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나는대로 쓰고 있으므로... 그런 줄 알 것. ㅡㅡa

야신의 이야기

- 오늘의 맛대 맛 대결 스페셜! 제가 준비해온 요리가 뭔지 아십니까?
- 뭘 준비해오셨는지 모르지만, 제가 준비한 것 보다는 맛이 없을 겁니다.
- 무슨 그런 서운한 소리를! 우리나라에서 제일 맛있는 걸 준비해왔습니다.
- 대체 뭔데 그렇게 자랑만 하세요?
- 보여 드릴까요? 자! 여기 있습니다. 암사람 갈비로 만든 슈퍼 스테이크!

오락프로그램의 MC가 요란을 떨며 요리를 소개하는 순간, 화면 가득 요리가 클로즈업 되었다. 성우가 익살스러운 목소리로 요리사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 사람 고기 중에서도 가장 맛있는 것이 바로 황인종 암사람! 그 중에서도 육질이 가장 부드러운 것은 이 들이 태어난지 6000일이 지났을 때. 오직 태어난 지 6000일 된 암사람의 갈비만으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스테이크를 만드는 장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

카메라가 요리를 이쪽 저쪽으로 돌려가며 비추었다. 원래 남이 먹는 음식이 맛있어 보이고, 못 먹는 음식이 더 맛있어 보인다. 게다가 카메라맨과 요리사가 갖은 정성을 들이고 있을테니까, 맛있어보이지 않을 수 없다.

까레무는 입맛을 쩝쩝 다셨다. 일요일 아침에 늦잠을 자고 일어나면 때맞춰 텔레비젼에서는 "맛대맛!" 이 나온다. 김밥이나 순대같은 간단한 음식을 방영할 때도 있지만, 그보다는 주로 "암사람 갈비 스테이크" "물소 족발" "코끼리 코 통구이" 같은 값비싼 요리를 방영한다. 평범한 월급쟁이인 까레무로서는 큰 맘을 먹지 않고서는 맛보기 힘든 진미들이다.

"여보! 어디 갔어? "

까레무는 큰 소리로 부인인 미샤를 찾았는데, 미샤는 대답하지 않았다. 애완사람인 야신의 대답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을 보니, 늦잠을 자고서 시장이라도 보러 간 모양이었다. 부인이 오면 아침밥이야 차려주겠지만, 텔레비젼을 맨정신으로 보려면 뭐라도 좀 먹어야 할 것 같았다.

까레무는 부엌으로 나가서 냉장고를 열었다. 물과 몇 가지 밑반찬 뿐이었다. 자기가 먹을 것은 없는데, 야신에게 줄 사료는 종류별로 가득 있었다. 그놈의 애완인 하나를 들여놓더니, 이제는 숫제 남편보다 애완인이 먼저다. 결혼한지 이미 일만일이 넘었으니, 이제 서로 이해하고 살만한 세월을 함께 한 셈이다.

하지만 까레무는 요즘 들어 불만이 많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미샤의 애완인 사랑은 지나친 데가 있었다. 기껏해야 사람일 뿐인 그 애완동물에게 쏟아붓는 정렬은, 거의 신혼때 남편을 챙겨주는 정도와 비슷했다. 당연히 애완인을 키우는데에는 돈이 많이 들었고, 그래서 이제는 돈을 못 벌어온다는 타령까지 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쨌든 배는 고팠다. 까레무는 냉장고를 뒤져서 캔맥주 한 깡통을 찾았다. 식전부터 맥주를 마셨다가는 미샤에게 잔소리를 듣겠지만 배가 고픈데야 별  수 없었다. 한 모금을 들이키자 시원한 탄산이 목을 쭉 타고 흘러내렸다.

까레무가 맥주 깡통을 따는데, 마침 그 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앞장서서 달려온 야신이 문을 두들기는 것임에 틀림없었다.

# 나 추워 죽겠어요. 이러다가 얼어죽겠어요. 빨리 문 좀 열어주세요.

야신이 시끄럽게 문을 두드렸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미샤가 야신을 어르는 소리가 들렸다.
"길동아, 시장 갔다가 왔지. 집에 오니까 좋지. 아저씨 보고 싶어서 자꾸 짖는구나."
까레무는 얼른 손에 들고 있던 맥주 깡통을 들고 화장실로 숨었다. 아침부터 잔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일단 증거 인멸을 해야 한다. 까레무는 맥주를 모두 마시고, 양치질을 한 다음, 변기 물을 내리면서 태연히 밖으로 나갔다.

