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듬고 싶은 모든 순간 - 스쳐 지나간 것들이 남긴 이야기
민미레터 지음 / 빌리버튼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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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지나가세요.  머물면 번져요." 

선이 번지는 이유가 물 농도가 잘못되어서가 아니라 내 손이 망설였기 때문이란다.  어려웠다, 역시.  그냥 지나가기란.  지나쳐야 하는 순간을 지나가지 못하고 머무르는 탓에 남긴 번짐들이 떠올랐다. 

어떤 번짐은 아름다운 문양으로 남기도 하겠지만 이렇게 선을 그어야 하는 명확한 일 안에서 생긴 번짐은 삶이란 화선지 위에 남긴 얼룩일 뿐이었다.   지나쳐야 하는 당신에게 선을 그으려 머뭇거리는 동안 번져버렸던 내 마음처럼.  혹은 오래전 과거의 시간에서 지나오지 못하고 여전히 머물러 있는 미련처럼.  /p18


  때론 삶에 위안이 되는 글들을 읽어, 마음에 응원을 보내고 싶은 때가 있다.   에세이를 너무도 많이 읽는지라 감성이 흘러넘쳐야 하는데, 점점 메말라 가는 건지 때론 공감하기 힘든 글을 만나곤 하는데, 민미레터의 <쓰다듬고 싶은 모든 순간> 을 펼치는 순간 봄이 시작되는 기분이었다.   이 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싶은 시간들이 있었다.  생각해보면 십 대부터 삽십 대 초반까지의 시간들이 그랬던 것 같다.  눈부시게 찬란한 시간들은 짧고 중심을 잡지 못하고 허우적대는 시간은 더 길게 느껴지는 것일까?




하루가 이렇게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차 있는데 최근의 나는 무엇이 그토록 힘들었던 걸까.  30대의 내가 보낸 이 하루는 20대의 내가 넘어지고 노력하며 만든 결실이다.  일상이 흔들리고서야 깨달았다.  살갗에 닿는 귀한 것들을 느끼지 못했다.  아니, 너무 작아 시시하다고 여겼을지 모른다.  정작 이 소소한 것들이 내 삶을 채우는 것들인데.  /p42


 형제가 많았던 터라, 크고 작은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때론 이 집에서 탈출(단어의 선택이 좀 그렇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이 단어만이 어울리는 단어)만 할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때가 이십 대였다.  그런데 그러한 시간이 지나고 지금에서야 동생들과 그 시간을 이야기하며 그랬었나?라는 이야기를 하며 웃으며 넘길 수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흔들리던 일상들도 오늘의 내가 안정적으로 설 수 있는 바탕이 되었던 시간이었다는걸, 살아가면서 느끼고 있다. 



언제부턴가 계절이 바뀌는 속도에 발맞추는 일도 버겁다.  나는 이제 막 한겨울에 언 마음을 녹이고 있는데 계절은 벌써 봄을 지나 여름 장미를 붉게 피운다거나, 나는 아직 뜨거운 한여름인데 계절은 벌써 차가운 칼바람이 부는 한겨울이거나. 

  우리에게 오고 가는 계절은 같으므로 모두 같은 계절 속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 마음은 봄과 여름 사이에서 활짝 꽃 피우는데, 당신의 마음은 벌써 겨울을 향해 가는 것처럼.  계절의 속도에 맞추는 일만큼 누군가와 마음의 속도를 맞추는 일도 어렵다.  /p77


  어쩌면 살면서 미처 보고 느끼지 못한 순간들이 너무나 많을지도 모르겠다.  저자의 일상을 읽을 때면 맑은 날의 하늘, 집 안으로 드는 햇살 무리마저도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어, 다가올 봄이 더욱 기대되기도 한다.  소소한 일상이 이렇게나 아름다웠나? 하는 생각에 그림을 그리진 못하지만 카메라로 작은 일상의 모습들을 남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이 드는 게 두려운 단 하나의 이유는 앞으로 보내야 할 것이 많아진다는 사실 때문이다. 지금도 보내야 할 것들이 밀려 있는데 앞으로 더 늘어난다는 건 생각만으로도 버겁다.  삶은 내게 반복되는 경험을 통해 알려 주려고 했지만 나는 그 가르침에 대해 너무나 열등하다.  이쯤 되니 '신'이나 '운명'이라는 것에 간곡히 부탁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내 것이 아닌 걸 내 것처럼, 그러니까 마치 운명처럼 나타나게 하지 말길.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갈 만큼의 가벼운 스침이라면 손바닥도 마주치지 않게 해 주길.  그것이 힘들다면, 스치는 것과 머무는 것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와 스침인 것을 알았을 때 외면할 수 있는 담담함이라도 갖게 해 주길.  /p168~169

먹먹한 마음으로 우울한 밤을 보냈다 하더라도 아침에 작은 평온함과 만족을 느꼈다면 그 순간은 행복이다.  저녁에는 다시 울게 될지라도.  행복과 불행은 하루에도 여러 번 느낄 수 있을 만큼 거창하지 않은 감정이고, 함께 존재할 수 있다.  행복이 멀리 있는 목표가 아니라 순간순간이라는 것을 알고 나면 우리는 좀 더 자주 행복이란 말을 꺼낼 수 있고, 소소한 기쁨을 더 많이 마주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 행복하다.  /p248


  그녀의 글과 그림을 읽고 보며, 지나온 시간들과 살아갈 시간들에 대해 잘했다는 도닥임과 응원을 받은 듯한 글이었다.  스쳐가는 나의 이야기, 어쩌면 너의 이야기  <쓰다듬고 싶은 모든 순간>  연일 되는 한파에 너무도 움츠러 들어서, 봄빛 같은 글을 읽고 싶었는데 따뜻하고 포근한 글과 그림을 만났다.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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