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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최고의 팝 앨범은 무엇일까?

야후 뮤직 블로그가 선정한 최고 앨범 20선(Top 20 Albums of All Time)을 보면 1위는 흑인가수 스티비 원더가 지난 76년 내놓은 '송스 인 더 키 오브 라이프'(Songs In The Key Of Life)가 선정되었다.

이번에 선정된 20장의 베스트 앨범들은 미국시장을 기반으로 하고 선정됐으며, '베스트 히트' 앨범(Greatest Hits)이나 라이브 앨범은 기준에 포함되지 않았다. 선정기준은 앨범이 순위에 머문 기간, 판매량, 비평가의 평가, 그래미 시상식 결과 등을 종합해서 평가했다.

 

내가 좋아하는 Led Zeppelin은 Physical Graffiti, Led Zeppelin IV, Led Zeppelin I, Houses Of The Holy 등 4장이나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1. Songs In The Key Of Life - Stevie Wonder
 
Year: 1976 Units Sold: 10 Million
SPV: $16.84 Rating (Stars): 5 Grammys Won: 2
Calculated value per unit based on the formula: $18.71
   
#2. Dark Side Of The Moon - Pink Floyd
 
Year: 1973 Units Sold: 15 Million
SPV: $16.08 Rating (Stars): 5 Grammys Won: 0
Calculated value per unit based on the formula: $18.57.
   
#3. Thriller - Michael Jackson
 
Year: 1982 Units Sold: 27 Million
SPV: $13.49 Rating (Stars): 4.5 Grammys Won: 4
Calculated value per unit based on the formula: $17.39.
   
#4. Physical Graffiti - Led Zeppelin
 
Year: 1975 Units Sold: 16 Million
SPV: $14.31 Rating (Stars): 4.75 Grammys Won: 0
Calculated value per unit based on the formula: $16.38.
   
#5. Abbey Road - The Beatles
 
Year: 1968 Units Sold: 12 Million
SPV: $14.94 Rating (Stars): 4.25 Grammys Won: 1
Calculated value per unit based on the formula: $16.23.
   
#6. Led Zeppelin IV - Led Zeppelin
 
Year: 1971 Units Sold: 23 Million
SPV: $12.42 Rating (Stars): 5 Grammys Won: 0
Calculated value per unit based on the formula: $15.44.

 

 
#7. The White Album - The Beatles
 
Year: 1968 Units Sold: 19 Million
SPV: $12.00 Rating (Stars): 5 Grammys Won: 0
Calculated value per unit based on the formula: $14.39.
   
#8. Hotel California - Eagles
 
Year: 1976 Units Sold: 16 Million
SPV: $12.00 Rating (Stars): 4.75 Grammys Won: 0
Calculated value per unit based on the formula: $13.81.
   
#9. Led Zeppelin - Led Zeppelin
 
Year: 1969 Units Sold: 10 Million
SPV: $12.83 Rating (Stars): 4 Grammys Won: 0
Calculated value per unit based on the formula: $13.60.
   
#10.  Metallica - Metallica
 
Year: 1991 Units Sold: 14 Million
SPV: $12.08 Rating (Stars): 4.25 Grammys Won: 1
Calculated value per unit based on the formula: $13.38.
   
#11. The Joshua Tree - U2
 
Year: 1987 Units Sold: 10 Million
SPV: $11.50 Rating (Stars): 4.5 Grammys Won: 2
Calculated value per unit based on the formula: $12.54.
   
#12. The Wall - Pink Floyd
 
Year: 1979 Units Sold: 23 Million
SPV: $10.20 Rating (Stars): 4.75 Grammys Won: 1
Calculated value per unit based on the formula: $12.51.
 

