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에 사는 식물은 어떤 식물이라도 사막에서 가지고 나오면 더 잘 자란다. 사막은 나쁜 동네와 많은 면에서 비슷하다. 거기서 사는 사람은 다른 곳으로 갈 수가 없어서 거기서 사는 것이다.>
-랩걸 203p

‘랩걸‘의 이 문장을 읽다가 생각의 흐름에 끌려 들어갔다.
......그렇구나 선인장을 키울 땐 사막과 똑같은 환경을 만들어 줘야 크고 튼튼하게 자라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아니었구나. 그래, 척박한 환경을 이겨내고 한 송이 아름다운 꽃을 피운 식물은 풍요로운 환경에서는 그 꽃을 흐드러지게 피울 수도 있겠지. 둘 중에 무엇이 더 가치가 있다 할 수 있을까? 그러고보면 ‘어둠의 속도‘에서 주인공의 선택 역시...... 하지만 난 왜 주인공의 선택에 충격을 받았던 걸까. 그 충격은 작가가 의도한 걸까? 나 혼자만의 충격인걸까?

‘어둠의 속도‘는 아주 오래전에 읽은 책이다. 사실 내용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내 기억으로는 자폐를 가진 주인공이 자폐인 특유의 능력(일반인들이 보기엔 천재적이라 할 수 있는)을 활용하여 회사에서 일도 하며 나름 사회에 적응해 살아가고 있는데, 아직 실험단계이긴 하지만 자폐를 치료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주인공과 그 주변 자폐인들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이 부분은 기억에 없어서 책 소개를 읽고 참고했다. 사실 나는 여태껏 이 소설의 화자가 주인공의 엄마라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작가의 아들이 자폐인이라는 사실에 깊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기에 기억의 혼동이 온 모양이다). 그리고 주인공은 선택을 하고, 나는 그 선택을 보고는 책의 작가가 자폐인인 자기 자식을 부정했다는 생각이 들어 충격을 받은 뒤, 그렇게 생각하는 나 자신의 오만함에 또 충격을 받았다.

사막에서 힘들게 핀 꽃 한 송이가, 숲에서 흐드러지게 핀 평범한 꽃들보다 더 가치가 있는 걸까?
멀리 떨어져서 아름다움을 즐기기만 하는 우리에겐 투쟁하여 피워낸 한 송이 꽃이 더 귀하게 여겨질 지 모르나 생명을 이어나가기 위해 꽃을 피워야 하는 식물의 입장에선 논할 가치도 없는 이야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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