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다시 쿤데라다..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1988년 민음사에서 출간한 양장본이다. 서울대 송동준선생이 번역하셨다. 지금은 물론 절판이다. (민음사에 이렇게 새롭게 멋진 표지로 나왔지만 이 책은 그냥 인테리어 소장용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1991년 출간된 18쇄본이다.(그렇다. 당시에는 이런책들을 18쇄본도 찍었더랬다. 내가 산 이후에도 최소한 10쇄는 더 찍었으리라... 그만큼 당시에는 사람들의 갈망이 컸더랬다. 역사를 규정하는 것은 무엇인지.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매년 한번씩은 다시 읽게 되고 그때마다 밑줄 그으며 읽었다. 이 책 만큼은 밑줄을 긋는다. (난 책등이 손상될까봐 책을 엎어놓지도 못하고 책장에 꽂혀 있는 책 위에 먼지가 앉을까봐 그위에 책을 또 얹어 놓는 책덕후다.) 출판된지 20년이 넘었으니 종이는 누렿고 표지는 시커매졌다. 읽을 때마다 다른 곳에 밑줄을 그으며 읽다 보니 이제 거의 모든 페이지가 밑줄 투성이가 되었다.
올해의 밑줄은 이거다..
"영원한 재귀, 영원히 사라져 가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삶은 하나의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 그것은 아무런 무게도 없는 하찮은 것이며, 처음부터 죽은 것과 다름 없다는 것을."
"만약 프랑스 혁명이 영원히 반복되도록 되어 있다면 프랑스의 역사 기술은 로베르스피에르를 그토록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의 역사 기술은 반복되지 않은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피비린내 나던 혁명의 세월은 그야말로, 다양한 이론 및 토론으로 변했다. 그것은 깃털보다 더 가볍게 되어 아무에게도 두려움을 불어넣어 주지 못한다"
그렇다. 사람들은 유신이... 광주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 하나의 그림자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것이 두렵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기에 그런 선택들이 가능햇겠지...
우울할 때는 그냥 우울한 것에 빠져드는 것이 좋다. 몸과 마음이 추우니 북구에서 온 소설 렛미인이 좋겠다 싶었다. 이 책의 주인공은 물론 뱀파이어 소녀(?)와 왕따 소년이고, 이들의 아름다운 우정(?)과 소외된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데 내가 감정이입한 사람은 뱀파이어가 되어버렸지만 그렇게 사느니 차라리 산화해버린 '비르기니아'였다.
"사람을 가슴에 품으면 상처를 입게 되는 법. 바르기니아가 관계를 길게 이어가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사람을 가숨에 품지마. 그들이 들어오면 상처받을 일도 많아져. 너 자신 외에 너를 위로해줄 사람은 없어. 너 자신만의 문제라면 고통스러워도 그럭저럭 살 수 있을거야. 희망을 품지 않는 한 괜찮을거야.
그러나 라케와 함께 하면서 그녀는 희망에 매달리게 되었다-1권 p.338"
누군가를 자신의 삶에 끼어들게 한다는 것은 얼마나 잔인하면서 달콤한 것인지... 그 달콤함에 이끌려 잠시 희망을 품기도 하지만 그건 아주 잠시의 미혹일 뿐일 경우가 많다..
"인류는 이제 그 소명을 다했다. 미래의 인류에게 넘겨주어야 한다" 어찌 보면 의문을 품는자인 과학자들이 인간에 대해 가장 비관주의자들일 것이다.
재미난 모험소설로도 인류 생존에 대한 심각한 철학서로도 읽힐 수 있는 흥미있는 책읽기였다.
내가 가장 열독하는 장르중에 하나인 종말소설.. 좋아라 한다.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건 제노사이드에 나오는 번즈대통령 때문이다. 겉으로는 우월한 척해도 속은 피해망상주의자 또는 열등감 가득한 한사람의 독재자에게 인류의 미래가 맡겨져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준 캐릭터다. 아. 번즈와 부시는 동일 캐릭터일 듯하고.. 만약 번즈가 '뉴클리어 풋볼'의 버튼을 눌렀다면 스완송에 나오는 세상을 펼쳐졌을 것이다.
스완송을 읽으면서 놀라는 것들 중 하나는 권당 약 700페이지의 어마무지한 두께이고, 읽다보면 어느새 훌쩍 줄어들어있는 페이지가 또 하나다. 1권을 일요일 오전부터 읽기 시작해서, 중간 중간 힐링북(이책의 힐링북은 "서점숲의 아카리")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후쯤에는 다 읽어버렸다. 아까와라... 2권을 읽기 시작하면 월요일 출근에 지장이 있을 듯해서 일단 스톱. 이렇게 잘 읽히는 책도 드물것이다.
