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층의 하이쎈스
김멜라 지음 / 창비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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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없는층의하이쎈스

#김멜라

이 소설은 말로 다 전할 수 없는 누군가의 기억이자 이제는 무너져 흔적도 없이 사라진 제 외갓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추석이면 옥상에 올라 남산에 뜬 보름달을 보고, 성탄절 밤이면 타워 옆으로 불꽃놀이와 폭죽이 터져 오르던 기억을 떠올리며 남산 언저리에 살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썼습니다. 소설에 이런 군말을 덧붙이는 것은 이 글이 제가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 많은 분의 삶에 빚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_328p.

상가 건물에 숨어사는 할머니와 손녀. 손녀는 할머니 사귀자를 간첩으로 여기고 있고, 학교도 다니지 않으며 할머니를 동거인이라 부르며 도끼 휘두르는 연습을 하며 할머니와 주변을 관찰하며 살아간다. 남산 아래 하숙집을 운영하던 할머니의 하숙집에서 반국가적인 활동을 하던 무리가 잡혔다며, 글씨는 잘 썼지만 글은 몰랐던 사귀자가 써주었던 대자보가 문제가 된다.

보이는 그대로가 아니었던가? 정말 착하고 순했던 그 학생이 정말 간첩이었을까? 군사독재 시절, 그 잠깐의 스침으로 삶이 송두리째 흔들려버린 사귀자 할머니의 삶은 군사독재 시절의 시대상과 당시의 상황이 긴박하게 흘러간다. 희귀병을 앓던 동생을 먼저 보낸 아세로라는 조금은 엉뚱하고 뜬금없다 생각했던 캐릭터였는데 두 사람 모두 감당하기 힘든 두려움과 고통의 시간을 지나며 때론 배짱 있게 나아가는 강단과 밝은 에너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계속해서 살아갈 이유가 되어주기도 하는 "없다고 여겨지는 존재"들에 대한 감동은 책장을 덮고도 한참을 지나 진한 여운으로 남는다. 짧은 제목으로 시작하는 글은 글의 호흡이 짧다는 생각이 들 새도 없이 속도감 있고 그 상황들이 그려질 것만 같이 상상하며 페이지를 넘기게 되는 소설로, 할머니와 손녀의 기묘하고 따스한 동거가 궁금한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글이다.

동거인, 경비원, 가물치.... 노인은 어떻게 노인이 될 수 있었을까. 그 많은 질병과 사고와 위험들 속에서 가슴이 자몽색으로 물드는 나날을 지나 어떻게, 늙을 수 있었을까. _29p.

사귀자는 애 아빠가 하는 순영 학생 얘기를 듣고 나니 문간방에게 했던 욕이 다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것 같았다. 그렇게 이불을 뒤집어쓴 채 엎드려 어금니의 위아래를 맞부딪쳤다. 마당에 둔 너럭바위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남편이 그 돌을 누구의 넋자리 삼아 문질렀는지, 말하지 않아도 그 속이 다 헤아려졌다. 이 무섬증을 안고 어떻게 살아가나. 사귀자는 몸을 점점 더 옹송그렸다. 샛별이가 방에 들어와 엄마, 엄마, 하고 부르며 이불을 잡아당기는데도 속을 쥐어뜯는 통증에 끅끅 신음만 내뱉었다. _182~183p.

사귀자는 주저앉아 눈을 질끈 감았다. 이게 다 무슨 헛짓거리인가 싶으면서 살아서 맛봐야 할 쓴맛이 얼마나 더 남았을까 아득해 목이 멨다. 그저 살아가기만 하는 데도 그 목숨을 이어가는 게 왜 이리 힘에 부치나, 밖에서는 비보라가 몰아치는지 바람살에 깡통 굴러가는 소리가 왈당달강 시끄러웠다 넋 나간 얼굴로 그 빗소리를 듣고 있는데 남산 하숙이 이불을 내리며 빼꼼히 얼굴을 빼꼼히 내밀었다.

"살어. 아등바등 살어. 그래야 내가 큰별이네한테 지은 죄도 것도 갚지. 같이 살아서 그 짓거리했던 짐승들이 어찌 망해가나 보자고."_212~213p.

"우린 없는 사람이고, 여긴 없는 층이야."

없는 사람이란 다른 사람과 손을 맞잡을 수 없다는 뜻이었다. 아세로라는 그 없는 층에서 살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함께 지낸 하이쎈스, 아세로라는 동거인 하이쎈스에게 듣고 싶은 말이 있었다. 뭐라고 물어야 할지, 할머니가 그 얘기를 하고 싶어 할지 알 수 없지만, 하이쎈스와 자신 사이에 아직 못다 한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 다행으로 느껴졌다. 궁금하고 계속 아파한다는 것이 아세로라가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그것만은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고, 없다고 숨길 수도 없었다. _324~32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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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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