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번역가가 되볼까?

내 업은 수명이 짧다. 앞으로 내가 내 업으로 돈을 벌 수 있을 기간은 최대 5년에서 10년? 아니, 지금 다니는 직장을 그만둔다면 그길로 막다를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에 앞으로 제2, 어쩌면 제3의 직업을 생각해 두어야 한다. 중년기와 노년기에 먹고 살 길을 미리 터 두어야 한다. 무엇이든 상속할 것이 없는 나는 평생 돈을 벌어야 하니까.

이왕이면 제2의 직업은 좋아하는 일을 하고싶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면 크게 후회한다고들 하지만, 하기싫은 일도 10년 넘게 했으니 이번에는 좋아하는 일을 해보고싶다. 나는 책과 공부를 좋아하니 어떤 일이 있을까? 교수......는 너무 터무니 없고, 출판사 취직......을 하기엔 좀 나이가 많고, 저술가......혹은 번역가?

과학책 전문 번역가가 된다면 어떨까?

그래서 나는 지금부터 소개하고자 하는 책, ‘번역가 되는 법’을 읽었다.

이 책의 저자는 중국어 전문 번역가로 중국 소설과 인문서를 주로 번역했다. 내 관심 분야는 아니다. 그래도 혹시 저자의 역서중에 내가 읽은 책이 있나 검색해보니 역시나, 단 한 권도 없다. 작년 두 달간, 자신이 번역한 소설 두 권의 인터넷 서평을 아침에 일어나기만 하면 확인 하셨다니 저서의 서평인 이 글을 읽으실 수도 있을턴데 괜히 죄송하다.

저자는 서문에서부터 꿈꾸는 번역가의 기를 죽인다. 언젠가 티핑포인트가 도래하면 종이책은 유한계급과 수집가의 전유물이 될 것이며, 따라서 전통적 글쓰기는 전통적인 출판계와 함께 천천히 사멸할 것이라 예언한다. 그런 사멸을 피하기 위해선 새로운 저작 기술과 매체, 온라인 플랫폼의 생리에 적응해야 할 것인데, 인터넷 소설은커녕 라이트 노벨의 문체에도 적응하지 못하는 내겐 막막한 일이다.

그리고 또 저자는 번역가는 번역가가 되겠다고 결심한 순간, 이미 그 자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말한다. 모국어 감각과 통찰력이 이미 갖추어진 사람, 프로그램되지 않은 학습과 글쓰기의 오랜 과정을 무의식적으로 수료한 사람만이 출판 번역가가 될 수 있노라고.

단 하나 희망적인 것이 출판사는 번역가의 자격증, 심지어 학력조차 인정하지 않는다는 저자의 말인데, 그러면서도 번역가로 데뷔할 경로중 하나로 ‘소개’를 말한다. 그런 소개를 받을 수 있는 기회는 주로 대학의 선후배들일 테고, 또 번역가의 아르바이트로 대학 강의를 추천하는데 대학 강의를 하려면 석사 학사 박사 학위를 따야하고.......아무래도 난 안 될 것 같다. 지금 다니는 직장이 오래오래 지속되길 바라며 열심히, 순종적으로 일해야 할 것 같다.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나라 번역가의 처지, 번역가가 되는 방법, 직역과 의역에 대한 자신의 생각, 번역서 기획방법과 번역가에게 유용한 아르바이트등을 소개한다. 한때 번역가를 꿈꾸었던 나에게 매우 유용한 책이었다. (난 포기가 빠른 ‘쿨한 사람’이다) 책의 내용을 더 자세히 소개하고싶지만 그랬다간 앞으로 이 책을 읽으실 분들의 재미를 뺏게 될 것 같으니 이만 줄이련다.

마지막으로 유유출판사의 땅콩 문고답게 이 책은 매우 작고 얇다. 혹시나 실물을 보고 충격을 받으실까 미리 얘기한다. 어느정도 각오를 했던 나도 조금 당황할 정도였으니. 택배 박스를 들여다 본 동생은 이것도 돈주고 산 책이냐며 놀라워했다. 하긴 그 녀석이 주문한 책은 헤비급 챔피언인 ‘더 믹서’였으니 이 책을 그 책의 사은품 정도로 생각했어도 무리가 아니다.

