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중 이맘때를 좋아하시나요"

"그래요. 아주 많이."

"나도 좋아해요. 10월, 11월 최고죠. 하지만 가장 슬픈 때이기도 해요."

"슬퍼요? 왜죠?"

"왜냐면, 겨울이 오고 있으니까요"

 

주찬권이 세상을 떠났다.

들국화 꽃잎이 하나 또 지고.

겨울이 오고 있다.

 

 

 

 

이 책 어디에도 영웅은 없다. 극적인 반전도 없다. 그저 실패의 기록이 있을 뿐. 그래도 묵묵히 제 할 일을 하는 사람들과 내려가기 위해서 올라가는 사람들이 있다.

오늘 들국화의 27년만의 새앨범이 발표된다는 소식을 들었고. 그 중 첫 곡 '걷고, 걷고'가 발표되었다. 인생은 苦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이런 음악을 들을 때면 그래 이리 살고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하며 마음을 달랜다.  

 

 

 

매카시를 읽을 때마다 이런 잔혹한 운명이 나를 비켜가 주는 것에 감사하게된다. 아니나 다를까.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시거가 한 말 처럼 지금 나의 운명은 오늘 아침 이를 닦을 때 이미 결정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운명의 잔혹함을 받아들이고 나면 오히려 괴로움이 좀 덜해질지도 모른다. 이건 내탓도 네탓도 그 누군가의 탓도 아니니 그 누군가를 탓하느라 소모되는 괴로움에서는 좀 벗어날 수 있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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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회를 보면서 부터 가능한 거리를 두려고 했다. 그의 전작들을 비춰볼때 가슴으로 보면 얼마나 아플지 알기에.. 그래서 화면의 아름다움, 송혜교의 숨막힐듯한 표정, 조인성의 아우라가 아름답다고.. 멋지다며... 머리로 보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15회에서 결국 그 다짐이 무너지고 말았다.

영이가 수의 방에서 그의 스킨 냄새를 기억하고, 그의 얼굴을 만졌던 손끝의 기억과 그와 함께 만졌던 책의 촉감을 기억하는 장면에서 나도 무너졌다.  

 

사람에 대한 기억은 시간이 흐르면 서서히 잊혀져간다. 먼저 시각적인 모습이 가장 먼저 희미해진다. 그의 얼굴이 어땠었는지 점점 기억이 안난다. 그다음은 청각. 그의 목소리가 어땠더라.. 그것도 잊혀져간다. 하지만 후각과 촉각은 내몸에 새겨진듯이 잊혀지지 않는다.

영이가 수를 기억하는 그 장면에서 나의 코끝에서도 그의 스킨 냄새가 났다. 내 손끝에 그의 입술의 촉감이 되살아났다.

노희경은 다시 한번 나를 울리고야 말았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소감은 아 짜증나. 였다. 토비가 만들어내는(?) 이 소동이 다 사랑하는 제니를 되찾기 위한 것이라니 너무 이기적이지 않은가..

물론 작가는 결론부분에 토비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한 장치를 심어놓기는 했으나 그걸로 토비의 행동이 이해되는 것은 아니었다.

제목은 끝까지 연기하라가 아니라 끝까지 참고 읽어라로 바뀌어야 할 듯.

 

 

 

 

 이 소설 속의 인물들 중 누구하나 선한 인물은 없고 연민이 가는 인물도 없다. 생존만이 절대선인 세계 속에서 왜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를 묻는 인물도 없다. 생존을 위해서는 그 어떤 일도 저지르는 인물들의 의식 밑바닥 저편에 그래도 남아 있는 정념(사랑이라는 말도 사치스럽다)이 그나마 이 피바다 속에서 그들이 인간이었음을 느끼게 해주는 부분이다. 암튼 이보다 더 끈적끈적하고 뜨겁고 어두운 느와르물은 다시 만나기 힘들듯 하다.

 

p.s. 어제 영화 '감시자'들을 보다가 정우성이 분한 그림자와 구두방 주인의 관계가 류젠이와 양웨이민을 생각나게 했다. 그림자의 과거가 나오지는 않았으나 구두방 주인의 대사에서 그의 어린시절이 어떠했을지 어떻게 킬러로 키워졌을지 대충 짐작이 갔다. 불야성이 우리나라에서 영화화 된다면 정우성이 딱일 듯. 일본에서는 금성무가 그 역을 했었다고 한다.

