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단평
 


강이관 감독의 <사과>가 4년 만에 개봉한다. 해외 영화제 수상경력으로 이미 친숙한 영화다. 너무 늦게 도착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아쉽다는 생각이 우선 든다. 어느 영화의 가치가 4년 이후에도 유효할 것인가를 따져보았을 때 더욱 그렇다. 그나마 다행인 건 <사과>가 다음 4년, 그리고 그 다음 4년 이후에도 여전히 사랑받을만한 작품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그 좋은 영화를 우리가 왜 이렇게 늦게 만나야 하냐고. 생각하면 또 속 쓰리다.

<사과>는 현정(문소리)의 사랑 이야기다. 그녀는 민석(이선균)과 7년 째 열애 중이다. 아니, 열애라고 믿고 있었다. 어느 날 불쑥 이별을 통보받고 현정은 공황상태에 빠져든다. “내가 점점 없어지는 것 같아”라니. 어라, 내가 느끼고 있던 감정들은 온전히 나만의 것이었을까. 그렇게 심란한 현정의 앞에 상훈(김태우)이 나타난다. 언뜻 보기에도 되게 순진하고 수줍어 보이는 이 남자, 현정의 마음을 얻어내 보려고 진짜 되게 노력한다. 둘은 결혼한다. 짧은 행복이 지나간다. 하지만 사랑은 따로 쓰이는 일기장이다. 잔인하게도, 사랑하는 두 사람의 마음이란 결코 완전히 공유될 수 없는 것이다. 영화는, 관객은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나는 내가 굉장히 열심히 사랑하면서 살아왔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한 번도 노력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 당신은 <사과>의 결말에 절망할 수도, 용기를 얻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결말에 이르러 모두가 노력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노력이란 소중한 것이다. 이 세상에 당연하게 주어지는 건 아무 것도 없다. 그런데도 사랑이란 안도감은 자주 그런 착각을 권유한다. 당신의 경험과 생각에 상응하는 꼭 그만큼의 파고를 남기는, <사과>는 그런 영화다. ( 2008.10.23 허지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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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닷컴] (글=이동진) 엔딩 크레딧이 흐를 때 진정으로 시작되는 영화들이 있다. 강이관 감독의 ‘사과’가 바로 그런 작품이다.

실제로 사귀고 있는 50쌍을 인터뷰한 뒤 이를 참고해 만들었다는 이 작품은 독특하고 화려한 사랑 이야기를 들려주며 환상을 충족시키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로마의 휴일’처럼 공주가 기자와 사랑에 빠지는 것도 아니고, ‘노팅 힐’처럼 작은 책방 주인이 할리우드 톱스타와 결혼하는 것도 아니다.  평범한 한 여자가 평범한 한 남자와 헤어진 뒤 또 다른 평범한 남자와 만나면서 생기는 파장들을 세심하게 관찰할 뿐이다.






멜로 영화의 최대 관심사는 ‘누가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이지만, 거기에도 그다지 눈길을 돌리지 않는다. 이건 두 개의 사랑이 교차하면서 그려지는 궤적 자체가 핵심인 영화다. 실선 그래프로 ‘그들의 사랑’을 세심하고 꼼꼼하게 그려나가던 ‘사과’는 막을 내릴 준비를 하면서 스크린 밖으로 이어지는 점선 그래프를 상상한다. 그리곤 낮지만 강력한 목소리로 객석을 향해 질문을 던진다. 오늘, 당신의 사랑은 어떻습니까.

현정(문소리)은 7년째 연애중인 민석(이선균)과 함께 떠난 여행지에서 급작스런 결별 선언을 듣는다.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던 현정은 자신을 짝사랑하던 상훈(김태우)이 계속 접근해오자 그에게 서서히 마음을 연다. 마침내 상훈과 결혼식을 올린 현정. 그런 그녀에게 어느 날 민석이 찾아온다.

