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슬럼독 밀리어네어’-마음은 끝내 움직이지 않았다


기사입력 2009-03-12 09:52



 


[이동진닷컴] (글=이동진) 인도 뭄바이의 빈민가에서 성장한 소년 자말(데브 파텔)은 거액의 상금이 걸려 있는 TV 퀴즈쇼에 출연한다. 제대로 된 교육도 못 받고 직업도 변변찮은 자말이 승승장구하면서 최종 단계에까지 이르자 경찰은 그를 사기죄로 의심한다. 어떻게 정답을 다 알게 되었는지를 캐묻는 경찰에게 자말은 이제껏 직접 겪어왔던 일들이 실마리가 되었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과거에 대해 들려주기 시작한다.






올해 아카데미 영화상에서 8개 부문을 수상한 화제작 ‘슬럼독 밀리어네어’(3월19일 개봉)에 대한 인도인들의 불만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확실히 이 영화는 ‘빈곤’을 ‘풍경’으로 만든다. 소년들이 질주할 때의 역동적인 카메라와 인상적인 화면색조와 현란한 편집은 스쳐 지나가는 쓰레기더미조차 스펙터클로 만든다. 카메라가 순식간에 까마득히 멀어지면서 빈민가의 빼곡하게 이어 붙은 허름한 지붕들을 (멀리 위에서 내려찍으면서 장면 사이에 불연속적인 단절을 만들어 보여주는 방법인) 부감의 롱쇼트 점프컷으로 스케치할 때, 가장 궁핍한 광경은 서정적이고 이국적인 볼거리가 된다.

인도에 심각한 빈곤이 실재한다는 것과 그 빈곤을 볼거리로 현시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이 영화 속 참혹한 생활 환경에 대한 묘사들은 종종 ‘진짜 인도의 모습’과 ‘진짜 인도의 모습이라고 외부인들이 여기고 싶어하는 모습’ 사이에서 의문을 갖게 한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현실에 엄존하는 사회문제를 성찰하게 하는 대신, 적당히 마음 아파하면서 편안히 구경하게 해준다.

하지만 이런 근본적인 단점에도 불구하고, 대니 보일이 감독한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만듦새가 상당히 뛰어나다는 사실까지 부정하긴 어렵다. 소재에 대한 태도와 형식에서 페르난도 메이렐레스의 ‘시티 오브 갓’을 떠올리게 하는 이 영화의 스타일은 그야말로 휘황찬란하다. 다양한 구도를 구사하며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는 카메라, 세 가지 줄기의 이야기를 능란하게 짜올리는 플롯, 복잡한 상황을 긴장감 넘치게 간추려내는 편집은 과시적이기도 하고 탁월하기도 하다. 그리고 이 작품의 음악은 영화음악에 허용된 최상의 효과를 발휘한다.

‘슬럼독 밀리어네어’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착상부터가 흥미진진하다. 퀴즈 문제를 통해 서사에 고리를 만들어서 에피소드와 능숙하게 잇는 화술은 이야기에 대한 원초적인 욕구를 유감 없이 충족시킨다. 삶의 난관을 온 몸으로 헤쳐온 소년이 바로 그 험난한 과거 때문에 달콤한 열매를 맛본다는 점, 현재의 상금을 챙기는 데서 만족하지 않고 그 다음 단계의 문제로 계속 도전하는 퀴즈쇼의 과정이 불굴의 의지로 돌파해나가는 삶의 자세를 상징한다는 점 등 관객들이 휴먼 드라마에서 기대하는 모티브들이 효율적으로 기능한다.

기본적으로 멋진 스토리였지만 거칠고 방만했던 원작 소설을 장르 영화의 틀 속으로 다듬어 넣은 각색도 솜씨가 있다. (영화는 소설의 상당 부분을 바꾸었다. 소설 속에선 친구였던 캐릭터를 형으로 바꾸었고, 주변 인물들에게 일어난 사건을 주인공에게 집중시켰다. 퀴즈쇼에 등장하는 질문들의 경우, 원작에서 그대로 가져온 문제는 단 하나 밖에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비중에서 성격과 직업까지, 여성 캐릭터가 완전히 다르다. 영화는 성장소설인 원작을 멜로로 바꾸어냈다.)

그렇다. 좋은 이야기였다. 번쩍이는 연출이었다. 예상보다 훨씬 더 재미있는 영화였다. 최근 들어서 본 가장 화려하고 신나는 엔딩 타이틀 시퀀스까지 있었다. 그런데, 참 이상도 하지. 마음은 끝내 움직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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