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인문학 글쓰기 강의
이상원 지음 / 황소자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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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때 고전 강의를 들으며 설화를 읽고 해석하는 과제를 받았다. 이 과제에 대해 교수님께서는 '특별'한 피드백을 주셨는데 그건 바로 같은 과 학생들의 코멘트였다. 두 명의 학생이 내가 해석한 글에 대한 일종의 '답글'을 달아주었고, 이것까지 모두 읽은 후 교수님의 평가가 달리는 그런 방식이었다. 교수님께서는 학부생이던 시절에 자기가 낸 레포트가 어째서 그 점수를 받게 되었는지, 내 해석에 대해 교수님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전혀 알 수 없이 달랑 학점만 나오는 평가시스테이 불만이셨다고 하셨다. 나는 그 교수님의 불만에 매우 동의했고, 그 평가방식에도 매우 만족했다. 아울러 친구들이 함께 읽는다는 생각에 무척이나 열심히 과제를 하고, 답글 역시 최선을 다해 달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때의 과제를 떠올린 것은 이 강의의 방식이 당시의 '답글'형식과 매우 유사했기 때문이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글쓰기는 혼자만의 작업이 절대 아니다. 독자를 염두에 두지 않는 글은 '죽은'글이나 마찬가지이다. 누군가는 읽겠지. 는 아무도 안 읽는다.와 동일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글놀이판'이라고 말하는 그 강의에는 교수님만 알고 나만 아는. 그렇지만 결과로 나온 학점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모르는. 그리고 나서 강의가 끝나면 서로에게 깨끗하게 잊혀지는. 쓰기 싫지만 써야만 하는 고통스러운 글.이 없다. 거기에는 '글쓴이'와 그의 '독자'가 만나 함께 글에 대해 이야기하며 글의 더 나은 방향을 찾고, 새로운 표현방식을 칭찬하고, 글의 내용을 가지고 토론하는 '살이있음'이 있다. 무엇이든 해야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전공수업으로 꽉 채운 시간표를 보던 중에 그래도 '하나쯤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이 수업을 신청했다는 학생의 글을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글'을 가지고 '놀'고 싶다면 여기 나오는 이 강의를 조금씩 흉내내보아도 좋겠다. 나 역시 글을 읽고 이런 수업을 흉내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학생이어도, 무엇에 관심이 있어도 상관없이 모인다면 모두가 '글'로 하나되는 공동체가 될 수 있다. 미디어가 모든 것을 대신할 것만 같은 시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결국 '쓰게'될 것이기 때문이며 그 무언가를 '쓴다'면 그것을 읽어주는 사람과의 만남처럼 즐거운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덧붙여서 이 '놀이'의 결과물로 만날 수 있는 학생들의 글에서 얻는 독자로서의 기쁨은 덤이다.

글쓰기강의,감상에세이,주제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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