 

#13. Rumours - Fleetwood Mac
 
Year: 1977 Units Sold: 19 Million
SPV: $9.52 Rating (Stars): 5 Grammys Won: 1
Calculated value per unit based on the formula: $11.47
   
#14. Van Halen - Van Halen
 
Year: 1978 Units Sold: 10 Million
SPV: $10.23 Rating (Stars): 4.25 Grammys Won: 0
Calculated value per unit based on the formula: $10.84
   
#15. Nevermind - Nirvana
 
Year: 1991 Units Sold: 10 Million
SPV: $10.07 Rating (Stars): 4 Grammys Won: 0
Calculated value per unit based on the formula: $10.67
   
#16. Born In The U.S.A. - Bruce Springsteen
 
Year: 1984 Units Sold: 15 Million
SPV: $8.91 Rating (Stars): 5 Grammys Won: 0
Calculated value per unit based on the formula: $10.29
   
#17. Houses Of The Holy - Led Zeppelin
 
Year: 1973 Units Sold: 11 Million
SPV: $9.10 Rating (Stars): 4.5 Grammys Won: 0
Calculated value per unit based on the formula: $9.93
   
#18. Purple Rain - Prince
 
Year: 1984 Units Sold: 13 Million
SPV: $8.74 Rating (Stars): 4.75 Grammys Won: 2
Calculated value per unit based on the formula: $9.82
   
#19. Appetite For Destruction - Guns N' Roses
 
Year: 1987 Units Sold: 15 Million
SPV: $8.81 Rating (Stars): 4 Grammys Won: 0
Calculated value per unit based on the formula: $9.81
   
#20. Faith - George Michael
 
Year: 1987 Units Sold: 10 Million
SPV: $9.19 Rating (Stars): 4 Grammys Won: 1
Calculated value per unit based on the formula: $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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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슬럼독 밀리어네어’-마음은 끝내 움직이지 않았다


기사입력 2009-03-12 09:52



 


[이동진닷컴] (글=이동진) 인도 뭄바이의 빈민가에서 성장한 소년 자말(데브 파텔)은 거액의 상금이 걸려 있는 TV 퀴즈쇼에 출연한다. 제대로 된 교육도 못 받고 직업도 변변찮은 자말이 승승장구하면서 최종 단계에까지 이르자 경찰은 그를 사기죄로 의심한다. 어떻게 정답을 다 알게 되었는지를 캐묻는 경찰에게 자말은 이제껏 직접 겪어왔던 일들이 실마리가 되었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과거에 대해 들려주기 시작한다.






올해 아카데미 영화상에서 8개 부문을 수상한 화제작 ‘슬럼독 밀리어네어’(3월19일 개봉)에 대한 인도인들의 불만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확실히 이 영화는 ‘빈곤’을 ‘풍경’으로 만든다. 소년들이 질주할 때의 역동적인 카메라와 인상적인 화면색조와 현란한 편집은 스쳐 지나가는 쓰레기더미조차 스펙터클로 만든다. 카메라가 순식간에 까마득히 멀어지면서 빈민가의 빼곡하게 이어 붙은 허름한 지붕들을 (멀리 위에서 내려찍으면서 장면 사이에 불연속적인 단절을 만들어 보여주는 방법인) 부감의 롱쇼트 점프컷으로 스케치할 때, 가장 궁핍한 광경은 서정적이고 이국적인 볼거리가 된다.

인도에 심각한 빈곤이 실재한다는 것과 그 빈곤을 볼거리로 현시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이 영화 속 참혹한 생활 환경에 대한 묘사들은 종종 ‘진짜 인도의 모습’과 ‘진짜 인도의 모습이라고 외부인들이 여기고 싶어하는 모습’ 사이에서 의문을 갖게 한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현실에 엄존하는 사회문제를 성찰하게 하는 대신, 적당히 마음 아파하면서 편안히 구경하게 해준다.

하지만 이런 근본적인 단점에도 불구하고, 대니 보일이 감독한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만듦새가 상당히 뛰어나다는 사실까지 부정하긴 어렵다. 소재에 대한 태도와 형식에서 페르난도 메이렐레스의 ‘시티 오브 갓’을 떠올리게 하는 이 영화의 스타일은 그야말로 휘황찬란하다. 다양한 구도를 구사하며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는 카메라, 세 가지 줄기의 이야기를 능란하게 짜올리는 플롯, 복잡한 상황을 긴장감 넘치게 간추려내는 편집은 과시적이기도 하고 탁월하기도 하다. 그리고 이 작품의 음악은 영화음악에 허용된 최상의 효과를 발휘한다.

