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만큼 늦잠을 자고 일어나서 눈꼽도 덜 뗀 얼굴로 엄마가 만들어준 시래기국과 밥으로 위를 깨우고 난 후 후식으로 부쉬 드 노엘 케익을 잘라서 커피와 먹었다. 배경음악은 당연히 캐롤, 오늘은 힐러리 더프. 원래 연말에는 빈스 과랄디를 주구장창 들었는데 올해는 힐러리 더프랑 더킬러스(캐롤 모음집 발매 기념 ㅋㅋ)를 주구장창 듣고 있다. 그 중에서도 역시 힐러리 더프가 좋다. 왜냐하면 나에겐 그 시절이 세상이 모든 것을 가지게 해 줄 거라는 희망에 가득차 있었던 시절이기 때문이다. 태극기 할아버지들이 박정희 시절을 좋아하는 이유가 그러하듯 나도 힐러리 더프, 제이크 질렌할과 커스틴 던스트이 연인이던 그 시절 그 때가 나의 리즈이기 때문이다. 


엄마는 요즘은 괜찮은지를 물었고 나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고 말했다. "매일 새 옷 입고 출근하니까 엄청 행복해. 왜 부자들이 누구보다 먼저 신상옷 입으려고 하는지 알게 됐어." 라고 했더니 엄마는 돈을 좀 아껴써야 하지 않겠니라고 했고 나는 내가 돈 아껴서 뭐하게, 어차피 내가 번 돈 쓸데도 딱히 없는데 라고 답했다. 그랬더니 엄마는 하긴 그건그렇지.라고 수긍을 했다.


지금 나는 다가올 봄을 기대하고 있다. 선출시 된 21ss 신상 옷들을 봤는데, 아 너무 예쁜거다. 


내가 백수로 행복하게 사는 게 좋아, 회사 다니는 대신 옷사는 데 돈 탕진하면서 행복하게 사는 게 좋아? 

선택은 둘 뿐이야. 다른 건 없어. 

했더니 엄마는 회사 다니고 옷사는 게 낫다고 했다. 부모들이란...


어제는 은색 체인이 트리밍 장식되어 있고 온통 글리터가 장식된 가디건을 입고 출근했다. 당연히 새 옷이다. 글리터가 조금씩 떨어져서 스타킹과 의자에 묻는다는 단점이 조금 있긴 했으나 옷은 따뜻했고 예뻤다. 화장실 세면대에서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볼 때마다 행복했다. 김사랑이 불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입은 시퀸소재의 미니 원피스가 있는데...마침 세일도 크게 해서 사고 싶은데 그 옷은 김사랑이거나 20대이거나 둘 중 하나여야 입지...싶어서 몹시 아쉽다. 그래서 지금도 원칙 중 하나는 늙으면 입고 싶어도 입지 못하는 옷을 지금 열심히 입자는 것이다. 


나는 돈이라는 것을 교환수단 이상으로도 이하로도 여기지 않기 때문에 다 쓰고 죽지도 못할 돈을 모으기 위해서 애쓰는 사람을 보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동생부부는 서울사람답게(?) 돈과 아파트에 큰 의미를 두고 그것이 마치 절대반지처럼 절대적인 가치를 가진 무언가로 여기면서 돈을 쓸 때는 감가가 덜 한 쪽으로 선택해가면서 쓴다. 그래서 구입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반값이 되는 수입차나 신상 수입 의류에는 돈을 거의 안쓰는데 그들의 기준에서 판단하자면 나는 그 둘을 다 하는 어리석은 인간, 자본주의의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부류의 인간인 것이다. 


