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운명이라는 것이 있다면 나는 그 운명에 순응하는 편이다. 운명을 파도에 비유할 수 있다면 잘 단련된 서퍼가 파도를 타고 넘는 것을 성공적으로 운명에 순응한 것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나는 내 의지로 삶의 변화를 추구한다기보단 변화된 상황을 '이것은 기회요, 전화위복이다'고 생각하며 호기롭게 받아들이는 편이다.

최근에 그런 상황 변화 2개가 있었고 나는 상황이 이끄는 대로 따라갔으며 결과적으로 더 나은 생활이 되었다. 

변화1.
회사는 구도심에 위치하고 있다. 회사 앞 도로는 모든 지점에서 좌회전 금지다. 사거리에서도 좌회전은 무조건 금지다. 유턴도 없다. 오직 P턴만 가능하다. 즉 귀찮게 둘러 둘러 다녀야 한다는 것. 회사 앞 메인 도로는 최소 7km 이상이 직진만 가능하다. 그 긴 거리의 중앙선에는 중앙선 분리대가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 사이에 있는 장벽처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분리장벽처럼, 휴전선의 철망처럼 빈 틈 없이(유일한 빈 틈은 횡단보다) 설치되어 있다. 그런데 약 2~3주 전 그 중앙분리대가 뽑히고, 차로가 변경되었다. 왕복 4차로가 왕복 5차로가 되면서 좌회전 대기 차로가 생겼다. 좌회전 신호등이 생겼다. 생긴 이유는 회사 바로 옆 대규모 아파트 단지의 공사가 이제 완료 단계에 있으며 늦여름부터 입주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즉 좌회전을 위한 1차로 추가는 아파트 입주민들을 위한 것. 1차로가 추가되면서 인도는 아파트 쪽으로 밀려났는데 아마도 그 인도가 아파트 소유의 땅일지도 모르겠다. 아님 말고. 
새 아파트 입주가 시작되고 입주민 차량이 많아지면 좌회전 신호 대기가 길어지겠지만 지금은 이 좌회전 신호를 사용하는 차량은 거의 없다. 그래서 나는 이 길로 다니기로 했다. 
새 출근 경로는 기존 출근 경로와는 9할이 다른 길이다. 기존 출근길의 장점은 진출입은 막히지만 일단 진입하고 나면 평균 시속 100으로 주행할 수 있는 자동차 전용길이라는 점, 다만 경로가 길다. 새 경로의 장점은 기존 경로보다 4km 단축된 거리와 어느 시각에 출발해도 절대 막히지 않는다는 것!!!! 기존 경로와 새 경로의 걸리는 시간은 비슷하지만 기존 경로는 어쩔 때는 속수무책으로 정체라서 어쩔 때는 15분 이상 더 걸리기도 하기에, 안정적인 출근 시간을 확보하기에는 새 경로가 훨씬 좋다. 하지만 장점만 있을 거 같은 새 경로의 치명적인 단점은 2가지인데, 2.6km 사이에 과속방지턱이 17개나 있는 있는 도로(?)를 주행해야 한다는 것과 그 길의 끝은 언제나 축축하게 젖어 있어서 그 흙탕물이 차를 더럽힌다는 것이다. 
하지만 회사를 눈앞에 두고도 6~8분 정도 더 걸리는 P턴을 하지 않고 좌회전해서 30초 만에 회사 주차장으로 진입할 수 있다는 것은 예상보다 더 큰 쾌감과 만족감을 주었기에 나는 새 경로를 택했다. 시속 100km로 주행하는 것과 과속방지턱 17개 중에서 과속방지턱 17개를 선택한 것의 충분한 보상이 될 만큼!!

이 새 경로, 더 정확히는 새로 생긴 좌회전이 나에게는 그저 주어진 선물처럼 여겨졌다. 정말 죽으란 법은 없구나 싶을 정도로. 이 길이 선물처럼 주어졌으니 조금만 더 버텨보자, 조금만 더 출근해 보자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변화2.
시력이 매우 매우 나쁘다. 라식수술의 부작용이 두려워 안티라식 카페에 가입하고 모든 부작용을 다 읽어봤다. 이 모든 부작용 알고서도 라식수술이 하고 싶어 진다면 수술을 하자는 생각에서 안티라식 카페에 가입한 것. 
나는 아직도 시력교정수술은 하지 않고 원데이렌즈와 안경을 번갈아 쓰면서 살아가고 있다. 라식수술의 부작용을 감당하는 것보단 안경의 불편함을 감당하는 게 낫다는 결론에서.