‘슬럼독 밀리어네어’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착상부터가 흥미진진하다. 퀴즈 문제를 통해 서사에 고리를 만들어서 에피소드와 능숙하게 잇는 화술은 이야기에 대한 원초적인 욕구를 유감 없이 충족시킨다. 삶의 난관을 온 몸으로 헤쳐온 소년이 바로 그 험난한 과거 때문에 달콤한 열매를 맛본다는 점, 현재의 상금을 챙기는 데서 만족하지 않고 그 다음 단계의 문제로 계속 도전하는 퀴즈쇼의 과정이 불굴의 의지로 돌파해나가는 삶의 자세를 상징한다는 점 등 관객들이 휴먼 드라마에서 기대하는 모티브들이 효율적으로 기능한다.

기본적으로 멋진 스토리였지만 거칠고 방만했던 원작 소설을 장르 영화의 틀 속으로 다듬어 넣은 각색도 솜씨가 있다. (영화는 소설의 상당 부분을 바꾸었다. 소설 속에선 친구였던 캐릭터를 형으로 바꾸었고, 주변 인물들에게 일어난 사건을 주인공에게 집중시켰다. 퀴즈쇼에 등장하는 질문들의 경우, 원작에서 그대로 가져온 문제는 단 하나 밖에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비중에서 성격과 직업까지, 여성 캐릭터가 완전히 다르다. 영화는 성장소설인 원작을 멜로로 바꾸어냈다.)

그렇다. 좋은 이야기였다. 번쩍이는 연출이었다. 예상보다 훨씬 더 재미있는 영화였다. 최근 들어서 본 가장 화려하고 신나는 엔딩 타이틀 시퀀스까지 있었다. 그런데, 참 이상도 하지. 마음은 끝내 움직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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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도쿄 소나타'-신음하는 정적


기사입력 2009-03-20 09:54



 





[이동진닷컴] (글=이동진) 화면이 점차 밝아진다. 카메라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천천히 이동하면 식탁에 올려놓은 신문지가 바람에 날려 바닥에 나뒹굴고, 소파 앞 테이블에 펼쳐놓은 잡지가 파라락 넘어간다. 방에서 허겁지겁 뛰어나온 여자가 미닫이 유리문을 닫은 뒤 마루에 들이친 빗물을 열심히 닦아낸다. 그러다 어느 순간 멈추고 다시 유리문을 연 후에 쏟아지는 폭우를 우두커니 쳐다보는 여인. 그 고적한 풍경 속에서 실루엣이 된 채로.

‘도쿄 소나타’의 첫 장면은 이 영화의 분위기를 명확히 요약하면서 이후 펼쳐질 내용 전체에 기나긴 메아리를 남긴다. 쓸쓸하면서 불안한 정서를 빼어난 표현력으로 체화한 이 오프닝 시퀀스는 단 두 개의 쇼트만으로 관객의 마음 깊숙이 성큼 걸어 들어온다. 아찔할 정도로 탁월한 시작이다.

직장에서 해고된 류헤이(가가와 데루유키)는 아내 메구미(고이즈미 교코)와 자식들에게 실직 사실을 숨기고 거리로 출근을 계속한다. 미군 부대에 입대하려는 장남 다카시(고야나기 유)와 피아노를 배우려는 차남 겐지(이노와키 가이)가 아버지 류헤이와 부딪치면서 가족간의 갈등은 점차 극심해진다.

‘도쿄 소나타’가 구로사와 기요시의 첫 가족 영화인 것은 아니다. 10년 전에도 그는 ‘인간합격’을 만들었으니까. 그러나 ‘큐어’ ‘회로’ 같은 걸작 호러로 가장 높은 봉우리에 섰던 공포영화 거장의 이 신작은 새로운 접근 방식과 색다른 표현 방법으로 그의 오랜 팬들을 놀라게 한다.

