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 루나파크 : 회사를 그만두고 런던으로
홍인혜 지음 / 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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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전 친구와 지인의 찬스로 한 달간 미국 LA 머물기, 여행자금은 빠듯했지만 시간은 많았던 백수였기에 가능했던 이 일정은 열흘간 미서부 투어를 했던 기간을 제외하면 거의 LA에 머물며 근교를 짧게 나갔다 오기도 하고 현지에서 보고 체험할 수 있는 많은 걸 보여주고자 하는 지인 덕분에 꽤 밀도 있는 여행을 했지만 지나고 생각해보면 아쉽게도 오랜 시간을 현지에 있으면서도 서울 살 때와 다름없는 삶을 살다 왔던 것 같다. 영어가 두려워 입이 떨어지지 않는 핑계로 친구, 지인의 뒤에 꼭 붙어다뎠던 그때라니...

생각해보면 계획대로 다녔던 여행보다 버스가 연착되어 길바닥에서 몇 시간을 떨기도 하고, 계획하지 않았던 나라를 잠시 다녀오기도 했던 순간들이 더 많이 기억에 남았던 건 계획하지 않았던 순간에 맞닥뜨린 두려움과 놀라움은 그 시간이 지나고 더 강렬하게 추억으로 남았다. 생각해보면 지나온 여행들을 돌이켜봤을 때 시간 단위 분 단위로 계획했던 여행보다 돌발 상황이 길 위에서 나를 조금 더 성장하게 했던 것 같다.

몇 박 며칠의 짧은 여행이 아닌, 장기 여행을 마음먹게 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장기 여행을 생각하는 이들. 이런 에세이들이 조금 일찍, 한 10년만 더 일찍 출간되기 시작했더라면, 아니.. 이런 책들을 조금 더 일찍 읽기 시작했더라면 나의 삶도 조금은 달라질 수 있었을까? 치열한 직장 생활, 이십 대의 끝자락, 일렁이는 마음을 위기라 보지 않고 기회로 돌려 생각해보기로 했다. 경력에 비해 적은 나이, 꾸준한 저축으로 꽤 모인 돈, 미혼이라 행보의 제약이 없었으며 무엇보다 가족이 반대하지 않았던 게 기회였고 모든 게 너무도 잘 맞아떨어졌다. 준비가 되면 떠나야지...라는 생각으론 평생 떠나지 못하고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게 될지도 모른다. 저자의 런던 생활은 일상 여행자이기도 했지만, 멀리 바라보던 사람들 속에 스며들어 그들의 일상을 경험하고 가까이 바라보며 자신의 내면을 채워가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꽤 다양하고 많은 에피소드들이 있지만 배낭여행을 하시던 부모님을 런던에서 만나 일주일을 함께 했던 이야기를 읽으며 아! 정말 멋진데!! 이런 여행이라면 한 번쯤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기도 했다. 이젠 몇 개월씩이나 일상을 떠나 있긴 힘드니 몇 주, 아니 한 달 살기라도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 했던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는 출간된 지 8년이 되었지만 읽을수록 새록한 여행 에세이다.

단순히 당장 눈앞에 직면한 일을 하기가 싫어서, 매일 자명종 소리에 괴롭게 일어나는 아침이 싫어서, 출퇴근길 사람으로 빼곡한 버스가 싫어서, 야근이 싫고 철야가 싫어서, 주말에 회사 나가는 게 싫어서, 퇴근 후에도 불시에 울리는 전화벨이 싫어서 지금 '도망치려는' 게 아닐까, 나는 그게 가장 무서웠다. 내가 위기 상황을 슬기롭게 돌파해내지 못하고, 단지 이 땅만 떠나면 행복할 줄 알고, 어쭙잖은 낭만에 사로잡혀 외국으로 도망치는 거면 어쩌나 겁이 났다. 이 여행이 도전적인 모험이 아니라 패배적인 도피면 어쩌나 두려웠다. 나는 이미 어른인데 어린애처럼 투정 부리는 게 아닐까 불안했다. _24p.

외로운 여행자들은 남의 세계에 틈입하고 싶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런던의 '사과머신'들은 이를 단호하게 차단한다. 이들의 "Sorry"에는 '나도 너를 터치하지 않을 테니, 너도 나에게 다가오지 말아 줄래?'가 함의되어 있었다. ... (중략)... 독하게 말해 런던 사람들은 남에게 아무 관심이 없다. 그냥 자기를 방해하지 않기만 바랄 뿐이다. _66~67p.

하지만 그토록 오매불망 바라던 새 MP3 플레이어도, 가방도, 심지어 사람까지도, 내 것이 되면 생활에 침식돼 빛을 잃고 날 적부터 내 것이었던 양 가치가 삭아가는 것처럼 여행에서의 하루하루도 그러했다. 내 것이 되고, 익숙해져가다보니 결국 이를 어찌 즐겨야 하는지 막연해져버렸다. 마치 젊음처럼, 다들 한목소리로 부럽다고 말하는 걸 갖고 있었지만, 정작 어찌 누려야 할지 알 수 없었던 것처럼. _156~157p.

막상 런던을 떠날 무렵이 되자 그곳에 더 머무를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러워지기 시작했다. ...(중략)... 분명 내 손에도 프리즘 한 개가 있는데 잘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서로 상대방의 손을 쳐다보며 내게는 저 무지개가 없다고 한숨짓는다. 이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도무지 고쳐지질 않는다. 행복의 방법을 뻔히 알면서도 안 되는 거다. 타인의 눈에는 분명 내 무지개가 보일 텐데 어째서 나는 아무것도 없는 듯 여겨질까. 내 손안에 무지개를 보기란 왜 이렇게 어려울까. 정말 행복하고 싶은데, 행복해지기란 왜 이렇게 힘든 걸까. _251p.

'내 평생 가장 특별했던 사건'으로 상자가 닫히듯 종결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하나의 시작점이 될 것이다. 무엇이든 언제고 버리고 떠날 수 있는 삶의 시작. _27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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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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