평소 안경과 원데이렌즈 착용 비율은 1:1
그랬던 것이 코로나 상황 하에 마스크 의무 착용이 되면서 안경과 원데이 렌즈 비율은 0:1이 되었다. 마스크 의무 착용이 해제되기 전까지 나는 외출할 때는 단 한 번도 안경을 쓰지 않았다. 마스크 틈새로 압축되어 삐져나오는 뜨거운 숨이 안경 렌즈를 뿌옇게 하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내 안경이 뿌옇게 되는 것도 타인의 안경이 뿌옇게 되는 걸 목격하는 것 둘 다 힘들었다. 그 광경이 추했다. 보고 싶지 않았다. 
늘 원데이 렌즈를 끼고 다녔고, 안경은 집에서만 꼈는데 가까운 글자만 봤기에 시력이 떨어졌음을 인지할 기회가 없었다. 어쩌다 잘 안 보이면 '설마 노안?' 하곤 했다. 최근 건강검진을 했는데, 안경을 끼고 시력을 측정했더니 0.5였다. 이 안경은 전국민 코로나 지원금으로 받은 지역화폐로 맞춘 것이었다. 나라에서 받은 용돈으로 이런 것을 할 수 있다니 신기해하면서. 그때도 시력이 약간 떨어져서 안경 도수를 더 높인 거였는데. 
3년이 지난 지금, 시력도 떨어졌겠다, 마스크 안 껴도 되겠다, 새 안경을 맞추기로 했다.  기분 전환으로 테도 바꾸고 싶어서 젠틀몬스터에서 안경을 샀다. 내가 젠틀몬스터를 끼는 이유는 국내 브랜드라서 그런가 한국인의 얼굴뼈(광대와 콧대 사이의 문제)에 잘 맞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

3년 전에 갔던  안경점에 3년 만에 갔다. 나는 학생들 전문으로 지나치게 저렴하게 운영하는 안경점은 가지 않는데, 그런 곳에 내가 원하는 렌즈가 있을 거 같지 않아서이다. 
시력을 측정했다. 역시나 떨어져 있었다. 노안은 아니었다. 
- 렌즈는 어떻게 할까요? 저번에 했던 것과 같은 걸로 할까요? 
- 그거 보다 더 좋은 거로 하고 싶어요.
- 더 좋은 거는 수입 제품으로 1개 있어요. 21만 원이고요. 저번과 같은 건 11만 원이고요.
- 그래요? 안경 맞추러 올 때마다 렌즈가 업그레이드되어 있던데 이번에는 아니네요. 항상 보면 2~3년 전에 제일 비쌌던(좋았던) 렌즈가 두 번째로 좋은 렌즈가 되어 있고 제일 좋은 신상 렌즈가 있던데 그게 아니네요. 가격도 다운되어 있고 하던데. 3년 전에 21만 원이던 렌즈가 주로는 11만 원이 되어 있던데, 이번에는 그대로네요. 그러면 제일 좋은 거 해주세요. 어떤 차이가 있는지 한 번 체험해보고 싶어요. 

그래서 새 테에는 21만 원짜리 제일 좋은 렌즈를, 헌 테(3년 전 젠틀몬스터와 블랙핑크 제니가 콜라보해서 출시한 제니 안경)에는 11만 원짜리 렌즈+제일 짙은 색상추가(선글라스로 사용하려고, 색추가 비용 2만 원)로 주문했다. 안경 렌즈를 주문한 날에는 '괜히 10만 원 호갱 당한 거 아닐까? 큰 기능 차이도 없는데 무조건 제일 좋은 거만 하려는 부자들의 만족을 위해 존재하는 렌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충격 그 자체였다!!!!

