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제와 그제 사이에 팟캐스트 책읽아웃에서 <밥을 먹다가 생각이 났어> 작가와의 대화를 들었다. 가수 신승은의 노래 몇몇 곡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 회차가 업데이트되었을 때 조금 듣다가 '아 채식 질린다 질려 듣기 싫다 싫어' 하고 일시정지한 채로 한 달이 지났다. 

지난 주말에는 영화 <오피스>를 봤다. 이 영화의 주인공 이미례는 내가 정말 싫어하는 부류의 사람이다. 복장을 치면서 영화를 봤더니 내가 공포물을 봤는지, 그냥 분통 터지게 소심한 사람을 주제로 한 베스트극장을 봤는지 헷갈렸다.

오늘 아침 여유롭게 별 목적 없이 맥북을 열었다. 갑자기 팟캐스트에서 들은 신승은 책이 생각나서 검색을 하고 미리 보기를 읽던 중, [실제로 영화 오피스 제작 발표회에서]라는 문장을 읽고는 당장 영화<오피스> 출연진을 검색해봤다. 아하! 아오이 유우 닮았다고 생각한 그 배우가 이 책의 공동 저자 중 한 명이었구만.

 

나는 이런 우연이 겹치는 순간을 좋아한다.


그래서 채식 등등에 대한 내 생각을 조금만 써 보기로.

바로 어제 저녁에도 나는 영양보충을 위해서 소의 살코기 부문만 구워서 참기름소금장에 찍어 먹었지.

소고기, 멸치육수 된장국, 죽순볶음, 열무물김치가 나의 저녁상차림이었다. 



2.

2022년을 관통하며 생존해오고 있는 인간으로서 비건지향을 한다는 것은 자기 위로말고는 그 어떤 효과도 소용도 없다고 나는 감히 장담한다. 소용없는 일이란 내일 새벽에 태풍 예보가 있는데 오늘 저녁 손세차를 맡기는 것과 같은 일이다.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사과나무를 심는다는 건 불안이 극대화 되었을 때 평상심을 유지하기 위해서나 효용이 있는 일일 뿐, 미래지향적이라는 관점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아무 소용이 없는 일, 다시 말하면 결과를 내지 못하는 일에는 에너지를 쓰지 않는다.  사람들은 흔히 '성의를 보여라'라고들 한다. 하지만 난 늘 반문한다. 그런 무의미한 성의를 왜 보여야 하죠? 라고! 


비건지향을 택하는 사람들의 주된 계기는 공장식 축산에 대한 반발심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뭐 나는 그랬다. 

공장식 축산업의 규모를 줄이는 것에 비건지향이 어느 정도의 긍정적 효과를 미칠까? 나는 0라고 생각한다. 

나는 살면서 나만큼 마른 사람도, 나만큼 적게 먹는 사람도 본 적이 없다. 어차피 대다수의 사람들은 먹어도 먹어도 허기가 채워지지 않는 좀비처럼 먹어대는데 그게 채식이든 육식이든 잡식이든 뭣이 중한디??? 무엇을 먹느냐보다 얼마나 많이 먹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비건인데 매일 저녁 맥주 1캔을 마신다? 그게 잡식인데 소식하는 나보다 생태적인가?? 나는 먹는 양은 줄이지 않고 단순이 비건만 지향하는 건 자위라고 생각한다. 물론 먹는 양도 많고 잡식하는 사람보다는 낫겠지. 하지만 그게 그렇게 환경적인 큰 차이가 있냐는 말이지? 비건인데 중성화 시킨 반려동물을 키운다? 나는 여기서 또 한 번 분노한다. 왜 다른 동물의 번식권을 니가 결정해? 그거야 말로 가장 반동물적인 행위 아닌가? 그냥 자연에서 번식하게 냅둬. 그게 동물해방이야. 동물해방이 따로 있나? 동물이 동물끼리 자연에서 사냥하고 번식하고 살다 죽는 게 해방이지.



잘 살게 되면 세상의 부가 넘쳐나면 사람들이 음식을 덜 탐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순진한 착각이었다. 심지어 채식주의자도 엄청나게 먹어댄다. 나비 애벌레가 어린 배추를 섬유질 많은 줄기를 빼고는 다 뜯어먹어서 배추를 죽인 광경을 목도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공포로 부르르 떨었다. 육식만 나쁜(??) 줄 알았는데 채식도 나쁘긴(??) 매한가지구나. 라는 깨달음에 머리가 얼얼해진 경험이었다. 넷플릭스에서 동물 다큐를 종종 본다. 그때마다 드는 생각은 도대체 육식 동물은 왜 있는 걸까? 정말 조물주가 있다면 조물주의 정신분석을 좀 해보고 싶다 하는 생각이 늘 든다. 내가 어떤 존재를 만들 능력이 있다면 나는 다른 동물(식물)의 목숨을 담보로 에너지를 섭취하는 존재는 창조하지 않을 텐데... 먹이사슬 혹은 먹이 피라미드 구조로 순환하는 생태계는 너무 잔인하다. 이것을 누군가 의도를 가지고 만들었다고 한다면 그는 찐악마다. 그러니 누가 만들었을 리가 없다. 교회 다니는 사람에게 물어봤다. 하나님은 왜 육식동물을 만들었대요? 너무 잔인한데. 내가 창조 능력이 있는 신이라면 그런 사이코패스 같은 짓은 하지 않을 거 같은데요. 라고 했더니  내 질문에 대해 대답은 않고, 다른 화젯거리로 말문을 열었다. 


