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콤플렉스 유형 찾기 이벤트] 《마음에 박힌 못 하나》 5가지 콤플렉스 유형 아포리즘 이벤트

 




공감 콤플렉스 선택을 통해, 또 다른 나를 찾자!

당신의 콤플렉스 유형은?”

 




콤플렉스 그 자체는 병적인 것이 아닐 수 있다

그런데 쓰로 병적인 것이라 낙인 찍고 자신에게서 되도록 멀리 떨어뜨려 놓으려는 순간

콤플렉스는 마음에 박힌 못이 된다.

(중략)

이런 이들에게는 콤플렉스가 보다 완전한 인간이 되도록 이끌어주는 자양분이 아니라 

끊임없이 나를 아프게 하는마음의 병이 되어버린다.


마음에 박힌 못 하나》 본문 중에서






☆ 이벤트 참여 방법


1.아래의 5가지 콤플렉스 유형’ 중

   지금 내 고민이나 상황에 가장 공감가는 유형을 골라 댓글로 남겨 주세요.

    

    1) 트롤 콤플렉스

    2) 시시포스 콤플렉스

    3) 돈 주앙 콤플렉스

    4) 요나 콤플렉스

    5) 카산드라 콤플렉스  


2. 이벤트 게시물을 개인이 활동하는 SNS(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카페 등)에 공유하고,

     URL을 댓글로 남겨 주세요~



☆ 이벤트 상품


1. 10분을 추첨하여 곽금주 교수의 마음에 박힌 못 하나》와 영화 '표적' 예매권(1인 2매)를 

     드립니다.  (공유를 많이 하신 분 중 선별)


2. 10분을 추첨하여 영화 '표적 예매권(1인 2매)를 드립니다. 



☆ 이벤트 참여 기간

     ~ 2014 4월 24일까지



☆ 당첨자 발표

     4월 28(월요일카페 공지








     1) 트롤 콤플렉스

  





    2) 시시포스 콤플렉스

 




    3) 돈 주앙 콤플렉스





    4) 요나 콤플렉스





    5) 카산드라 콤플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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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인문학이 처음인데요 - 교양인이 되기 위한 내 생애 첫 인문학
박홍순 지음 / 한빛비즈 / 201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 인문학이란 제목을 달고 나오는 책들을 꽤나 많이 봤던 것 같다. 출판계 책나오는 걸 보자면, 힐링아니면 인문학 이 두가지가 대세를 이루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수많은 인문학 책들 그 중에서 어떤 책을 골라야 잘 봤다고 할까? 솔직히 말하면, 인문학을 공부해야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실제로 인문학을 떠올리면 지루하고, 재미없고 답답한 그런 느낌 들지 않나? 이 책은 무엇보다 책 표지에도 나왔지만 "현실과 먼 인문학은 가라"라는 말이 참 많이 와닿았던 책이다. 어렵게 생각하던 인문학을 현실에서 쉽게 접근하게 하고 있다. 이를테면 우리의 빈부격차, 신데렐라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가 흔히 접하는 드라마들을 끌어온다거나 원시사회와 이방인 그리고 그들이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에게 익숙한 <아마존의 비밀>, <영화 아바타>를 끌어 온다. 확실히 뭐랄까 첫 물꼬를 어떻게 트느냐에 따라서 책에 대해서, 철학적 지식에 대해서 접근하는 것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이책을 통해서 알게 된 것 같다.

 

인문학 책은 많다. 그리고 철학자들을 다루며 그들의 이론을 설명하는 책들도 많다. 하지만 이렇게 쉽게 접근 할수 있는 책은 드물다고 말하고 싶다. 족히 500페이지에 가까운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읽는 내내 재미있었다.

