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푸르고 아이들은 자라는 황금 날씨의 시기에 나는 연휴를 맞이하여 연휴가 아니면 기분 좋게 시작을 할 수 없는 책을 읽기로 작심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일상의 잡다함으로 인하여 훌륭한 소설의 도입부가 방해를 받아 그 책의 재미를 침해당하는 것이다. 


모처럼 하드커버 책을 만져서 기분이 좋았고, 종이도 얇고 부드러워서 더 기분이 좋았다. 큰 기대를 하고 펼쳤는데 내 기대를 능가하는 내용이었고, 나는 글자의 소용돌이에 빨려 드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10~20쪽 정도 읽고 나면 뇌가 극도로 피곤해져서 잠이 쏟아지는 것이다!!! 낮잠을 1시간 30분 씩이나 자고도 밤잠을 10시간이나 자게 만다는 엄청난 책이었다. 더 대단한 것은 늘 깊은 수면 시간이 부족했었는데(이 점에 대해서 나는 미밴드가 고장이며 내가 어떤 잠을 잔다고 해도 이 놈은 늘 같은 결과만을 내놓는 거라고 생각했다) <특성 없는 남자>는 나를 깊은 수면 상위 10% 이내의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늘 미밴드 앱의 깊은 수면 분포 그래프를 보면서 깊은 수면 3시간 이상 자는 사람이 존재하기나 해? 그냥 유니콘 같은 거 아냐? 라고 늘 수상쩍게 생각했는데 내가 그 유니콘의 영역에 진입한 것이다. 

한편으로는 '내가 좀비였구나, 내가 현재 살아가는 꼬라지가 좀비 그 자체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슬펐다. 익숙한 것만 읽고, 익숙한 영화만 보고, 익숙한 길만 운전하고, 익숙한 업무를 슥슥 해치우고, 그렇게 익숙한 경험만 하고 사는 덕에 나는 저주받은 운명을 기꺼이 수용하는 시지프가 되었으나, 

나는 시지프의 깊은 수면 시간이 느닷없이 궁금해졌다. 운명을 받아들인 댓가가 생활의 좀비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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