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바다 - 제12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2007년의 어느 9월, “꿈꿔왔던 것에 가까이 가본 적 있나요?”라는 표지의 광고 문구가 나를 매료시켰다. 그 당시 이 하나의 문구는 내게 호의보다는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왜? 나는 결코 꿈꿔왔던 것에 가까이 갈 수 없다는 절망감에 허덕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달의 바다>의 주인공처럼 시험에 낙방한 채 백수, 취업준비생의 신분으로 기나긴 하루하루의 시간에 함몰되어, 현실과 이상의 커다란 간극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럼에도 꿈만은 여전히 꾸고 싶어 아우성치고 있었다. “세상은 언제나 내가 그린 그림보다 멋이 떨어지죠. 현실이 기대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일찍 인정하지 않으면 사는 것이 상처의 연속일 거예요. 나중엔 꿈꿨던 일조차 머쓱해지고 말걸요.”(7) 그렇게 나는 상처투성이로, 나의 현실을 거부하고 또 거부하고 있었다. 하지만 방향선회를 해야만 했다. 하지 않고서는 더 이상 버틸 재간도 없었다. 절묘한 시기, 나와 같은 처지의 주인공 ‘은미’와 그녀의 고모 ‘순이’의 이야기는 자극이 되었고, 적절한 방향타가 되어 주었다. 그렇게 5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우울하고 상처투성이 삶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주었던 <달의 바다>를 다시금 펼쳐보았다.

 

 

 

신문기사 시험에 매번 낙방하고, 자살 계획을 세울 즈음, 취업준비생 ‘은미’는 할머니의 특명으로 미국에 있는 고모를 만나러 가게 된다. 십여 년 넘게 만나보지 못한 고모는 우주비행사라며 할머니에게 간간히 편지를 보냈었다. 하지만 똑똑하고 당찼던 순이 고모의 삶은 편지처럼 화려하지도 꿈결 같지도 않았다. 은미가 만난 고모의 현재는 간이 간판대에서 샌드위치를 만들어 팔고, 병마와 싸우고(?) 있을 뿐이었다. 과연 고모는 꿈꿔왔던 것에 가까인 가 보았을까?

 

 

 

<달의 바다>의 백미는 고모의 편지다. 고모의 편지는 시선을 사로잡은 채 결코 한눈을 팔 수 없게 하였다. 정말 우주여행을 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그 환상 속으로 빠져들게 하였다. 현실을 잊게 하는 환상의 세계는 너무도 매력적이었다. 그렇게 고모의 편지는 많은 것을 들뜨게 하고, 현실의 고달픔을 잊게 하는 듯하다. 그녀의 편지가 할머니의 삶의 청량제였듯이, 누구라도 고모의 우주여행은 다른 차원의 꿈을 긍정하게 해줄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꿈꿔왔던 삶과는 거리가 멀어질 때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스스로를 긍정하고 삶의 에너지를 충전해야할까? 그저 비관과 회의로 낙심한 채 고개를 떨궈야할까? 아니며, 그래도 꿈을 쫓아야만 할까? “세상은 언제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야. ...... 생각처럼 나쁘지는 않은데 늘 우리의 밑그림을 넘어서니까 당황하고 불신하게 되는 거야.”(145)라는 고모의 말에 꿈꿨던 일조차 부끄럽지 않을 삶의 해답이 있었다. 많은 이들은 자신이 꿈꿨던 삶의 밑그림조차 희미해진 채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간다. 나 역시 이젠 전혀 다른 꿈을 꾸며 살아가고 있다. 세상의 단 하나의 꿈이었던 것은 삶의 작은 유희가 되어 지친 심신을 달래주고 있다. 그것은 바로 <달의 바다>가 내게 선사해준 커다란 선물이었다. 최고, 최선이 아닌 차선, 차차선의 선택, 그 선택에 부끄럽지 않도록 열심히 발품을 파는 행위, 그 또한 삶을 반짝반짝 빛나게 해주리란 기대가 너무도 큰 힘이 되었다. 지난 꿈과는 거리가 먼 지금의 삶, <달의 바다>를 읽기 전의 시각에서 어쩌면 황폐한 ‘회색빛의 우울한 모래더미’일 수 있다. 하지만 나 역시 순이 고모처럼 내가 서 있는 이곳이 다이아몬드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곳이라 긍정하려 한다. 지금껏 그려왔던 그림이 아닌, 밑그림조차 희미해진 삶, 그런데 어느 한 귀퉁이에서 ‘반짝’하고 빛나는 순간들이 나를 들뜨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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