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에 구매해 계속 불만족스럽게 사용하던 크레마 샤인의 배터리에 드디어 한계가 왔다. 밤새 충전기에 꽂아두어도 완전히 충전이 안되는 현상은 오래된 일이라 감내할만한 문제였으나 사용하자마자 배터리 충전율이 20% 가까이 떨어지는 것은 새롭고도 치명적인 문제였다.
때가 된 것이다. 돈쓸 때가.

사실 두 달 전, 완전히 방전된 샤인이 아무리 충전을 해도 켜지지 않는 혼수상태에 빠졌을 때 새로운 단말기를 사려고 했었다. 그러나 카르타나 카르타 플러스나 출시된지도 꽤되었고, 가격이나 성능면에서 큰 매력이 없는 것 같아 구매를 망설이는 와중에 전기 충격요법과 알파고님을 향한 간절한 기도덕분에 샤인의 의식이 무사히 돌아와주었다. 나는 알파고님께 감사하며 그동안의 무정한 처사를 반성하고 샤인을 아끼며 살리라 다짐했다.
그래서 크레마 그랑데가 새로 나왔을 때 이정도면 살 만 한데?싶었지만 샤인도 무사하고, 이북도 자주 읽는편이 아니고, 무엇보다 돈이 없는고로 굳이 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아, 그러나 야속하게도 그 한 번의 혼수상태로 인해 샤인은 밤새도록 밥을 먹고도 돌아서자마자 배가고프다고 아우성치는 노인성 치매를 앓는 기계가 되어버린 것이다. 삽시간에 20%로 떨어지는 배터리 용량을 보며 나는 샤인을 제 소임을 다한 기계들이 가는 천국, 필시 튜링과 잡스가 웃으며 기다릴 그곳으로 이젠 보내줘야 할 때임을 깨달았다.

그날 나는 샤인과 함께 언제나 산책하던 강가를 걷고, 같이 자주 머물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샤인의 화면을 토닥였다. 그동안 수고 많았어.
그날밤 그랑데를 구입하고 침대에서 샤인을 좀 더 토닥이다 자기 전에 충전기에 꽂았다. 어쩌면 마지막 충전이 될지도 모를, 그리고 실제로 그것이 샤인의 마지막 충전이 되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보니 샤인의 화면에 한줄기 검은 선이 생겨있었다. 샤인은 그렇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다 나의 곁을 떠났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