-책속 한줄

저자의 자유는 상상력에 기초하고 번역가의 창조는 구성력에 기초한다......번역가는 구성력으로 전혀 불가능해 보이는 텍스트의 언어 전환을 수행하며 창조의 자유를 느낀다. 이 자유는 오로지 번역가만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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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원소 이야기 - 주기율표의 마지막 빈칸을 둘러싼 인간의 과학사
에릭 셰리 지음, 김명남 옮김 / 궁리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일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나는 어제(3/21) 반납일이 된 ‘일곱원소 이야기’를 긴급독서로 읽고 있었다. 다행이 책이 재미있어서 술술 읽고 있는데 10장에서 문제의 도표가 눈에 띄었다. 내 생각엔 잘못된 도표의 설명을 보고 나는 혼란에 빠졌고, 번역 문제인지 확인하기 위해 구글에서 원서를 검색해 문제의 도표를 확인했다. 그런데 원서에도 번역서와 똑같은 설명이 적혀있는 것이다!

이제 남은 가능성은 둘 중 하나. 내가 잘못 생각했거나, 저자가 실수를 했거나. 그런데 그 도표의 설명은 별다른 지식도 필요없이 누가봐도 잘못된 걸 알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저자가 실수를 했다는 건데, 이런경우 일반적인 사람들은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갈 것이다 나도 보통 그러니까. 과학책 속의 오류, 목엣가시같은 껄끄러움에 한동안 신경은 쓰이겠지만, 어쩌겠는가 미국에 사는 저자한테 물어볼 수도 없고.

그런데 나는 물어본 것이다! 이메일로! 영어로!

내가 그렇게 평소엔 하지 않을 짓을 저지른 것은 어제 참가하고싶지 않은 행사에 업무상 어쩔 수 없이 끌려가야 했기 때문이다. 하기싫은 일도 억지로 해야하는데 하고싶은 일을 용기가 없어서 못하는 건 손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도 또 한국어판 서문에서 저자가 책에 대해 궁금한게 있으면 언제든지 문의하라고 용기를 북돋아준 덕분이기도 했다.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하고 작성하면서도 보낼 생각이 없던 이메일의 전송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그렇게 많은 책을 쓴 저자라면 독자로부터 이메일을 산더미처럼 받을 테니 답장이 아예 안오거나, 아니면 비서가 쓴 형식적인 답장이 일주일쯤 뒤에나 오리라 예상하고 방심하고 있는데 10분만에 답장이 온 것이 아닌가!

첫 메일에는 ‘한국어 번역본이 나왔다니 기쁘다. 번역본 표지를 사진으로 찍어보내줄 수 있는가? 내가 뭔가 실수한 건지 찾아보겠다’는 답장이 왔고, 바로 직후에 온 메일에서 그 표의 설명이 잘못된 게 맞다는 대답이 왔다. 나는 답장에 감사드린다고 메일을 보냈고 그렇게 이 일이 끝날 줄 알았다.

그런데 오늘 또 자신의 웹사이트에 올리기위해 한국 책표지 사진을 보내줄 수 있냐는 메일이 온 것이다. 출판사가 한 권 보내주기로 했는데 좀 늦어지는 경우가 있다는 말과 함께. 그러나 안타깝게도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라 사진을 보내드릴 수가 없었다. 혹시 이 글을 궁리 관계자 분들이 보신다면 저자분께 번역된 책을 되도록 빨리 보내주시길 바란다. 이미 보냈다면 다행이지만.

이렇게 어쩌다 펜팔 비슷한걸 하게 됐는데, 참 색다른 경험이었다. 아마 다시는 안하리라. 영어 메일 5줄 쓰는데 3시간씩 걸리는데다 답장이 올 때마다 너무 긴장되니 건강에도 좋지 않을 것 같다.

