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의 아름다움
남공철 지음, 안순태 옮김 / 태학사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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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공철은 아마도 심성이 고운 부잣집 도련님이었을 것이다. 남공철은 부러울 것 없는 명문가의 자제로 태어났다. 아버지 남유용은 임금인 정조의 스승이었다. 정조같은 철인 군주가 스승과 제자간의 의리를 몰랐을 리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남공철의 성공은 예정된 코스였다.

남공철의 실제 삶은 예정된  코스와 하나 다르지 않다. 정조와 순조 밑에서 순탄한 벼슬길을 해 영의정에 이르렀으며 편안하게 죽었다.  삐걱거리는 순간은 있었다. 문체반정 당시 일착으로 걸려든 것. 그것 또한 그가 순정하지 못한 글을 구사해서가 아니라 '고동서화'라는, 소품가들이 좋아하는 단어를 사용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보면. 그리고 일벌백계의 취지로 정조가 가장 아끼는 남공철을 가볍게 혼내려는 취지라는 사실을 알고 보면 삐걱거림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아무튼 그 뒤로 남공철은 정신을 바짝 차렸고, 이후로는 정해진 길을 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마음도 그러했을까? 그의 마음도 생애처럼 순탄했을까?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의 마음이 순탄했다면 최북이니 이단전이니 하는 거렁뱅이 예술가들에게 마음을 빼앗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의 마음이 편안했다면 손수 활자체를 만들어 금릉집을 발간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결국 그는 마음속 깊이 일탈의 욕구를 지니고 있었던 것. 하지만 부자집 도련님 특유의 소심함으로 그 욕구를 실현하지 못했던 것.

오늘 그의 문집을 읽으며 소심했지만 예술혼으로 가득했던 한 남자의 초상을 본다. 그의 무덤처럼 그의 생애 또한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갔다. 하지만 그가 문집에서 다루었던 최북 같은 이들은 시대가 지날수록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아마도 그는 그럴 것을 예감했으이라. 그래서 곱디고운 활자체를 만들어 그들의 삶을 새겨넣었으리라. 그들 뒤에 남공철이 있었음을 사람들이 알라주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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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전후 김천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김연수에 이어 김중혁도 김천 생이다. 김천의 무엇이 그들을 작가로 만든 것일까? 그것이 궁금하다.

매력적인 소설집이다. 딱히 말이 많은 것도 아닌데 소설집을 읽고 난 뒤에도 머릿속에서 소설의 장면들이 떠나지 않는다. 새로우면서도 익숙하고, 친근하면서도 기묘하다. 묘한 책. 펭귄. 오차 측량가. 나무 지도. 개념 발명...... 사는 것이 힘들 때 한번쯤 떠올리고 싶은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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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정약용 살인사건
김상현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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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발적인 제목에 비하면 내용은 약한 편이다. 정약용을 죽이려는 동기가 빈곤한 까닭에 소설은 좀처럼 중심을 잡지 못한다. 전통적인 정약용 상을 벗어난 정약용은 흥미롭기도 하지만 빈약하기도 하다. 정약용이 이 소설 정도의 인물이었다면 현대까지 명성이 이어지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시간이 왔다갔다 하는 것도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다. 보다 깔끔하게 사건의 순서를 정리했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정약용 살인 사건인데 정약용이 살인을 당하지 않는다는 것도 이상한 점이다. 흥미보다는 내용에 충실한 제목을 붙였어야 했다.

장점도 있다. 역사물이라고 무거울 필요는 없다. 현대적인 느낌으로 역사물을 쓰려는 작가의 마음에는 공감이 간다. 지금보다는 다음 작품이 기대가 되는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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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큰 플라워
짐 자무쉬 감독, 빌 머레이 외 출연 / 스타맥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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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늙은 여배우들의 모습이다. 줄리 델피, 샤론 스톤, 제시카 랭 등 한 세대를 풍미했던 여배우들은 주름 가득한 초췌한 얼굴로 관객을 마주한다. 물론 상대역인 빌 머레이도 만만치 않다. 한 가지 표정만으로 영화판을 휘어잡았다는 말 그대로 빌 머레이는 인생의 근심을 모두 짊어진 지친 표정 하나 만으로 영화를 이끌어 간다. 그럼에도 영화는 잘 굴러간다. 운명적인 종결점을 향해 뚜벅뚜벅 잘도 걸어간다.

