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갑자기 입원을 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고열. 2주일간의 온갖 검사 끝에 결국 나온 진단명은 "Fever of Unknown Origins". 한자로 불명열. 임파선 부근에 염증이 있다는데 그 원인을 알고자 하면 조직검사를 해야 한단다. 다행이 고농도의 항생제 덕분에 열흘만에 열은 잡히고 조직검사는 안하기로 했다. 팔순 넘은 연세에 그런 고통까지 드리고 싶지는 않았다.
병원에서 엄마를 간호하면 읽은 책이 공교롭게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였다. 간호사들이 오며가며 내가 읽고 있는 책 제목을 보고 무슨 상상을 했을지는 모르겠다. 노모를 간호하는 딸이 읽고 있는 책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니..
이 작품은 피가 이러저리 튀는 잔인한 서부활극의 외피를 보이고 있지만 그 내면은 피할 수 없는 인과의 운명이 아닐까. 모스가 돈가방을 집어 들었을 때 그 행동이 자신을 죽여버릴 것이라는 예감하면서도 그 길을 가고야 만다.
인의 과에 대해 운명의 집행자 시거는 말한다. "너는 어제 몇 시에 일어났는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거야. 하지만 중요한 건 어제야. 다른 건 중요치 않아. 그런 하루하루가 모여서 너의 인생이 되지" 무슨일이 벌어지면 사람들은 한탄식을 한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는 거야.. 하지만 어느날 아침 내가 한 기억도 나지 않는 어떤 사소한 행동이 지금의 이런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흠.. 요즘의 난 운명론자가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지금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냥 받아들이기로 한다.
암튼 역시나 매카시의 결정론적인 문장은 너무나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