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의 위증 1 - 사건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29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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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운 세 권의 책이 시간을 아끼지 않고 흘려보내도록 만들어 주었다. 한동안 책상에 세 권이 모두 올려져있어서 안 그래도 이것저것 놓인 자리를 더 비좁게 했었다. 초반에는 자살이 분명해 보이는 이 사건에 거짓말이 분명한 고발장이 무슨 스토리를 만들 수 있을까 의문이었다. 하지만 계속 이야기를 읽어가면 작가가 관심을 두고 만들어가려 했던 이야기는 이 사건이 아니라 이 사건을 둘러 싼 이들의 관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말미에 독자들은 소설의 제목이 어째서 솔로몬의 위증인지도 알게되리라.

 

친구를 가장한 주종 관계 (오이데 슌지 - 하시다 유타로 - 이구치 미쓰루)

 

고발장이 줄곧 살인자로 지목하고 있는 불량학생 3인방의 관계는 친구라기보다 주종관계에 가깝다. 부유한 가정의 돈의 힘과 폭력적인 아버지라는 배경까지 갖춘 오이데 슌지는 하시다와 이구치를 쉽게 조종할 수 있었다. 오랜 친구사이라면 자연스럽게 생기는 신뢰라는 것이 이들 사이에는 없다. 의리라고 여길만한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구치가 하시다와 싸우다 큰 부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했을 때 오이데는 찾아가보지 않았고, 오이데가 피고인으로 법정에 서 있을 때 이구치는 자기가 가담하지 않았을 뿐 슌지가 무엇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는 증언으로 피고인의 범행을 의심할 만한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하시다는 친구들과 한 중학생을 죽일 뻔 한 사건이 있은 후 이들을 멀리한다. 그들 사이에 친구관계에 있을 법한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서로를 안다는 것뿐이다. 지긋지긋하지만 함께 해왔기 때문에 알 수밖에 없는 것-

 

"생각하는 게 아니야. 알아.“ <3, p.359>

우리는 친구였으니까.”

... 이 순간 하시다 유타로의 입에서 나온 친구라는 말에 깃든 온기는 알 수 있었다. 그것이 소중한 것이었다는 것도. 성가시고 무섭고 못된 구석뿐인 세 사람이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관계였다는 것도 <3, p. 362>

 

이들의 관계는 파괴적이다. 주변만 파괴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 내부까지도 파괴시키는 관계다. 하지만 끊을 수도 없다. 달리 친구가 없기 때문이다. 이 관계를 끊으면 외톨이가 되어야 한다는 불안감 때문이리라. 한동안 위험한 권력을 가졌었기에 더 두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 사실 폭력집단을 이루고 있는 아이들의 관계는 대부분 이와 비슷할 것이다. 비행의 반복과 주변의 질타. 서로에게가 아니면 인정받을 수 없는 외로움. 센 척 해야하기 때문에 쉽게 버리는 도덕심. 이야기 말미에 이들에게 약간의 동정심이 생긴다면 바로 이것들 때문일 것이다.

 

주종관계의 변형 (미야케 주리 - 아사이 마쓰코)

 

객관적인 시각은 마쓰코가 왜 주리와 어울리는지 모르겠다-는 것이었겠지만, 주리에게 아사이 마쓰코는 계륵같은 존재였다. 여드름만 아니라면 뛰어난 존재였을 자기가, 어쩔 수 없이 마쓰코와 어울리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주리는 늘 마쓰코에게 군림하듯 굴었다. 그리고 그런 주리가 안쓰러웠던 마쓰코는 주리의 의견에 맞장구를 쳐 주었다. 마쓰코는 좋은 의도였겠지만, 이 역시 일종의 주종관계에 불과했다. 친구였지만, 주인 행세를 하는 주리를 마쓰코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서 주리의 위험한 의견을 말리지도 못했던 것이다. 위험 앞에서 친구를 멈춰 서게 하지 못한 것은 그런 면에서 주리나 마쓰코나 마찬가지였을지 모른다. 소설 후반부 노리코와 야요이의 대화는 이 관계가 아니라 좀 더 성숙한 관계였다면 둘의 모습이 어땠을까를 상상하게 해준다.

 

그만두라고 말렸는데도 노리코가 그런 짓을 해버렸다면, 그게 거짓말이라고 누군가에게 사실대로 알리는 게 친구일까, 아니면 입다물고 있는게 친구일까.”

반대로 생각해볼래? 네가 거짓 고발장을 쓸 테니가 도와달라고 나한테 애원하면 난 어떻게 할까?”

...

말리기만 하는 게 아니라 화낼거야. 절교지.”

“-그럼 나도 그래야겠네.”

내 친구라면.”

