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곳에서
에르난 디아스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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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곳에서 #에르난디아스

#도서협찬

수없이 많은 서리와 해빙을 지나, 그는 국가보다도 넓은 원을 그리며 걸었다.

그런 다음 멈추었다.

거의 맨발로 몇 년 동안 여행한 그의 발은 검고 울퉁불퉁한 무언가가 되었다. (중략) 침묵과 고독이 시간 감각을 흐렸다. 단조로운 삶에서는 한 해와 한순간이 같았다. 계절은 지나갔다가 돌아왔고, 호칸의 일은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_284~285p.

_

"아메리카에 온 지는 얼마나 됐소?"

(중략)

"오래됐소?" 선장이 부드럽지만 고집스럽게 물었다.

"거의 평생. 떠났을 때 나는 어린아이였다." _339~340p.

스웨덴의 작은 마을 형제는 부모님을 뒤로하고 미지의 대륙 아메리카로 길을 떠난다. 하지만 형을 잃어버린 호칸은 홀로 형을 찾아 뉴욕으로 향하는 길고도 먼 여정을 시작하게 되는데.. 미국 서부 개척시대를 배경으로 언어도 통하지 않는 낯선 땅에 홀로 떨어져 오로지 뉴욕을 향해 형을 만나러 가겠다는 일념으로 길을 걷게 호칸의 생은 너무도 오랜 시간이 흘러 그가 가고자 했던 길이 이 길이 맞을까? 그의 형은 어떻게 되었을까? 호칸을 이용하고, 휘두르고, 때론 그를 돕기도 했던 사람들과 함께 그저 정착해 살아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맨몸으로 길 위에서 오롯하게 마주해야 했던 진득한 외로움과 고통은 그럼에도 살아가야 하는 삶의 강인함이 애잔한 마음이 들게 한다. 오랜 세월이 흘러 고국의 언어조차 어색하다고 느껴질 만큼 길을 떠났던 소년은 모국어를 쓰면서도 안전함을 느끼지 못하게 됨을 느끼며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이방인'이 됨을 알아버린다. 평생을 이렇게나 외롭게, 그 진득함이 황량한 길 그 자체 같아서 떠나고 또 떠나야만 하는 호칸의 발걸음이 마지막 장에 이르러 어쩌면 당연한 엔딩이 아닐까...라는 깊은 여운을 남긴다.

<트러스트>와는 또 다른 결을 느껴볼 수 있었던 작품으로 같은 작가의 작품인가?!라는 놀라움을 느꼈던 책이기도 했다. 개인적으론 <트러스트>보다 더 좋았던 작품!

며칠 뒤, 사막이 평원에 자리를 내주자마자 호칸은 탁 트인 황무지에서 산들바람에 밀려 앞뒤로 끄덕거리는 안락의자와 마주쳤다. 호칸은 의자로 나가갔지만 오랫동안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꼭 그 물체 자체가 영원히 암호로 남아 있을 게 뻔한 기호들로 이루어진, 어느 책의 단어인 것만 같았다. 호칸은 계속해서 그 의자를 바라보았다. 의자라니, 무슨 뜻이지? 호칸은 손을 뻗어 의자를 만져보았다. 그 위에 앉았다. 거대한 평원이 물러났다. 호칸은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존재가 된 느낌을 받았다. 여기에는 어쩐지 짜릿하고 우스꽝스러운 면이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호칸은 그 어느 때보다도 외로워졌다. 더 작아진, 더 약해진 느낌. _145p.

그는 권총에 들어 있던 세 발의 총탄 모두를 의미 있게 쓰면서, 비명을 지르느라 일그러지고 붉어진 자신의 얼굴에 대해 생각했던 순간을 기억했다. 양심의 새로운 부분이 생겨났다가, 총의 손잡이로 한 남자의 뇌를 으깨버리며 사라졌던 게 생각났다. 누군가의 간을 칼로 찌르며, 더 이상 자기 자신이 아니게 된 순간을 예리하게 기억했다. 그는 자신이 몇 명의 남자를 죽이고 불구로 만들었다는 걸 알았지만, 머릿속에 가장 생생하게 남아 있는 것은 각각의 행동과 함께 찾아온 슬픔과 무의미의 감각이었다. 지킬 가치가 있는 사람들은 이미 죽었고, 그의 살인 하나하나는 자기 보존을 위한 그의 투쟁을 정당화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_185p.

#문학동네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도서추천 #트러스트 #book #소설추천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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