Ps. 이 책의 표지에도 사소한 오류가 있다. 이 책은 일곱 원소의 발견을 둘러싼 과학자들간의 분쟁을 다루고 있는데, 책 표지의 원소기호에 짝지워진 인물이 예상과는 달리 그 원소의 발견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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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평생 끌고가는(끌려가는?) 취미 두 가지가 있는데, 바로 독서와 게임이다.
독서는 다른 사람에게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이 다들 수긍하지만 게임이 취미라고 하면 다들 의외라고 말한다. 내가 워낙 지적인 이미지라 좀 놀랍게 느껴지는 것 같다. (하하) 하지만 나는 골수 콘솔 게이머로 PS2, PS3, PS4, PSVITA, 큰다수, 삼다수, 스위치를 소유하고 있고, 주로 일본식 RPG를 즐긴다. (이런 용어 자체를 모르시는 분들이 많으리라. 모르셔도 된다)

그런 게이머들에게 2월 1일은 무슨 날이었는가? 바로바로 대망의 ‘젤다의 전설-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의 한국어화 발매일이었다. 그런고로 2월은 독서를 거의 하지 않았다. 하이랄 왕국을 구하느라 바쁜데 책 읽을 시간이 있을리가.

그런 와중에 유일하게 2월에 읽은 책이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였으니 그 책이 얼마나 취향저격이었는지 다시 말하면 입만 아프다. 무려! ‘젤다’!를 하는 중에 짬을 내서! 읽은 책이라니! 효율적인 학습법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속는셈치고 한 번 읽어보시길 바란다.

그렇게 한달 반 정도 젤다에 미쳐 지내다 얼마전에 실수로 엔딩을 보고 이젠 소소한 일거리만 남은 상태라 슬그머니 독서를 다시 시작했다. 먼저 ‘암: 만병의 황제의 역사’를 읽고, 오래전부터 읽다가 말다가 하던 ‘넛지’를 시외버스 안에서 다 읽어치웠다. (두 권 다 시간을 내어 읽을 가치가 있는 책들이다) 그리고 도서관에서 빌린 ‘일곱 원소 이야기’는 무사히 2주간의 인턴 생활을 마치고 오늘 도서관으로 돌아갔다.

그 사이에 도서관에서 빌려서 인턴생활을 하던 ‘입자 동물원’을 정식으로 내 서재에 채용했고, 의무적으로 채용하는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부서에 신입인 ‘흑백의 여로’가 들어왔다. (다른 의무 채용 부서로는 검은숲 엘러리 퀸 컬렉션이 있다). ‘더 믹서’와 ‘디디에 드록바 자서전’은 자회사인 동생 서재 축구부서의 신입들이다.

봄이라 신입 책들이 많이 들어왔는데 다들 내 서재에서 열심히 일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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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헨리 뢰디거 외 지음, 김아영 옮김 / 와이즈베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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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법과 효율적인 독서법에 관심이 많아서 이 책 저 책 제법 읽었지만 내가 읽어온 책 중엔 이 책이 최고다. 다양한 연구결과들을 종합하여 명확한 학습 방법을 제시하고 적절한 사례를 들어 독자를 홀리는 솜씨가 매우 탁월하다.

덕분에 당분간 다른 학습법 책은 읽을 필요없이 이 책에 나온 방법들을 실제로 적용하는데 집중할 예정이다.
책을 읽기 전에 그 책의 주제에 대해 먼저 생각해보고(생성), 책을 읽는 틈틈이 ‘내가 읽고 있는 내용이 무엇인가?’ ‘이 용어는 무슨 뜻인가?’를 스스로 묻고(인출연습), 이를 통해 이해가 부족한 부분을 찾아내서 다시 읽고(상위 인지와 피드백), 새로 알게된 지식을 기존의 지식과 연관 짓고, 나만의 표현으로 책의 핵심주제를 다시 설명하고, 시간 간격을 두고 책의 핵심 내용을 떠올리려 노력하고, 다양한 주제의 책들을 번갈아 가면서 읽고......
사실 이러한 방법들은 이미 알고있긴 했지만 너무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들어서 실제 독서에 적용할 엄두를 내지 못했었다. 하지만 당장은 더디고 이해가 느린 것 같더라도 어렵게 배우는 것이 오래간다는 이 책의 주장은 나의 망설임을 저 멀리 던져주었다.

