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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의 산맥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지음, 변용란 옮김 / 씽크북 / 2001년 7월
평점 :
절판
러브크래프트, 이제는 전설이 된 환상 소설의 대가이다. 그의 작품을 처음으로 읽었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나는 그의 작품을읽은 적이 있다. 어렸을 적 소년 문고를 통해 그의 책들을 접한 적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시절의 책들이 그렇듯이 그것들은 조잡하기 이를 데 없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지은이의 이름조차 제대로 밝혀놓지 않은 것들이었다. 광기의 산맥을 읽으면서 나는 이 책이 어릴 때 접했던, 엉성한 내용으로 내 머리를 아프게 했던 바로 그 책임을 알았다. 그리고 이제야 진정으로 그의 책을접하게 되는 것임을 알았다.
책의 내용은 간단하다. 남극 대륙에 외계 생명체가 건설해놓은 유적이 있다는 것이다. 외계 생명체 중 일부가 아직까지 살아남아있다는 사실을 추가한들 이야기는 전혀 그럴듯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다, 이런 식의 내용들을 우리는 이미 많이 접해왔다. 할리우드의 영화를 통해서, 미국의 드라마를 통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러기에 러브크래프트는 더욱더 빛난다.
이 책에는 사실 공포라 할 것이 없다. 그럼에도 책을 놓는 순간 무언가 깊은 심연에서 빠져나온 듯한 느낌을 버릴 수가 없다. 지난 여름에 보았던 소름이란 영화가 그러했다. 영화에는 별다른 귀신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거의 눈을 감고 영화를 봐야 했던 것이다. 이 책 또한 마찬가지다. 일고 나면 이상하게도 자신의 목덜미를 바라보게 된다. 아무 것도 없다. 하지만 더욱 두려운 것은 그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이다. 러브크래프트가 알려주려한 공포와 환상은 바로 그러한 종류의 것이다. 아무 것도 없다는 것, 그래서 텅 비어 보이는 그것을 자세히 들여다 볼 것.
진정 무서운 것은 쉽게 그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이야기가 중간에 늘어진다고 해서 책을 손에서 놓지 말 것, 그 보상은 충분히 받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