 

 

유사 타임슬립을 통한 사랑하는 사람 구하기를 다룬다는 점에서는 요즘 가장 재밌게 본 드라마 '나인'과 전세계적인 스케일의 음모를 다룬다는 점에서는 '제노사이드'의 결합이라 기대가 컸다. 

초반부의 긴장감과 스피드가 50여페이지 지난 후 급속하게 사라지면서 용두사미가 된 듯한 이야기다. 악마개구리의 음모가 조금 더 밀도 있게 다뤄졌으면 했고, 가야와 엘리스의 캐릭터가 조금 더 입체감있게 다뤄졌더라면(소설 속의 그들의 사랑은 너무 이상적으로만 그려져 있다) 그들의 사랑이 조금 더 공감이 갈 듯 싶었다.

제노사이드의 스케일과 탄탄한 구성에는 55% 부족, 나인의 비장함과 애틋함에는 60%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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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 다시 쿤데라다..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1988년 민음사에서 출간한 양장본이다. 서울대 송동준선생이 번역하셨다. 지금은 물론 절판이다. (민음사에 이렇게 새롭게 멋진 표지로 나왔지만 이 책은 그냥 인테리어 소장용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1991년 출간된 18쇄본이다.(그렇다. 당시에는 이런책들을 18쇄본도 찍었더랬다. 내가 산 이후에도 최소한 10쇄는 더 찍었으리라... 그만큼 당시에는 사람들의 갈망이 컸더랬다. 역사를 규정하는 것은 무엇인지.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매년 한번씩은 다시 읽게 되고 그때마다 밑줄 그으며 읽었다.  이 책 만큼은 밑줄을 긋는다. (난 책등이 손상될까봐 책을 엎어놓지도 못하고 책장에 꽂혀 있는 책 위에 먼지가 앉을까봐 그위에 책을 또 얹어 놓는 책덕후다.) 출판된지 20년이 넘었으니 종이는 누렿고 표지는 시커매졌다. 읽을 때마다 다른 곳에 밑줄을 그으며 읽다 보니 이제 거의 모든 페이지가 밑줄 투성이가 되었다.

올해의 밑줄은 이거다..

"영원한 재귀, 영원히 사라져 가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삶은 하나의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 그것은 아무런 무게도 없는 하찮은 것이며, 처음부터 죽은 것과 다름 없다는 것을."

"만약 프랑스 혁명이 영원히 반복되도록 되어 있다면 프랑스의 역사 기술은 로베르스피에르를 그토록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의 역사 기술은 반복되지 않은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피비린내 나던 혁명의 세월은 그야말로, 다양한 이론 및 토론으로 변했다. 그것은 깃털보다 더 가볍게 되어 아무에게도 두려움을 불어넣어 주지 못한다"

그렇다. 사람들은 유신이... 광주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 하나의 그림자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것이 두렵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기에 그런 선택들이 가능햇겠지...

 

 

우울할 때는 그냥 우울한 것에 빠져드는 것이 좋다. 몸과 마음이 추우니 북구에서 온 소설 렛미인이 좋겠다 싶었다. 이 책의 주인공은 물론 뱀파이어 소녀(?)와 왕따 소년이고, 이들의 아름다운 우정(?)과 소외된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데 내가 감정이입한 사람은 뱀파이어가 되어버렸지만 그렇게 사느니 차라리 산화해버린 '비르기니아'였다. 

 

"사람을 가슴에 품으면 상처를 입게 되는 법. 바르기니아가 관계를 길게 이어가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사람을 가숨에 품지마. 그들이 들어오면 상처받을 일도 많아져. 너 자신 외에 너를 위로해줄 사람은 없어. 너 자신만의 문제라면 고통스러워도 그럭저럭 살 수 있을거야. 희망을 품지 않는 한 괜찮을거야.

그러나 라케와 함께 하면서 그녀는 희망에 매달리게 되었다-1권 p.338"

누군가를 자신의 삶에 끼어들게 한다는 것은 얼마나 잔인하면서 달콤한 것인지... 그 달콤함에 이끌려 잠시 희망을 품기도 하지만 그건 아주 잠시의 미혹일 뿐일 경우가 많다..