 

특히 저자가 밝히는 우리가 인문학을 공부해야하는 이유가 참 인상 깊었다. 인문학이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지는 바로 행복이라고, 공통적으로 인간의 사유와 역사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통해 행복한 삶을 실현하는 것이 목표라는데, 사실 나의 인문학 습득 목표는 단순히 학문적 지식의 축적에 불과 했는데, 행복한 삶에 대한 목표를 듣는 순간 뭔가 내가 잘못 된 느낌? 지식의 습득은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것이 그것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된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 인문학을 공부해야한다면 좀 더 재미있게, 좀더 쉽게 인문학에 접근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총 5부의 내용으로 나눠져 있으며, 쭉 연달아 읽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인 것같다 연계되지 않는 내용인 만큼 특정 부분만 관심이 가는 부분만 발췌해 읽어도 괜찮고, 읽고 싶은 부분들을 골라서 먼저 읽어도 될 것 같다.

 

책장을 넘기면서 저자의 방대한 인문학적 소양과 지식에 놀람을 금치 못할 뿐만아니라, 중간 중간 등장하는 삽화 역시 쉽게 지루해질 수 있는 책을 즐겁게 읽을 수 있게 만들고 있다. 인문학은 어렵고, 인문학은 현실과 동떨어진 채 홀로 자신만의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했던 내게 이 책은 인문학은 멀지 않다는 것을 확실히 증명해 보였다. 각 철학자들에 대한 짧은 설명과 함께 영화나 그림등에 대한 설명도 너무 좋았던 것 같다. 영화나 드라마, 그림은 어줍잖아도 조금씩은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으니깐, 그들에게 인문학은 어렵지 않다고 말하고 있으니깐!

 

이 책은, 이제 막 인문학에 입문하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권해 주고 싶다. 인문학에 대한 공포를 느끼고 있다면 이 책을 읽어보는 게 어떨까? 너무 많이 깊이 들어가지는 않지만, 필수적으로 우리가 알아야할 철학적 지식을 누구보다 쉽게 누구보다 친근하게 접근하고 있으며, 그간 얼마나 많은 철학이 우리 삶에 스며들어 있었으며,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었는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인문학 결코 어렵지 않으며, 인문학은 우리 삶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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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의 맛
김사과 지음 / 쌤앤파커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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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의 맛은 어떨까? 내가 아는 설탕의 맛은 달달함.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김사과. 아직 김사과의 소설을 한번도 읽어보지 않았다. 단지 아는 누군가가 자기는 김사과를 좋아한다고, 읽어보라고 했던 기억 뿐. 김사과의 소설 <미나>를 추천받은지가 언젠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무언가에 쫓기듯 책을 읽고, 무언가 다 읽지도 않은 책을 두고, 또 사고 있는 나를 발견하면서 그 많은 책들 중에 김사과의 책은 어떻게 한권 사지 않았던 걸까; 김사과. 그 이름으로 나온 첫 여행에세이라는 말에 관심이 갔다. 여행에세이작가가 아니라, 소설가라서 그래서 더 읽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김사과의 소설책을 읽지 않았으니 내가 김사과에 대한 사전적인 지식은 전무했다. 하지만, 여행에세이니깐, 쉽게 읽을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어떤 부분은 솔직히 쉽게 읽혀내려갔다. 그렇지만 어떤 부분은 나로 하여금 뜬구름을 걷는 기분을 들게 했다.

 

확실히 정해진 곳, 직접 가보진 않았지만 정확한 지명과 살아숨쉬는 인물의 이름이 등장함에도 나는 왜 몽환적이 느낌을, 내가 읽고 있는 이것이 대체 뭘까?라는 의문을 끊임없이 할수 밖에 없었던 걸까?

