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에는 애인과 식탁에 마주 앉아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하다가 1시가 넘어서 잠이 들었고, 다음 날에는 5시 반에 일어났다. 간신히 출근은 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졸음은 파국처럼 밀려왔다. 이른 퇴근을 하고 집에 와서 한숨 잤다. 낮잠 자고 일어나니 17시 반이 지나 있었다. 운동 가지 말까? 라는 충동이 일었으나 강철 같은 의지로 운동도 다녀왔다. 졸리고 피곤한 몸을 질질 끌고 가서 운동을 하는 괴로움보다는 운동을 하지 않았다는 괴로움이 더 크기 때문이다. 금요일에 운동을 해두면 주말 동안에 운동에 대한 걱정 없이 내가 좋아하는 것(책 읽기 또는 OTT 몰아보기)을 할 수 있으니까. 


영화의 전당에도 가야 하는데 일단 이번 주말은 패스. 보고 싶은 영화가 4편이나 개봉했는데... 극장에 가서 영화 2편 볼 시간과 체력이면 집에서는 영화 4편을 볼 수 있다. 드라마의 경우는 에너지가 덜 드니까(왜냐하면 드라마의 경우 1,2화만 파악해두면 나머지 3화부터 마지막 화까지는 자동운행 모드랄까) 최소 6화(6시간)는 볼 수 있다. 

나는 이야기 중독자라서 지금처럼 이야기 섭취가 부족한 상황이 좀 힘겹다. 서사와 인물의 고뇌와 심정과 사연을 세세하게 알고 싶다. 항문의 주름 모양까지 알고 싶은 심정.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게 불가능하다. 주변 인물들은 생존본능에 따라 각자의 보호색을 하고 있고 설령 내가 상대방의 사연과 고뇌를 다 안다 한들 그것에 대해서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또한 다수의 인간들은 자신의 사연과 고뇌를 정확히 인지하지도, 인지했더라도 상대방에게 잘 전달하지도 못한다, 나 역시도. 인간들은 주로 약점을 숨긴다, 나도 마찬가지. 그래서 나는 최대한 허구 속에서 인물을 수집한 후, 현실의 누군가를 봤을 때 허구 인물과 대조작업을 하곤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에게 진상짓을 하는 한 인간을 죽여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어제(금요일) 저녁 운동을 다녀와서 저녁밥을 먹고 뜨거운 물에 샤워를 했다. 저녁밥을 먹을 때 거실 난방을 시작했다. 거실 난방을 하면 도시가스 요금이 생각보다 많이 나와서 오늘처럼 거실에서 30분 이상 머무를 경우에만 켠다. 그전에 일단 다락에서 이런저런 깔개(이불, 담요 같은 넝마주의들)를 가져와 거실을 뒤덮었다. 친환경적인 절약이라기보단 그냥 내 내면의 가난 탓이다. 그래 봤자 최대 10만 원 미만의 절약일 텐데, 이게 왜 아까울까. 디올에서 금부치 하나 덜 사면 몇 년치 난방비 아끼는 돈과 비슷할 텐데. 왜 디올은 아깝지 않고 난방비는 아까울까. 

최소 새벽 1시까지는 드라마 본다는 각오로 소파에 드러누워서 국연수와 최웅의 사연을 봐야지라고 다짐했다. 이번 주 모 팟캐스트에서 우연히 잠시 인용된 어떤 장면에 급 이끌려서 이 드라마를 급 시청하게 되었다. <그해 우리는>!!! 애인은 내가 한드 로코 드라마를 즐겨 보는 것이 정말 의외라고 하지만, 나는 한드 로코 드라마가 좋다. 내가 아무리 현재 연애 중이더라도 어떤 결핍(현실의 애인은 절대 채워줄 수 없는 어떤 욕구)이 있고 그것을 대리실현해주는 것은 한드 로코 드라마의 남주들이다. 이것이 로코 드라마에 남자 작가가 없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잠시만, 그런데 한국에 남자 드라마 작가가 있긴 한가???? 아무튼 자정이 되기도 전에 졸려서 tv를 끄고 방으로 들어가서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9시 반. 이런 늦잠 너무 행복하고 좋다. 예전에는 주말에도 늦잠을 자지 않고 7시 즈음 일어나는 괴력을 발휘했으나 지금은 그냥 다 귀찮다. 늦잠 자고 일어나서 (당연히 세수도 하지 않는다!!!! 이게 핵심!!!!) 부스스한 머리로 주방에 가서 드립 커피 내릴 준비를 한다. 블루투스 스피커에서는 현재 내가 집중하는 노래가 흘러나오면서. 오늘은 뒤늦게 이매진 드레곤스 4집에 꽂혀셔(노래가 이렇게 비장할 일인지) 줄곧 듣는 중. 

드립 커피 도구들을 담은 쟁반을 서재로 가져와서 맥북을 켜고 지금 이 일기를 쓰는 중이다. 그리고 '아, 어젯밤에 애인이 오지 않기로 한 게 신의 한 수였다.'라고 생각하는 중. 애인과 함께 늦잠을 자고 일어나서 세수도 하지 않은 채 식탁에 마주 않아 가벼운 아침을 먹는 것도 좋긴 하지만 난 그런 건 가끔이면 충분한 사람인 것이다. 그리고 다시 한번 확신했다, 나에게 가족이 있어서 주말에 집에 혼자 있을 수 없는 날들이 많았다면 삶은 지금보다  훨씬 더 괴로웠을 것이라는 거. 내가 듣고 싶은 노래를 이어폰이 아닌 스피커로 듣는 것, 내가 보고 싶은 영상을 언제든 거실 tv로 보는 것, 주방 싱크대 속에는 내가 더럽힌 그릇들만 소량 있는 것, 화장실을 혼자 사용하는 것(난 지금도 애인과 화장실을 따로 쓴다. 남이랑 같이 쓰는 거 질색. 그래서 여행을 가면 무조건 내가 먼저 씻는다, 남이 사용한 흔적이 있는 욕실은 정말 싫다...)등 혼자만의 공간에서 타인의 존재에 대한 배려와 조심 없이 일주일 중 이틀 정도를 보내는 것이 나에게는 생존의 필수 조건이라는 것을 애인을 통해서 다시 한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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