 

 

"인류는 이제 그 소명을 다했다. 미래의 인류에게 넘겨주어야 한다" 어찌 보면 의문을 품는자인 과학자들이 인간에 대해 가장 비관주의자들일 것이다.

재미난 모험소설로도 인류 생존에 대한 심각한 철학서로도 읽힐 수 있는 흥미있는 책읽기였다.

 

 

 

 

 

 

내가 가장 열독하는 장르중에 하나인 종말소설.. 좋아라 한다.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건 제노사이드에 나오는 번즈대통령 때문이다. 겉으로는 우월한 척해도 속은 피해망상주의자 또는 열등감 가득한 한사람의 독재자에게 인류의 미래가 맡겨져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준 캐릭터다. 아. 번즈와 부시는 동일 캐릭터일 듯하고.. 만약 번즈가 '뉴클리어 풋볼'의 버튼을 눌렀다면 스완송에 나오는 세상을 펼쳐졌을 것이다.

스완송을 읽으면서 놀라는 것들 중 하나는 권당 약 700페이지의 어마무지한 두께이고, 읽다보면 어느새 훌쩍 줄어들어있는 페이지가 또 하나다. 1권을 일요일 오전부터 읽기 시작해서, 중간 중간 힐링북(이책의 힐링북은 "서점숲의 아카리")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후쯤에는 다 읽어버렸다. 아까와라... 2권을 읽기 시작하면 월요일 출근에 지장이 있을 듯해서 일단 스톱. 이렇게 잘 읽히는 책도 드물것이다.

내가 종말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종말소설에 꼭 등장해주시는 슈퍼마켓 장면 때문이다. 풍요로움이 몸에 베어 있는 현대인들이 문명이 파괴되어 엄청난 궁핍을 경험한 뒤 슈퍼마켓이라는 어마무지한 보물창고를  마주쳤을 때의 감격을 대리 만족하게 된다고나 할까... 그리고 그 상황에서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를 나 나름대로 리스팅해보는 즐거움도 있고.. ㅎㅎ. 암튼 스완송은 내용 전개는 스티븐킹의 '스탠드'와 거의 유사하다.  스탠드는 선과악의 대결이 너무 비관적이고 섬찟해서 5권쯤 읽다가 포기했었는데, 스완송은 따뜻한 희망의 환타지를 선사해 줘서 읽기 편했다.

 

나치, 세계와 함께 자살하는 것(p.158) "자신의 죽음의 순간과 모든 타자, 모든 세계의 죽음의 순간과 일치시키는 것" "근거가 자신이니까요. 근거는 텍스트라는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되지 않는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있으니까요. 거기에서 대량의 죽음을 이끌어 낼수도 있습니다. ... 대량의 무익한 죽음을.. 자신의 죽음과 세계의 죽음을 구별할 수 없는 것......"

 

흠...스완송의 미친 대통령의 행동은 이것으로 설명될 수 있을 거 같다.  

나의 종말과 세상의 종말을 동일시 하다니.. 이건 엄청난 자아도취일뿐이라는 것이다.

"현대문학은 자신이 살고 있는 동안 뭔가 결정적인 몰락이나 종언이 일어나주지 않으면 곤란하다는 유치한 사고에 대한 투쟁으로 조직되어 왔습니다. 문학이, 위대한 모더니즘 문학이 달성이 이토록 병든 사고의 형식에 대하 얼마나 끈질길 저항이었는지.." (p.167)

 

그리고.. 다시...

 

"현대문학의 항전, 끝나지 않는 '피네간의 경야'(p.164). 제임스 조이스의 '피네간의 경야'라는 제목은 무슨 뜻일까요...  피네간에 함의되어 있는 'Finn-Again'은 "끝, 다시'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또 끝이 왔지만 다시 깨어난다는 것입니다. 또다시 찾아온 종말, 하지만 끝날 것 같아도 끝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스완송은 피네간과 연결되어 있는 듯...

 

 

그러다가 불현듯 세상의 끝에서라면, "쇼에게 세상을 물어야지'라며 이 책을 펼쳐들었다. 책껍질을 벗기니 멋진 푸른 빛의 양장본과 쇼의 초상화가 나온다. 최근에 본 서적 중 단연 멋진 디자인이다.