사실 구로사와 기요시 영화들의 완성도에는 편차가 있다. 그가 가장 큰 능력을 발휘해온 공포-스릴러 장르에서도 ‘도플갱어’나 ‘로프트’ 같은 태작이 나오기도 했다. 지난 10년간 공포-스릴러 장르의 바깥에서 만든 ‘밝은 미래’ ‘거대한 환영’ ‘인간합격’ 같은 작품들이 상대적으로 인상적이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도쿄 소나타’는 구로사와 기요시가 지난 20여년 동안의 일본영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감독들 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증명하는 작품이다.

초반에 이 영화는 톱니바퀴처럼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일과를 보내며 노동하는 사람들의 대열에서 어느 날 갑자기 열외된 어느 가장의 황망한 심리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 과정에서 외국으로부터 온 값싼 노동력이 기존 인력을 대체하는 경제 문제, 교사가 더 이상 학생을 책임지지 않으려 하는 교육 문제, 미국과의 관계 속에서 해외에 병력을 파병하는 군사-외교 문제 등 현대 일본 사회가 겪고 있는 다층적 맥락들이 직설적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그러다 중반을 넘어서면서 실직 사실을 감추고 있는 아버지뿐만 아니라 어머니와 아이들 역시 자신의 가장 큰 고민거리를 혼자 속으로만 삭이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류헤이 가정 곳곳에 균열을 만든다. 사실 이 가족은 가장이 실직하기 훨씬 전부터 서서히 내파(內破)되어 왔던 것이다. 그리고 심각한 위기를 겪는 이 가족은 그대로 일본 전체의 축도가 된다. (이때 가가와 데루유키와 고이즈미 교코 같은 베테랑들의 뛰어난 연기 못지 않게 인상적인 것은 ‘아무도 모른다’의 야기라 유야를 떠올리게 하는 아역 배우 이노와키 가이의 슬픈 얼굴이다.)

여기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들은 정적 속에서 발생한다. (사실 구로사와 기요시의 작품들은 대부분 그랬다. ‘큐어’의 카메라가 침묵 속에서 옆으로 움직이기 시작할 때의 섬뜩함을 떠올려보시라.) 특히 ‘도쿄 소나타’는 밝은 조명 아래서 가족들이 묵묵히 밥을 먹고 있는 4인용 식탁이 얼마나 두려운 공간인지를 생생히 묘사한다. 젓가락을 들기 전의 묵언 상태에서 서로 눈길을 피할 때나, 밥을 먹다가 잠시 멈춰서 골똘히 생각에 잠길 때, 비극은 어느새 인물들의 어깨에 내려 앉는다. 가족영화의 성패는 상당 부분 밥 먹는 장면에 좌우된다. 7번에 달하는 이 영화의 식사 장면들은 그 자체로 갈등과 위기에서 희망까지를 선명하게 응축한다.

이 영화의 후반부는 그 전까지의 사실적이고 세밀한 전개 방식과 완전히 궤를 달리 한다. 집을 나간 가족들이 겪는 파국을 묘사하는 클라이맥스는 사실 지나치게 극적이고 또 인위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구로사와 기요시 작품들의 후반부는 가끔씩 매우 과격하거나 너무 멀리 간다. 그러나 그의 영화세계를 특징 짓는 것이 바로 그 후반부라는 사실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장남 다카시가 전장에서 돌아오는 꿈 장면 이후에 펼쳐지는 내용들은 상징적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이 부분은 이상할 정도로 종교적이다. (독법에 따라서는 후반부 전체를 꿈으로 읽어낼 수도 있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영화들 속에서는 현실과 꿈의 경계가 모호하다. 거기엔 ‘내가 아닌 나’와 ‘나를 넘어선 나’와 ‘통제할 수 없는 나’가 있다.)

