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열정 (무선) -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아니 에르노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단순한열정 #아니에르노

#독파 10/1~10/7

나는 내가 기다리는 사람 말고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자동차가 문 앞에 와서 멈추는 소리, 자동차 문이 닫히는 소리, 문지방을 넘는 그 사람의 발소리가 들리는 순간이 오면 나는 항상 온 신경이 곤두서면서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곤 했다. _14p.

_

그 사람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리고 지금은 그 모든 일들이 다른 여자가 겪은 일인 것처럼 생소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사람 덕분에 나는 남들과 나를 구분시켜주는 어떤 한계 가까이에, 어쩌면 그 한계를 뛰어넘는 곳까지 접근할 수 있었다. 나는 내 온몸으로 남들과는 다르게 시간을 헤아리며 살았다. 나는 한 사람이 어떤 일에 대해 얼마만큼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숭고하고 치명적이기까지 한 욕망, 위엄 따위는 없는 부재, 다른 사람들이 그랬다면 무분별하다고 생각했을 신념과 행동, 나는 이 모든 것들을 스스럼없이 행했다. 그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세상과 더욱 굳게 맺어주었다. _66p.

기다림으로 시작하는 글은, 그녀가 기다리는 사람이 가족이 있는 유부남이며 그 사람이 연락하고 찾아올 때만 그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야기는 진행형이 아닌 헤어지고 난 후 지난 시간들을 되짚으며 폭풍과도 같았던 열정적인 사랑을 이야기한다. 온통 한 사람으로 가득한 삶, 그만을 기다리는 시간들, 만남의 시간이 지나면 다시 그의 전화만 기다리는 고통스러운 나날이 반복되는 이야기를 읽으며 '어!! 나도 이랬었잖아.'라고 공감할지도 모르겠다. 강렬하고 생소한 두려움은 사실적인 서술 방식에 글의 밀도를 더욱 깊이 있게 느낄 수 있기도 하다. 사랑에 빠진 여자의 심리를 진득하고도 깊이 있게 표현한 <단순한 열정>은 짧은 글임에도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한 여자의 독백은 그 예리한 표현과 문장으로 빠져들게 될 것이다.

나는 나를 관통하여 지나가는 시간 속에 살고 있을 뿐이었다. _17p.

날이 밝아도 일어나고 싶지가 않았다. 아무런 계획이 없는 무의미한 하루가 내 앞에 버티고 있었다. 시간은 더 이상 나를 의미 있는 곳으로 이끌어주지 못했다. 단지 나를 늙게 할 뿐이었다. _47p.

나는 하루하루를 시간을 헤아리며 지냈다. '그 사람이 떠난 지 이 주일째야. 이제 다섯 주가 지났구나.' '작년 오늘에는 내가 거기 있었지. 나는 이러이러한 일들을 했어.' (중략) 나는 특별할 것도 없었던 그 당시의 순간들을 돌이켜보았다. 소르본 대학의 자료실에 들르고, 볼테르 거리를 거닐고, 베네통에서 스커트를 입어보던 그때를. 그렇게 과거를 되새기다 보니, 왜 한 방에서 다른 방으로 옮겨가듯 지금 현재에서 그 시절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것인지 의문이 생겼다. _50p.

살아 있는 텍스트였던 그것들은 결국은 찌꺼기와 작은 흔적들이 되어버릴 것이다. 언젠가 그 사람도 다른 사람들처럼 내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리겠지. _59p.

#독파앰배서더3기 #완독챌린지독파 #문학동네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책 #book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