채식이든 육식이든 축산업, 농업, 양식어업, 원양어선어업 등을 통해서 식자재를 생산하는 기술집약적인 현대의 방식 아래의 채식과 육식은 둘 다 나쁘고 잔인하다. 자본은 식량 산업에 투자될 것이고 그 투자금을 줄이지 않는 한 공장식 축산이든 공장식 농어업이든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제가 비건인데요, 공장식 축산이 얼마나 나쁘냐면요, 왜 동물권이 중요하냐면요 이런 말 해봤자 "그럼 식물은 안 불쌍해?" 하는 비아냥거리는 대답만 들려 올 뿐이다. 


그것보다는 단도직입적으로 나처럼

"먹는 거 싫어합니다."

라고 말하면 아무도 뭐라 못한다. 먹는 게 싫다는데 뭐라고 하겠는가?

먹기 싫은 걸 왜 억지로 먹어야 하는지?

나는 회식도 안 간다. 왜냐하면 먹는 게 싫어서. 

"회식 메뉴는 고기 아니면 회 둘 줄 하나인데, 그거 둘 다 먹기 싫어서요."

라고 하면 아무도 억지로 회식에 가자고 안 한다. 


음식 먹는 것에 도덕을 들이대는 게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것보단 그냥 취향을 들이대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나는 음식과 도덕을 연결짓는 건 별로고(더 솔직히는 수준 낮다고 본다), 

그냥 먹기 싫으니까 안 먹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살아야 하니까 가끔은 영양섭취를 고기도 위해서는 먹는다.

대신 영양제는 거의 먹지 않는데, 영양제 생산과 고기 생산 둘 중 뭐가 더 환경적으로 나쁜지는 따져봐야 할 일 같다.



나는 매일 마실물을 보온병에 담아서 들고 다닌다. 환경을 위해서는 아니고, 나를 위해서. 회사가 위치한 동네의 상수도원이 더럽기로 소문이 자자한 곳이라. 

회사 사람들은 처음에는 깜짝 놀란다.

"아, 이 동네 상수도 물이 좀 더러워요. 정수기로 걸러도 찝찝해서요. 그리고 생수배달은 문제가, 생수는 페트병 쓰레기가 나오잖아요. 그 쓰레기를 보면 스트레스받기 때문에. 그냥 물을 매일 들고 다녀요.물 부족 국가 아이 같죠?"


이런 비꼼을 해대니 사람들은 아무도 내 앞에서 헛소리를 지껄여대지 않는다.

혹여 그랬다가는 "아니, **님은 자식도 있는데 자식이 없는 나보다 더 환경을 오염시키고 삽니까? 역시 자식이 있는 사람들은 역시 좀 이기적이야." 라는 말을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해버리기에.


아무 생각없이 편한대로 살고 말하는 사람들한테는 나도 보란듯이 대놓고 씨부린다. 이솝우화 햇빛과 바람은 10번 중 1번 정도는 맞지만 9번은 틀리다는 것을 진작에 깨달았기에.


3.

황정은, 신승은, 손수현. 세 비건지향인의 대화를 듣는데 답답하고 또 답답했다.

그렇게 타인을 배려하고 수줍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살다보면

<오피스>의 이미례(고아성) 되는 건 시간문제.


비건지향인들이여 당당하게 비건지향하시길를! 

당신들이 고기중독자들보단 나으니까.

맛있으면 0칼로리 같은 헛소리나 해대는 인간들 보다는 나으니까.

(맛있으면 0칼로리 이말 진짜 싫어한다. 되도 안하는 헛소리는 좀 그만 듣고 살고 싶다.)


식탐도 많고, 번식욕도 강하고, 금전욕도 강한 사람들이 도처에 널렸고

그런 사람들 속에서 식탐, 번식욕, 금전욕도 결핍된 

나라는 사람이

매일 어떤 기분으로 살겠는가?


지옥이지! (드라마<지옥>의 고지가 나에겐 "너는 몇 날 몇 시에 태어난다."로 들렸으니. 하하하.)

좀비지옥!!

먼저 사려고 줄서고 줄서고 줄서고.


저 널리고 널린 멍청이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게 내 숙명이다는 생각으로 산다.


그래서 나는 그 멍청이들 수준에 맞게 단도직입적으로 싫다, 좋다를 분명히 말하는 것이다.

싫다를 명확하게 말하지 않으면 못 알아먹는 사람이 정말 많다.

싫은 걸 에둘러서 소심하게 말하고 살다 보면 <오피스>의 이미례가 되는 것이다. 

칼부림만은 피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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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01 1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6-01 15: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6-01 17: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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