미샤는 부엌에서 요리를 하고 있었다. 자글거리는 소리와 고소한 냄새가 났다. 야신은 미샤의 발치에서 왔다갔다 하며 놀고 있었다.

모르긴 하지만 미샤가 만드는 요리의 재료는 비싸지 않을 것이다. 워낙 알뜰한 미샤였으므로, 사람고기를 사왔을 리는 없다. 기껏해야 쇠고기나 돼지고기일 것이다. 그나마 옛날에는 가끔 사람고기도 해먹었는데, 경기가 어렵고 월급도 준 데다가 미샤 자신이 직장을 그만두게 된 이후로는 집에서는 사람고기를 맛볼 일이 없었다.

아니, 경제적인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가 하나 있다. 저놈의 야신을 들여놨기 때문이다. 야신에게 미안하다나 어쨌다나 해가면서 남편의 식생활의 즐거움 하나를 빼앗아갔다. 야신에게 미안한 줄은 알면서 남편에게 미안한 줄은 모르는 모양이었다.

게다가, 까레무는 일단 저 야신이라는 놈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애완사람이 아니라 마치 길이 덜 든 야생사람 같았다. 눈빛은 쏘아보는 것 같기도 하고 비웃는 것 같기도 하다. 다른 애완사람처럼 주접을 떠는 일이 별로 없고, 가끔 무섭게 소리를 지를 때도 있다.

- 진정 맛있는 스테이크는 얼마나 좋은 재료를 쓰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저는 저희 식당에서 사용하는 암사람을 시골 농장에서 직접 가져옵니다.

텔레비젼에 농장의 모습이 비춰졌다. 높이가 삼십미터에 달하는 사육장이었다. 사육장은 총 10층 정도로 되어있는데, 각 층은 다시 열 개로 쪼개져 있었다. 각각의 방에 사람이 예닐곱명씩 살고 있으니까, 사육장에는 육칠백명의 사람이 들어있는 셈이었다. 저 안에 야신이란 놈도 쳐박았으면 싶었다.

- 보시다시피, 제가 키우는 농장은 순 100% 자연양식입니다. 요새 단가 줄일려고 인공 양식이 유행하는데, 위생도 다르고 맛도 다릅니다. 여기서 키우는 사람은 정말 최고의 맛입니다.

농장 일꾼이 엄지손가락을 쭉 치켜올리면서 말했다. 화면이 전환되어, 이번에는 목끈으로 사람을 끌어내어 나르는 모습이 나왔다.

- 우리는 냉동을 하지 않습니다. 냉동하면 고기 맛이 죽어요. 싸구려 햄이나, 아니면 불고기를 만들 때는 냉동 고기를 써도 되지만, 스테이크는 고기 맛이 생명이에요. 우리는 사람을 부엌에서 직접 잡습니다.

트럭에 실려지던 남자사람 하나가 바둥거리다가 이빨로 자기 목끈을 끊고, 이어서 여자 사람 하나의 손목을 잡고 달아나려고 했다. 말하자면 탈주인 셈이다. 성우가 익살스럽게 말했다.

- 싱싱하게 살아서 펄펄 뛰는 모습, 이 신선한 고기로부터 최고의 맛이 나온다는 말씀!

아닌게 아니라 정말 싱싱했다. 피부가 팽팽하면서도 적당히 몇 겹으로 겹치는 것으로 보아, 최고 등급의 고기임에 틀림없었다. 시장에서 가끔 파는 말라깽이들과는 차원이 틀린 것이었다.

그 때 텔레비젼의 채널이 갑자기 확 바뀌었다.

"여보! 왜 이런 걸 보고 있는거에요? "

한참 텔레비젼에 열중했던 까레무가 짜증을 냈다.

"뭐야, 왜 그래?"
"야신이가 있는데 무슨 사람고기 어쩌고 하는 텔레비젼을 보고 있어요? 암만 말못하는 사람이라지만, 눈은 달렸잖아요. 텔레비젼 보다가 마음이라도 상하면 어쩌려고 그래요?"
"나원 참! 저놈이 휘넘 말을 어떻게 알아듣는다고 그래? "
"그래도 그렇지. 휘넘이면 휘넘답게 기르는 사람들을 챙겨줘야죠."
"나 참...알았으니까 밥이나 줘."

까레무는 아침부터 말다툼 하기가  싫어서, 미샤의 말에 더 대꾸를 하지 않고 밥상으로 향했다. 그런데 밥을 먹으려고 보니, 밥상이 초라했다. 미샤가 음식을 지지고 볶는 소리를 들었는데, 밥상위에는 밑반찬 몇 가지에 멀건 국물 한 가지가 전부였다.

