고 따뜻했다. 책을 읽는 내내 입 안 가득 달콤함이 감돌고, 향긋함이 온몸을 감싸주는 듯했다.

 

첫 번째 ‘할머니의 빙수’는 병든 할머니와 그 할머니를 성심성의껏 돌보는 엄마의 모습을 아이의 시선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할머니의 마음을 읽고 빙수를 사러 내달리는 아이의 이야기는 뭉클한 감동 그 자체였다. 아주 짤막한 이야기 속 많은 이야기를 그리고 추억을 불러일으켰다. 함께 추억을 공유하고, 그것을 기억해내고, 그 속에서 서로서로가 아닌 주변까지도 훈훈하고 달콤하게 하는 이야기는 마음 속 깊이 파고들었다.

두 번째는 ‘아버지의 삼겹살 덮밥’이다. 한 남자는 ‘주카가이에서 제일 더러운 가게이긴 하지만’이라고 말하며 애인을 식당으로 안내한다. 식당 주인과도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는 남자, 그리고 식도락가 아버지를 이야기하는 남자의 애인인 나 ‘아케미’는 즐겁고 행복한 식사를 하였다. 더러운 가게라고 시작한 이야기, 하지만 이내 잊혀지고 그 어떤 곳보다 근사한 분위기 속에서 프러포즈보다 부러움을 자아냈다.

그리고 세 번째, ‘안녕 송이버섯’은 앞선 ‘아버지의 삼겹살 덮밥’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이야기였다. 이별을 앞둔 여행, 그곳에서 맛있는 송이버섯을 먹는 이야기는 침체된 분위기에도 먹음직한 음식들로 실연의 아픔 따위를 잠시 잊게 하는 듯하다. 그리고 네 번째 ‘코짱의 된장국’ 속에도 엄마의 죽음으로 인한 아픔이 전혀 다른 시선에서 아름답게 그려진다. 유치원생이었던 꼬마가 병이 재발한 엄마에게 모질게 배운 된장국이다. 그 된장국을 매일 아빠에게 해드렸던 그 꼬마가 이제 시집을 가게 되면서, 서로를 배려하고 위로하는 아빠와 딸의 모습은 애틋하지만 가슴을 따뜻하게, 가족의 정감을 물씬 그려내고 있었다.

이야기는 점점 더 죽음과 이별 등의 우울한 사연을 바탕에 두고 있다. 사랑하는 이를 추억하며 홀로 찾은 식당, ‘그리운 하트콜로릿’, 동반자살 여행을 다룬 ‘폴크의 만찬’, 그리고 아빠의 49젯날 엄마와 딸의 음식 소동 ‘때아닌 계절의 기리탄포’ 등은 앞선 이야기보다 죽음과 상실의 음산함, 헛헛함이 짙게 배어 있었다.

 

그러고 보면, 첫 이야기부터 이별과 죽음의 장막이 이야기 깊숙이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맛있는 음식 이야기 속 훈훈한 사연들은 그 모든 것을 상쇄시키고 있었다. 그렇다.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숙명, 그 죽음과 이별, 상실의 아픔 속에도 우리는 꿋꿋하게 살아갈 수 있다. 왜 그럴까? 그것의 온갖 시름을 잊게 하는 따뜻한 음식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식욕의 본능, 그 욕망이 삶을 반짝이게 하고 온몸을 훈훈하게 데우겠지만 그보다도 더한 이유는 그 음식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소중한 사람들일 것이다. 그리고 그 소중한 사람들과의 추억 속 음식이 상실의 아픔을 달래고 위로해주는 듯하다. <따뜻함을 드세요>란 영양 간식을 맛나게 먹은 듯하다. 끊임없이 달콤함과 훈훈함을 온몸으로 즐겼다. 그리고 전혀 다른 음식들, 낯선 음식임에도 불구하고 그 음식들 속에 담긴 훈훈함은 잊혀진 추억들을 불러일으킨다. 그렇게 7편의 이야기를 통해 나는 나만의 추억여행을 떠난 기분이다. 각자의 소울푸드가 간절해질지 모르겠다. 옮긴이의 말처럼 ‘잘 먹었습니다.’라고 역시 인사해야 할 듯하다. 그리고 나는 ‘오가와 이토’의 또 다른 맛있는 이야기를 또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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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의 베이커리 1 한밤중의 베이커리 1
오누마 노리코 지음, 김윤수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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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달콤한 휴식이 필요하다면? <한밤중의 베이커리>에 들러볼 것!