‘사과’가 들려주는 사랑 이야기는 전형적이다. 떠나가는 연인은 알쏭달쏭 관념적인 말로 이별의 이유를 둘러대고, 남겨진 연인은 “나를 사랑했니?”라고 끝내 묻는다. 원인은 모호하지만 상처는 생생한 세상의 그 모든 꺼져가는 사랑은 새로운 사랑을 맞이하고서야 비로소 환부를 덮는다. 그러다 어떤 계기가 찾아오면 잊은 듯 했던 통증이 도진다. 현정과 민석과 상훈도 그랬다.

하지만 ‘사과’는 전형적이되 관습적이진 않다. 그것은 하나씩 차곡차곡 쌓아둔 디테일의 힘과 배우들의 좋은 연기 때문이다. 사랑을 할 때 이 영화의 주인공들이 하는 행동과 나누는 대화는 또렷한 사실감으로 시종 흥미를 잃지 않게 한다. 연인들 못지 않게 가족 관계도 드물게 생생하다. 특정 신앙을 가진 가정을 묘사할 때 한국영화는 흔히 양극단적인 묘사로 치닫곤 하지만, 이 작품은 종교 활동을 그려낼 때조차 생활의 냄새를 제대로 풍긴다.

이 작품은 촬영 후 4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개봉 스케줄을 잡게 되었을 정도로 운이 없었지만, 그건 영화 문화의 획일성에 짓눌린 것일 뿐, 작품의 신선도나 완성도와는 관련이 없다.

그래도 촬영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아쉬움이 남는다. 장면의 공간적 맥락을 설명하는 설정 쇼트를 배제한 채, 내내 핸드 헬드로 서성이듯 인물들을 관찰하면서 클로즈업을 남용한 촬영은 답답한 느낌을 준다. 사랑의 미로 속을 헤매는 듯한 이야기라서 더욱 그렇다. 이 영화의 카메라는 실험에 열중하느라 계란 대신 시계를 삶았던 뉴튼 같다.

아마도 ‘사과’는 올 한해 연기 앙상블이 가장 좋은 사례들 중의 하나일 것이다. 이 작품의 배우들은 혼자 등장할 때도 좋지만 둘이서 함께 할 때 더욱 훌륭하다. 특히 문소리와 김태우, 문소리와 (엄마 역의) 최형인이 주고받을 때가 그렇다. 아마도 이 영화를 보고 난 관객들은 문소리에 대해서 어떤 편견을 깰 수 있을 것이고, 김태우에 대해서 신뢰가 좀더 깊어질 수 있을 것이다.

‘사과’는 전혀 칙칙하지 않다. 소소하지만 기분 좋은 유머가 끊이지 않고, 캐릭터들은 모두가 정이 간다. 하지만 맘 편히 보긴 어려운 영화다. 보는 이 각자의 연애담을 고스란히 떠올리게 만들 만큼 반영적인 작품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 영화의 필름에는 낚시 바늘이 들어 있다.

‘사과’를 함께 보았다고 묵은 연애가 회춘할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객석에 불이 켜진 후 극장을 나서면서, 오래된 연인들이 다시금 진지하게 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할 것이라는 점만큼은 확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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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미쓰 홍당무' – 우주에서 날아온 놀라운 코미디


기사입력 2008-10-13 10:18



 


[이동진닷컴] (글=이동진) 대체 이 여자를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까. 대책 없는 헤어 스타일에 온통 비호감인 외모. 럭비공처럼 종잡을 수 없는 행동에 온갖 콤플렉스의 집합소 같은 성격. 듣는 이의 반응은 생각지도 않은 채 피부과에서 자신의 연애 심리를 장광설로 늘어놓고, 남에겐 “남자들은 아무 생각 없이 행동한다”고 충고하면서도 스스로는 타인의 의미 없는 행동을 과도하게 해석하며 인생을 거는 여인. 수시로 얼굴이 붉어지는 안면홍조가 아니라 감정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내면홍조가 진짜 문제일 것 같은 이 여자는 도입부에서 말 그대로 ‘삽질’을 하면서 등장하기까지 한다.

