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행위이론에 의하면 "당신은 체포되었습니다" "나는 이 배를 이렇게 명명하노라" 혹은 "약속하겠어" 따위의 서술문은 모두 수행문이다. 발화자가 이 행위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오로지 그 말을 입 밖에 내서 말하는 방법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행위의 경우, 앞으로 어떤 말이 나올지 알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않는다. 결혼식 하객들은 누구나 "이제 이 두 사람은 부부가 되었음을 선언합니다"라는 말이 나올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만, 실제로 목사가 그 말을 할 때까지 결혼의 의식은 성립되지 않는다. 수행문적 언어에서, 말하는 것은 그것을 실행하는 것과 등가인 것이다.
<네 인생의 이야기 / 테드 창>
같은 감독의 영화여서였을까 <듄 2>를 보면서 소설 <네 인생의 이야기>가 계속 생각났던 건. 베네 게서리트와 남부의 예언을 수행하기로 결심한 폴 무아딥 우슬. 넷플릭스 다큐 <나는 신이다>에서였던가 집단생활을 하는 20대 남녀들이 아무 거부 없이 교주가 짝 지워주는 상대와 결혼해서 애 낳고 살던 걸 본 게. 그때 나는 저게 어째 저럴 수 있나 믿어지지가 않았는데, 폴이 폴 무아딥 우슬이 되는 걸 보면서 '아 이거나 그거나 맹신과 복종은 같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구원자 폴 무아딥 우슬을 보면서 마냥 행복해하는 스틸가(하비에르 바르뎀)를 보라. 이제야 나는 사이비종교와 세상 모든 종교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믿으면 행복해 지나니!!! 믿지 않는 자, 의심하는 자 챠니를 보라. 이 영화에서 불안하게 흔들리는 동공을 가진 건, 불행한 건 챠니뿐이다!!!
<듄>에 선예언 후구원이 있다면 나에겐 선계획 후실천이 있다. 나는 나의 교주이자 나의 신도이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에게 예언을 하기 시작했다. 더 정확히는 내 몸에게 예언하고 있다. 소변이 마려워도 '아직 아니야, 난 2시간 30분마다 화장실에 갈 거야, 그러니 버텨!'라든가 '오늘은 저녁에 영화 볼 거니까 졸리면 안 돼. 그러니 버텨!'라든가 '오늘 저녁은 홈트 하는 날이야, 무조건 하는 거야. 약한 마음먹지 마.'라든가 더 나아가서는 '나는 언제 사망할 것인가 음... **살까지 살다 죽자. 그러니 몸 버텨!!' 하고 예언하기 시작했다.
돌고 돌아 라캉. 자기 예언이 곧 근본환상이자 대타자 아니겠는가!
몸의 물리적 요구를 뇌가 지배하는 연습 중! 충동에 따라 행동하는 것보다 충동을 내가 정한 계획된 시점에 충족시키는 것이 쾌감이 더 크다. 전 인류가 도파민에 지배당해서 즉각적인 욕구충족에 중독된 이 시대에 나는 내 계획대로 간다. 마치 빛처럼! 목표점을 정하고 최단시간거리로 나아가는 빛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