책을 읽고 깨달음을 얻기는 쉽지만 실천은 어려운 법이며 오롯이 나의 몫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자신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으니 이제 내가 노력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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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표의 크리스퍼 혁명 - DNA 이중나선에서부터 크리스퍼 유전자가위까지
김홍표 지음 / 동아시아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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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없다. 도서관에서 빌렸는데 샀으면 큰일날 뻔 했다. 어찌된 영문인지 문장이 번역서보다 더 읽기 힘들고 설명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이건 내가 지식이 부족한 탓이 크다)

읽다가 몇 번이나 위기가 왔는데 특히 69페이지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전령 RNA와 운반 RNA에 대한 설명이 나온 페이지이다. 몇 번을 읽어봐도 이해가 안 되고 혼란스럽다.

-리보솜에 전령 RNA가 주형으로 들어와 있다. 번역을 시작하라는 암호는 AUG 서열을 갖는다. 한쪽 끝에 메티오닌이 매달린 전령 RNA가 서둘러 도착한다.....

??여기서 (아마도 리보솜에) 서둘러 달려와야할 ‘메티오닌이 매달린 RNA’는 전령 RNA(mRNA)가 아니라 운반 RNA(tRNA) 아닌가?
이 문장을 읽고 나는 혼란에 빠졌는데 다음 문장을 읽으면 읽을수록 혼란은 심해졌다.

-인간의 핵 유전체가 만드는 운반 RNA는 마흔개가 넘는다.......운반 RNA는......매우 중요한 연결고리이다. 그렇지만 암호의 수보다 전령 RNA의 숫자가 적기 때문에 이 물질이 화학적으로 너그러워야 할 것이란 점을 짐작할 수 있다. 암호를 전령 RNA들이 공유해야하기 때문이다.

?? ‘암호의 수보다 전령 RNA의 숫자가 적다’는게 무슨 말인지 도저히 모르겠다. 여기서 암호란 저자가 앞에서 설명했듯이 ‘전령 RNA를 구성하는 염기 세 개’를 말하는 것이리라. 그런데 어떻게 ‘암호의 수보다 전령 RNA의 숫자가 적’을 수가 있지? 차라리 암호의 수보다 운반 RNA의 숫자가 적다는 말이라면 이해가 된다. 염기 세개로 만들 수 있는 암호의 수는 64개이고(실제 단백질 번역에 사용되는 것은 61개) 인간의 핵 유전체가 만드는 운반 RNA는 마흔개가 넘는다고 저자가 말했으니까.

이 책이 번역서였다면 나는 ‘이거이거 번역자가 전령 RNA랑 운반 RNA를 헷갈려했구만. 구글로 원문을 확인해 볼까?’ 하고 신났겠지만 이건 번역서가 아니다! 저자는 (아마도) 약학 박사고 책도 여러권 쓰고 번역한 분이다. 그런 사람이 전령 RNA와 운반 RNA의 기전을 헷갈렸을리가 없다. 그러니 내가 이해를 못한게 분명하다. 아, 내가 뭘 모르는 건지 알고 싶은데 알 수가 없으니 머리가 답답하고 부아가 치민다.

지금의 나에겐 너무 어려운 책이다. 캠벌 생명과학(9판) 공부를 17장에서 끝내고 이 책을 읽은게 잘못이다. 리보솜의 기전이 자세히 나온 18장까지 공부하고 읽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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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dur 2018-04-02 01: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홍표의...˝를 어쩔수없이 읽어야 해 읽고 악리뷰를 쓰려다 또 뵙네요. 읽을 가치 없는 책이니 괘념치 마시고 엇그제 발간된 제니퍼 다우드나의 ˝크리스퍼가 온다˝를 한번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 열독하셔요.

유도링 2018-04-02 08:15   좋아요 0 | URL
의무로 책읽는 것도 고문인데 그 책이 별로라면 더 끔찍하죠. asdur님 리뷰를 어서 읽고싶네요. 혼자서 과학서를 읽다 이해가 되지 않거나 의문이 들 때 누군가 같이 읽고 얘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싶거든요. 저도 ‘크리스퍼가 온다’를 노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