‘미쓰 홍당무’(10월16일 개봉)는 캐릭터의 매력이 내내 빛을 발하는 영화다. 이경미 감독이 창조하고 공효진이 숨을 불어넣은 이 기상천외한 캐릭터를 보면서 관객은 처음엔 황당해하다가 곧 이어 눈과 귀를 의심하게 되고, 급기야 발을 구르며 웃다가 종국엔 가슴 한 구석이 싸해지는 경험을 한다. 극 초반 도저히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처럼 여겨졌던 인물이 영화를 설득하고 객석을 사로잡아 끝내 공감의 파장을 일으키는 진기한 순간이 이 작품에 있다.



이경미 감독이 연출하고 공효진이 주연한 영화 '미쓰 홍당무'



시도 때도 없이 얼굴이 빨개지는 안면홍조증으로 괴로워하는 양미숙(공효진)은 고등학교에서 러시아어를 가르치지만, 같은 학교 교사인 이유리(황우슬혜)에게 밀려 중학교 영어 교사로 발령난다. 오랜 세월 자신이 짝사랑해온 기혼남 서종철(이종혁) 선생마저 이유리와 모종의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미숙은 종철의 딸인 종희(서우)와 합세해 둘 사이를 망쳐놓으려 수를 쓰기 시작한다.

이를테면, ‘미쓰 홍당무’는 우주에서 날아온 것 같은 코미디다. ‘넘버 3’ 이후 이토록 신선한 한국영화 코미디를 본 적이 없다. 극중 가장 중요한 촬영 장소가 학교 어학실일 정도로 규모가 작지만, 이 영화의 유머는 거의 초현실적인 감각으로 천계(天界)의 서로 다른 차원을 넘나들 듯 자유롭다. 섹스 코미디의 성격도 갖고 있는 이 작품은 음담패설을 해도 비린내가 나지 않고, 끈 팬티가 나오는 순간에도 저급해지지 않는다.

오인과 착각, 과대망상과 피해망상으로 온통 좌충우돌하는 해프닝 속에서도 ‘미쓰 홍당무’는 길을 잃지 않는다. 이 작품은 ‘루저(loser-실패자) 영화’의 뻔한 화술을 따르지 않는다. 여기엔 학대도 없고 엄살도 없다. 자학은 있지만 전락은 없고, 자기연민은 끝내 자기애의 끈을 놓지 않는다.

물론 이 영화의 주인공은 절절하게 말한다. “그래 나도 알아. 내가 별로라는 거. 내가 내가 아니었으면 다들 나한테 이렇게 안 할 거면서, 다들 내가 나니까 일부러 나만 무시하고.” 그녀의 경우가 좀 심하긴 하다. 하지만 세상이 온통 왜 나만 미워하는지 모르겠다고 볼멘 소리를 하는 순간은 (‘닉슨’의 올리버 스톤에 따르자면) 심지어 미국 대통령에게도 찾아온다.

양미숙은 이해의 대상일지언정, 동정의 대상은 아니다. 쓸쓸한 장면도 있고 뭉클한 부분도 있지만, 결국 이 영화를 일으켜 세우는 것은 씩씩함이다. 그녀에 대한 세상의 태도는 끝내 바뀌지 않지만, 그녀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는 결국 바뀐다. 그게 모든 성장 영화가 희망을 보여주는 방식일 것이다.

감독은 특정 배우를 염두에 두지 않고 각본을 썼다지만, 공효진이 아니었다면 누가 양미숙을 연기할 수 있었을까. ‘미쓰 홍당무’와 ‘가족의 탄생’은 공효진이 얼마나 창의적이면서 사실감 넘치는 연기를 하는 배우인지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함께 보여주는 대표작일 것이다. 영화 전체가 양미숙을 중심으로 도는 상황에서, 두 신인 배우 황우슬혜와 서우가 기대 이상의 모습으로 제 몫을 단단히 해냈다는 사실도 기록할 만 하다.

‘미쓰 홍당무’가 결점 없는 영화인 것은 아니다. 전체적인 톤과 리듬에 대한 장악력이 아쉽고, 작품 자체의 생동감과는 별도로 어수선한 느낌을 배제할 수 없다. 카메라 역시 강조해야 할 장면과 무심한 듯 비춰야 할 장면을 종종 혼동하는 듯 하다.