 

 

<한밤중의 베이커리>를 읽다보면 빵이 고파지는 정도가 아니라, 나도 맛난 빵을 만들어 내 주변 사람들과 나눠 먹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나도 제빵 기술을 배워볼까?’ 아니, ‘블랑제리 구레바야시’로 스며들어 ‘히로키’의 구박과 잔소리 속에서도 빵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한가득 자리하게 된다.

 

한밤중에 빵을 판다는 것 자체가 무척이나 신선했으며,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보통의 상식을 뒤엎는 영업 전략이 아닌가? 하지만 <한밤중의 베이커리>라는 제목에서 먹을거리를 통해 사람 사이의 따뜻한 정, 소통을 다룬 이야기들인,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과 ‘오가와 미로’의 <달팽이 식당>이 생각났다. 그리고 상큼하고 발랄한, 그리고 따뜻한 이야기임을 확신하고, 손끝으로 전해지는 온기를 오롯이 느낄 수 있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휘몰아쳤다. 일교차가 심한 요즘, 따뜻한 이야기, 한 권의 책으로 잠깐의 달콤한 휴식이 무척 필요했다. <한밤중의 베이커리>는 지금 내게 간절히 필요한 무언가가 가득 찬 것처럼 온 마음들이 먼저 들썩거렸다.

 

한밤중(밤 11시에서 새벽 4시까지)에 빵을 하는 ‘블랑제리 구레바야시’라는 공간에서 펼쳐지는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는 속칭 말 그대로 ‘힐링’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었다. 모두가 저마다의 아픔과 상처로 얼룩진 사람들, 하지만 가슴만큼은 한없이 따뜻한 사람들이 어우러져 맛있는 빵만큼이나 달콤하고 훈훈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고 있다. 7장으로 구성된 이야기의 시작은 바로 여고생 ‘노조미’였다. 불평불만을 입에 달고 사는 듯, 항상 툴툴거리면서 쿨한 척하지만 자신을 탁란된 뻐꾸기 새끼에 비유하면서 조금은 세상에 이질감을 느끼는 아이였지만, 그 툴툴거림 속의 따뜻한 마음, 솔직하고 거침없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가장 좋아하고 반기는 캐릭터로 사랑스러운 노조미를 만날 수 있었다.

7장의 이야기마다 매번 다른 인물들이 등장하였다. ‘노조미’에 이은 두 번째는 바로 ‘고다마’란 꼬마 아이였다. ‘노조미’처럼 엄마 ‘오리에’의 보살핌을 받기보다는 방치된 아이, 홀로 남은 집을 지키며, 엄마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이. 하지만 그 착한 마음씨, 유쾌하고 씩씩한 모습에 쉽게 동화되었고, 가엾다는 등의 값싼 동정이 오히려 미안해지는 아이 ‘고다마’의 이야기가 '노조미‘에 이어 더욱 호기심을 자극하고 마음속을 간질이었다. 그 외에도 남을 훔쳐보는 악취미의 변태 ‘마다라메’, 여장 남자 ‘소피에’ 그리고 고다마의 엄마 ‘오리에’ 그리고 ‘블랑제리 구레바야시’를 운영하는 ‘구레바야시’와 ‘히로키’의 이야기, 굴곡 많은 인생의 여러 사연들이 <한밤중의 베이커리> 속에 녹아 있었다. 한 권의 책, <한밤중의 베이커리>는 향긋한 빵 냄새, 사람 냄새로 코끝을 자극하였다.

 

기대이상으로 훈훈하였다. 마지막엔 눈시울을 붉히게 되는 잔잔한 감동이 나도 모르게 찾아든 이야기였다. 맛난 빵은 함께 나눠먹으면서 아픈 상처들을 어루만져주었다. 아니 옆에서 그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모두가 기운을 얻고, 생생하게 살아났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 역시, 철철 흘려나는 온기에 감싸인 듯하다. 가끔씩 삶이 팍팍하게 느껴질 때, 주변의 여러 관계 속에서 괜시리 마음이 어지러울 때, <한밤중의 베이커리>은 잊었던, 잃어버렸던 ‘따뜻함’을 수시로 일깨워줄 것이다. 삐뚤어지려는 마음을 다잡아주며, 감사한 마음과 따뜻한 가슴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지혜를 일러주고, 다른 이들을 미소로서 품을 수 있는 넉넉함을 가르쳐줄 듯하다.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처음 소개된 작가 ‘오누마 노리코’의 또 다른 이야기들을 앞으로 기다리게 될 듯하다. ‘오누마 노리코’를 온몸으로 반응하며 그녀의 신간을 반갑게 맞이할 듯하다. 그리고 또 한 권의 책, 바로 ‘오가와 이토’의 <따뜻함을 드세요>를 기다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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