"여보, 밥상이 왜 이래? "
"먹기 싫으면 굶어요. 이달 생활비가 모자라서 어쩔 수 없어요."

돈이 모자라다고 징징거리는 소리에 까레무는 입을 다물었다. 이야기를 더 길게 해봐야 좋은 소리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식탁 아래에서 구수한 냄새와 함께 쩝쩝거리는 소리가 났다. 까레무는 식탁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야신이 쪼그리고 앉아 밥을 먹는데, 고기 반찬이 틀림없었다. 순간 까레무는 벌컥 화가 치밀었다. 까레무는 야신을 훽 걷어찼다.

# 아악-!

야신이 처절하게 비명을 질렀다. 방에 있던 미샤가 놀라서 뛰어나왔다가, 나동그라진 야신을 보더니 두 눈에 쌍심지를 켰다.

"당신 뭐야! 왜 야신이를 때려? "
"남편이 저 별볼 일 없는 사람새끼만 못해? "
"그래! 못하다! 돈도 못 벌어오는 주제에 왜 야신이를..."

- 와장창

까레무가 식탁을 뒤집으면서 고함을 버럭 질렀다. 뒤집힌 식탁에 깔린 야신이 또 한 번 비명을 질렀다. 미샤가 질겁을 하면서 야신을 안아들더니, 까레무를 한 번 노려보고는 집 밖으로 향했다.

야신은 팔을 부여잡았다. 까레무에게 걷어차일 때는 놀라고 당황하긴 해도 크게 다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런데 식탁이 뒤집어지면서 팔을 제대로 찍었다. 팔이 부러지면서 뼈가 튀어나와, 옷을 뚫고 나올 정도였다.

미샤가 야신을 데려간 곳은 "사라미 동물병원"이었다. 이곳은 시립 동물 병원으로, 일반적인 동물의 치료 뿐이 아닌 여러 가지 일을 했다. 예를 들면 거리를헤매는 동물을 잡아서 가둬둔다거나, 또는 짝짓기가 필요한 암놈이나 숫놈을 데려오면, 그에 맞는 짝을 지어주기도 했다. 시립 동물병원은 몇 곳이 있는데, 그 가운데 사람을 전문으로 하는 병원이 바로 '사라미 동물병원'이었다.

병원 문을 열자, 약냄새가 확 풍겼다. 야신은 거의 실신 직전이었다. 고통에 일그러진 야신의 표정을 본 의사는, 먼저 야신에게 마취제를 놓았다. 주삿 바늘이 몸에 닿는 순간 야신의 온 몸의 신경이 풀려나가는 것 같았다. 모르긴해도 치사량을 넘어갈 만큼 농도 진한 마취액일 것이다.

야신은 곧 몽롱한 정신 상태가 되었다. 마치 헝겊인형이 된 기분이었다. 의사는 우선 야신의 셔츠를 찢었다. 원래 바지는 입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벗길 것이 없었다. 의사는 축 늘어진 야신을 번쩍 안아들고 엑스레이를 찍었다. 몇 가지의 간단한 검사를 더 하던 의사가, 마침내 미샤에게 말했다.

"팔을 자르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뭐라구요? "
"보시다시피 관절 부분이 아닌 팔목뼈가 골절이 되었고, 골절된 부위가 피부를 뚫고 나가면서 관절과 신경을 모두 찢었습니다."
"자르지 않고는 방법이 없나요?"
"골절 부위를 접합하는 방법이 있기는 한데, 비용이 좀 지나칩니다."
"지나치다는게...?"
"이틀이 걸리는 대수술입니다. 수술비, 진료비, 그리고 50일의  입원비를 합치면 적어도 천만 띠람은 될 것 같습니다."

미샤는 어쩔 수가 없었다. 팔을 자르는 비용은 이십만 띠람에 불과했다. 돈을 벌지 않는 그녀로서는, 아무리 야신을 사랑한다지만 남편의 반년치 월급을 다 집어넣을 수는 없었다.

의사는 톱 하나를 들고 야신에게 다가왔다. 야신은 휘넘의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한다. 더구나 극심한 고통에다가 강한 마취제까지 맞은 후였다. 의사가 톱을 들고 자신의 곁으로 오는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의사는 야신의 다리와 허리, 발목을 벨트로 묶었다. 아마도 마취되어 있지 않다면 고통을 느낄 만큼 강하게 묶었다. 의사는 미샤를 돌아보았다. 끔찍한 모습을 보고싶지 않으면 자리를 비키라는 눈짓이었다. 미샤는 잠시 망설이다가, 마지 못하는 듯 자리를 비켰다.