근시교정렌즈는 망막에 맺히는 사물의 각도를 좁게 해서 사물을 작게 보이게 한다. 도수가 높을수록 각도는 좁아지고 사물은 더 작게 보인다. 이게 내가 이해한 근시교정 원리다. 그래서 안경을 끼면 내 세계는 축소된다. 한글 11포인트가 9포인트로 보인달까? 32인치 모니터가 30인치로 보인달까? 시력이 더 나빠졌으니 이제 내 세계는 더 축소되겠구나 ㅠ 내 아이폰14 프로는 이제 아이폰 se 사이즈가 되겠구나 흑흑했는데, 21만 원짜리 렌즈는 사물의 크기를 축소하지 않았다!!!!!! 같은 도수의 11만 원짜리 렌즈와 바로 비교할 수 있어서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이다. 두 안경을 번갈아 껴보면서 비교해봤는데 차이는 확실했다. 조금 아쉬운 점이라면 21만 원짜리 렌즈가 좀 더 무겁다는 것 정도. 하지만 축소왜곡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엄청난 장점 앞에서 조금 더 무겁다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감내할 가치가 있다. 나는 축소왜곡이 더 생기는 것이 싫어서 도수를 올리지 않은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좋은 것과 덜 좋은 것 둘 다 체험해 보고 둘 중에서 고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드라마 <더글로리>에서 하도영이 운전기사에 100만 원이 넘는 와인을 주면서 하는 말처럼
"편의점에서 1만 원짜리 와인 사서 마시고 난 후에 이 와인을 마셔봐요. 그러면 이 와인을 마실 줄 아는 사람이 될 테니."
안분지족, 무지가 가져다주는 행복이 정말 행복일까?
분명 세상에는 내가 느끼는 현재의 불편함(축소왜곡 같은)을 해결해주는 것이 있는데, 
그걸 가질 수 있는 능력이 내게 없기에 
궁여지책으로 안분지족하는 태도를 가질 수 밖에 없다면?
영화 <기생충>의 돈이 구김살을 펴 주는 다리미라던 충숙의 대사가 생각났다.


결론.

새 출근 경로가 생긴 것도, 축소왜곡이 없는 렌즈를 맞추게 된 것도 내 의지가 아니었다. 단지 상황을 받아들인 것의 결과였을 뿐이다. 새 출근길은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나에게 아침에 더 늦게 일어나도 되는 상황을 선물해 주었다. 새 안경 렌즈는 비록 가격은 비쌌으나 나에게 축소왜곡이 없는 세상을 선물해 주었다. 원데이 렌즈는 다 좋은데 안구건조를 더 강력하게 느끼게 해 준다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어서 나는 원데이 렌즈와 안경을 1:1로 착용했던 것이다. 치킨반반 같은 느낌으로.

나는 내 의지와 상황이 일치할 때 행동하는 편이다. 의지가 강해도 상황이 별로면 행동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모험이나 도박 따위 하지 않는다는 것.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을 카드 게임에서 내 손에 들어온 패라고 생각하는 습관이 있다. 이 패는 언제 써야 할까? 분명 패의 쓰임이 있을 것이고, 이 패를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는 때가 올 것이다라고.

지금도 나는 나에게 주어진 패들을 유심히 살펴보면서 이것이 무엇을 암시하는 걸까를 궁리하는 중이다. 그리고 그 패들이 일으키는 변화의 대부분을 전화위복으로 생각해 버리는 편이다. 어떤 (나쁜) 상황이 발생하면 그 상황으로 인해 주로는 내 행동이 변하게 되는데, 대체로 그런 식의 행동 변화가 생활을 더 낫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ps.
나의 출근길에 좌회전 차로라는 지름길이 생김으로써 나는 아침잠을 확보하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지름길이라는 선물을 얻어 <더글로리>의 문동은처럼 신나 하는 이때, 나로 인해 지름길 사용을 금지당해 같은 층의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위해서 위층이나 아래층으로 둘러 다녀야 하는 누군가를 떠올린다. "내 눈에 띄지 마. 니가 피해 다녀. 니가 돌아다녀." 그는 그러겠다고 했다. 그는 동선이 꼬이는 것을 누구보다 싫어하는 인간이다. 그런데 그 꼬인 동선을 하루에도 수 차례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분명 괴로울 것이다. 그 꼬인 동선을 이용할 때마다 짜증이 치솟을 것이다. 그 꼬인 동선은 어금니 사이에 낀 콩나물, 눈동자야 착 달라붙은 속눈썹, 손톱 아래 가시 같은 불편함일 것이다. 사소하지만 미치도록 불편한 것. <친절한 금자씨>에서 찾자면 모기에게 발바닥을 물린 것 같은, 가려워서 긁으면 더 가려워 미칠 것 같은 불쾌. 하지만 네 자업자득이다. 그러게 까불지 말았어야지. 
그리고 나는 이 상황은, 이 패는 또 뭔가 하는 생각을 한다. 이건 또 뭔지 지켜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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