 

나는 당분간 여행계획이 없다. 하지만 갈수록 나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고, 그건 정확히 2010년대의 한국, 아니 지구 위 현대인들의 기본적인 정서상태다. 그것은 머리가 멍해지는 설탕의 맛이다. 이 책은 그 맛에 대한 이야기다. p.13

 

글을 쓰는 김사과가 내가 어디있는지 모른다는 그 말 만큼이나, 나 역시 책을 읽고 있는 이 순간 내가 어디있는지를 모르겠다. 똑같이 전세계적으로 유통되는 물건들을 소비하고, 똑같이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느낌; 그 느낌은 나만 받는 걸까? 뉴욕을, 프라하를, 포르투를, 베를린을, 샌프란시스코를 여행하면서 그 속에 녹아들어가는 김사과의 삶을 보면서 나는 김사과가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책을 읽고 있는 나에게 더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

 

보통의 여행에세이는 어디어디를 여행했고, 나는 거기서 어떤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 전부라면, 김사과의 에세이는 단지 어느 국가의, 어느 도시가 달라졌음에도 달라졌다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 처음부터 가짜여행, 리얼리티 여행에 대한 김사과의 언급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자유분방함, 몇 개월의 체류였지만 김사과의 글로 나는 그 나라 사람들의 일부를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김사과의 친구들을 이해하려고 하면 할수록, 그들이 비슷비슷하다는 것을. 우리는 어쨌거나 한 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구나를 또한번 절실히 깨달았다.

 

김사과의 글은 언제까지나 나를 꿈 속을 헤메게 만들 것 같다. 전혀 이건 몽환적인 이야기가 아닌 정확히 김사과 현실에서 겪었던 일들을 나열하고 있음에도.  나는 왜 그런걸까? 이 문제에 대한 정확한 해답을 위해서 나는 얼마를 더 생각해야할까? 아니면 그냥 어렴풋이 여행이라는 것이 특별하진 않다고, 어쩌면 우리 세계가 전부 가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야할까? 쉽게 책장이 넘어가는 것 같으면서도 그렇지 않은 책이었다. 내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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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계 재판 - 사람이 아닌 자의 이야기 다카기 아키미쓰 걸작선 2
다카기 아키미쓰 지음, 김선영 옮김 / 검은숲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어떠한 내용의 책이지도 모르고 읽기 시작했다. 파계재판이라는 제목하에.

분명히 제목상으로 봐도 재판과정을 담고 있지 않을까 추측은 했었다. 1960년 6월 도쿄지방법원에서 펼쳐진 재판. 2건의 살인과 사체유기에 대한 재판.

 

뭐랄까? 재판에 대한 편견이라면, 뭔가 묵직하고, 시중일관 지루한 채로 펼쳐지지 않을까? 이런 마음 아닌가? 요즘 드라마에서도 재판 과정을 다루는 것도 많이 나오고, 책 속에서도 재판을 다루는 것들이 많이 보이긴 하지만, 소설, 그것도 추리 소설에서 온전히 재판과정만을 담고 있는 책이라는 것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뭔가 추리 소설 그러면, 능동적일 것 같고, 뭔가 밀실적인 분위기가 나고 뭔가 대단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그런 기대감이 있으니 말이다. 본격 재판 소설! 오로지 재판만을 다루고 있는 책은 이 책이 처음이었다.

 

'나'라는 인물의 입장에서 써내려 간 재판의 관찰기. 그 관찰기는 우리로 하여금 어떤 추측과 앞으로 어떤 선고가 내려질까에 대한 기대감을 잔뜩 갖게 했다. 10년이상을 도요신문 법정기자로 도쿄 지방법원을 출입한 '나' 앞에 펼쳐진 파계 재판. 우리도 그 속으로 한번 들어가보자.

 

우선 재판을 간략히 소개하자면, 알만한 배우가 유부녀와 얽혀 남편을 살해후 유기하고, 그 유부녀 마져 살해하고 유기했다는 것이다.

 

피의자 무라타 가즈히코는 한때 신극배우로 활동한 사람으로 올해 쉰살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를 변호하고 있는 이는 햐큐타니 센이치로로 올해 서른 살밖에 먹지 않았다고 한다. 피의자가 첫번째 살해한 유부녀의 남편은 도조 겐지이며, 두번째로 살해하고 유기했다고 하는 유부녀는 도조 야스코이다.

 

우선 미리 밝혀 둘 것은 원래 형사변호사는 경제적으로 상당히 어려운데, 여기에 등장하는 변호사 햐큐타니 센이치로는 부인 아키코의 도움으로 경제적 어려움에서 벗어나 온전히 사건에만 매달릴 수 있었다고 한다.