내가 종말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종말소설에 꼭 등장해주시는 슈퍼마켓 장면 때문이다. 풍요로움이 몸에 베어 있는 현대인들이 문명이 파괴되어 엄청난 궁핍을 경험한 뒤 슈퍼마켓이라는 어마무지한 보물창고를 마주쳤을 때의 감격을 대리 만족하게 된다고나 할까... 그리고 그 상황에서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를 나 나름대로 리스팅해보는 즐거움도 있고.. ㅎㅎ. 암튼 스완송은 내용 전개는 스티븐킹의 '스탠드'와 거의 유사하다. 스탠드는 선과악의 대결이 너무 비관적이고 섬찟해서 5권쯤 읽다가 포기했었는데, 스완송은 따뜻한 희망의 환타지를 선사해 줘서 읽기 편했다.
나치, 세계와 함께 자살하는 것(p.158) "자신의 죽음의 순간과 모든 타자, 모든 세계의 죽음의 순간과 일치시키는 것" "근거가 자신이니까요. 근거는 텍스트라는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되지 않는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있으니까요. 거기에서 대량의 죽음을 이끌어 낼수도 있습니다. ... 대량의 무익한 죽음을.. 자신의 죽음과 세계의 죽음을 구별할 수 없는 것......"
흠...스완송의 미친 대통령의 행동은 이것으로 설명될 수 있을 거 같다.
나의 종말과 세상의 종말을 동일시 하다니.. 이건 엄청난 자아도취일뿐이라는 것이다.
"현대문학은 자신이 살고 있는 동안 뭔가 결정적인 몰락이나 종언이 일어나주지 않으면 곤란하다는 유치한 사고에 대한 투쟁으로 조직되어 왔습니다. 문학이, 위대한 모더니즘 문학이 달성이 이토록 병든 사고의 형식에 대하 얼마나 끈질길 저항이었는지.." (p.167)
그리고.. 다시...
"현대문학의 항전, 끝나지 않는 '피네간의 경야'(p.164). 제임스 조이스의 '피네간의 경야'라는 제목은 무슨 뜻일까요... 피네간에 함의되어 있는 'Finn-Again'은 "끝, 다시'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또 끝이 왔지만 다시 깨어난다는 것입니다. 또다시 찾아온 종말, 하지만 끝날 것 같아도 끝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스완송은 피네간과 연결되어 있는 듯...
그러다가 불현듯 세상의 끝에서라면, "쇼에게 세상을 물어야지'라며 이 책을 펼쳐들었다. 책껍질을 벗기니 멋진 푸른 빛의 양장본과 쇼의 초상화가 나온다. 최근에 본 서적 중 단연 멋진 디자인이다.
'자본주의의 해악은 오히려 국민윤리, 애국심, 자선활동, 기업, 진보와 같은 온갖 사회적 가치가 야기한 부작용이다.' "즉 자본주의는 선한 의도에서 비롯된 지옥이라고나 할까"라는 부분에서 뒤통수를 한대 맞은 듯한 느낌.. 난 지금까지 이러한 가치들이 자본주의의 결함을 고치기 위함인 줄 알았는데.. 그 반대라니... 이래서 난 또 이 책을 좋아하게 될 것 같다...
Book list가 너무 무거워... 이럴때는 만화책이다.
만능 집사 흑집사. 표지가 멋져서 언제든 읽어봐야겠다 했는데. 중고책으로 일단 5권까지 구매했다. 스토리는 생각보다 그리 매력적이지는 않은데 표지와 깨알같은 속표지가 너무 재미나다. ^^
'서점숲의 아카리'는 스완송에서 주인공이 위험에 닥칠때마다 힐링북으로 읽엇다.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한번쯤은 꿈꿨을 서점주인 또는 서점 종업원. 단순히 책만 파는 곳인 줄 알았는데 서점 직원이 하는 일이 이렇게 많구나. 새삼 놀랐다는.. 암튼 그동안 감히 엄두조차 못내던 '전쟁과 평화'와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도전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 이 만화책을 읽은 가장 큰 수확이다.
마구잡이로 책을 읽는 듯하지만 나름 이러한 의식의 흐름속에서 선택되어 지금 읽고 있는 책들이다. 5권 정도는 동시에 읽는 나의 습관은 한번 몰입하면 헤어나오기 어려운 성격이라 여러권을 읽음으로써 몰입을 거부하려는 나름의 자구책이 아닐까 생각된다.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