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어 우리 중 누구도 240세까지 살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나이까지 살지 못한다고 해서 삶이 덜 잘되어 간다고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군가(적어도 그 사람의 삶의 질이 비교적 좋았다면) 40세에 죽으면 비극적인 일이라 여긴다. 그러나 40세의 죽음이 비극이라면 왜 90세의 죽음이 비극적이지 않아야 하는가? 우리는 우리가 닿을 수 있는 범위 밖에 있는 것은 중대한 좋음이 될 무엇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왜 좋은 삶은 우리가 닿을 수 있는 범위 내에 있음이 틀림없다고 보아야 하는가? 아마도 좋은 삶은 얻기가 불가능한 것일 수도 있다. 어떠한 불편, 고통, 괴로움, 고뇌, 스트레스, 불안, 좌절, 지루함도 없고 90년보다 훨씬 오래 살고 좋음으로 훨씬 가득 찬 삶은 가장 운이 좋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종류의 삶보다 나을 것이 확실하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삶을 그 (불가능한) 규준으로 판단하지 않는가?

(중략)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참을 수 없다고 생각하며, 우리의 삶이 의미 있다고 주장한다.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 / 데이비드 베너타>


자고 일어나면 내 생애 마지막 날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요즘 자주 한다. 지루하다. 이 세상 다수의 사람들이 삶을 애찬 하고 또 애찬 한다고 해도 나는 별로다. 시시하고 재미도 없다. 어차피 건강도 좋지 않으니 딱히 미련도 없다. 그냥 덜 아프다가 죽기나 했으면 하는 게 유일한 소망이다. 하지만 지독히 고통받으며 죽어 가겠지. 고통 없는 안락사 같은 자비가 있을 리 없겠지... 생을 애찬 하는 인간일수록 죽음을 바라는 인간에게 야박할 테니. 니가 감히 생을 거부하고 죽음을 바라? 너 같은 건 지독한 고통 속에서 죽어야 해. 자살하는 사람들이 지독한 고통 속에서 죽어가도록 방치하는 이따위 세상이 뭐가 좋나? 태어남=저주라고 생각하는 나 같은 사람은 그냥 조용히 닥치고 있어야지. 하지만 나는 늘 마음속으로 생각한다. '어차피 고통 속에서 살다가 병들어 죽을건데, 자식 낳는 건 정말 최악이다.'라고...


나는 삶이 아름다고 태어남은 축복이다라고 하는 사람을 보면 어쩔 땐 민영화를 부르짓는 이명박 같은 부류의 인간을 보는 것만 같다. 사는 게 죽는 것보다 못한 지옥같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 다만 자살할 용기가 없어서 그냥 사는 사람도 많아.



생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만족감(행복감)은 난 사양이다. 


<자유 죽음>도 주문했다. 내일 도착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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