 

모든 소설이 그렇듯, 분명 반전이 있을거라 믿었다. 여기서 정말 피의자가 무라타 가즈히코였다면, 분명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을테니 말이다. 긴 이야기는 내내 가즈히코가 어떤 나쁜 사람이었는지, 가즈히코는 어떤 인간인지에 대해서 진술하는 것이 거진 대부분이었다. 물론 중간 중간 야스코에 대한 이야기들도 나오지만 말이다. 읽는 내내 과연 가즈히코는 정말 나쁜인간일까? 가즈히코는 왜 그렇게 밖에 할수 없었을까에 대한 의문을 가졌었다. 나중에 밝혀지는 가즈히코의 신분적 제약 덕분에 그런 행동들이 이해가 가긴 하지만, 이 소설은 한 남자가 한 여자를 너무 사랑해서 벌어진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사랑을 약점으로 잡고 농락하고 만 그녀. 자신의 목숨보다 더 사랑했다고 말하는 가즈히코. 솔직히 처음엔 믿지 않았지만, 뒤로 갈수록 그런 가즈히코가 불쌍해보였다. 그리고, 만약 센이치로 변호사가 없었더라면, 가즈히코는 피의자로 형을 살아야만 했을까? 이런 생각까지. 진짜 범인은 태연히 나는 아니라고 있는데,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이 범인이었음을, 센이치로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고, 그 증거를 찾았다. 검찰에서도 찾지 못한 증거를 찾아낸 변호사의 집념이 한 사람의 삶을 구원한게 아닐까?

 

법정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결코 쓰지 못했을 소설, 법정내에서 검사와 변호사의 끊임 없는 대결, 그 속에서 변호사가 증거를 들이대니 아무말도 하지 못하는 검사. 아직도 법이 살아있는 이유가 아닐까? 진짜 범인은 어떻게 든 잡히고 만다는 거. 야스코와 가즈히코가 둘다 신극 배우였다는 것도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하나의 축이었던 것 같다. 아무렇지 않은 척 거짓 연기를 펼치는 야스코. 정말 감탄 할 뿐이다.

 

오로지 재판과정만을 담은 소설이라고 해서 기대를 잔뜩했던 것이 사실이다. 소설은 개개인마다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기에 따로 평하지는 않겠지만, 검사와 변호사만의 논쟁으로 사실을 밝혀가는 과정을 소설로 만나본다는 것은 새로운 분명 새로운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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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인간
KBS 공부하는 인간 제작팀 지음 / 예담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공부는 나와 뗄레야 뗄수 없는 관계다. 내가 지금까지 공부한 게 몇년인데, 아마 나는 평생을 공부하게 되지 않을까싶다. 무언가를 알아간다는 것은, 나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킨다는 것은 무엇보다 기쁘고 행복한 일이다. 내가 공부한 그것으로 돈을 벌고, 그것으로 무언가를 할 수 없다해도, 내가 지식을 습득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공부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KBS 1TV에 방영되었던 글로벌 대기획 <공부하는 인간>을 담고 있다고 한다. 이미 KBS의 방송을 다루었던 <아시아, 유교의 힘>이란 책에서도 많은 걸 배운 기억이 있기에 이 책도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버드의 4명의 학생, 릴리, 스캇, 제니, 브라이언과 함께 세계 곳곳의 공부의 현장을 누비고, 공부에 있어서 동양과 서양의 차이을 문화적 배경에서 짚어보고 있으며, 수메르인부터 시작된 공부에 대한 열정을, 그리고 앞으로 추구해야할 공부태도에 대해서 담고 있는 책이다.

