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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 할림 1
김재기 지음 / 이론과실천 / 2002년 9월
평점 :
이 책은 우리 문학사에서 드문 성취라고 할 수 있다. 무슬림들, 그것도 스페인 제국에게 점령당한 안달루시아 지방의 무슬림들을 대상으로 소설을 쓴다는 것, 이슬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우리나라 현실에서 대단한 일임에 분명하다. 거기에 저자의 해박한 지식, 이슬람, 스페인, 라틴 제국들을 넘나드는 지식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경외감 마저 느끼게 한다. 게다가 알리, 무함마드, 로드리고 등의 어감이 가져다주는 환상이란!
하지만 분명 아쉬움도 있다. 내가 보기에 이 책은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 육박할 수 있는 작품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결론은 그렇지 못했다. <장미의 이름>에 비해 장황하며, 설교적이며, 지적 유희의 수준에 이르지 못했으며, 완결되지 못했다. 그로 인해 독자는 모든 사건의 전말을 100퍼센트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왜일까?
일차적인 책임은 작가에게 있지만 나는 편집자에게도 책임을 돌리고 싶다. 이 책의 전개상 세 권은 무리였다. 두 권 분량이 최적이었을 것이다. 거기에 모든 해답이 주인공들의 대화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은 치명적인 약점이다. 편집자는 다른 방안을 알고 새로운 길을 제시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정말 놀랄만한 책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지나친 바람이다. 우리나라 편집자들의 열악한 상황과 의사결정권이 없는 처지를 고려하지 않은. 아쉽다. 지적 판타지의 세계에 제대로 빠져볼 수 있었는데. 하지만 약간의 헛손질 때문에 결정적인 한 방을 날리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작품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