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들의 아버지
카렐 판 론 지음, 김지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주인공 아르민은 아내 모니카를 아들 보가 세 살이던 해에 매우 급하게, 혹은 어처구니없이 잃는다. 모니카는 그에게 마지막으로 ‘나는 죽을 거야. 미안해.’라고 말했다. 이 미안해라는 말은 죽게되어 미안하다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의미에서의 미안하다는 말이었을까. 처음에 들을 때에는 무조건 전자의 의미라고 생각했겠지만 시간이 지난 후 아르민이 자신은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꼭 전자만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을 법하다.

 

 아무튼 아르민은 속시원히 밝혀 줄 아내가 없는 상태에서 그것도 보가 열 세 살이 된 후에서야 자신이 보의 친아버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랑하는 아들. 지금까지 자신을 닮았다고 생각했던 그의 유전자가 실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다니. 끊임없이 아르민은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물음을 반복한다. 진실을 알게되면, 그렇게 되면 아르민은 자유롭게 훌훌 털어버릴 수 있을까. 그러나 자유롭게 되든, 아니든간에 그는 나름의 방법으로 보의 아버지 목록을 만들기 시작한다. 때로는 서슴없이 자신의 신분을 숨겨가며 용의자(?)의 아내에게 접근해 정보를 캐내기도 한다. 결국 자신의 아들 ‘보’와 똑같은 이름의 아들을 가진 니코라는 인물이 거의 확실시되고. 아버지의 죽음을 치른 후 그는 ‘보’와 자신이 그토록 닮은 이유를 설명해주는, 자신의 아들의 아버지를 찾게 된다.

 

네덜란드 문학을 접한 적이 없는 것 같다. 나라에 대한 지식이나 정보도 없고. 문화도 잘 모르고. 한 권의 책을 읽고 한 나라의 문화를 이해했다고 하기는 어렵겠지만,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그 나라의 시대적 사회적 반동인물들이 아니라면, 아마 현재의 네덜란드는 매우 자유롭고 한편으로는 문란한 곳이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인물들의 성과 삶이 개방되어 있었다. 소설로만 읽을 때는 제법 재미있는 삶으로 느낄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이렇게 사는 사람이 많다면 글쎄, 그걸 합리적이라는 말로, 편리하다는 말로 간단하게 설명해버릴 수 있을런지. 걱정스러웠다. 

 

자기 아들의 아버지를 찾는 진부하면서도 흥미로운 이야기는 결국 부자(?)간의 가족애로 마무리된다. 어떤 삶에든 사랑이 필요하다. 그리고 가족이 필요하다. 결국 이것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진실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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