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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극단 ㅣ 사계절 1318 문고 77
지크프리트 렌츠 지음, 박종대 옮김 / 사계절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슬픔이야말로 한 인간과의 가장 내밀한 연결이다.
그런 의미에서 슬픔은 항상 누군가와 함께한다“
(102)
매서운 추위로 몸과 마음이 꽁꽁 얼어붙는 요즘, 마음에게 훈훈한 햇살 같이 위로를 건네주는 이야기 <유랑극단>
처음 <유랑극단>을 만났을 때, 왠지 모를 호기심이 일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었다.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은 제대로 읽히지 않고, 환상에 빗대어진 현실에 대한 강박관념, 무게감이 더 크게 느껴졌다고 할까? 이야기가 의도하고 있는 심층에 가까이 갈 수 없었다. 말도 안 되는 상황들로, <유랑극단>이 표방하고 있는 ‘인생에 관한 우아하고 지적인 농담 혹은 판타지’를 거부했던 것이다. 현실을 판타지만으로도 충족되지 않을 만큼 무자비한 것이니, 작가 ‘지크프리트 렌츠’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읽을 수 없었다.
생각해 보자! 지금처럼 실시간으로 어떤 사건들이 뉴스화되는 첨단의 시대가 아니더라고 해도, 탈옥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눈에 띄는 유랑극단의 버스를 타고 탈옥이 시도되는 상황-그러고 보니, 요즘도 이해할 수 없는 여러 탈옥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망각하고 있었다-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특히 패랭이꽃 축제를 벌이는 마을 사람들은 전혀 깜깜 무소식일 뿐이다. 아니, 오히려 ‘유랑극단’이 방문해주었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환영하고, 탈옥한 죄수들을 중심으로 더욱 축제가 무르익어가는 상황이 어리둥절했다.
나는 그만큼 환상을, 판타지가 주는 삶의 희열을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저 눈에 보이는 현실적 상황에만 굳건한 믿음의 성을 쌓고 그 속에 갇혀 있는 것이었을까? 축제를 벌이며 삶의 향연을 즐길 수 없을 정도로 메마르고 있었던 것일까? 자꾸만 이야기에 반발심만이 커지는 듯했다. 그렇게 책을 읽으면서, 나는 너무도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작가에게 끊임없이 물었다. ‘당신은 진정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입니까?’ 낯설지 않은 작가지만, 내겐 너무도 어려운 작가였다. 작가 ‘지크프리트 렌츠’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침묵의 시간>이란 책을 통해 만난 적이 있어, 더 반가운 마음으로 <유랑극단>을 펼쳤지만, 여전히 쉽게 공감하며 이해하기 어려운 작가임이 더 분명해졌다고 생각했다.
영화 「쇼생크 탈출」처럼 이야기 속의 탈옥수들이 억울한 누명으로 어느 정도 탈옥의 명분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희대의 사기꾼, 뇌물 수수 등등의 명백한 죄목이 있음에도 끊임없이 탈옥을 시도하고, 그리고 다시 체포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었다. 그런 이야기를 축제라는 판타지와 얼버무려 놓았으나, 축제의 마지막에 이들은 다시 체포되었다. 내 머리로는, 내 감성으로는 도저히 쉽게 용납할 수 없어, 많은 시간을 책과 씨름해야 했다.
그런데 마지막에 이를 즈음, 왠지 모르게 마음이 환해졌다. 바로 끊임없이 죄수들이 탈옥을 감행하는 ‘감옥’이 시사하는 바가 읽혀졌다. 그것을 바로 우리 스스로의 마음의 감옥, 숱한 번뇌와 고통이 바로 ‘감옥’이었다. 번번이 도망치려고 하지만 결국을 제자리로 돌아오고, 또다시 도망치고 회피하려고 한다. 견디는 힘을 기르기보다는 그저 순간을 모면하려고 잔꾀만 부리다보니, 현실을 더욱 냉혹하고 축제와 같은 삶의 희열과는 무관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이야기 속에 녹아 있었다. 우리는 간혹 ‘희망 없는 기다림’이라며 쉽게 좌절하고 절망하는 것은 아닐까? 탈옥의 중심인물이었던 ‘하네스’는 마지막 탈옥 시도를 스스로 포기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말한다. 감방 동료인 교수 양반, ‘클레멘스’에게
“난 당신을 혼자 내버려 두고 싶지 않았소. 클레멘스” (127)
“예전에 난 무척 초조했었소. 기다릴 줄도 몰랐지. 그런 초조함으로 고통스러워하기도 했고, 근데 이제 그런 상태를 끝났소. 난 우리가 함께하기를 소망했소. 클레멘스." (130)
그리고 “여러 번 생각했소. 견뎌 내는 것에 대해서. 사람은 누구나 무언가를 견뎌 내야 해요. 자신이 알고 있는 것, 자신에게 닥치는 것, 사람들이 자신에게 말하는 것을 견뎌 내야 해요. 가끔은 타인도 견뎌 내야 하는 법이죠. 그런 점에서 당신은 함께 지내기가 한결 쉬웠소. 모든 면에서.”(127)
이야기 속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연극의 두 방랑자처럼 하네스와 클레멘스는 남은 형기를 함께 할 것이다. 서로가 인생의 동반자가 되어 서로가 함께 하면서 슬픔을 나누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슬픔을 겪은 사람은 함께해야 하는 법’이고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의 의미를 가슴에 새기면서. 그리고 나 역시 누군가의 슬픔을 포용하고 나눌 수 있는 사람이길 소망해본다.
“나는 똑같은 상태로 지속되는, 영영 떨쳐 버릴 수 없는 절망 그 자체가 특별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103) 나 역시 때론 영영 떨쳐 버릴 수 없는 절망, 번뇌 속에서 몸부림칠지도 모르겠다. 지금껏 스스로 쌓아놓은 마음 속 감옥에서 끊임없어 도망치려고만 했다. 때론 그 도망이 최선이라 여기면서. 그렇기에 우리는 자신을 가둬두고 있는 ‘삶의 감옥’이 무엇인지 깊이 헤아릴 필요가 있다. 내가 쉽게 벗어나지 못하면서 늘 도망치기에 바쁜 마음의 감옥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인지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견뎌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구별하고, 그 견디는 힘을 기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또한 때론 그 절망, 슬픔이 내 삶을 더욱 빛나게 하는 특별한 무엇이란 사실이 나를 설레게 하였다. 알 수 없는 인생이기에 그 자체로 기대되는 삶, 기다려지는 삶이라는 사실로 마음 깊은 곳이 충만함으로 가득 채워지는 듯하다.
고작 100쪽이 조금 넘는 적은 분량의 이야기인 <유랑극단>, 하지만 내게 분명 난제였다. 하지만 2012년의 마지막을 보내면서 그 어떤 이야기보다 깊은 울림으로, 적절한 방향타가 되어주는 듯하다. 마음에 귀를 기울이며, 내 내면의 소리, 그 속의 두려움과 마주해야 할 듯하다. 지금껏 알던 팍팍한 현실이, 그 세상이 전혀 다른 차원으로 활짝 열리는 마법이 곧 시작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