"내가 돈을 아껴서 뭐해?"라고 하면 동생은 "돈 모이면 (감가가 덜 한)더 좋은 집으로 이사가야지. 언니도 더 좋은 집(동네)으로 이사가."라고 했다. 기능적으로 더 좋은 집이라고 하다면 당연히 더 넓은 새 집이 더 좋을 것인데, 내 집은 새 집이고 평수도 넓어서 나는 만족 중이다. 입지적으로 더 좋은 집이라고 한다면 내가 사는 곳은 대학병원과 마트는 정말 가깝고 백화점도 나름 가까워서 더 이상의 입지를 찾기가 어렵다. 다만 학군은 그다지 좋지 않은데 나는 자식이 없으므로 학군 같은 거 별의미도 없고 집 팔아서 남들이 살고 싶어하는 동네의 오래된 아파트 가봤자 나에겐 큰 만족감도 못주는데 그걸 가지자고 독일산 자동차를 포기하고 프랑스산 의류를 포기하는 건 딱히 내키지가 않는다.


엄마와 동생의 한결같은 결론은 "행복하다면 그걸로 됐어. 행복이 중요하지."였다. 나 역시 이제야 깨달은 건데 나는 백수로 살면서 영화나 책을 볼 때도 행복하지만, (회사는 다녀야 하지만..)내 맘에 쏙드는 예쁜 새 옷을 입을 때도 행복하다는 것이다. 남들은 경악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유니폼(작업복)을 입는 직업은 다 제외했다. ㅋㅋㅋㅋ 내가 어떤 대학 어떤 학과를 거절했는지 알면 사람들은 다 바보라고 할지 모르지만, 교복이 지긋지긋했던 고3 수험생은 그 직업은 맨날 작업복만 입고 일해야 하잖아요. 안갈래요. 라고 해서 고3 담임을 경악케 했었고, 그 점에 대해서 지금도 아무런 후회가 없다. 동생은 아쉬워하지만, 난 지금도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작업복(물론 누군가에겐 영광의 가운이거나 제복이겠지만)이나 입으면서 돈만 잘 벌면 뭐해? 라는 게 내 생각이다. 시계 하나 정도는 명품으로 차고 있을 수는 있겠지만 그게 뭔 소용? 옷이 작업복인데.


하지만 이런 합리화는 

나 : 선생님, 아이는 무슨 생각으로 낳으셨나요?

선생님 :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고 낳았을 리 있겠나?

나 : 아이가 번뇌라고 하던데요?

선생님 : 당연, 인생이 번뇌인데.

나 : 아이를 낳는 것이 좋습니까, 아니 낳는 것이 좋습니까?

선생님 : 모른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고, 겪은 사람은 자기 행동을 정당화하려 들 것이다. 다시 태어나서 아이를 낳아보기 전까지는 비교할 수가 없다. 그러나 아이를 낳는 것은, 대체로, 세상에 뿌리를 내리는 한 방법이다.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 김영민>


그저 내가 선택한 모든 것을 정당화하려는 것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시 태어나서 다른 직업을 가져보고 비교해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것. 


힐러리 더프의 캐롤을 들으면서 21ss 신상 옷들을 장바구니에 담고 있다. 빨리 봄이 왔으면 좋겠다. 봄은 짧지만 나는 봄옷을 절대 포기하지 않고 여태껏 살아왔다. 찰나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부지런히 입어도 봄 한 철 2~3번 밖에 못입는 옷들이 수두룩하지만 나는 단 한 번도 화사한 파스텔돈 옷을 포기한 적이 없다. 미니멀라이프를 했을때도 봄옷은 간직했다. 


이 세상에 뿌리를 내리고자 번뇌 가득한 인간을 만들어 키우느라 힘든 어떤 사람들은 이 코로나 시국에 신상 옷 타령이나 하는 나를 편한 소리 한다고 속으로 욕하기도 하겠지만, 나는 당당하다! 번식을 하지 않는 것만큼 친환경적이고 동물복지적인 게 또 어디 있나? 그리고 나는 술고기담배를 하지 않고도 맨정신을 유지하면서 오직 나 자신의 아름다움만 바라는 것이다. 이 얼마나 건전하고 강인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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