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방 일지>를 보고 있다. 호감이 가는 인물은 염창희 말곤 딱히 없다. 그리고 제일 싫은 사람은 삼 남매의 엄마인 혜숙이다. 내가 싫어하는 부모상. 내 엄마와도 비슷한 유형. 자식이 불행한 내 인생을 구원해줄 거라고 생각하고 고된 육아를 참고 견뎠는데 구원을 커녕 더 불행하게 하자 자신의 불행을 자식 탓으로 돌리는, 자식 덕 보려고 자식 낳는 전형적인 한국의 부모상. 이것은 축산업자가 자신의 소나 돼지를 "자식 같은 놈들"이라고 하면서 폭우에 떠내려 가는 소를 보고 울부짖는 것과 같은 심리.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어서 그 욕구가 채워지지 않아서 힘겨워하는 삼 남매를 보면서 도대체 사랑이 뭐길래 저러나 싶었다. 사랑의 설렘을 유지하기 위해서 박진우처럼 주기적으로 상대를 바꾸는 것도 참 피곤하고 구차한 일. 인간이 사랑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존재는 자기 자신밖에 없다. 


죽음. 죽음. 죽음. 죽음이 내게 오기 전에 내가 죽음에게 갈 기회가 내게 있을까? <자유 죽음>은 서문만 읽은 상태. 내가 궁금한 것, 장 아메리는 번식을 했을까? 이 사람도 어차피 죽을 인간 같은 걸 이 세상에 존재하게 하는 어리석음을 범했을까? 그게 제일 궁금하다. 자식을 낳은 사람을 신뢰하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왠지 그런 사람들은 아전인수, 그때그때 본인 유리한대로 합리화하고 사는 졸렬한 인간들 같다. 번식하지 않았다면 난 기꺼이 당신을 추앙하겠습니다.


어떤 거창한 이유가 있어서 태어나는 게 아니다. 대체로는 마음이 맞는 두 남녀가 자식을 가지고 싶어서 낳는 것이다. 자궁을 가진 여자의 몸으로 사는 내 입장에서는 그렇다. 내가 낳고 싶으면 지금이라도 낳을 수 있다. 한 인간을 이 구차한 세상에 태어나서 고통받으면서 살게 하는 게 그저 나의 사소한 마음인 것이다. 지금 낳아도 내 부모가 나에게 해 준 것보다 정서적으로, 물질적으로 훨씬 더 잘해 줄 수 있다. 더 좋은 집, 더 좋은 교육을 받게 해 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우선 자식이라는 것이 딱히 갖고 싶지도 않고, 이 세상이 태어나서 한 번 살아볼 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기에 번식은 거절한다. 가치가 없는 이유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드라마 <나의 해방 일지>이다. 출퇴근은 힘들고, 주변 동료들도 별로고, 부모 형제자매도 다 싫고, 늘 갇힌 느낌이고... 한 번도 채워진 적이 없는 그 염미정. 누구나 마음속에 염미정 한 명 정도는 품고 살 것이다. 그 크기는 다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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