하지만 2008년의 충무로는 이 작품을 통해 또 한 명의 뛰어난 감독이 첫 걸음을 뗐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기억할 것이다. 장르의 관습과 제작-투자자의 입김 그리고 관객의 기호를 살피느라 지나치게 ‘예의 바른’ 허다한 데뷔작들 사이에서, 이경미 감독의 상상력과 배포가 감출 수 없는 안면홍조처럼 만개한 모습을 목격하는 것은 각별한 경험이다. ‘미쓰 홍당무’는 신인 감독에게 기대되는 재능과 태도를 함께 갖춘 드문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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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기 인터뷰] 당신은 멋있는 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멋을 부리려는 사람들은 많다. 멋있게 살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정작 무엇이 멋있는 것인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조민기는 세상에 정말 멋있는 게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다.





<에덴의 동쪽> 초반에 정말 볼만했다. 대사들의 호흡이 길고 대부분 문어체였다. 이를테면 칼이 떨어졌는데 “이 칼을 수거해가라” 그러더란 말이야.
일단 참 불편하지. 오늘을 사는 배우들에게 60년대, 70년대, 80년대 말투를 하라는 게. 그런 경험 다 있을 거다. EBS 같은 데서 하는 한국 고전영화들 보면 당시로선 참신한 연출이고 영화라는데 말하는 것만 들어도 이상하게 닭살 돋고. 그런데 나는 그것 자체가 그 시대상이라고 본다. 오늘을 사는 배우가 그 시대를 살아나가는데 있어서 오늘의 언어로 연기한다면 당대를 제대로 표현해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인터넷 게시판들을 보면 배우의 연기보다 작가의 대사체가 문제라는 지적들도 꽤 많다. 오늘의 관객 입장에서만 볼 게 아니라 이 드라마가 어느 시대를 이야기하려고 하는지 생각하고 본다면 좀 불편한 단어들도 이해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다. 아니, 직접 연기하는 우리들은 얼마나 불편하겠어(웃음).

그런데 당신이나 이미숙씨 같은 경우는 그 대사들을 자기 호흡으로 만들어내더라. 종이에 써보면 정말 웃음마저 나오는데, 이상하게 당신들이 말하면 가슴을 울린다.
불편함을 무릅쓰고 내 자신에게 굉장히 익숙한 것처럼 쓰는 게 중요하다. 그 문맥에, 문장에 맞는 호흡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자기 신뢰가 참 중요한 것 같아. 배우들 스스로가 어떻게 이런 문장을 썼냐, 하면서 연기하면 시청자들에게도 끝까지 믿음을 못줄 것이다. 그걸 극복해내야 시대극을 끌어갈 수 있다.

극 초반에는 그걸 다 소화해내는 배우들이 있어서 볼만 했다. 그런데 젊은 연기자들로 극중 인물들이 교체되면서 이런 안정감이 흔들리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이연희씨에 대한 지적이 많다.
결국 경험치다. 배우로서의 경험치, 인간으로서의 경험치가 분명히 개입될 수밖에 없다. 텍스트라는 건 죽어있는 존재다. 그걸 살아있는 감정으로 뱉어내는 건 배우다. 그 삶을 실제 살아내느냐, 아니면 그저 암기해서 뱉어내느냐는 배우에게 달려있다. 경험치가 모자라면 이미숙 선배나 내가 하는 정도의 호흡이 쉽게 나올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결국 연기자 본인이 그걸 몸으로 겪어가면서 자기 영역을 넓혀갈 수밖에 없다. 요즘 젊은 배우들은 반응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 몇몇 배우들은 이미 무섭게 발전해가고 있다.

후배 연기자들에게 연기 조언을 곧잘 해주는 편인가.
나는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해라 식의 조언을 싫어한다. 다만 “네가 지금 여기서 왜 이 말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찾아봐라”고 말한다. 그거 이상 없다. 많은 선배들이 조언이랍시고 ‘미리보기’를 한다. 그런데 연기에서 가장 중요한 건 스스로 그 호흡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여기서 끊고, 여기서 숨 쉬고, 이렇게 다 지정해주는 건 어쩌면 그 후배 연기자를 망치는 길일 수 있다.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건, 그래서 정말 어려운 것 같다.