그리고 엔딩 시퀀스가 펼쳐진다. 누군가 연주를 끝내고, 누군가 다가가 어깨를 두드리며, 누군가 말없이 지켜본다. 세 가족이 이제 막 걸어 나온 공간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지만, 모두가 한 쪽만을 바라보고 있는 그곳엔 침묵만이 교교히 감돈다. 정적의 무게를 버텨내지 못하는 공간이 사라지면, 발자국 소리만을 동반한 채 어둠 속에서 엔딩 크레딧이 뚜벅뚜벅 걸어 올라온다. 구로사와 기요시는 영화가 끝난 후에도 어떻게 관객의 가슴에 발자국을 남길 수 있는지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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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그랜 토리노’-이스트우드가 미리 쓴 유서


기사입력 2009-03-09 16:28



 





[이동진닷컴] (글=이동진) (이 글에는 결말에 대한 부분적인 암시가 담겨 있습니다.)

“결코 마주치지 말았어야 할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나. 그게 바로 나야.” 이게 일흔여덟살의 할아버지가 내뱉을 대사는 아닐 것이다. 설혹 내뱉는다고 해도 그 말이 응당 지니고 있어야 할 둔중하고 빡빡한 위협의 뉘앙스를 체화하긴 어렵다. 그러나 그런 발언을 하는 노인이 클린트 이스트우드라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이스트우드가 만든 영화에서 ‘배우 이스트우드’까지 볼 수 있다는 것은 각별한 기쁨이다. ‘밀리언달러 베이비’ 이후 4년, ‘그랜 토리노’가 우선 반가운 것은 그가 연출뿐만 아니라 주연까지 맡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배우로서 그의 마지막 출연작이 될지도 모를 이 영화에서 이스트우드는 (분명 기대했음에도 막상 보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단단한 카리스마로 시종 압도한다. 지친 듯 낮게 갈라진 쉰 목소리에 거부할 수 없는 위엄과 힘을 담은 그는 등장하는 모든 장면에서 그대로 괴팍하고 단호한 주인공 월트 코왈스키였다. 40여년 전 서슬 퍼렇게 매그넘 44를 겨누던 해리 캘러핸(‘더티 해리’)은 세상에 몸을 굽히지 않고 그대로 늙었다.

 

아내와 사별한 뒤 혼자 사는 월트(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자신이 자동차 회사에 다닐 때 생산했던 1972년산 그랜 토리노를 애지중지한다. 갱단의 협박에 못 이긴 이웃집 소년 타오(비 뱅)는 그랜 토리노를 훔치려다 월트에게 들키자 달아난다. 차 훔치기에 실패한 타오를 갱단이 강제로 끌어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집 마당으로 들어오자 지켜보던 월트가 총을 겨눠 그들을 쫓아낸다.

월트 코왈스키는 늘 불만에 가득 찬 고집불통 노친네다. (심지어 가족을 포함해서) 타인들에 대해 문을 닫아 건 채 자신만의 공간에 틀어박힌 그는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라곤 눈꼽만큼도 없는 몰상식한 인종주의자이기도 하다. 게다가 걸핏하면 총을 집어드는 다혈질이기까지 하다. (아마도 코왈스키란 이름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무지막지한 마초 주인공 스탠리 코왈스키에서 따왔을 것이다.)

하지만 연쇄적인 이야기 사슬의 끝에 이르게 되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말하자면 이것은 결국 복수보다는 근심, 응징보다는 책임, 원칙보다는 관용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모든 것이 변하게 된 ‘늙은 더티 해리’의 이야기니까.

세르지오 레오네의 서부극과 돈 시겔의 형사영화를 거치면서 폭력적인 반영웅의 대명사가 되어온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 ‘그랜 토리노’는 그의 1992년작 ‘용서받지 못한 자’ 못지 않게 자기반영적이다. 어떤 관객은 팔십을 바라보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서 희대의 ‘노인 액션 히어로’ 모습을 보고 싶어할지도 모르지만, 이 영화를 채우고 있는 것은 폭력의 순간에 대한 휘황한 매혹이 아니라 폭력의 대가에 대한 뼈 아픈 성찰이다.