'자본주의의 해악은 오히려 국민윤리, 애국심, 자선활동, 기업, 진보와 같은 온갖 사회적 가치가 야기한 부작용이다.' "즉 자본주의는 선한 의도에서 비롯된 지옥이라고나 할까"라는 부분에서 뒤통수를 한대 맞은 듯한 느낌.. 난 지금까지 이러한 가치들이 자본주의의 결함을 고치기 위함인 줄 알았는데.. 그 반대라니... 이래서 난 또 이 책을 좋아하게 될 것 같다...

 

 

Book list가 너무 무거워... 이럴때는 만화책이다.

 

만능 집사 흑집사. 표지가 멋져서 언제든 읽어봐야겠다 했는데. 중고책으로 일단 5권까지 구매했다. 스토리는 생각보다 그리 매력적이지는 않은데 표지와 깨알같은 속표지가 너무 재미나다. ^^

 

 

 

'서점숲의 아카리'는 스완송에서 주인공이 위험에 닥칠때마다 힐링북으로 읽엇다.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한번쯤은 꿈꿨을 서점주인 또는 서점 종업원. 단순히 책만 파는 곳인 줄 알았는데 서점 직원이 하는 일이 이렇게 많구나. 새삼 놀랐다는.. 암튼 그동안 감히 엄두조차 못내던 '전쟁과 평화'와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도전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 이 만화책을 읽은 가장 큰 수확이다.

 

 

마구잡이로 책을 읽는 듯하지만 나름 이러한 의식의 흐름속에서 선택되어 지금 읽고 있는 책들이다. 5권 정도는 동시에 읽는 나의 습관은 한번 몰입하면 헤어나오기 어려운 성격이라 여러권을 읽음으로써 몰입을 거부하려는 나름의 자구책이 아닐까 생각된다.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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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 다가오고 우울한 날이 계속된다. 대선 판도는 안개속이고 과거 프레임에 갇힌 콘크리트 지지율 45%는 도무지 꿈쩍을 할 줄 모른다. 연말만 되면 위촉직 연구원들이 살생부를 받고 떠나가고 남아 있는 자의 미안함과 죄책감에 또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다. 누군가는 내가 힘이 없어서 미안하다며 쫒겨나가는 자를 울먹이게 만든다. 지난 오년간 매년 반복이다.

 

최근에는 그야말로 이 책 저 책 손에 잡히는 대로 마구잡이로 읽었다. 리스트를 만들고 보니 SF가 많다. 우울한 현실세계를 외면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겠지.

 

"75세 생일에 나는 두 가지 일을 했다. 아내의 무덤에 들렀고, 군에 입대했다."

너무나 매력적인 문장으로 시작되는

존 스칼지의 3부작이다.

삶이란 무엇인지. 인간을 인간이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새로운 발상도 재미있고.. 

미래를 낙관하며 기술에 의해 새로운 인간의 탄생을 기반으로 하는 Trans-humanism 적인 배경을 깔고 있으나 결국 인간적인 인간으로 돌아오는 네오휴머니즘으로 시리즈를 마감하고 있다.

 

 극단적인 허무주의에 빠져들때는 하드보일드 누아르 작품들이 도움이 된다. 붉은 수확은 제목 그대로 피가 너무 많이 튀고, 런던 대로에서는 책읽는 터프가이라는 양면성에 매혹된다. 현실성이 결여된 극도의 데카당한 이야기지만 묘하게 매력적인 전개였다. 아주 적절한 비유를 겯들인 문장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물론 원작을 먼저보고 영화를 봤는데 설정은 달랐지만 영화는 또 영화대로 내가 좋아하는 키이라 나이틀리와 콜린 파렐의 앙상블이 괜찮았다. 아버지들의 죄에서는 로렌스블록을 오랜만에 읽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약간은 안이한 작품의 단점을 덮어준다.

 

 

두권 다 어릴적 트라우마가 만들어낸 살인자들의 이야기라서 시대 배경도 다르고 작가도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냥 한권의 책을 읽은 것 같은 인상을 갖게 한다.  게다가 책 표지에서의 느낌도 비슷하다.  

