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고아 나를 찾아가는 징검다리 소설 13
모리 에토 지음, 고향옥 옮김 / 생각과느낌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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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을 읽는 내내 하루키의 '헛간 태우기'란 단편을 떠올렸다. 이유도 없이 헛간을 태우며 소일하는 남자의 일상을 그린 이야기다. 이 소설의 주인공 중학생 소녀는 헛간을 태우는 대신 지붕에 오른다. 거기에 대한 설명은 없다. 다만 지붕에 오를 뿐이다. 그리고 무엇인가 치유의 힘을 얻는다. 아이의 일상이 그리 매력적이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 얼굴조차 보기 힘든 부모, 학교를 그만두어버린 좋아하는 선생님 - 쿨할 정도로 훌륭한 방식이다. 아이의 쿨함은 동생과 친구들에게도 전파된다. 그들도 함께 지붕에 올라 위안을 얻고 자신의 삶에 도전해나갈 힘을 얻는다. 청소년을 위한 모자람 없는 소설이다. 답답해도 자기 내부를 들여다보면 분명 살아나갈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교훈을 준다. 또 하나, 이 책 무척이나 아름답다. 몇 장을 넘길 때마다 다른 색의 종이가 나타난다.  과장없는 삽화도 적당하다. 예전에, 그러니까 소위 말하는 청소년기에  내가 읽던 책들과는 사뭇 다르다. 읽는 이에게는 그것도 축복이겠다. 그리고 지붕, 아파트로 가득찬 한국에서는 어쩌면 그것조차 희귀해진지 오래다. 하지만 이 소설의 메시지가 꼭 지붕에 오르라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제 나름의 지붕, 그것을 발견한다면 그것으로 이 소설의 소임은 충분히 완수된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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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 소리 쏴

아이는 구급차를

못 쫒아왔네.

- 김연수의 '청춘의 문장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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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다드의 모모
야마모토 켄조 지음, 박혜진 옮김 / 북앳북스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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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동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야기를 우화라고 부른다. 고양이가 주인공이니 이 글도 우화로 분류할 수 있겠다. 하지만 다른 게 아닌 전쟁 이야기다. 그것도 아직까지 진행되고 있는 이라크 전쟁 이야기다. 때문에 이야기들은 결코 우화로만 읽어넘길 수 없다. 소녀를 강간하려는 병사 이야기는 현실인지 우화인지 분간할 수 없게 만든다. 답답하다. 저자는 고양이를 통해 전쟁을 재조망하고자 했겠지만 전쟁이 여전히 현실인 상황은 답답하다. 우화로 받아들이기엔 현실이 너무 비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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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내가 그의 집에 필요한 유령이라 믿고 있다. 나는 그에게 등불이다. 깜박거림 없이 늘 빛나는 등불. 하지만 나는 사라졌다.   - Native Speaker 중에서 헨리가 강에게 보내는 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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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겔 스트리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2
V.S. 나이폴 지음, 이상옥 옮김 / 민음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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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겔 스트리트, 노벨상까지 탄 작가의 작품이라 읽기 전에는 꽤 심각하지 않겠느냐 생각했다. 독서를 시작하고 보니 짐작과는 딴판이었다. 술술 잘 읽혔다. 가끔씩은 독서를 중단해야만 했다. 주인공의 처한 상황이 너무도 우스워서.

그런 식으로 끝까지 읽어나갔다. 슬슬 마음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이렇듯 구제불능인 지역이 있다니, 그리고 이렇듯 구제불능인 사람들이 있다니. 희망이란 단어는 미겔 스트리트에는 결코 없는 것이었다. 내 삶에 대해 부리던 투정조차 부려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가 사는 세계는 정말 불공평한 곳이었다. 배부른 돼지들과 배고픈 생쥐들이 한판 경연을 벌이는 곳이었다. 생쥐는 돼지들이 보는 것을 결코 볼 수 없다. 코를 처박고 먹이를 구하는데 급급하기 때문에. 트리니다드 앤 토바고, 그들은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을까. 전망없는 경박성, 진보에 대한 원천적 봉쇄. 그런 그들의 삶이 과연 조금은 나아졌을까. 소설의 유머는 결국 답답한 현실에 저항하려는 몸짓,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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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helle 2004-05-04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까말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별 5개에 감명받고 구입하러 갑니다. ^^

dlfl 2004-05-06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