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한 남자와 미친 듯한 사랑'을 하고 있다거나 '누군가와 아주 깊은 관계'에 빠져 있다거나 혹은 과거에 그랬었다고 숨김없이 고백하는 사람을 보면, 나도 내 마음을 털어놓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러나 이야기를 하고 공감에서 느끼는 행복감이 사라지고 나면,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것이었더라도 그렇게 마구 이야기해버린 것을 후회했다. 대화를 나누면서 "맞아요. 나도 그래요. 나도 그런 적이 있어요."하고 남의 말에 맞장구를 치다가도 어느 순간 갑자기 이런 말들이 내 열정의 실상과는 아무 상관없이 쓸모없는 것으로 느껴지는 것이었다. 이 알 수 없는 감정 속에서 무언가가 사라져가고 있었다.

<단순한 열정 / 아니 에르노>


애인이 머물다 가는 날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처음 애인과 사귈 때는 고작 해봐야 일주일에 1박 정도 하는 편이어서 늘 2박을 했으면 좋겠다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1박이 2박이 되고 3박이 되기도 했다. 또는 한 주에 징검다리 식으로 1박을 두 번 하기도 하더니 급기야 이번 주에는 일월, 화수목, 금토일 일정의 숙박이 진행 중이다.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렸지?? 



애인 또한 나처럼 의생활에 굉장히 민감한 부류의 인간인지라 늘 옷을 산더미처럼 챙겨오곤 한다. 처음에는 자신이 입을 옷을 잔뜩 챙겨 와서 다시 잘 포장해서 가져갔다. 슈트의 계절이 오자 슈트케이스는 말그대로 슈트로 가득 찼다. 정장 여러 벌을 챙겨 와서 날마다 바꿔 입으면서 내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애인은 "너는 나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자켓을 입은 나를 좋아하는 게 분명해." 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내 헹거에 애인의 정장이 가지런히 걸려 있는 게 보기 좋아서 옷을 두고 가라고 한 것이 시작이었을까? 지금은 내 옷장 한 켠에 애인의 속옷과 레이어드용 티들이, 헹거에는 불시에 내 집에 왔을 때 갈아입고 옷들이, 신발장에는 여벌의 구두와 운동화가, 손님 화장실에는 여러 가지 애인의 용품들이 놓여있다.  이제 곧 겨울인데 얼죽코 매니아인 애인이 코트들을 어찌 짐싸서 올지 생각만 해도 걱정. 매일의 의상을 챙기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중에 애플워치 충전기까지 신경쓰는 걸 힘들어 하는 애인을 보고(특히 불시에 자러 왔을 때) 급기야 나는 애플워치 충전기를 하나 구입해서 침대 옆 협탁에 놓아두기까지 했다. 이로써 느슨한 우리의 동거(??)가 완성되었다. 


지지난 주말에는 집에 손님이 있어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지 못했다. 지난 주말에도 토요일에는 그마나 아무것도 안하고 시체처럼 널부러져 있다가(정말 이런 시간이 절실했다) 일요일에는 청소, 빨래 따위의 집안일을 했다. 빨리 집안일을 다하고 혼자만의 사색에 빠지리라는 기대를 품었건만 애인이 온다고 해서 또 혼자만의 시간(일기를 쓰고, 일상을 기록하는 등)을 갖지 못했다. 


어제도 애인에게 "피곤하면 안 와도 돼(속마음은 내가 피곤하니 안 와도 돼)."라고 했는데 "무조건 갈 거야." 라고 했다. 같이 해결을 해야 하는 사건(??)이 있긴 하지만 그게 또 이렇게 까지 같이 붙어있어야 할 일인가 싶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인의 요청에 의해 오늘도 그 사건의 연장선에서 같이 있기로 했다. 


내 몸은 1개, 하루는 24시간, 내 체력은 한정적이라는 조건 속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충분히 갖고 싶다. 또한 애인과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다. 이 두 가지 욕망이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처럼 공존한다. 둘 다 충분히 하고 싶다. 지금은 애인과 보내는 시간 쪽으로 시소가 기울어져서 혼자만의 시간이 고픈 상태이긴 하지만. 


서로의 여가 시간을 철저히 희생하는 지금의 관계 방식 대신 사생활을 철저히 보장해주는 방향으로 패러다임을 전화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는 언제 만나는 것이 합당한가?

<보름 이후의 사랑 / 박상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