다음 시리즈에 주인공들이 어떤 활약을 펼칠지 궁금하게 만든다.

ps. 회사에서 틈틈이 썼던 글인데 집에 가서 보니 내가 읽은 책은 <라스트 차일드>가 아니라 <차일드 44>였다. 읽은 책 제목도 모르고 헐... 그래도 붙여 놓고 보니 표지의 느낌은 여전히 비슷하다.  이번 주말에는 <라스트 차일드> 읽어봐야겠다. ㅎㅎ

 

 

하루키의 에세이는 시대를 초월해서 즐겁게 읽을 수 있다. 80년대 씌여진 글들인데도 전혀 고루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건 좀 다른 얘긴데. 나는 하루키 에세이를 읽을 때마다 뜨거운 일본식 고로케가 먹고 싶어진다.

 

 

 

 

 

 

 

아마도 당분간은 어슐러 르귄에 빠져 있을 듯하다. 헤인 시리즈의 첫권 로캐넌의 세계. 단편 셈레이의 목걸이에서 시작된 이 시리즈가 나를 얼마나 기쁘게 할런지 생각만 해도 즐겁다.

"이토록 멀리 떨어진 세계들 사이에서 어떻게 사실과 전설을 구분할 수 있을까"로 시작되는 첫 문장에서 "로캐넌의 세계라고 명명되어진 것을 그는 알지 못햇다."는 마지막 페이지까지 은유의 세계를 상상하게 만들면서 여운이 남는 작품이다.

 

 

 

 

 

도대체 왜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들의 당을 선호하는지 답답한 마음에 읽었던 코끼리는 생각하지마는 그 이유는 알게되었으나 고쳐질 것 같지 않은 현실에 더 답답함을 느끼게 됐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이 아닌 가치관에 따라 투표한다는 거. 가치관은 프레임이라는거. 결국은 프레임의 문제라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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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11-29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엄마께 며칠전에 여쭤봤었는데 말입니다. 엄마, 엄마는 가난한데 대체 왜 부자들 편을 뽑는거야? 라고 말이지요. [코끼리는 생각하지마]를 읽어봐야겠네요. 그러면 우리 엄마와 아빠가 왜 그러시는지 조금은 알게 되려나요.

one fine day 2012-11-29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다락방님.. 저를 즐찾하고 계셨군요.. -.-;;; 왠지 짝사랑하던 사람에게서 쪽지를 받은 기분 ㅎㅎㅎ. 코끼리 생각하지마 꼭 읽어보시길 강추합니다. 그동안 답답했던 여러가지가 분명해진다고나 할까..
 

 엄마가 갑자기 입원을 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고열. 2주일간의 온갖 검사 끝에 결국 나온 진단명은 "Fever of Unknown Origins". 한자로 불명열. 임파선 부근에 염증이 있다는데 그 원인을 알고자 하면 조직검사를 해야 한단다. 다행이 고농도의 항생제 덕분에 열흘만에 열은 잡히고 조직검사는 안하기로 했다. 팔순 넘은 연세에 그런 고통까지 드리고 싶지는 않았다.

병원에서 엄마를 간호하면 읽은 책이 공교롭게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였다. 간호사들이 오며가며 내가 읽고 있는 책 제목을 보고 무슨 상상을 했을지는 모르겠다. 노모를 간호하는 딸이 읽고 있는 책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니..

이 작품은 피가 이러저리 튀는 잔인한 서부활극의 외피를 보이고 있지만 그 내면은 피할 수 없는 인과의 운명이 아닐까. 모스가 돈가방을 집어 들었을 때 그 행동이 자신을 죽여버릴 것이라는 예감하면서도 그 길을 가고야 만다.

인의 과에 대해 운명의 집행자 시거는 말한다. "너는 어제 몇 시에 일어났는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거야. 하지만 중요한 건 어제야. 다른 건 중요치 않아. 그런 하루하루가 모여서 너의 인생이 되지" 무슨일이 벌어지면 사람들은 한탄식을 한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는 거야.. 하지만 어느날 아침 내가 한 기억도 나지 않는 어떤 사소한 행동이 지금의 이런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흠.. 요즘의 난 운명론자가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지금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냥 받아들이기로 한다.  

암튼 역시나 매카시의 결정론적인 문장은 너무나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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