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현감 귀신체포기 1
김탁환 지음, 백범영 그림 / 이가서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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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쉽게 읽히는 책이다. 한나절 만에 두 권의 책을 모두 읽었다. 처음부터 두 권을 다 읽어제칠 작정은 아니었다. 쪽 수에 비해 비싼 책이니만큼 조금씩 아껴 읽을 심산이었다. 막상 책을 손에 드니 그런 마음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별 이야기도 아닌데 자꾸만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그렇게 두 권의 책을 다 읽었다. 읽고 나서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참으로 친숙한 이야기로구나 하는 것이었다. 용왕이니, 여우니, 늑대니 하는 것들은 어린 시절부터 내내 들었다. 자라면서 한동안 멀리했지만 어느새 그것들은 마음 속에서 되살아나 있었다. 다음 생각은 참으로 힘들게 썼겠구나 하는 것이었다. 김탁환의 고전에 대한 소양, 역사적 인물에 대한 관심은 익히 아는 바였다. 하지만 전작들은 어딘가 쉽가 쓰여진 느낌이 있었다. 단어 하나하나에 고민하고, 추리적 사건을 만들어내느라 고민한 티는 났지만 그래도 어딘가 힘들이지 않고 끄적인 느낌이 있었다. 이번은 반대였다. 이야기 자체는 쉽고 재미났지만 반대로 쓰는 과정은 지난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한 생각은 작가의 후기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고민한 티를 드러내지 않고 쉽고 재미있는 글을 품격있게 창조했다는 것은 대단한 공력이 아닐 수 없다. 김탁환은 머물러 있는 작가가 아니라는 느낌, 일요일 오후에 얻은 귀중한 소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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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로
이인화 지음 / 해냄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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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의 상하이라, 멋진 배경이다 싶었다. 거기에 초반부에 물씬 풍기는 허무주의적 인간 군상들의 모습도 하비로라는 제목에 제법 잘 어울린다 싶었다. 그런 식으로만 나간다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펼쳐지리라 생각했다. 작가 스스로가 소설가가 아니라 이야기꾼이라고 선언했으니 독자로서의 관심 또한 이야기의 재미에 맞춰질 수밖에. 결론부터 말하자면 작가는 빼어난 이야기꾼은 못 되었다. 중반부터 종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나간 이야기는 놀라운(이라기보다는 황당하다는 말이 더 적합한 것 같지만) 결론으로 마무리되었다. 씁쓸한 기분으로 책을 덮은 뒤 생각해보았다. 이인화는 그 자신이 내세우기전부터 타고난 이야기꾼이었다. 역사를 그만큼 자유자재로 주물러 작품을 만들어내기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소설가가 아니라 이야기꾼이라고 한 번 더  강조한 작품이 엉성하기 그지없다니. 이해하기 힘들었다. 도대체 작가는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일까? 20대를 위한, 게임에 익숙한 세대를 위한 이야기, 그게 함정이 아니었을까? 40대를 눈앞에 둔 작가가  20대를 위한 소설을 쓴다는 것, 그게 바로 문제였다. 자기를 위한 이야기가 아니라 남을 위한 이야기라니 그게 바로 자충수였다. 작가 스스로가 이야기에 대해 제기할 수 있는 의문이 작품의 힘이라는 것을 잊은, 당연한 결과였다. 시나리오와 게임의 원재료로서의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이야기 자체의 완결성은 중요한 법. 작가 스스로가 이야기와 소설을 다른 격에 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이야기는 조금 엉성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서운함과 억울함을 담아 몇 자 끄적거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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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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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많은 이들의 느낌대로 스무 살은 한두 편의 작품들 말고는 그다지 깊은 인상을 남기지는 못한다. 소설에 대한 소설들과 개인적, 사변적인 소설들로 대변되는 작품들을 통해 현재 작가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는 확인 가능하지만 그 이상은 아니다. 스무 살의 치기, 열정과 회한이 담긴 치기가 오히려 그대로 드러난다는 것이 맞는 표현이겠다. 하지만 내가 주목한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현재의 작품과 과거의 작품이 정말 많이 다르다는 것이다. 질적으로 말이다. 한 작가가 몇 년 새 엄청 커버린다는 것은 독자에게는 고마운 일이다. 그런 면에서 스무 살에 담긴 치기들은 오히려 사랑스럽고, 많은 이들에게 자신의 인생이 이룰 가능성을 알려주는 지표가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아직 스무 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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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
기타노 다케시 감독, 테라지마 스스무 외 출연 / 엔터원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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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왜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청소부 앞에 부러진 서핑보드가 나타났을까. 그런 것을 우연이라 해야 할까, 필연이라 해야 할까. 아무튼 주인공은 서핑보드를 집어들고 그것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서핑보드는 다시 부러지고, 주인공은 돈을 모아 서핑보드를 산다. 12만엔이니 결코 싸지 않다. 영화는 서핑보드에 몰두하는 주인공을 비추면서 잔잔히 전개되지만 궁금증은 점점 더 심화된다. 주인공은 도대체 서핑을 배워 무엇을 하겠다는 것일까. 기타노 다케시답게, 그리고 말 못하고 듣지 못하는 주인공답게 영화는 그 부분에 대해 설명하지 않는다. 마음대로 짐작하라는 식이다. 영화는 그런 식으로 종반에 이르고, 서핑보드와 주인공에 익숙해질 무렵 주인공은 사라진다. 파도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서핑 보드 하나만 남기고.

물론 그런다고 바다가 변할리는 없다. 바다는 늘 같은 바다이다. 주인공이 여름동안 투쟁했던 흔적은 사진 한 장을 제외하고는 그 어디에도 없다.  영화도 그걸로 끝이다.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고 그저 보여주는 것에만 충실할 뿐이다. 그런데도 보고나면 마음이 아프다. 무엇에 찔린 듯한 날카로운 아픔은 아니지만 끝이 뭉툭한 무엇인가가 자꾸 명치를 건드리는 느낌이다. 키즈 리턴의 설명하기 어려운 암울함과는 조금 다르다. 희망인지, 절망인지. 그거야 바다만이 알고 있겠지. 그러고 보니 바다를 본지 참으로 오래 되었다. 바다에 한 번 가 보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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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두는 여자
샨 사 지음, 이상해 옮김 / 현대문학 / 2004년 10월
평점 :
절판


중국 여자가 프랑스에서 프랑스어로 쓰기에 이렇듯 적절한 작품이 있을까. 전쟁이 있고, 적대국 남녀끼리의 사랑이 있고, 이국의 문물인 바둑이 있다. 이렇듯 배경이 결정되었다는 것은 소설의 틀거리가 갖추어졌다는 것. 남은 것은 쓰는 것뿐. 작가의 재주는 나무랄 데 없다. 인물들의 감정을 교묘하게 조종하는 솜씨는 오랜 훈련의 덕분일 것이다. 소설은 읽는 동안 머릿속에서 그림으로 전환되었고, 인도차이나라는 영화를 끊임없이 떠올리게 만들어 동영상마저 구현해 주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감동을 느낄 수는 없었다. 소설은 정해진 각본을 한치 벗어남 없이 따를 뿐이었다. 전쟁에 대한 성찰도, 바둑에 대한 성찰도 없었다. 일본인과 중국인의 심성에 대한 묘사도 어찌 보면 익숙하기 그지없는 것. 재주를 사야 하는 것일까? 이런 유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내 마음은 심란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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