 

우선, 대한민국 대치동의 공부현장, 이건 말하지 않아도 익히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그 다음으로 찾아간 곳이 중국이었는데, 중국은 땅 덩어리가 넓은 만큼 명문대의 입학생은 제한 되어 있고, 아이들을 정말 혼신을 다해 공부하고 있었다. 중국의 수능시험 격인 <까오카오>를 대비하는 한 학생의 이야기는 아이와 부모가 어떤 마음으로 공부를 대하고 있는지에 대해 알수 있었는데, 중국 역시 공부전쟁에 있어서 어두운 그늘이 있다는 것에 씁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원하는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 '저샤오페이'라는 추가 입학을 위한 기부금의 금액이 날로 올라가고 있으며, '까오카오 이민'이라 해 지역별로 할당된 대학입학정원 때문에 위장 전입을 하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공부와 돈은 뗄레야 뗄수 없는 관계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공부에 대한 열정만을 가지고 공부를 잘 할 수 있는 시기는 우리나라에서는 지나지 않았나 이런 생각?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은 옛말이다라는 게 떠오르는 건 왜 일까?

 

일본에서도 역시 입시 전쟁은 치열했다. 사립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서 유치원부터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시험을 본다니 우리나라보다 더 심하지 않나? 하지만 사립학교는 학비가 비쌌고, 그렇기에 부자들의 전유물이 될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가진 것 없는 부모가 자녀에게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가업을 이으라고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없는 나라가 일본이라고 한다. 이는 몇 대째 가업을 이어 해당 분야에서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경쟁력을 발휘해 일본을 경제대국으로 만든 근간이라고 볼수도 있는데,한편으로는 가난한 부모의 비애라고도 한다.

 

그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바로, 인도!  인도 역시 인구가 많다. 그렇지만 인도 최고의 대학 인도공과대학(ITT)의 입학생 수는 정해져 있다. 미국 MIT 에는 합격해도 인도 ITT에는 불합격했다고 할 정도로 ITT는 인도인들의 꿈이고, 신분상승을 할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그래서 ITT에 입학하기 위해서 어릴 때부터 돈이 있고, 없고를 떠나 그들이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는지를 본다면 과히, 공부가 세상의 전부이구나라고 말할 정도다. 카스트제도에 의해 아직도 불가촉천민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있고, 그들에게 ITT의 입성은 모든 것을 단숨에 바꿔 놓기에 충분했다.

 

세계 어디를 가나, 공부에 대한 열정만큼은, 그들의 목표만큼은 분명한 것 같았다. 안정된 미래와 경제력을 누리기 위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할 조건이야 말로 공부라고 해야하나?

 

지금까지 지켜본 것은 동양의 나라들이었다. 그렇다면 동양인들은 왜 공부에 죽도록 매달릴까? 동양인들은 왜 개인보다 집단을 위해 공부하고 독립성보다는 관계성을 중시하는 걸까?

 

"서양 문화는 개인과 독립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사뭉르 인지할 때도 배경으로부터 분리시켜 개별적으로 파악하고, 동양 문화는 집단과 관계를 중시하기 때문에 광범위하게 주변 정보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사물을인식한다는 것이다.  " -p.105

 

이 문장이야 말로 동서양의 차이를 극명히 보여주는 거 아닐까? 동양인들에게 공부의 목적은 개인을 넘어 가족, 공동체로 확장된다. 열심히 공부하고 높은 학업성취를 이루는 이유는 공동체를 위한 공부의 목적이 아주 강력한 '동기'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양인들은 노력하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는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고, 그것이 강력한 끈기와 인내, 의지로 공부에 매진하게 만들어 높은 학업성취로 이어진다고 한다. 반면 서양인들은 지적 성취는 대부분 타고난 능력이나 가르치는 자질에 달려있다고 믿었다. 즉, 능력은 이미 정해져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어떤 일을 더 잘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동양인은 부정적 피드백을 받았을때 더 열심히 하려고 마음먹는 반면에 서양인들은 긍정적 피드백을 받았을 때 더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다. 따라서 동양인은 성적이 나빠도 쉽게 좌절하거나포기하지 않고 공부에 더욱 매진하고, 그 만큼 높은 학업성취를 이룬다는 것인데 나는 정말 이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이건 어쩔 수 없는 문화적 차이일까? 이것말고도 동양과 서양의 차이는 많았다. 서양인은 튀는 것을 좋아한다. 반면 동양인은 무난한 것을 좋아한다. 평균. 딱 평균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남들과 같이 가는 것, 공부에 있어서도 남에게 뒤처지는 걸 싫어한다.

