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내 식당에서 혼자 식사를 하는 황시목을 보면서 '황시목처럼'이라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를 곰곰이 꼽씹어 보는 중이다.
오랫만에 화창하다. 뭉게 구름이 점점이 박혀 있는 파란 하늘에 눈부신 햇살, 빨래 널기에 딱 좋은 날이다. 맘 같아서는 폭우로 얼룩진 자동차도 세차하고 싶지만 내일 오후에도 비 예보가 있어서 일단 다음으로 미룬다.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주기적으로 때를 제거해야 한다. 때를 제거하는 행위는 일종의 반성 혹은 자기성찰이다. 계속 전진만 하는 생활 속에서 잠시 일시정지 버튼을 누루고 내가 저지른 오욕을 지우는 작업. 그래서 나는 청소와 청결에 소홀한 사람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
즐겨듣는 팟캐스트에서 진행자가 어떤 사람들이 옷을 잘 갖추어 입는 것은 나약해서, 두려워서, 겁이 나서 그렇다고 했다. 일종의 갑옷 같은 거라고 비유했다. 하지만 그건 틀린 말이다. 그렇다면 역사 속의 유명한 장군들은 다 겁쟁이라는 말이 되니까. 겁이 나서, 나약해서 입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자기 자신을 보호할 여력이 되니까 갑옷을 갖춘다는 게 더 정확한 말이겠지. 옷을 허술하게 입을수록 강한 사람이라면 노숙자가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람이라는 말 아닌가?
노숙자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어제는 갑자기 기분이 내켜서 연상호 감독의 <서울역>을 봤다. 이 영화를 보고 든 생각은 '그래서 어쩌라고?'였다. 인간이 꾸역꾸역 좀비마냥 태어나는데 그걸 어쩔 수 있을까? 태어나지 않을 순 없지만 낳지 않을 순 있지. 그래서 나는 욕심대로 본능대로 낳고 나서 불만불평인 사람들을 볼 때마다, 저런 사람들이랑 어울려서 이 세상을 살아야 하는 나 자신의 운명을 한탄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