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어
요시다 슈이치 지음, 김춘미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가장 마음을 끄는 작품은 그린 피스다. green peace가 아니라 green peas다. 열대어도 좋고 돌풍도 좋지만 그린 피스의 음울함이 더 마음에 든다. 여자 친구에게 그린 피스를 집어던질 때의 섬찟함, 병원에 입원한 할아버지를 보러 갔다 그냥 돌아와버리는 냉정함, 친구의 여자친구 앞에서 웃기지도 않은 농담을 해대는 엉뚱함, 이 모든 요소들이 모여 만든 결과가 바로 음울함이다. 까다로운 절차를 통해 이룩된 음울함인만큼 쉽사리 벗어나긴 어렵다. 여자친구와 성찬을 준비해 먹지만 다음날이면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다고 느끼는 것도 다 그 음울함의 층층이 쌓인 높이 때문이다. 쿨해지려고 노력하지만 결코 그렇게 살 수 없다는 것을 슬슬 깨닫기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적격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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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천염천 - 거센 비 내리고, 뜨거운 해 뜨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서영 옮김 / 명상 / 2003년 10월
평점 :
절판


내가 기대한 것은 먼북소리와 같은 여행기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대를 충족시키지는 못했다. 그리스는 너무 건조했고, 터키는 너무 살벌했다. 그리스의 수도원들은 비슷비슷한 느낌이었고, 터키는 유효 기간이 지난, 옛날 정보같은 냄새를 풍겼다. 나쁘지는 않았다. 그래도 하루키 특유의 감성이 군데군데 살아 있음을 느꼈으니 그걸로 그만이었다. 아니다. 그렇지는 않았다. 아쉬웠다. 하루키라면 분명 더 세밀하고 날카롭고 유쾌한 터치를 해야 했다. 그저 보통의 하루키 수준이라고나 할까, 그런 정도였다. 마지막으로 이 여행기가 88년에 일본에서 발간되었음을 알았을 때, 허전했다. 좀 더 빨리 번역되었더라면 지금 같은 느낌이 아니었을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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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이, 대디, 플라이 더 좀비스 시리즈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전작들에 비하면 한결 간결해졌다. 복서처럼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다. 그래서 더 좋아졌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인물들은 만화처럼 정형화되어 있고 결말도 예상을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중간에 책을 덮지 않게 만드는 힘은 무엇일까? 슬픈 아버지의 모습 때문이 아닌가 한다. 젊은 날의 활력을 잃고 딸 아이가 당하는 것을 보면서도 손 하나 쓰지 못하는 비굴한 아버지. 그 아버지가 몸을 단련하고 복수하는 모습이 통쾌하면서도 슬프다. 현실에서 그러한 복수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사무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읽고 나면 나가서 달리기라도 한 번 하고 싶어지는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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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힘
성석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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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성석제의 글솜씨는 논외로 하자. 그것은 대한 검증은 이미 끝났으니까. 그렇다면 초점은 그가 처음으로 시도한 역사소설, 그리고 그 주인공인 채동구에 있을 것이다. 먼저 역사소설이라는 측면. 많은 이들이 지적했듯 사료의 과도한 인용이 거슬린다. 역사적 상식이 부족한 사람들이 다른 자료들을 찾아 읽는 수고로움을 덜어 주고 싶었던 것일까? 나로서는 잘 알 수 없다.

다음으로 채동구, 내가 그에게서 인간의 힘을 느끼기보다 단순하고 과격한 인간의 위험함을 느끼는 것은 잘못된 것일까? 그는 왕조(나라가 아니다)의 유지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쉽지 않은 일이다. 구차한 이유를 붙여야만 설명 가능한 반정이 일어났고, 임금은 난이 일어날 때마다 도망다니고, 동구는 가출할 때마다 무능한 국가에서 일어나는 여러 참상들을 목격한 그 마당에 오직 왕조의 유지, 그것도 명을 숭배하고 청을 배척하는 정권에만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에게서 이라크 전쟁에 참여하기를 바라는 우익의 냄새를 맡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액자소설의 기법 또한 너무 단조로웠던 것은 아닐까? 나는 오토바이 탄 남자가 무언가 사건의 모티브를 쥐고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렇지만 그 기대는 너무도 쉽게 무너지고 말았다. 앞뒤로 등장해 긴장감을 부여할 인물은 결코 아니었다. 잘 모르겠다. 내 삶의 연륜이 부족해서일까? 작가가 말하는 인간의 힘이 과연 무엇인지 나는 정말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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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마의 수도원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8
스탕달 지음, 원윤수.임미경 옮김 / 민음사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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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소설을 대여섯 권쯤 읽다 보면 고전이 읽고 싶어진다. 고전에는 고전 나름의 매력이 있다. 초반의 지루함을 견뎌내면 고전은 자신이 품고 있는 장대한 숲을 서서히 독자에게 내보인다. 적과 흑으로만 알았던 스탕달이었다. 그 비장함만을 기억하던 내게 파르마의 수도원은 또 다른 기쁨이었다. 천진난만하다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파브리스와 복잡다단한 주위인물들에 대한 깊이있고 깔끔한 묘사는 나를 한숨짓게 만들었다. 결말이 더 극적이었다면 좋았겠지만 그 정도로도 충분했다는 느낌이 든다. 더 이상 꼬인다면 소설은 작위적이라는 오명을 덮어 쓸 수도 있었으리라. 인생은 짧고 읽어야 할 좋은 소설은 너무도 많다는 사실이 조금은 내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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