의사는 출혈을 줄이기 위해서 야신의 팔뚝 부분을 강하게 묶었다. 그리고 피가 덜 튀게 하기 위해서 가제를 묶었다. 이어서 들고 있던 톱에 전원 스위치를 넣었다. -위잉 하는 무서운 소리가 나면서 톱이 야신의 손목 부분을 파고들자, 그제서야 야신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깨달았다.

#하지마...

야신은 말을 하려고 했지만 혀가 굳어 소리가 나지 않았다. 힘겹게 몸부림을 쳤지만, 시늉에 불과했다.
전기톱이 야신의 팔뚝을 파고드는 것은 잠시였다. 살가죽과 근육이 단숨에 찢겨나갔지만, 묶어둔 가재 덕분에 피는 많이 흐르지 않았다. 톱날이 뼈를 긁을 때에는 요란한 소리와 불유쾌한 진동이 전해졌다. 하지만 통증은 없었다.

팔을 자르고 팔목에 붕대를 감은 후 소독약을 바르는 것으로 치료는 간단하게 끝이 났다. 의사는 미샤에게 가서 말했다.

"몇 일은 입원을 시켜두시는게 좋겠습니다. 아무래도 몸의 일부분을 자른다는 것은 대수술이니까, 집중적인 치료를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입원을 얼마나 해야 할까요?"
"10일 정도면 될 것 같은데요."
"아! 불쌍한 야신! 열흘 후에 올테니 건강해야 한다."
"잠깐, 입원실은 A급, B급, C급이 있는데 어디로 하실까요? 아무래도 중환자이니 A급이 나을 것 같은데..."

미샤는 잠시 망설였다. 남편앞에서 큰소리를 쳐대기는 했지만, 돈이 아깝기는 미샤도 마찬가지였다.  휘넘도 아니고 인간인데, 어디가 좀 아프더라도 며칠 지나면 멀쩡히 나을 것이다. 아무래도 휘넘과 인간은 다르니까말이다. 미샤는 "C급" 이라고 대답했다.

미샤와 의사가 나누는 대화는 야신은 듣지 못했다. (혹시 들었다고 해도 휘넘말을 알아듣지도 못했겠지만 말이다.) 야신은, 왜 내 팔을 자를까... 하고 몽롱한 생각을 하다가, 마침내 몽롱한 정신 그대로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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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저 2만 리
쥘 베른 지음, 이인철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12월
평점 :
품절


얼마전 80일간의 세계일주를 읽었다. 꽤나 재미있게 읽었기에, 해저 2만리를 잇달아 구입했는데, 재미가 없었다. 실패했다. T_T

동화로만 읽었던 책을 나중에 원작으로 읽어보면 더욱 재미있는 경우도 있다. 해저 2만리는 그렇지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사실, 어렸을 때 80일간의 세계일주를 읽은 기억은 나는데, 해저 2만리를 읽은 기억은 나지 않는다. 읽었든 읽지 않았든간에 읽은 걸로 기억되는 책 가운데 하나안 것 같다.)

100년전의 세상에서 사람들은, 또는 우리의 어린 시절에는 바다밑을 잘 알지 못했다. 지금도 잘 모르긴 하지만 -_-; 옛날에는 인간의 손이 전혀 닿지 못하는, 별나라와 마찬가지의 미지의 세계였겠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최소한 심리적 거리는 그렇다. 그러므로 100년전의 작가가 상상력으로 꾸며낸 바다밑 풍경에 크게 관심이 가지 않는다. 

재미 없어서 결국 다 읽지 못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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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거가 국민의 당당한 권리라는 말은, 민주주의라는 허울이 만든 환상의 절정이다, 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는 허울이다.

2.
요즘 드는 생각은, 사회는 그저 거대한 인격의 집합인 것 같다. 그리고 사회 구성원 개개인은, 그 인격의 한 부분인 것 같다. 

한 사회 조직은 인격의 한 부분을 대표한다. 예를 들자면, 무소불위의 칼을 휘두르던 정철이 관동에 살고 싶네를 읊조리다가 임금님 보고싶네를 떠들다가... 모순된 것이 마구 어울려있어도 어색하지 않은 것이 인격이다. 어색하지 않을 뿐 아니라, 당연하기까지 하다. 인간성이란...

사회도 그와 같다. 인간성의 특정한 부분이 발달된 사람이 모이는 집합이 정치계이고, 또다른 어떤 부분이 발달된 사람이 모이는 것이 경제이고, 또 어떤 부분이 깡패이고... 등등.