드라마 속에서 특별히 애착이 가는 후배연기자가 있나?
모두에게 애착이 간다. 게으른 연기자가 없다. 나는 게으른 연기자를 굉장히 싫어한다.

게으르다는 게 정확히 어떤 의미인가?
자기가 뭘 연기해야하는지 부지런히 찾지 않는 연기자다. 남들이 잘 한다는 칭찬에 더 잘할 생각은 못하고 안주해버리는 연기자가 있다.

그래서, 지금 드라마에는 결과적으로 만족하고 있나.
완전히 만족하는 게 어디 있겠어. 하지만 작가님이 아예 말도 안 되는 주문을 하는 분도 아니고. 조금 안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기도 하지만 그래서 어쩔 건데? 나는 대본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바이블이라고 생각한다. 무조건 믿고 따라야하는 것이다. 조민기가 생각했을 때 이런 부분은 이렇게 갔으면 좋겠다, 따위는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닌 것 같다.

작가님 잘 하시겠지요. 대통령과 문화부장관을 만드신 분인데. (편집 주: <야망의 세월>의 나연숙 작가)
푸하하하하. 그러게, 그러게.

나중에 문화부 장관 하시는 거 아닌가.
아휴, 나는 한자가 짧아서.

신태환이 참 흥미롭다. 1, 2회 볼 때는 그저 아주 악마적인 인물이구나 싶었는데 요즘 보면 굉장히 다양한 욕망들이 얽혀있고 나름의 신념이 있는 캐릭터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 시놉시스 받았을 때 신태환에게 가장 많이 끌렸다. 우선 악역이라는 캐릭터를 워낙 좋아한다. 영화도 드라마도 선한 주인공을 부각시키기 위한 장치로서의 악역이 많은데, 이 악역은 자기 스토리가 분명히 있다. 더 매력적인 건 신태환이 스스로 나쁜 짓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는 점이다. 나쁜 짓을 할 수밖에 없는 자기 논리가 분명한 인물이다. 게다가 악역 주제에 멜로까지 있어(웃음).

악역은 왜 좋아하나?
처음 데뷔하고 착한 역할을 굉장히 많이 했다. 그런데 별로였어. 진짜 같지가 않아. 아는 신부님 한 분도 운전하시다가 누가 앞으로 확 끼어들면 목에 로만칼라만 손으로 싹 가리고 “야! 이 새끼야!” 그러신다. 그러시고 잠시 멈춰 서서 “오 주여.” 그러고 다시 갈 길 가신다(웃음). 그게 굉장히 인간적으로 보이고, 또한 그게 바로 세상이라고 본다. 살면 살수록 정답이 모호해지지 않나. 대신 그게 오답이라고 가르쳐주는 존재들만 굉장히 많아진다. 그게 세상인 것 같고 그게 진실한 모습 같다. 그런데 이게 작품 안에서만큼은 악역을 통해서 더욱 잘 드러나는 것 같아. 물론 그게 너무 과하다보면 정치적인 악역, 이를테면 밥 먹을 때도 악한 놈처럼 먹어야 하고 화장실 가서도 악역처럼 볼 일 봐야 하는 게 될 텐데(웃음). 그런 것만 조심하면 가장 진실한 게 바로 악역 같다.

아버지로서의 신태환 또한 굉장히 보기 힘든 캐릭터다.
굉장히 특이하지. 아들놈이 여자 때문에 괴로워하니까 권력 이용해서 자게 해버리고. 신태환도 기본적으로 굉장히 뜨거운 사람이다. 그런데 자기가 그런 인생을 살아보니까 별 것 없다, 그러니까 너는 그렇게 살지 말라면서 아들에게 다소 폭력적인 주문을 하고 억압을 하고 그렇게 되는 것 같다.

