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채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6
A. J. 크로닌 지음, 이은정 옮김 / 민음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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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성공에 대한 열망이 너무 큰 나머지 자신이 지금껏 신조로 삼았던 길과 얼마나 다른 길로 가고 있는지는 잊어 버렸다. " p.84

 

1권에서 앤드루의 신념과 그가 어려운 길임에도 불구하고 그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고군분투했었는지 감동적으로 읽었었다면 2권에서의 그에게 다소 실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다 그렇게 타락해가고, 자기의 신념을 버리고, 과거 자기가 분노했던 대상의 모습을 닮아가게 된다. 그 길에서 빠져 나오는 경우도 있고 그 길에 멈춰 서서 자신이 이미 돌아갈 수 없는 길을 걸어와 버렸노라고 체념해 버리는 경우도 있다. 앤드루의 경우에는 다행히도 전자의 경우이기는 했지만 그가 너무나도 빠르게 자신의 신념으로부터 멀어졌던 것을 생각하면 안타깝기는 하다.

 

앤드루는 열혈청년이었다. 그는 부패는 싫어했지만 능력에 대해서는 매우 신뢰했다. 아마도 런던에서 의사들의 성공을 보면서 개업의의 성공을 능력과 연관짓게 되었고, 그 이후에는 부유한 사람들이 누리는 특권까지도 모두 그들의 능력에서 비롯되었다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했는지 모른다. 그가 프랜시스 로런스 부인과 데이트를 즐기면서 그녀의 여유있음과 사람들을 부리는 태도에서 능력을 느끼고 찬탄해 마지않았던 것도 그 연장선상이리라. 물론 이미 그 즈음에 그에게서는 기존의 도덕적 가치관이 많이 사라져버린 탓이기도 하겠지만.

 

그러던 그가 다시 정신을 차린 것은 자기처럼 성실하고 정직했던 세탁소 주인 비들러 부부에게 불행이 닥쳤기 때문이었다. 견실하게 살아왔던. 희망을 품고 세탁소를 개혁상사라고 부르던 부부. 남편인 해리 비들러의 낭종을 제거하려던 앤드루는 그가 늘 했던 것처럼 동료의사 아이보리에게 수술을 부탁했고, 아이보리는 무모하고도 어리석은 시술을 해 사고로 해리 비들러를 죽이고 만다. 그가 제거해야했던 낭종이 출혈성 낭종인줄도 판별하지 못하는 엉터리 의사라는 것을 알아챈 앤드루는 오열하는 해리의 아내에게 수술이 끝난 후 수술을 이기지 못해 죽었다고 말하는 아이보리의 가증스러움에 분노를 참지 못한다. 수술실의 상황을 모르는 가족에게, 게다가 의료에 대해서는 아무런 지식도 없는 소시민들에게 이런 거짓말은 얼마나 자연스럽게 먹혀들어가는가. 사람들의 고통을 이용해서 돈을 버는 일을 증오했던 그가 그렇게 돈을 벌어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사건이었다.

 

앤드루가 돌아왔지만 비들러를 죽게 한 책임은 그에게 돌아왔다. 그가 울부짖었던 것처럼 신은 잊지 않았다. 그가 살 수 있는 사람을 죽였다는 것을. 그리고 신은 그의 아내 크리스틴을 데려갔다. 그와 아내가 충분히 행복하던 그 때에. 행복에 가득 차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던 그 때에. 그녀를 잃은 앤드루는 데니의 도움으로 점차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지만 애버럴로에서 만난 친구 콘 볼런드의 딸 메리를 치료하기 위해 의사가 아닌 스틸먼의 요양소에서 수술을 한 것 때문에 의사 자격을 박탈할 위기에 처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다시한번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신념이 옳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의 이러한 증언은 1,2권 전반에 계속 등장하는 그의 연설의 마지막 결론과도 같다. 그는 모든 시스템을 체험해 본 것이다. 그리고 그 시스템에 적응했던 적도 있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열혈청년이었던 그 때의 희망으로 돌아왔다. 이제는 아내 대신 친구 데니와 호프가 있어 줄 것이다. 신념을 함께하는 친구가 있는 한 그가 제 길을 잃을까 염려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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