이 영화는 어찌 보면 그 유명한 '천국보다 낯선'의 21세기 버전이기도 하다. 천국보다 낯선에서 반복되었던 단절과 무의미는 이 영화에서 유사하게 나타난다. 검은 막이 장면을 나누는 그 순간 보는 이는 한숨을 쉬거나 생각에 잠기게 된다. 물론 한숨과 생각의 의미는 명확하지 않다. 꼬집어 말하기에는 너무도 미묘한 감정들이기 때문에.

단 하나의 편지가 20년간 안온하게 살아왔던 남자를 뒤흔든다. 남자는 잊고 살아왔던, 혹은 외면하며 살아왔던 과거와 마주하게 된다. 그것은 고통이다. 빌 머레이가 주먹질을 당할 때 나는 고통이란 몇 십 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괴물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잔잔한 일상은 괴물이다. 조스다. 언제 튀어나와 사람을 물어버릴지 아무도 모른다. 그것에 맞서기란 불가능하다. 나는 괴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므로.

 

영화는 그렇게 끝난다. 얻어 터져 시퍼렇게 부은 눈으로 일상에 회귀한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모든 것은 그대로이다. 변한 것은 마음뿐이다. 부은 눈은 가라않겠지만 흔들린 마음이 제 자리를 잡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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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 폭풍이 지날 때 나를 찾아가는 징검다리 소설 4
캐런 헤스 지음, 부희령 옮김 / 생각과느낌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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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 폭풍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황폐한 땅에, 가문 계절에 끊임없이 부는 바람이 아니던가.  하지만 모래 폭풍은 고비 사막이나 중동의 사막에 부는 것이 아니던가. 내가 아는 모래 폭풍은 그랬다. 모래 폭풍하면 뜨거움, 미라, 사구 따위만 연상이 되었지 그 폭풍에 직면하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이 책을 읽고난 후 나는 우선 나의 상식이 틀려있음을 깨달았다. 모래 폭풍은 사막에만 부는 것이 아니었다. 봄철이면 불어오는 황사도 모래 폭풍이었고, 이 책의 주인공이 살던 시절인 1930년대 오클라호마에 불었던 것도 모래 폭풍이었다. 오클라호마의 모래 폭풍이 우리가 겪는 황사와 다른 점은 오클라호마가 바로 폭풍이 시작되는 진원지였다는 점이다. 수백 킬로미터를 날아온 황사의 위력을 한번 생각해 보았다. 그 진원지에 내가 서 있다면? 상상하기조차 힘들었다. 사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닐 것 같았다. 그런 곳에 이 책의 여주인공 빌리 조가 살고 있었다.

하지만 빌리 조가 겪는 고난은 모래 폭풍뿐만은 아니었다. 사춘기 소녀 빌리 조는 성장통을 앓고 있었다. 게다가 현실적인 고통들, 즉 가난과 어머니의 부재, 또 거기에 어머니를 죽게 만든 죄의식마저 갖고 있었다. 이러고도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소설은 빌리 조가 겪는 불행을 꼼꼼하게 묘사한다.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은 정말 공평한 곳은 아니로군.  빌리 조가 집에서 가출하는 장면을 읽는 나는 쾌재를 불렀다. 그래, 도망가야지, 그렇게는 살 수 없지.

바보 같은 빌리 조가 가출을 포기하고 돌아왔을 때 나는 화가 치밀었다. 왜 돌아왔을까? 세상에는 이길 수 있는 불행과 이길 수 없는 불행이 있어. 빌리 조, 너는 절대 모래 폭풍을 이겨낼 수 없다고.

  책을 다 읽었을 때 나는 빌리 조의 선택이 옳았음을 깨달았다. 모래 폭풍은 상징이었다. 세상 끝으로 도망가도 절망의 상징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단 하나, 절망에 맞서는 것이다. 이기고 지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맞서느냐, 회피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스스로 부끄러워졌다. 1930년대를 살았던 소녀 하나가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모래 폭풍은 커녕 황사 바람도  견디지 못하는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비관은 하지 말자.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다는 말도 있지 않는가. 바람, 조금은 견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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