당신은 어떤 아버지인가.
나는 아이들에게 늘 현명해지라고 이야기한다. 중학교 1학년, 초등학교 6학년이다. 지금까지는 담배 안 피우는데 괜히 화장실에서 피우다가 혼나지 말고 집에서 피우라고 이야기한다. 담배도 먹는 음식인데 왜 똥 싸는 데 가서 먹을 걸 먹느냐고.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떳떳한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에덴의 동쪽>의 태환과 <사랑과 야망>의 태준을 비교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태준 같은 경우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그런데 그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노력이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게 되는 것이지. 반면 신태환은 아주 작정을 하고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이다. 악한 세상을 헤쳐 나가려면 내 자신이 더 강한 악으로 무장할 수밖에 없다고 믿는 것이다. 가끔 가부장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그건 아닌 것 같고. 그보다는 극한의 에고이스트에 가깝다.

<해부학 교실>에서의 역할도 그런 극한의 에고이스트로 정리될 수 있을 것 같다. 왜 그런 역할을 주로 하게 되는 걸까? 혹시 본인 성격과 실제 비슷해서?
그렇지 않거든! (웃음) 내가 얼마나 재밌는 사람인데. <에덴의 동쪽> PD가 이거 끝나면 자기랑 코미디 꼭 하자고 할 정도다. 하핫.

영화 출연은 일부러 꺼리는 건가?
그렇지 않다. 내가 밥벌이로서의 연기를 시작한 것이 영화였고, 지금 아내와 만날 수 있었던 것도 이명세 감독의 <첫사랑>을 찍으면서 인연이 닿은 덕분이었다. 예전에 드라마 쪽 일을 시작했던 게 한국영화 사정이 아주 안 좋아졌을 때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일구려다보니 아무래도 돈을 벌긴 해야 했고.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 그래도 시나리오는 꾸준히 들어왔는데 대부분이 좀 이상했어. 괜히 벗는 것도 있었고. 나는 작품을 고르는 기준이 뚜렷한 편이다. 벗어도 좋다. 그런데 벗을 때는 명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유가 있어야지. 그런데 명분도 없이 막 벗고 막 나쁘고, 그런 역할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걸 피하다보니 영화 쪽에선 잘 안됐던 것 같다.

그런 거 보면 굉장히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사람 같다.
이제 촬영장에 가면 내가 형이라고 불러야 하는 사람보다 나를 형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그러다보니 매사에 조심스러워지는 것 같다. 예전에는 괜히 싸우면서 어떻게든 내 뜻을 관철시키려고 했다. 지금은 좀 더 지켜본다. 나이를 먹는다는 게 그런 것 같다. 웬만큼 공부가 안된 상황에서 괜히 덤볐다간 무안을 당할 수 있거든. 어릴 때는 괜찮아. 그냥 제가 어려서 잘 몰랐습니다, 하고 사과하면 되잖아. 지금 그러면 빼도 박도 못한다. 안되지 안 돼. 더 준비를 하고 더 많은 말을 들어야 하는 나이인 것 같고. 대신 그만큼 더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는 편한 나이가 된 것 같아 좋다.

스스로 나이가 들었구나, 싶었을 때가 있나?
난 솔직히 그런 생각 한 번도 못해봤다. 그런데 자꾸 주위에서 형, 형 그러니까. 심지어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어! (웃음) 그러면 “내가 너 무슨 과목을 가르쳤는데?”라며 막 화낸다. 나는 선배라는 말도 별로고 그냥 형, 오빠라는 말이 좋단 말이야.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된 것 같아. 아주 이상하다.

최근 몇 년 사이 해본 제일 어린 역할이 몇 살짜리였나.
하하하! 대학생도 해봤다. <사랑과 야망>에서.

솔직히 어거지 아닌가.
아니 충분했다니까(웃음). 충분했어요, 대학생.

<에덴의 동쪽>에서도 20대 후반부터 장년까지 같은 인물을 연기하는데. 당신은 왜 안 늙는 건가.
나 많이 늙었다. 여기 흰머리 좀 봐.

