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왼손 그리폰 북스 3
어슐러 K. 르 귄 지음, 서정록 옮김 / 시공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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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가치를 논하는 것은 사실 무의미하다. 오래 전에 발간된 이 책은 이미 스스로의 가치를 세상에 증명했으니까. 뒤늦은 번역본을 읽는 심정이란 늘 그렇다. 남들은 다 아는 것을 나중에야 아는 것 같은 그런 심정.

이 책을 읽는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하지만 예전에 읽었을 때에 비하면 이제는 어느 정도 낡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다. 처음 읽었을 때는 놀라움 그 자체였지만 지금 보니 르 귄은 오히려 이 소설을 큰 어려움 없이 썼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오로지 머릿속에서만 나온 책이다. 그게 나쁜 것은 아니지만 어딘가 현학적이고 관념적인 느낌은 좀처럼 지울 수 없다. 다음 번 읽을 때는 또다른 느낌을 받을 지 모르겠다.

그리고 하나. 시공사의 책은 늘 흥미진진하다. 내용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수많은 오타 때문이다. 다행히 이번 책은 한 자리 수의 오타만을 기록했다. 나름대로의 진전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좀더 열심히 책을 만들어 주기 바란다. 지겹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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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 할림 1
김재기 지음 / 이론과실천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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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우리 문학사에서 드문 성취라고 할 수 있다. 무슬림들, 그것도 스페인 제국에게 점령당한 안달루시아 지방의 무슬림들을 대상으로 소설을 쓴다는 것, 이슬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우리나라 현실에서 대단한 일임에 분명하다. 거기에 저자의 해박한 지식, 이슬람, 스페인, 라틴 제국들을 넘나드는 지식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경외감 마저 느끼게 한다. 게다가 알리, 무함마드, 로드리고 등의 어감이 가져다주는 환상이란!

하지만 분명 아쉬움도 있다. 내가 보기에 이 책은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 육박할 수 있는 작품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결론은 그렇지 못했다. <장미의 이름>에 비해 장황하며, 설교적이며, 지적 유희의 수준에 이르지 못했으며, 완결되지 못했다. 그로 인해 독자는 모든 사건의 전말을 100퍼센트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왜일까?

일차적인 책임은 작가에게 있지만 나는 편집자에게도 책임을 돌리고 싶다. 이 책의 전개상 세 권은 무리였다. 두 권 분량이 최적이었을 것이다. 거기에 모든 해답이 주인공들의 대화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은 치명적인 약점이다. 편집자는 다른 방안을 알고 새로운 길을 제시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정말 놀랄만한 책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지나친 바람이다. 우리나라 편집자들의 열악한 상황과 의사결정권이 없는 처지를 고려하지 않은. 아쉽다. 지적 판타지의 세계에 제대로 빠져볼 수 있었는데. 하지만 약간의 헛손질 때문에 결정적인 한 방을 날리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작품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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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아프가 본 세상 1
존 어빙 지음, 안정효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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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화가 난다. 우리는 여태껏 이런 책이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아온 것이다. 발표된지 20년도 넘은 소설을 이제야 읽어야 하는 심정. 누구를 탓하겠는가? 우리 자신의 수준이 문제인걸.

가아프는 살아 있는 존재같다. 읽는이의 가슴을 푹푹 찌른다. 근래 읽은 소설 중 이렇게 비애감이 넘쳐나는 글은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인간 감정에 대한 정확한 묘사, 마치 소설의 교본 같다. 한 가지, 번역에는 만점을 주고 싶지 않다. 존 어빙의 현란한 문장들을 번역해내느라 무척 애쓰신 것은 사실이지만 군데군데 비문이 발견되기도 한다. 이 나라 번역계의 일인자라는 명성에는 다소 못미치는 듯하다. 하지만 그게 대수랴. 이런 책이 많이 번역되어 나오기만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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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밤, 전쟁기념탑에서... - 물구나무 002 파랑새 그림책 2
페프 글 그림, 조현실 옮김 / 주니어파랑새(파랑새어린이)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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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과 역사책을 접목한 새로운 시도를 보인 책이라고 하겠다. 역사적 요소는 그림책 읽기에 방해되지 않을 정도로 노출되어 있다. 그래서 그림책을 읽은 뒤 다시 한번 읽을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이 책의 내용은 구성만큼 상큼한 것 같지는 않다. 그닥 새로울 것이 없는 내용이고, 등장 인물은 밋밋하기만 하다. 왜 그럴까? 구성 의도가 너무 그림책에 제약을 가한 것을 아닐까 생각해 본다. 어떤 의도가 앞서면 아무래도 작품은 제 날개를 펼치지 못하기 마련이니까. 아이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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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팔다 Mafalda 1
끼노 글.그림, 조일아 옮김 / 비앤비(B&B)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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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아이용 만화는 아니다. 어른, 그것도 예민하게 날이 선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만화다. 정치, 사회에 대한 아이의 관점, 장난이 아니다. 거기다 슈퍼마켓 집 아들 녀석의 자본주의적 성향은 가슴 마저 서늘하게 한다. 한마디로 통쾌하다. 하지만 역으로 우울하다. 그건 이 만화를 읽고 우리 사회를 그대로 투영해도 되겠다는 인식 때문이다. 며칠 전 티비를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저거, 몇 년 전에 일어났던 일인데. 이것은 70년대 아르헨티나를 풍자한 만화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과 너무나도 똑같다. 아르헨티나 축구 선수들의 눈물이 떠오른다. 그건 지금 우리의 눈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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