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든지 여행할 수 있고 경험할 수 있으며 그 경험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된 세상, 그리고 그걸 산 경험으로 받아들이는 사회. 그런 면에서 지돈씨는 실제 경험이 아닌 텍스트를 모종의 현실로 치환해서 그 격차를 극화하기 때문에 흥미롭다는 식의 이야기였는데 평소에 내가 생각하고 의도했던 바로 그것이었지만 동시에 씁쓸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이제 여행을 가면 안 되는 걸까? 경험을 하면 오히려 얄팍해지는 역설이 여기에 있다.

사람들은 뭔가를 겪고 나면 자신이 그걸 아주 잘 아는 것처럼 군다. 파리를 일주일 여행한 사람보다 석 달 체류하고 온 사람이 더 잘 알고 석 달 체류한 사람보다 유학한 사람이 더 잘 알며 박사과정을 마치고 온 사람보다 그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 더 잘 안다는 식이다. 그러나 그럴 리가 없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정연씨가 나보다 서울을 더 잘 안다고 할 수 없는 것처럼. 중요한 건 어떤 종류의 경험이냐(어떤 서울이냐는 것)는 것이다. 추상적인 의미에서의 경험은 백해무익하다.

(중략)

아무튼 그래서 나는 해외여행에 별 관심이 없다. 해외여행은 경험의 각축장이 되어버린 것 같다.


<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닌 / 정지돈>


최근에는 같은 책을 두 번 읽은 적이 없다. 책을 읽는 속도보다 구입하는 속도가 몇 배로 빠르기 때문. 그런데 나는 이 책을 재독 중이다. 다 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또 읽게 될 줄이야. 그만큼 맘에 들었다. 나는 정지돈과 대화하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의 생각을 그냥 하염없이 듣고 싶다. 물론 계속 들으면 얼마 안가 지겨워질지도 모르지만. 


어느 장소에 있든 귀에 이어폰을 꽂고(내가 좋아하는 노래들이 흘러 나오는) 손에는 책이 쥐어져 있다면 나는 지금 내가 속한 시간과 공간이 만들어 놓은 상황에서 탈출하여 살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우주 공간에 가 있을 수 있다. 스크린 속으로 기어들어 갈 수 있듯이 나는 내가 놓여진 상황에서 기어 나가서 다른 공간으로 갈 수 있다. 


몸은 관성적으로 하는 일을 습관적으로 하고 있지만 머리 속에서는 이미 한 번 읽어서 다 하는 정지돈의 헛소리들이 계속해서 플레이 되고 있다. 오늘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계속해서 책 속 우주에 숨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내일도, 모레도, 계속, 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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