흰 머리는 나도 있다.
늙지 않는 방법이라. 일단 철이 들면 안 된다. 그러기에 배우라는 직업이 좋다. 배우 할 때 한자 배자가 사람 인자와 아닐 비자가 합쳐진 모습이거든. 사람이 아니라는 거다. 그런데 우자는 또 빼어날 우자거든. 사람은 아니되 빼어나야 된다. 되게 말이 힘든데, 인간 같지 않게 살아야 한다는 게 요점이다. 집에 가족 두고 있으면서 생면부지 다른 배우들에게 남편역할하고 아버지 역할 해야 하잖아. 그렇게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마누라 등 두드려주면서 잠 자야하고. 한마디로 호불호가 그 어떤 직업보다 분명해야하고, 또 어떤 직업보다 불 분명해야 하는 직업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늘 불안하면서도 불안하지 않게 살아야하다 보니 늙지 않는 게 아닐까.

아프리카에 우물을 파주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지 않나. 계속하게 되는 동력이 궁금하다.
아프리카를 한 번 가보면 그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든다. 관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 죄 없이 병을 가지고 태어나는 아이들이 너무 많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식수 오염이다.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찾다가 우물을 파면 그 문제를 조금이라도 막아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더불어’라는 이름의 통장을 만들어서 후원을 받고 있다. 사람들이 외식 한 번 할 거 아껴서 넣고, 술 한 번 마실 거 아껴서 넣고 그런다. 그 정성들을 모아서 작년에 우물을 하나 팠다. 하나 파는데 한국 돈으로 1500만원 정도 들어간다. 이미 대지 오염이 어느 정도 된 상태라 아주 깊게 파야 하거든. 드라마 끝나고 내년에 갈 때는 두 개 정도 팔 수 있을 것 같다.

연민인가?
아니. 나는 원래 봉사라는 걸 못하는 사람이다. 내 모든 걸 다 쏟아 붓는 게 봉사다. 난 그거 못한다. 그저 내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조금 활용할 뿐이다. 나는 연기하면서 돈도 벌고 명예도 얻고 사랑도 얻을 수 있잖아. 그렇게 얻은 무형의 자산, 사랑과 관심을 이용해서 사람들의 정성을 좀 더 용이하게 모을 수 있으니 다 같이 나누어보자는 거다. 일종의 에이전시랄까.

굳이 나눌 거 한국에서 나누라고 말하는 사람 분명히 있을 거다.
있지. 그럴 땐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 다른 나라로부터 원조를 받은 나라는 많다. 그런데 원조를 받다가 원조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 나라는 많지 않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그렇거든. 우리가 좀 살만해졌다고 다른 나라의 문제에 무관심한 건 상도의상 어긋나는 행동이라고 본다. 우리나라 사람들 등수 매기는 거 좋아하잖아? 한국이 후원, 기부 개념에 있어서 아주 꼴찌다. 미국이 오만하다는 비판 많이 받아도 지금 위치를 누리고 있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하는 기부가 있고, 빌 게이츠 재단이 하는 기부가 있고, 빌 게이츠 개인이 하는 기부가 또 따로 있다. 삼성이 기부하는 거 있다. 삼성복지재단을 만들어서 기부하는 거 있다. 그런데 이건희 개인이 기부하는 건 없다. 그게 미국과 우리의 차이다.

좌우명이 “멋있게 늙자”는 걸로 알고 있다.
하늘을 본적이 있느냐, 꽃들을 본적이 있느냐, 주변에 그런 질문을 종종 한다.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살다보면 무언가를 봤을 때 그게 정말 멋진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멋있게 늙자는 좌우명을 가진 사람이 생각하기에, 세상에서 정말 멋있는 것이란 무엇인가.
쿠바하면 뭐가 떠오르나. 보통 남루한 모습을 먼저 떠올리지 않나. 그런데 실제 쿠바를 가서 사람들을 만나보면, 그게 결핍이나 포기가 아니라 현재 가지고 있는 걸 즐기고 있는 거란 걸 알 수 있다. 난 그게 멋있는 거라고 생각해. 내가 처음 방송국 들어갔을 때 출연료 받은 통장을 여태껏 사용하고 있는데, 재밌는 게 소득이 적을 때나 많을 때나 늘 하고 싶은 것만큼은 다 하고 살고 있다는 거다. 그리고 그 때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꼈던 것들은 지금도 똑같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다. 생각해보면 돈이 많고 적고는 큰 문제가 아닌 것 같아. 지금을 즐기고 즐기지 못하는 건 돈의 문제라기보다 용기의 문제다. 허지웅 기자 (<프리미어> ‘와일드 토크’

