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소년과 30대 여인의 우연한 만남은 남자의 일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는다. 만약 마이클이 성홍열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그들의 만남은 없었다.만약 마이클이 열려진 문틈으로 옷갈아 입는 한나를 보지 않았더라면..그리고 그것을 한나가 눈치채지 못했더라면..그리고 먼훗날 나치전범재판에서 한나를 만나지 못했더라면..한나가 용기를 내어 자신의 비밀을 털어 놓았더라면..아니 마이클이 한나를 위해 변론을 해주었더라면..한나와 마이클은 그렇게 평생을 힘들게 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그러나 무엇보다 강력한 가정은 그녀가 글을 읽을 줄 알았더라면 이모든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영화를 보며 가장 아쉬웠던 장면은 마이클이 위기에 처한 한나를 (두번씩이나) 외면한 일이고 더 안타까웠던 것은 그 죄책감에 가족과 친구에게 마음을 열지 않고 산 것이다.
영화관에 들어가기전에 나누어준 전단지에서는 그여자,마이클의 첫사랑/그 남자,한나의 마지막사랑이라고 적혀 있었다.그러나 영화를 보는 내내 그들은 정말 사랑이었을까? 남자는 사춘기시절의 성적호기심이었고 여자는 책읽어주는 사람이 절실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왜 그녀는 좀더 일찍 글자를 익히려고 하지 않았을까? 그것이 부끄러워 평생을 감옥에서 살게 되었기 때문에? 그녀가 난독증이나 글자에 대한 혐오증이라도 있는줄 알았다. 그러나 마이클이 보내준 녹음테입을 들으며 읽고 쓰는 법을 터득하고 서투르게 편지를 쓰고 마이클의 답장을 간절히 기다리고 책읽는 즐거움에 빠지는 모습을 보면서 좀더 일찍 시도하지 않았을까라는 안타까움이 컸다.그녀의 죽음또한 의문스럽고..영화의 여운이 오래가는 법이 드문데 이 영화는 잠을 설칠만큼 잔영이 오래 갔다. 어젯밤 9시 종로의 서울극장에서 시사회가 있었고 영화는 11시가 넘어 끝이 났고 집에 오니 12시가 넘었다.몹시 피곤했지만 잠이 오지 않았고 1시를 훌쩍 넘기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잠이 다시 깬건 새벽 5시경.영화장면이 다시 떠오르면서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두주인공의 심리가 영화만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고 그럴수록 의문은 증폭되기만 한다. 왜 한나는 죽음을 택했을까? 영화보는 내내,돌아오는 내내,밤새도록 지금까지 책내용이 궁금해서 견딜수 없다.아마 내손에 책을 쥐고 읽기 시작하기 전까지 이 증상은 계속 되겠지. 이래서 소설을 영화화하면 반드시 책을 읽어보게 되는 구나.<연을 쫓는 아이>가 그랬고 <도쿄타워>,<냉정과 열정사이>도 그랬다.
PS: 내가 좋아하는 안톤체홉의 단편집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이 나와서 잊을 수 없는 영화가 되었다.한나는 이 책으로 글을 익힌다.
2009년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
감독: 스티븐 달드리 주요작품<빌리 엘리어트> <디 아워스>
한나 슈미츠역: 케이트 윈슬렛
마이클 버그역: 데이빗 크로스,랄프 파인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