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자리
리디아 유크나비치 지음, 임슬애 옮김 / 든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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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가장자리


위스키와 헤로인은 여자아이 위로 고향의 먼지가 쌓이는 것을 막아줄 수 있었다. 학교도, 가족도, 딸의 역할도 그를 압박할 수 없도록 먼지 분자의 속도를 조절해 주는 것 같았다. 나는 구속의 존재를 알았으나 정신력으로 그 구속을 터뜨릴 수 있다는 것도 알았고, 구속의 보잘것없는 규칙과 지식과 초라한 신을, 늙은 여자의 손가락 같은 그것을 이해했다. 때로는 팬티 안에 알약을 넣어 다녔다. 부풀어 오르는 가슴 밑에 작은 비닐이나 나뭇조각이나 약을 넣어놓기도 했다. 나는 세상의 가장자리에 있었다. _179p.


강렬하고 파격적인 내용의 회고록 『숨을 참던 나날』의 리디아 유크나비치, 세상의 변두리 혹은 어느 경계에 걸쳐 살아가는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담아낸 단편 소설집 『가장자리』는 20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이 책은 <버슬>과 <릿허브>에서 올해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꼽혔으며, 2020년 한해 가장 뛰어난 단편소설에 수여하는 스토리상 롱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고한다.


장기매매, 가정폭력, 성매매, 마약, 여성, 퀴어, 부적응자등 화자를 중심으로 분류되는 키워드는 사회의 어두운 면, 가장자리에서 자기만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절박한 눈동자를 떠올리게 한다. 책을 읽기 전 책표지의 눈동자가 꽤나 강렬해서 거부감이 들었는데, 매 순간 페이지를 펼치며 소설 속 등장하는 이들의 눈빛이 이러했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게 된다.


"이쪽도, 저쪽도 아닌 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당신이 어디에 있는 나는 이해한다."

단편의 짧은 호흡이 오히려 다행이다 싶었던 소설『가장자리』, 때론 엉망이고 더 바닥일 수도 없을 것 같은 삶에서도, 이러한 삶을 계속 살아가야하는 걸까 하는 순간에도 이들의 마음깊은 곳에는 '살아야겠다'라는 의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살아가려는 절실한 의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묵직하고 깊은 여운이 오래남는 책.)


아나스타샤는 죽음을 떨치고 삶을 얻기 위해 거래를 감행하는 온 세상의 여자아이들을, 시간을 사고 희망을 사고 탈출할 기회를 사는 그들을 생각했다. 돈을 쓰거나 헛소리를 속삭여서, 손으로 목을 졸라서 여자아이들을 주저앉히려 드는 모든 힘센 남자아이를 생각했다. (···) 아나스타샤는 미국을 생각했다. 잔혹한 피비린내를 풍기며 찢어지고 꿰매어진 그 기이하고 기형적인 소위 '주(state)'라는 것들을, 발 위에 꿰매놓은 손처럼 여전히 위태로운 주와 주 사이의 경계선을 생각했다. 그 누가 이런 걸 겪고도 진화하려 할까? 아나스타샤는 자문했다._45p.


이 사랑이 계속되려면 여자는 날마다 죽을 때까지 남자와 싸워야 한다. 그는 그림을 그리고 또 그릴 것이다. 여자는 이 모든 것이 끝나기를 갈망한다. 이 세월이, 이 관계가, 이 기다림이 끝나기를. 이 삶의 절정이 끝나고 새로운 삶이 시작되기를. _101p.


언어란 우습구나. 언어는 열렸다가 닫히네. 도로 위에 벌어진 틈새처럼 사람을 잡고 넘어뜨리네. 계속 나아가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구나. _122p.


인생의 어느 지점에 있든, 어떤 성공과 실패를 겪었든, 속으로 자신만만하든 두려워 죽겠든 시선은 그저 땅에만 고정해야 하는 기분. _192p.


#리디아유크나비치 #임슬애 #든 #소설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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