‘그랜 토리노’는 쉬운 폭력으로 서사를 해결하지 않는다. 여기서 반성은 결국 희생이라는 좀더 큰 주제와 조우한다. 이 영화의 희생이 지극히 인상적인 것은 어느 결함 많은 인간이 오랜 죄책감의 끝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아나선 결과였기 때문이고, 자각된 휴머니즘이 편협한 애국심을 끝내 넘어섰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신(神)의 무결한 희생이 아니라, 이제 막 생겨난 책임감에서 끝내 눈 돌리지 못하는 인간의 처연한 희생이다. 인간의 희생은 자신의 본성을 넘어서는 곳에 존재한다.

관객에 따라선 백인인 월트와 아시아인인 타오의 관계에 대한 묘사에서 불편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타오는 베트남전 당시 미국의 편을 들었다가 70년대 이후 대거 미국으로 이주했던 소수민족 몽족 출신이다.) 그러나 이것은 기본적으로 매우 보수적이고 인종차별적이었던 구식 인간이 변해가는 이야기라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이 영화에는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모두 철저하게 실패한 전쟁인 베트남전으로 시계바늘을 거꾸로 되돌려 바로잡고 싶어하는 미국인들의 소망이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자신의 폭력적인 행동이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사실에 대해 월트가 후회하는 대목에서 알 수 있듯, 그 소망의 근저에 흐르는 것은 무엇보다 반성이다.

‘그랜 토리노’가 미국에서 흥행 수입 1억 달러를 훌쩍 넘기면서 크게 히트한 데에는 뛰어난 유머 감각이 적잖은 기여를 한 듯 하다. 상이한 문화권의 접촉 과정에서 생겨나는 오해와 이해에 대한 탄력있는 유머들이 이 영화의 중반까지 지속적으로 샘솟는다. 서로 다른 민족과 인종끼리 주고받는 독설과 욕설들이 수시로 등장하지만 그 모든 말들과 상황이 결국 반인종주의의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과정을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몽족 사람들의 이름을 멋대로 바꾸어 부르던 월트 역시 병원에서 다른 인종인 간호사로부터 자신의 이름이 잘못 불리는 경험을 하는 장면이 들어 있는 데서 알 수 있듯, 이스트우드는 작품의 본뜻이 오인되지 않도록 전체적으로 균형을 잡으며 세심하게 안배했다.

하지만 후반부에 이르면 이 영화는 결국 장엄해진다. 말하자면 ‘그랜 토리노’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미리 영화로 써두는 유서 같다. 먼 훗날, 아니 어쩌면 그리 많이 남지 않았을지도 모르기에 지레 안타까워지는 미래의 어떤 날, 나는 우리 곁을 떠나간 클린트 이스트우드라는 위대한 감독에 대한 부고(訃告)를 ‘그랜 토리노’ 이야기로 시작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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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번 애프터 리딩'-코언형제의 자유로운 행보


기사입력 2009-03-24 09:51



 







[이동진닷컴] (글=이동진) ‘번 애프터 리딩’(Burn after reading-3월26일 개봉)은 역설로만 말할 수 있는 희한한 영화다. 이건 스파이가 없는 스파이 스릴러이고, 섹시하지 않은 섹스 코미디이다. 스토리는 텅 비어 있는데, 플롯은 꽉 차 있다. 원심력만 갖춘 사건은 실체도 없이 마구 커져만 간다. 강박증과 편집증과 과대망상이 뒤얽힌 요란한 헛소동. 여기서 내내 돋보이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닌 걸로 내내 흥미진진하게 떠들 수 있는 코언 형제의 달변이다.

헬스 클럽에서 일하는 채드(브래드 피트)는 우연히 비밀 정보원의 일급 기밀이 담긴 것으로 보이는 CD를 발견한다. 동료인 린다(프랜시스 맥도먼드)와 함께 CD의 주인인 오스본(존 말코비치)과 접촉해 돈을 요구하지만 상황은 점점 꼬여만 간다. 한편, CIA 요원인 남편 오스본이 못마땅했던 아내 케이티(틸다 스윈튼)는 남편이 퇴직하자 그간 몰래 만나온 애인 해리(조지 클루니)를 염두에 두고 이혼 소송을 준비한다.

