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회를 보면서 부터 가능한 거리를 두려고 했다. 그의 전작들을 비춰볼때 가슴으로 보면 얼마나 아플지 알기에.. 그래서 화면의 아름다움, 송혜교의 숨막힐듯한 표정, 조인성의 아우라가 아름답다고.. 멋지다며... 머리로 보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15회에서 결국 그 다짐이 무너지고 말았다.

영이가 수의 방에서 그의 스킨 냄새를 기억하고, 그의 얼굴을 만졌던 손끝의 기억과 그와 함께 만졌던 책의 촉감을 기억하는 장면에서 나도 무너졌다.  

 

사람에 대한 기억은 시간이 흐르면 서서히 잊혀져간다. 먼저 시각적인 모습이 가장 먼저 희미해진다. 그의 얼굴이 어땠었는지 점점 기억이 안난다. 그다음은 청각. 그의 목소리가 어땠더라.. 그것도 잊혀져간다. 하지만 후각과 촉각은 내몸에 새겨진듯이 잊혀지지 않는다.

영이가 수를 기억하는 그 장면에서 나의 코끝에서도 그의 스킨 냄새가 났다. 내 손끝에 그의 입술의 촉감이 되살아났다.

노희경은 다시 한번 나를 울리고야 말았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소감은 아 짜증나. 였다. 토비가 만들어내는(?) 이 소동이 다 사랑하는 제니를 되찾기 위한 것이라니 너무 이기적이지 않은가..

물론 작가는 결론부분에 토비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한 장치를 심어놓기는 했으나 그걸로 토비의 행동이 이해되는 것은 아니었다.

제목은 끝까지 연기하라가 아니라 끝까지 참고 읽어라로 바뀌어야 할 듯.

 

 

 

 

 이 소설 속의 인물들 중 누구하나 선한 인물은 없고 연민이 가는 인물도 없다. 생존만이 절대선인 세계 속에서 왜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를 묻는 인물도 없다. 생존을 위해서는 그 어떤 일도 저지르는 인물들의 의식 밑바닥 저편에 그래도 남아 있는 정념(사랑이라는 말도 사치스럽다)이 그나마 이 피바다 속에서 그들이 인간이었음을 느끼게 해주는 부분이다. 암튼 이보다 더 끈적끈적하고 뜨겁고 어두운 느와르물은 다시 만나기 힘들듯 하다.

 

p.s. 어제 영화 '감시자'들을 보다가 정우성이 분한 그림자와 구두방 주인의 관계가 류젠이와 양웨이민을 생각나게 했다. 그림자의 과거가 나오지는 않았으나 구두방 주인의 대사에서 그의 어린시절이 어떠했을지 어떻게 킬러로 키워졌을지 대충 짐작이 갔다. 불야성이 우리나라에서 영화화 된다면 정우성이 딱일 듯. 일본에서는 금성무가 그 역을 했었다고 한다.

 

 

유사 타임슬립을 통한 사랑하는 사람 구하기를 다룬다는 점에서는 요즘 가장 재밌게 본 드라마 '나인'과 전세계적인 스케일의 음모를 다룬다는 점에서는 '제노사이드'의 결합이라 기대가 컸다. 

초반부의 긴장감과 스피드가 50여페이지 지난 후 급속하게 사라지면서 용두사미가 된 듯한 이야기다. 악마개구리의 음모가 조금 더 밀도 있게 다뤄졌으면 했고, 가야와 엘리스의 캐릭터가 조금 더 입체감있게 다뤄졌더라면(소설 속의 그들의 사랑은 너무 이상적으로만 그려져 있다) 그들의 사랑이 조금 더 공감이 갈 듯 싶었다.

제노사이드의 스케일과 탄탄한 구성에는 55% 부족, 나인의 비장함과 애틋함에는 60%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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