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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나를 만나는 혼란상자 - 아리송한 나의 정체성 찾기 ㅣ 마리i 마음상자 1
따돌림사회연구모임 교실심리팀 지음, JUNO 그림 / 마리북스 / 2017년 9월
평점 :
내 나이 또래만 알아들을 수 있는 노래일텐데, 한 때 유행했던 노래 가사중에 이런 게 있었다.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한치앞도 모두몰라 다안다면 재미없지~'
그 때에는 이 노래를 쪼그만 꼬마들까지도 따라불렀는데, 늙은이의 입에서 나올 법한 소리가 아이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니 우습기도 하고, 니가 뭘 안다고 이런 노래를 부르냐 핀잔을 받기도 했던 걸로 기억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 노래가 떠올랐다. 그런데 가사가 살짝 다르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넌들 너를 알겠느냐~'라고.
현대인의 기대수명을 생각했을 때 이미 반절 조금 못 되게 살아왔으면서도 아직도 나는 나를 잘 모른다. 어지간한 선택을 다 거쳐서 여기까지 왔지만 여전히 그 때 내가 왜 그랬는지, 지금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를 때가 많다. 그 뿐이랴. 나를 포함해서 모든 인간은 내일 죽일 지도 모르는 삶을 산다. 그야말로 한 치 앞을 모르는데, 이게 재미있는 걸로 그칠 일이 아니다.
한 치 앞을 모르는데, 내일 죽을 지도 모르는데, 미래를 계획해야 하는 것. 그게 모든 인간이 가진 아이러니다.
그러니 얼마나 황당할까. 아직 중1. 아직 고1. 아직 십대. 인데, 너의 미래를 계획하고 결정하고 그리고 나아가기 위해 매일매일을 의미있게 알차게 보람있게 보내라니. 이 시대는 십대에게 가혹하다. 정체성을 찾을 기회 전에 학업을 강요하다가, 갑자기 이제는 니가 하고 싶은 일을 빨리 찾아서 매진하란다. 기계도 이렇게 만들면 엉망진창 결과물이 나오게 마련이다.
이 책이 반가운 이유는 인정해주기 때문이다. 나밖에는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은 나를 받아들여주고, 그럴 수 있다고 인정해주고. 정신없고 혼란스럽고 어디로 가야 할 지 모르는 나에게 너만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도저히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아니라면 일단 해 보자. 일단 하고 나면 그 결과를 알 수 있다. 하지 않고 머릿속에서 뱅뱅 도는 일이라면 저지르자. 십대에는 그래도 된다. 인생은 길고. 결론은 쉽게 나지 않는다. 머뭇거려진다면 충분히 머뭇거려도 좋다. 멈춰봐야 나아갈 힘도 생긴다. 다만. 생각해야 한다. 나는 왜 머뭇거리는가. 나는 왜 혼란스러운가. 나에게 나의 이유를 묻지 않으면 대답해 줄 사람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