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가고, 신간 책을 구입하고, 애인을 만나고, 출퇴근을 하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생존을 이어가고 있다. 


화제의 영화 에에올은 완벽하게 내 취향이 아니었다. 무수한 평행우주의 내가 존재한다 한다 하더라도, 설령 그것이 진짜라고 하더라도, 지금 나에게 유일무이한 실존은 2022년 지구에서의 나 자신이기에, 질척대는 유전자적 애정을 싫어하는 인간이라, 비급 아니 씨끕 너드 개그를 좋아하지 않아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가 별로였다. 

김영민(직업 교수)이 작년 연말에 이어서 올해 연말에도 신간 책을 냈다. 미리보기에서 프롤로그를 보고 당장 구매 버튼을 눌렀다. 
인간에게는 희망이 넘친다고, 자신의 선의는 확고하다고, 인생이 허무하지 않다고 해맑게 웃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 인생은 허무하다. 허무는 인간 영혼의 피 냄새 같은 것이어서, 영혼이 있는 한 허무는 아무리 씻어도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다. 인간이 영혼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듯이, 인간은 인생의 허무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 나는 인간의 선의 없이도, 희망 없이도, 의미 없이도, 시간을 조용히 흘려보낼 수 있는 상태를 꿈꾼다.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 김영민>
바로 이 구절이다. 이 문장을 구매했다. 

지난 일요일 회사는 문자, 카톡, 전화로 나의 생사 여부를 조사했고 나는 씹었다. 다음 날인 월요일 공교롭게도 출근하자마자 직장 상사를 만났고, 그는 나를 보자마자 왜 답을 안 했느냐고 농담조로 물었다. 이미 나는 이 점에 대해서 빡이 칠 때로 친 상태라, "내가 죽었으면 살려줄 것도 아니고, 다쳤다면 vip 병실에 입원시켜줄 것도 아니면서 굳이 조사를 하는 건 사생활 침해고, 나이 먹을 대로 먹은 성인이 주말에 어딜 가서 뭘 하든 상관할 일은 아닌 거 같아서 일부러 답 안 했습니다. 어차피 다음 날 아침의 출근여부로 알게 될 텐데 왜 그걸 굳이 일요일 오후에 먼저 알아야 합니까? 지나친 간섭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했다.

나에게는 폭 2.5cm 길이 135cm 정도 되는 검정 타이가 있어서 이번 주 내내 착용하고 다녔다. 애인은 "와 그걸 정말 하고 있네. 넌 역시 도라이야."라고 말했다. 내가 또라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빡침의 표현이라고 해 두는 정도로 해 두자. 보호해 줄 것도, 구조해 줄 것도 아니면서 내 노예가 죽지는 않았는지 내 소중한 재산이 죽지는 않았는지 그 확인이 먼저인 시스템의 졸렬함이 하찮고 같잖음에 내 나름의 애도를 했다고 해 두자.

독실한 기독교인에게 "살면서 주기적으로 이런 사건을 경험하면서까지 내가 살아야 할까요? 태어남에 대해서 회의의 감정이 많이 드는 게 사실이고, 삶은 너무 졸렬하고. 만약 신 또는 조물주가 있다면, 이런 참사를 경험하게 하는 악의가 나는 이해되지 않아요."라고 했더니 몹시 언짢아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이게 내 진심이다. 생사는 단지 러시안 룰렛 게임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던 이번 주였다. 

이번 주말에는 BIFF 때 예매 실패했던(당연히 실패할 줄 알았고, 당연히 개봉할 줄 알았다) <알카라스의 여름>을 볼 예정. 이미 예매해 둠.


p.s. 태어남 자체가 이미 재난이고 참사다. 부디 태어나지 말기를. 부디 존재하지 않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