 

"일반화 된 타자의 시선을 의식하는 경향이 낮은 자아를 '주체로서의 나(I)', 일반화된 타자의 시선을 의식하는 경향이 높은 자아를 '객체 혹은 대상으로서의 나(Me)'라고 한다. 이 두가지 자아는 문화권에 따라 정도의 차이를 보이는데 서양에서는 '주체로서의 나', 동양에서는 '대상으로서의 나'가 강하게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즉, 동양인은 일반화된 타자의 시선을 의식하는 경향이 높아 다른 사라의 시선이나 평가에 민감하기 때문에 사회에 존재하는 표준에 속하는 데 극도로 집착하는 것이다." p.142

 

표준에 집착하는 것은 나중에 일본인들에 대한 설명에서도 나오게 되는데, 이 표준이라는 거 가만 생각해보면 정말 맞는 것 같다. 누구나 무난하고, 누구나 튀지 않고 단체 속에서 함께 가려는 것, 그것이 공부에 있어서도 영향을 미칠 줄은 생각도 못했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동양에서는 공부를 신분 상승의 도구로 여기고 있다는 점 또한 특징적이라고 할수 있다.

 

"동양 사회가 공부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현상에 대해, 공부말고 성공을 보장하는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같다고 생각했다. 공부가 곧 성공의 길이며 안정된 미래라는 의식이 팽배한 문화속에서 자라기 때문에 동양인들이 공부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p. 149

 

동양에서 공부를 신분 상승의 도구로 생각하게 된 근원은 어디서 부터일까? 유교사상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건 아닌 것 같다. <논어>의 첫 구절, '배우고 때로 익히니 또한 기브지 아니 한가' 를 보자면 기본적으로 유교는 학문을 출세의 수단으로 보기보다는 학문 그 자체에 높은 가치를 두고 그 즐거움 추구하는 사상이다. 리처드 니스벳 교수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공부를 출세의 도구로 보는 문화의 근원을 '과거제도'에서 찾고 있다. 1300년간 지속되어 온 시험제도, 과거. 과거에 합격하기 위해 기상천외한 부정행위가 난무하기도 했다. 위험을 무릅쓰고 부정행위를 할 할만큼 과거 합격은 달콤한 꿀과도 같았다. 오랜 시간 과거는 우리들의 문화 속에서 공부를 신분상승의 도구로 생각할 수 밖에 없게 끔 만들었고, 지금도 많은 동양인들은 신분상승을 위해 공부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아무리 순수한 마음으로 공부를 하고 싶어도 당장 먹을 거리, 입을 거리가 없다면 어느 누가 마음놓고 공부할 수 있을까?  순전히 나만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게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순수한 마음으로 지식습득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며, 그것만으로 만족 할수는 없는 걸까 하고 말이다.

 

다음 장에서는 전세계 인구에 0.2% 밖에 되지 않으면서 노벨상을 가장 많이 수상한, 공부를 가장 잘한다고 알려진 유대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유대인들은 과거 수많은 핍박을 받으며 자신들의 터전을 빼앗겨 이동해 다니며 살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저절로 그들은 자신들이 지킬수 있는 것은 무형의 지식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유대인들의 교육은 무엇보다도 가정에서 이루어진다고, 부모가 최고의 선생님이라는 말에 사실 감탄을 했다. 다른 국가에서 교육은 학교나 학원에서 담당한다고, 즉 사회적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이 맞다 여겼는데 유대인들은 달랐다. 동양인과 유대인 모두 가족주의 문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고, 그 가족주의 문화는 두 집단의 교육열과 학습욕구를 높이는 원동력이 되는 것은 맞아지만 표출방식이 아예 다른 것이었다. 동양인들은 아이들에게 강압적으로 권위주의적 방식을 고수했고, 유대인들은 아이들의 주체적인 인격을 중시하며 상호적 가르침을 추구했다.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은 안식일에도 꼭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저절로 자녀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게 되고, 또 그들은 그들의 경전 <토라>를 기도하면서 공부한다. 기도가 바로 공부인 것이다. 서로 기도를 하면서 토라를 펼쳐두고 토론을 한다. 이런 학습 문화는 유대인을 세계 최고로 만들어낸 것 아닐까?