2008.10 허지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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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건축,근현대사를 몸에 새기다

절두산 성교성지(이희태작)-서울시 마포구 합정동 96-1

서울외국인 교회(김광욱 작)-서울시 마포구 합정동 145-8

워커힐 힐탑바(김수근 작)-서울시 광진구 광장동 산 21 쉐라톤워커힐호텔

국회 의사당(김정수 작)-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1번지

자유센터( 김수근 작)-서울시 중구 장충동 산 5-19

대한 성공회 성가수녀원(김원 작)-서울시 중구 정동 3번지외 9필지

구벨기에 영사관-서울시 관악구 남현동 1059-13번지

국립극장(이희태 작)-서울시 중구 장충동 2가 산 14-67

국립현대미술관(김태수 작)-경기도 과천시 광명길 209

2장 시대인물,건축으로 남다

환기미술관(우규승 작)- 서울시 종로구 부암동 210-8 환기미술관 1길 23

미당고택(리노베이션 김원 작)-

박수근 마을(이종호 작)-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정림리 박수근미술관

명성왕후생가-경기 여주군 여주읍 능현리 250-2번지

김옥길 기념관( 김인철 작)-서울시 서대문구 대신동 92

이상고택-서울시 종로구 통인동 154번지

의재미술관(조성룡 작)-광주시 동구 운림동 85-1번지 의재미술관

3장 건축, 아트와 실용주의의 유쾌한 만남

경동교회(김수근 작)-서울시 중구 장충동 1가 26-1

주한 프랑스 대사관(김중업 작)-서울시 서대문구 합동 30번지

서울대학교 미술관(렘 콜하스 작)-서울시 관악구 신림동 산 56-1

담양 정토사 무량수전( 김개천 작)-전남 담양군 담양읍 학동리 492-1

리볼버( 허먼 마이어 노이슈타트 작)-031-389-5550~2

삼성미술관 리움(렘 콜하스,마리오 보타,장 누벨 작)-서울시 용산구 한남동 747-18

초당 성당(김영섭 작)-강릉시 초당동 137 초당성당

미제루( 방철린 작)-인천시 강화군 송해면 양오리 산 66-1

쌈지길(최문규 작)-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38번지

아주미술관(김억중 작)-대전시 유성구 화암동 195번지

이화 신세계관 & 이화 글로벌 타워(김원 작)-서울시 서대문구 대현동 11-1

동덕여자대학교 학생관(이필훈 작)-서울시 성북구 하월곡 2동 23-1

탄탄 스토리 하우스(방철린 작)-경기도 파주시 교하읍 문발리 519-1

교원그룹 도고 연수원과 비전센터(조남호 작)-충남 아산시 선장몀 신성리 350/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화곡리 331-1

다물마루(김경수 작)-이천시 마장면 상송마을

닥터박갤러리 (승효상 작)-경기도 양평군 강하면 전수리 19-1

4장 건축 공간,교양과 휴식의 장이 되다

강하 미술관&거제도30평집(김개천 작)-경기도 양평군 강하면 전수리/거제시 일운면 소동리 457

해남 공룡화석지 보호각(김홍식 작)-전남 해남군 황산면 우항리 공룡화석지

암사동 선사주거지(김홍식 작)-서울시 강동구 암사동 155번지

국립중앙박물관(박승홍/정림건축 작)-서울시 용산구 용산동 6가 168-6번지

분원백자관(이종호 작)-경기도 광주시 남종면 분원리 116번지

정림사지 박물관(김홍식 작)-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정림사지 36

서울시립미술관(삼우종합 작)-서울시 중구 미술관길 30 (서소문 37)

기당미술관(김홍식 작)-제주도 서귀포시 남성로 34(서홍동 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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