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요나라, 갱들이여
다카하시 겐이치로 지음, 이승진 옮김 / 향연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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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나는 가슴을 타오르게 하는, 때로는 눈물을 뽑아내게 하는 소설들을 몇 권 읽었다. 소설 읽기가 지겨워졌던 적도 있지만 요즈음은 다르다. 소설은 밟아도 밟아도 다시 일어서는 잡풀과 같다. 대중의 외면이 어쩌면 더 힘이 되는 듯도 하다. 모두들 관심을 갖지 않으니 쓰는 사람들 자신이라도 열심일 수밖에. 사요나라, 갱들이여, 하고 빌딩 옥상에 올라가 외치고 싶다. 쉽진 않을 터. 빌딩 옥상은 자물쇠에 굳게 잠겨 있으니. 부수어야 하리라. 시인의 방식으로. 스스로에게 이름을 지어붙이는 방식으로.

배수아의 독학자가 생각난다. 과거에 지지 않는 또 하나의 소설. 말하는 스타일도, 말하고자 하는 내용도 다르지만 그래도 사요나라와 가장 가까운 것은 배수아 같다. 소설은 토너먼트가 아니라는, 지금은 단지 골짜기를 지내고 있을 뿐이라는 소설가 이순원과 이승우의 절절한 고백도 생각난다.

그래, 골짜기를 지나야 정상에 오를 터. 힘을 내야지. 아니면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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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프 카르페디엠 30
시게마쯔 키요시 지음, 오유리 옮김 / 양철북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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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의미에서는 우리 모두 왕따다. 우리는 사회로부터, 가정으로부터 소외된다.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문제는 왕따 자체가 아니다. 왕따를 받아들이는 의식 상태, 그것이 중요하다. 우리의 어린 주인공들은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 힘겹지만 힘겹다는 말도 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견딘다.   사실 견디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이란 없다. 학교가 아니라 가정이고 사회일 경우를 대입해보면 답은 간단하다. 세상이 나를 미워한다고 내가 세상을 버릴 수는 없다. 정말 버릴 때는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세상 같은 건 더럽다고 버리는 것은 아니다. 버리면 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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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도의 예수 랜덤소설선 1
정찬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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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름지기 소설이란 이러해야 한다는 모든 요소를 갖추었다. 정확한 문장, 빠른 전개, 거기에 접하기 힘든 지식까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소설의 위력을 다시 보는 듯하다. 이런 작가가 있는 한 소설의 위기란 떠들기 좋아하는 자들의 헛소리일 것이다. 책을 다 읽은 뒤 창밖을 보며 생각에 잠길 수 있는 소설, 오래간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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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이레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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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는 에나쓰를, 루트는 신조를 사랑한다. 에나쓰, 206승을 거둔 대투수지만 팀과 화합하지는 못했다. 결국 그는 한신을 떠나 여러 팀을 전전하게 된다. 신조, 90년대 한신의 대표적 타자였던 그는 화려하게 메이저 리그로 진출한다. 물론 지금은 다시 귀환했지만 어쨌든 국민적 성원을 받으며 떠난 것은 사실이다. 그것이 박사와 루트의 차이점이다. 박사는 흘러간 과거, 혹은 시대와의 불화가 어울리며 루트는 새로운 세대, 깔끔한 미래가 어울린다. 그것이 다라면 그들은 결코 어울리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남은 결정적 사실이 그들을 친구로 만든다. 그 둘 모두가 한신의 팬이라는 사실.

한신이 어떤 팀인가? 50년이 넘는 일본 프로야구에서 단 한 차례의 우승밖에 차지하지 못한 팀이다. 작년 호시노 감독이 팀을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을 때 전 오사카가 떠들썩했던 데는 그러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물론 왕정치가 이끄는 다이에에 져서 우승하지는 못했지만. 오사카, 그 이유도 있겠다. 도쿄에 밀리는 2인자의 대명사 오사카.

한신, 그리고 오사카의 이미지는 박사와 루트를 하나로 묶는 연결 고리다.  동세대도 아니면서 그들은 함께 라디오를 들으며 환호하고 탄식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을 연결하는 고리가 80분밖에 되지않는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실제로는 그들은 결코 하나가 될 수 없으므로, 에나쓰가 영원히 한신에 머무를 수 없듯이. 야구란, 수학이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불가능한 수치의 놀음들, 허상들, 괜한 미련과 함성들.

어릴 적 라디오로 듣던 야구 중계가 생각난다.  박노준, 김건우, 성준. 그 때 그들을 다시 한 번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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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티에 라탱
사토 겐이치 지음, 김미란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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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부메의 여름을 읽고 이 책을 읽었다. 두 책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일본 작가가 쓴 소설이며,  장르적 특성을 잘 살린 소설이며, 나오키 상을 수상한 작가가 쓴 소설이라는 점이 그러하다. 두 작품 모두 굉장히 뛰어나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일단 잡았다 하면 결코 놓지 못하게 만드는 흡입력하며, 특정 분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소설의 위기라고들 한다. 그 대답은 어쩌면 일본 작가들의 행보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자기가 가장 잘 아는 주제를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풀어내는 것, 그것이 바로 소설아닐까? 감동이니 문학적 형상화니 하는 문제는 그 다음의 문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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