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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 폭풍이 지날 때 ㅣ 나를 찾아가는 징검다리 소설 4
캐런 헤스 지음, 부희령 옮김 / 생각과느낌 / 2005년 9월
평점 :
품절
모래 폭풍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황폐한 땅에, 가문 계절에 끊임없이 부는 바람이 아니던가. 하지만 모래 폭풍은 고비 사막이나 중동의 사막에 부는 것이 아니던가. 내가 아는 모래 폭풍은 그랬다. 모래 폭풍하면 뜨거움, 미라, 사구 따위만 연상이 되었지 그 폭풍에 직면하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이 책을 읽고난 후 나는 우선 나의 상식이 틀려있음을 깨달았다. 모래 폭풍은 사막에만 부는 것이 아니었다. 봄철이면 불어오는 황사도 모래 폭풍이었고, 이 책의 주인공이 살던 시절인 1930년대 오클라호마에 불었던 것도 모래 폭풍이었다. 오클라호마의 모래 폭풍이 우리가 겪는 황사와 다른 점은 오클라호마가 바로 폭풍이 시작되는 진원지였다는 점이다. 수백 킬로미터를 날아온 황사의 위력을 한번 생각해 보았다. 그 진원지에 내가 서 있다면? 상상하기조차 힘들었다. 사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닐 것 같았다. 그런 곳에 이 책의 여주인공 빌리 조가 살고 있었다.
하지만 빌리 조가 겪는 고난은 모래 폭풍뿐만은 아니었다. 사춘기 소녀 빌리 조는 성장통을 앓고 있었다. 게다가 현실적인 고통들, 즉 가난과 어머니의 부재, 또 거기에 어머니를 죽게 만든 죄의식마저 갖고 있었다. 이러고도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소설은 빌리 조가 겪는 불행을 꼼꼼하게 묘사한다.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은 정말 공평한 곳은 아니로군. 빌리 조가 집에서 가출하는 장면을 읽는 나는 쾌재를 불렀다. 그래, 도망가야지, 그렇게는 살 수 없지.
바보 같은 빌리 조가 가출을 포기하고 돌아왔을 때 나는 화가 치밀었다. 왜 돌아왔을까? 세상에는 이길 수 있는 불행과 이길 수 없는 불행이 있어. 빌리 조, 너는 절대 모래 폭풍을 이겨낼 수 없다고.
책을 다 읽었을 때 나는 빌리 조의 선택이 옳았음을 깨달았다. 모래 폭풍은 상징이었다. 세상 끝으로 도망가도 절망의 상징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단 하나, 절망에 맞서는 것이다. 이기고 지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맞서느냐, 회피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스스로 부끄러워졌다. 1930년대를 살았던 소녀 하나가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모래 폭풍은 커녕 황사 바람도 견디지 못하는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비관은 하지 말자.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다는 말도 있지 않는가. 바람, 조금은 견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