‘번 애프터 리딩’의 작품 성격과 관련해 가장 인상적인 것은 코언 형제가 세상의 평가로부터 (여전히) 자유로운 행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모든 면에서 깊고 탁월한 걸작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로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포함해 허다한 상의 트로피들을 받으며 예술적 명성의 정점에 섰던 그들이지만, 바로 그 다음 작품으로 그저 한바탕의 농담 같은 해프닝 코미디를 내놓을 수 있을 정도의 배짱과 자신감을 가졌다. (그러니까, 작년 아카데미 시상식장에서 조엘 코언이 “어렸을 때부터 카메라를 들고 영화를 만들었는데, 지금 우리가 만든 영화가 그때보다 큰 발전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던 소감은 겸양의 표현이 아니었다.)

말하자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이후에 나온 ‘번 애프터 리딩’은 코언 형제가 칸 국제영화제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휩쓸었던 ‘바톤 핑크’ 다음 작품으로 발표한 경쾌한 코미디 ‘허드서커 대리인’의 자리에 상응하는 영화다. 코미디와 누아르 혹은 스릴러 사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오갈 수 있는 그들에게 존경의 시선 따위는 그저 거추장스러운 허상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그들은 ‘번 애프터 리딩’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같은 시기에 썼다. 전혀 색깔이 다른 두 편의 시나리오를 하루하루씩 교대로 오가면서 함께 적어내려 갔다고 하니, 정말 기이한 창작력이 아닐 수 없다.)

이 영화가 늘어놓는 이야기는 복잡하게 뻗어나간다. 상황을 제대로 컨트롤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헛똑똑이들이 좌충우돌하면서 엉망으로 꼬이고, 극중 모든 부부와 연인들이 서로를 속고 속이면서 인물들의 관계마저 마구 뒤틀린다. 그러나 해고된 비밀 요원의 회고록과 변심한 배우자의 이혼소송과 외로운 사람의 인터넷 즉석만남과 콤플렉스를 가진 자의 성형수술이 뒤엉킨 요지경 속 구체적인 전개 양상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 없다. 이건 위트와 아이러니와 트위스트 만으로 뽑아낸 플롯이니까.

할리우드 고전 영화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번 애프터 리딩’을 보면서 1930~1940년대의 프랭크 카프라나 프레스턴 스터지스, 또는 하워드 혹스의 스크루볼 코미디를 떠올리게 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확실히 코언 형제의 코미디들에는 언제나 클래식한 기운이 있다.

까마득한 상공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는 장면으로 이 영화가 시작하고 끝나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극중 등장하는 그 모든 간절한 소망과 배우자까지 등지는 사랑과 목숨을 건 승부수와 생사를 가르는 총격까지도, 멀리서 바라보면 그저 웃음거리가 된다. ‘번 애프터 리딩’은 코미디가 결국 거리감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알려준다.

다섯 명의 주연 배우들은 코언식 코미디에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린다. (틸다 스윈튼을 제외하면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해당 배우를 염두에 뒀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돋보이는 사람은 브래드 피트와 프랜시스 맥도먼드.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내내 촐랑대고 호들갑을 떠는 채드 역을 맡은 브래드 피트는 허름한 운동복 차림으로 막춤을 출 때조차 온 몸으로 매력을 발산하며 스타의 광휘를 뿜어낸다. 그리고 프랜시스 맥도먼드는 원래 뛰어난 배우지만, 역시 남편인 조엘 코언의 영화에 나올 때 가장 훌륭한 연기를 한다.

읽고 난 뒤에 태워버릴 것. 그러고 보면 마치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새로운 속편 부제처럼 보이는 제목 ‘번 애프터 리딩’은 사실 코언 형제가 이 영화를 보게 될 관객들에게 하는 주문에 다름 아닐 것이다. 이건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 깡그리 잊어버려도 무방한, 채 100분이 되지 않는 킬링타임 오락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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