3.
그래서 나는 소위 "정치인은 다 싫어" 류의 생각과는 조금 다르다. 그냥, 인간성의 한 부분의 현현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누구도 욕할 수 없다. (심지어 살인범 조차...) 뭐, 별로 좋은 것은 아니다. 감성이 예민하고 생각이 많으면 인생이 피곤할 뿐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이를 먹어가면서 인생이 조금씩 덜 피곤해진다.

4.
나는 소위 '논리'라는 것을 별로 믿지 않는다. 삼단논법, 뭐 그런 순수히 학교에서 배우는 것 말고. 그건 마치 타자연습과 같은 거니까. 내가 믿지 않는 건, 흔히 말하는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논리적으로 설명...', '일본 문화 개방에 대한 논리적 대응...' 이런 것들 말이다.

언제나 결론을 먼저 내리는 것은 감성이다. 논리는 감성적 결론을 수습하고 포장하기 위한 화려한 말빨일 뿐이다. 논리는 서로가 정해놓은 규칙으로 짜고 치는 놀이일 뿐이다. 논리가 안 통하는 사람은(ex.김대중은 빨갱이야! 라고 주장하는 노인네...) 사고가 열등한 것이 아니라 감정에 솔직할 뿐이다. 라고 생각한다.

감성을 결정하는 것은? 자신의 성장 환경, 부모님의 성장 환경, 친한 친구들의 생활, 자기가 아침에 일어나야 할 시간이나 먹여 살려야 할 처자식의 숫자, 이런 것들이리라.

5.
선거가 정치를 바꾼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선거가 인간 개개인의 삶을 바꾼다는 것은 아무래도 제도를 만드는 자들이 주입한 환상인 것 같다. 정치가 내 삶에 끼치는 영향 보다, 나우누리 하이텔이 내 삶에 끼친 영향이 몇십 배 더 클 꺼다.  

6.
투표하자! 라는 젊은이들의 구호는 어쩐지 나를 당황하게 만든다. "알았다! 난 한나라당에 투표하러 갈께." 라고 종종 대답하고 싶어진다. 우리 세대가 나이 오륙십이 되었을 때, 우리는 어떤 종류의 파쇼가 되어있을까?

7.
늘 느끼는 거지만, 정치에 관심없다고 하면서 늘 정치에 대해 이렇게 한 마디씩 주절거리는 걸 보면, 나는 아무래도 비정치류가 아니라 반정치류인 것 같다...

에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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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itaire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반지 따위에) 한 개 박은 보석; 보석 하나 박은 장신구(裝身具) [
패물]; U 솔리테르( ((미국) 혼자서 하는 카드놀이 ( 【영국】 patience); 혼자 두는 장기)); (미국속어) 자살.

혼자 하는 카드게임 = 자살.

웃기는 동의어다.

 

주말에는 집에서 하루종일 솔리테어만 했다.

웬지 모르지만 나는 솔리테어를 solitary (고독) 과 같은 철자로 기억하고 있었다. 혼자 하는 카드 놀이 = 고독 정도로 기억하고 있었나보다. 그래서인지 하루종일 혼자 카드놀이를 하고 있자니 괜히 고독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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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 사촌 누나가 이민을 갔다. 사촌누나는 나이 마흔 즈음이고, 애가 셋이다. 미용사로 오래 일했고, 영어는 못 한다. 국내에선 빚이 좀 있다고 한다.

매형은 사촌 누나보다 두어 살 위이다. 떡대가 좋고 건달끼도 좀 있다. 모르긴하지만 술 먹으면 가끔 마누라도 패고 할테다. 매형은 치매가 있는 노모 때문에 함께 이민길을 나서지 못했다.

건달끼 있는 매형의 곁에서 열두어살 먹은 사내아이가 제 아빠와 헤어지는게 서운해서 울었다. 식당에서 비빔밥을 먹던 중이었는데, 매형은 밥을 절반도 비우지 못하고 얼굴이 벌개서 화장실만 들락거렸다. 대전에서부터 봉고를 타고 함께 올라왔는데, 돌아가는 길에는 혼자 돌아가게 될 것이다.

공항 게이트의 간유리 틈 사이로, 애들 나가는 모습을 보겠다며 쪼그리고 앉아있는 건달끼 있는 매형을 보았다.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장면중의 하나다.

 

우리가 과거 시대를 야만적이라고 말하는 가장 큰 근거의 하나는, 가족간의 생이별이다. 군역에 의해, 전쟁에 의해, 이념에 의해, 가난과 궁핍에 의해, 노예제도에 의해 가족들은 생이별했다.

우리 시대는 과연 덜 야만적인가. 자의로 하는 생이별과 타의로 하는 생이별에 얼마만큼 차이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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