 

유대인들의 <토라>와 토라를 해석해 둔 <탈무드>, 인도식 공부의 뿌리 <베다경전>, 일본의 노트 필기, 프랑스의 철학 공부, 살롱 문화등은 공부에 있어서 문화적 환경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절실히 보여주고 있다. 유대인들은 토론을 즐기고, 인도인들은 암송과 암기를 , 일본인들은 표준에 대한 집착에서 노트필기문화를 발전시켰다. 그리고 사회적 분위기 자체가 철학을 중시해, 대학 입학시험인 바칼로레아에서도 철학시험을 치는 프랑스는 끊임없는 대화와 토론을 통해서 살롱문화를 발전시켜고 공부에 있어서 교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고 있다.

 

암기를 통해 주로 공부하는 동양과 질문을 통한 대화와 토론으로 공부하는 서양. 그것은 앞서도 말했지만 문화적 차이에서 온다. '집단,'관계를 중시하는 동양 사회에서 가장 바람직한 인간형은 남들에게 긍정적인 인상을 주고 타인과 조화롭게 사는 사람이기에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고 표현하는 것은 부정적으로 보이기때문에 자기를 표현하거나 질문하는데 소극적일 수 밖에 없다. 반면에 '개인, 독립성'을 중시하는 서양은 개인의 만족과 행복이 최우선이기에 자신을 무조건 능력있고 똑똑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려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질문하고 능동적으로 토의나 토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동양과 서양은 확실히 다른 문화 속에서 자신들만의 공부법으로 많은 것들을 이룩해 왔다. 타협을 좋아하는 동양과 논쟁을 좋아하는 서양, '조화'를 중시하는 동양과 '개인의 가치'를 중시하는 서양. 타협하는 동양이 낳은 암기의 공부, 논쟁하는 서양이 낳은 질문의 공부. 어느 것이 더 옳고 좋다고 말하기는 뭐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동양인이든 서양인이든 한가지 방법의 공부방식을 고집하기 보다는 주어진 상황이나 환경에 맞도록 공부방식을 적절히 조절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 앞으로 공부가 주목해야할 것은 교류와 협력이라는 것이다. 세계는 점점 질문을 통한 협력과 소통의 공부를 지향하고 있는데 이는 동양과 서양 모두 같다.  미국동부에 위치힌 사립고등학교 필립스 엣기터 아카데미의 하크니스 테이블, 옥스퍼드대학교의 1:1 튜터 시스템과 옥스퍼드유니언, 꿈의 연구소 MIT 미디어랩 에서 보여준 소통과 교류의 공부는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공부에 접근해야하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공부는 끝이 없다. 홀로하는 공부보다는 타인과 더블어 소통하고 협력하는 것이 앞으로는 더 필요하지 않을까? 한권의 책 속에서 세계 각국의 학생들을, 수메르인의 공부법에서 중국의 과거 제도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공부의 현장을 만날 수 있었고, 유대인의 역사와 유대인들이 공부로 성공할 수밖에 없는 이유까지 알수 있었다. 공부는 내게 앞으로도 뗄레야 뗄수 없는 소중한 친구이며, 앞으로 내가 더 나아갈 수 있고,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는 원동력이 될것이라 믿는다. 더 이상 동양에서도 공부는 성공의 도구로 여겨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공부에 대한 동서양의 시각차 속에서 진정한 공부가 무엇인가를 깨달아가는 그 시간이 참 소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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