알았어, 노리코. 고마워.” <3, p.410>

 

질투와 애증의 관계 (가시와기 다쿠야 - 간바라 가즈히코)

 

이 소설에서 가장 최후에 밝혀지는 관계답게, 실제 친구 사이에서도 알아내기 쉽지 않은 관계가 바로 이런 관계다. 친구라고 생각하지만 내부에는 질투가 끓어오르는 관계. 적이라면 드러내놓고 싫어하면 되지만, 이런 경우에는 친구라고 생각하고 맞춰주다가 뒤통수 맞을 수밖에 없다. 내가 갖고 싶었던 자질을 친구가 갖고 있는 경우라면 질투의 강도는 더 세진다. 부모의 기대 때문이었건, 스스로가 원해서였건 특별해야 했던 가시와기가 그야말로 특별할 수밖에 없었던 친구를, 비범한 그 평범함을 죽을 만큼 질투했던 것은 이 관계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노다가 간바라를 향해, 네가 손을 내밀려 했다면 네가 죽었을 것. 이라는 말을 남긴 것은 자기 인생을 살리고자 타인의 죽음을 기획했던 경험자로서 외쳤던 양심의 절규인지 모른다. 묘하게 비슷했던 가시와기를 이해한 결과로 말이다.

 

보완하고 상승하는 관계 (고사카 유키오 - 노다 겐이치 , 노다 겐이치 - 간바라 가즈히코)

 

오자키 선생님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과연 정문으로 이어지는 통로 끝, 커다란 도서실 창문 앞에 추운 듯이 옷을 잔뜩 껴입은 고사카 유키오와 구라타 마리코가 서 있었다. 발을 동동거리고 손을 비비며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 듯했다.” <1, pp.77>

 

스산한 마음으로 범죄를 계획하며 버티던 노다에게 유키오는 곁을 지켜주는 친구였다. 초반부에 노다는 주리가 마쓰코에게 품었던 감정처럼. 유키오와 어울리면 튀지 않을 수 있으니 같이 있는 것이라고 냉소적으로 말했지만, 유키오는 그를 따뜻하게 대해주었고, 노다가 저질렀을지 모를 끔찍한 범행을 막아주었다. 그리고 나서 노다는 친구들을 위해 용기를 낼 수 있는 아이로 성장했고, 간바라의 미심쩍은 행동들을 의심하기보다는 친구로서 신뢰하면서 넘겨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간바라의 죄책감을 덜어줄 우정의 신문까지 할 수 있었다. 재판에 관계했던 아이들이 끝까지 친구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관계였기 때문이다. 서로를 인정하고 이해하며 지탱해주는 친구. 재판 과정에서 어려움이 생길 때마다 네가 힘든걸 알아라고 말해줄 수 있는 친구.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없다. 우리는 친구라는 이름으로 만나지만 똑같기 때문에 만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친구가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내가 더 나은 부분을 친구에게 주고, 친구가 더 나은 것은 친구가 도와주도록 놔두면서. 작가가 이 재판을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 중 하나는 이런 것이리라고 생각한다. 야요이가 죽음을 이겨낸 것이 노리코 덕분이었듯이, 노다가 살인자가 되지 않은 것이 유키오 때문이었듯이, 곁에 있는 사람들을 지켜주는 것은 대단한 정의감이 아니라 따뜻한 관심을 지닌 친구들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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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돼, 데이빗! + 유치원에 간 데이빗 세트 - 전2권 지경사 데이빗 시리즈
데이빗 섀논 글.그림 / 지경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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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의 행동은 지나치다 그래서 아이들은 오히려 안심할것이다 데이빗은 사랑받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데이빗의 장난을 즐기는 여유와 그럼에도 부모는 나를 사랑한다는 자신을 느끼게 해주는 따뜻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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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위증 3 - 법정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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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을 입체적으로 그리는 솜씨와 친구간에 생겨날 수 있는 관계갈등을 치밀하게 분석한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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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닷비][과학동화] 과학동화 - 초등 교과서와 관련된 원리 과학동화!
아이닷비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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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퍼백이라 얇은게 장점 글은 제법 많은데 초등학생이라면 잘 읽을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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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에는 이 책들을 읽어야지. 미유키의 솔로몬을 독파하고 메그레는 느긋느긋 읽고. 미뤄뒀던 총균쇠와 낭만적 거짓도 읽을테닷. 민석아저씨 책은 소문듣고 구입. 강의만큼 재미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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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
르네 지라르 지음, 김치수.송의경 옮김 / 한길사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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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균 쇠 (무선 제작)- 무기.병균.금속은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꿨는가, 개정증보판
제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사상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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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게물랭의 댄서 - 매그레 시리즈 10
조르주 심농 지음, 성귀수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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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타인의 목 - 매그레 시리즈 09
조르주 심농 지음, 최애리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9월
7,900원 → 7,900원(0%할인) / 마일리지 39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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